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55)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55화(223/343)
스포일러 과속, 회사에선 단 한 번도 사소한 사고를 치지 않았던 나를 믿고 스포일러 방송을 허락했으면서도 그 흔한 감시역 하나 붙이지 않았다.
예상대로지만, 혹여나 감시하는 분이 오시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다. 멤버들 중 유일하게 단 두 명, 굳이 시간 내서 개인 W앱 시 감시당하지 않는 멤버다.
어쨌든 그 결과로, 아무런 전조도 없이 터져 나오는 음률들.
루미너스분들과 최근 작업할 때 있었던 여러 에피소드를 얘기하면서도 틈틈이 흥얼거렸다.
“지금 부르는 곡이 뭐냐, 동화야.”
세상에.
“설마 모르시나요? 엄청 좋은 곡인데.”
나는 류이든이 치맥을 먹으며 담배를 피운다는 소리를 들은 사람보다 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장 당연한 진리를 부정하는 사람을 보는 표정,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저 강렬한 충격만이 드러났다.
―뭔데, 왜 나 몰라. 하루에 하는 일이라곤 차트 확인밖에 없는데
―????
―아 알려 줘라!
음, 좀 재밌네. 정보 불균형 상황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건.
하지만 그건 월스트리트의 양복 입은 양반들이나 즐거워하는 일이니까, 공개할 수밖에 없겠다. 팬분들에게 그러면 양심이 없는 짓이다.
“제가 리코더로 잠시 불어 드릴게요. 알 수밖에 없는 곡이거든요. 딱 듣자마자, 아, 하실 겁니다.”
나는 미리 준비해 온 알토 리코더를 꺼내 들었다.
항상 키보드 앞에 앉아서 건반 누르는 모습만 보여 드리는 게 좀 뭣해서 다른 악기를 연습해 왔다.
다음엔 좀 더 해괴한 악기를 연습해 보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다.
댓글창은 갑작스러운 리코더의 등장에 의아한 루미너스분들의 반응으로 가득 찼다.
리코더는 불기만 하면 소리가 난다는 점에서 접근성은 좋지만, 연주의 디테일을 살리려면 상당한 숙련도를 요구한다.
일정하게 호흡량을 분배하고, 쉬는 타이밍을 효과적으로 잡아야 한다. 또한 음을 끊을 부분과 이어갈 부분을 확정해야 한다.
“그럼, 들려 드리겠습니다.”
알토 리코더의 독특한 음색이 방을 물들인다.
키는 그룹 내 최단신이지만, 손은 두 번째로 큰 덕분에 구멍을 막는 데 어려움이 없어서 다행이다.
뜬금없는 학예회, 그러나 연습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금방 감상 모드에 들어섰다.
한참을 들으시던 루미너스분들은 애초에 이 사태가 왜 펼쳐졌는지를 회상한다.
‘스포’를 한다고 예고해서, 귀 기울여 들었는데, 스포의 밑 준비처럼 ‘제작 비하인드’를 말하다가, 갑자기 리코더 학예회.
―그래서 이게 뭔데
―ㅋㅌㅋㅋㅋㅌㅋㅋㅋㅋㅋ 지동화만 아는 그 곡
―왜 잘해 ㅋㅋㅋ 왜 연습했어 대체 ㅋㅋㅋㅋ
사실 이쯤 되면, 이 곡이 스포일러라는 걸 모르는 분은 없을 것 같지만.
‘삐익―!’
잘 나가던 연주에 음이탈이 났다.
“죄송해요. 제가 리코더 연주 실력이 부족해서…….”
여기까지가 대충 회사가 허락해 준 범위. ‘리코더 같은 걸로 조금 들려 드리려 한다.’라는 계획.
그러나 ‘같은 것’과 ‘조금’은 해석의 여지가 충분히 존재한다.
리코더 ‘같은 것’은 악기를 총칭하는 말로 볼 수 있고, ‘조금’은 정도를 나타내는 부사라 어디까지가 조금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리고 목소리는 모든 악기 중 가장 훌륭하다는 말이 있다.
“혼자선 못 하겠습니다.”
또한 여러 악기가 묶인 오케스트라를 하나의 악기로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도우미가 필요하겠네요.”
따라서 결론적으로 아카펠라를 하는 건 회사가 허락해 준 범위에 들어선다고 볼 수 있다―물론 당연히 아니다. 그걸 그렇게 이해하면 대화가 어떻게 성립할 수 있을까. 화용론적 규칙이 있는데 어떻게 그래.―.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바닥에 앉아서 보이지 않았던 채하민이 일어섰다.
“오래도 걸렸다, 동화야!”
