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5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56화(224/343)
새벽녘 작업실, 소파에 채하민이 잠들어 있고 나는 밤샘 작업 중이다. 사실 소파라기엔 매트리스까지 붙어 있어서 침대에 더 가까웠다.
내 개인 곡 작업이 길어지며 수면이 부족해져 가던 나를 보더니, 채하민은 ‘도저히 안 되겠다!’라며 밤샘 작업하는 날에는 작업실에 와서 자고 있다.
혹시 쓰러지면 병원에 보내겠다는 의지, ‘작업 적당히 하기’라는 소원을 접고 그저 건강하게만 작업해 달라는 부모 같은 마음가짐이다.
처음엔 나도 이렇게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워야 할 줄 몰랐다. 며칠 정도 집중해서 작업하면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소리를 바꾸는 작업이라는 게 이렇게 노동집약적인 일인지 해 본 적이 없어서 몰랐으니까.
실제로 해 보니 조금씩 소리를 만지작대면서 음을 바꿔 보고 마음에 드는 소리를 찾는 건 말도 안 되는 중노동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모든 멤버들을 악기로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이를 위해 멤버들의 ‘모든 종류’의 소리를 들으며 깨달은 것들.
이현재 웃음이 플루트처럼 청명하다면, 석준은 타악기처럼 둔탁하다.
이현재의 울음은 세상에 실망한 옛날 대학생의 조소 같고, 석준은 기르던 강아지가 죽은 날 초등학생의 그것처럼 들린다.
류이든의 한숨이 중년 락가수가 새벽에 뱉는 한숨이라면, 채하민은 밝은 소년의 딱 하루 우울한 날 같다.
허밍을 할 때는 채하민은 기분 좋은 개 같고, 류이든은 기어 다니는 뱀 같다. 반면 화가 났을 땐 채하민이 먹잇감을 노려보는 뱀이고, 도리어 류이든이 주인을 지키려는 개 같다.
이 밖에도 여러 감정 상태에서의 음성적 특징 하나하나가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되었다.
일상생활 속에선 당연히 음성보단 의미에 더 주의를 기울였는데, 순수하게 ‘소리’로 접근하니 낯선 것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멤버들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새롭게 깨닫는 것들이 늘어났다.
역시 확신하는 것만큼 오만한 일도 없나 봐.
잡생각을 줄줄 이어 하면서도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이다가, 드디어.
“…끝났다.”
모든 악기를 음성 편집 기술로 작업한 멤버들의 ‘소리’로 대체한 곡.
사람의 목소리라는 건 주의 깊게 들으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마지막 완성본을 파일로 저장