헤실거리는 표정을 보고 있자니, 이 모든 사태를 일으킨 주 원인이 저놈이라는 사실을 루미너스분들은 알까?
뒤이어 이현재, 류이든, 석준도 일어섰다. 류이든이 답지 않게 허리를 두드리며 힘든 척했다. 몇 시간을 서 있어도 안 아프면서.
“아이고, 이 집안은 어르신 대우가 왜 이래!”
“집안이 좀 혁명적이라서요, 어르신.”
그리고 당신도 우리 집안 구성원이잖아. 왜 아닌 척해, 늙은이.
“오늘의 월간 지동화, 멤버 지동화에게 제가 써 준 곡을 발표하겠습니다. 물론 원곡은 아니고, 편곡된 걸로 아주 짧게.”
말이 끝나자 대뜸 뜬금없이 류이든이 허밍을 시작했다.
웃으면 안 되는데, 정말 이 W앱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겠으니 허탈한 웃음이 날 것만 같다.
그리고 이어서 시작된 멤버들의 허밍.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 * *
때는 바야흐로 개인 곡 작업 초창기―채하민의 깨달음 다음 날―.
나는 아침 식사 자리에서 선언했다.
“나 개인 곡.”
“뭐야, 벌써 완성됐어?”
닭가슴살을 열심히 씹던 우리의 류이든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자리에서 이쪽으로 달려들 듯 몸을 기울였다.
“아니.”
애초에 지금 계획상, 절대로 완성될 수가 없거든.
나는 채하민이 열심히 연습해서 절치부심으로 만든 계란프라이를 씹었다.
…다네. 나랑 채하민 말고는 먹을 사람이 없을 것 같으니 부지런히 먹어야겠다.
“월간 지동화 계약금을 받으려고 해.”
“…계약금?”
다들 이미 한 번씩 곡을 받은 전적이 있으므로 밥을 먹던 손을 모두 멈췄다.
나만 홀로 단 계란을 씹어 먹으며 다 먹을 때까지 저작운동을 이어 나갔다. 먹을 때 오래 씹는 편이라 꽤 오래 침묵이 이어졌다.
“…형, 자본주의에 중독됐나요?”
이현재가 그 틈을 비집고 조용히 물었다.
중독이라니, 그저 사회적 규칙을 지키려는 것이다.
기브 앤 테이크. 자본주의를 넘어서 전 인류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원칙.
의식적으로 계산하진 않더라도,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게 엄청 오래 전이고 계약서도 안 썼는데, 해당이야?”
“그럼.”
“그래, 어차피 너 고소해도 내가 질 것 같으니까 수용할게.”
류이든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샐러드를 아삭 씹었다.
“내 개인 곡에, 너희를 악기로 쓰고 싶어.”
말을 마치고 다시 계란을 집어먹었다.
정말 달다. 과하게 단 건 별로여도 적당히 단 음식은 참 좋아하는데. 어떻게 계란프라이를 먹고 고구마케이크가 그리워질 수가 있지.
“악기?”
“응. 악기. 너희들 목소리 변조해서 전자음 대용으로 쓰려고.”
앨범 타이틀과 월간 지동화는 목표 자체가 다르다.
앨범 타이틀을 쓸 때는 컨셉 등 조율해야 할 게 많아서 내 멋대로 곡을 쓰기에는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월간 지동화는 문자 그대로 내 멋대로 곡을 써도 된다.
여태까지는 멤버들에게 곡을 선물하는 형식이라 그조차도 완전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이번에는 내 곡.
그러니 유명세를 타지 않아도 좋고 대중적이지 않아도 좋다.
다만 갑작스러운 자유가 주어지면 도피한다는 말처럼, 남이 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곡을 쓰려니 막막함이 앞섰다. 마치 그룹이 해체하면 무얼 할 거냐는 물음처럼.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곡이 무엇일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결론지었다.
‘나’를 설명하는 곡을 쓴다면, 거기에 이 짐승들의 목소리를 뺄 수는 없지 않을까.
평생 내 이름 뒤에 블로센스라는 이름을 남길 예정이고, 실제 활동을 하지는 않더라도 그 이름의 구속력을 한껏 활용할 예정인데 말이다.
그러니 대중적인 방식도 아니고 도리어 기괴하다면 기괴한 짓이지만, 이놈들을 악기로 만들어서 반주를 만들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새벽에 문득 떠올랐다.
대체 어떻게 결과물이 나올지 예상조차 되지 않는다. 아카펠라는 심심하고, 정말 악기로 만들 예정이라.
“…형―님, 뭔가 무섭습니다―.”
주괴 빵을 밥 대신 먹고 있던 석준이 약간 떨며 이현재 뒤로 숨었다. 덩치 차이는 고려하지 않는 선택이 돋보인다.
나는 멤버들에게 하나하나 계획을 말해 줬다.
‘너희가 없으면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계획’, 해결사무소를 통해 느꼈던 감각, 저놈들과도 공유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다.
* * *
그러나 지동화가 멤버들에게 선물한 건 기묘한 감각이었다.
지동화의 프로듀싱의 가장 좋은 점은 명확하다는 것.
자신이 내기 가장 편한 소리를 고르고 골라서 그중에서 가장 듣기 좋은 걸 찾아내서는 어떻게 부를지 명확히 요청한다는 점이다.
녹음하기 편하고 빠르게 끝나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지동화의 요청 사항은 평소와는 너무나 달랐다.
“아무 소리.”
“네?”
다른 멤버가 연기 수업을 들으러 간 김에 미리 내려와 지동화의 작업실에 방문한 이현재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아무 소리든 좋아.”
“…아무 소리요?”
“지금 말하는 것도 녹음 중.”
“…형, 대체 뭘 원하는?”
“허밍, 노래, 대화, 비명, 울음, 웃음, 다 좋아.”
뒤에 소파에 앉아서 대기 중이던 석준마저 주괴에서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소리.
뭔가, 이상한데.
‘이상하다’의 기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석준도 그렇게 생각할 지경.
“…이거 녹음이 맞구요?”
“다큐멘터리에 조금 더 가깝지.”
심지어 저기 한편엔 지동화의 개인 캠코더로 이 현장도 촬영 중이다.
다큐멘터리를 원하는 팬분들의 요청을 만족시키기 위한 가내 수공업의 극치, 편집까지 자신의 손으로 해서 나중에 풀 예정이다.
이현재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마이크 앞에 벙벙하니 서 있다 가까스로 소음을 뱉었다.
“흐어…….”
그저 거친 숨소리. 지동화는 녹음을 멈추고 소리를 잘라 따로 저장했다.
“그런 거 좋아.”
“…형, 혹시 많이 아프신가요?”
저처럼 병원을 이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조심스레 뒷말을 삼켰다.
“다음은 웃어 줘.”
“…음, 형, 저 뛰쳐 나가구 싶은 거 처음이에요, 형 작업실에서.”
“그러면 나는 오랜만에 널 감금하겠지.”
“그래서 오늘 매듭 푸는 법 읽구 왔죠.”
“나도 오늘 등산가가 매듭 묶는 방법 읽어 왔어.”
“…칼은 안 들고 와서 제가 졌네요. 뭐 하면 돼요?”
완전한 무표정으로 툭툭 뱉어대는 둘.
석준은 게임기를 아예 내려놓고 이 광경을 멍하니 쳐다봤다.
석준은 오늘 아침에 지동화가 작은 칼로 자르기 힘든 줄을 가방에 챙기는 걸 목격한 사람이라 ‘칼을 가지고― 왔어도 졌을 거야.’, 속으로만 생각했다.
이현재는 한숨을 푹 쉬었고, 지동화는 다시 파일을 저장하며 ‘이현재 한숨 소리’라고 적어 뒀다.
웃음, 울음, 비명, 아무 곡을 틀어 주고 하는 스캣, 악보를 받아 진행한 허밍까지 모두 녹음했다. 아무런 규칙도 없이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대화도 녹음했고.
이 모든 기록을 지동화는 시간대와 느낌별로 분류해 정리하느라 바빴다.
“끝, 고생 많았어.”
이현재는 기진맥진한 걸음으로 문을 열고 튀어나왔다.
스탠딩 코미디, 아니면 1인 연극을 진행한 배우가 된 것만 같았다.
연기를 잘하는 사람도 못 되는데, 울다가 웃고 그러다 화내고 우울해하기를 요청받았다.
거기에 보컬적 능력의 한계를 시험하려는 건지. 자신에게 평소에는 할 일이 많지도 않은 어려운 기교도 요구했다.
이현재는 머릿속으로 ‘타이틀 녹음보다 이게 더 힘든 게 맞나.’라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 지동화의 옆에 슬며시 앉았다.
“형.”
“응.”
“이거, 미친 짓 같아요.”
편안한 표정.
차마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한테 미쳤다고 말할 수 없었던 이현재다.
“동의해.”
단순한 대답.
속뜻까지 알아차렸어도 그렇게 대답하는 지동화다.
그리고 이 풍경을 모두 지켜보던 석준은 지동화의 고개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저, 들어갑니까?”
“응.”
왜 그 미소가 두렵게 느껴지는지, 석준은 떼어지지 않는 발을 힘겹게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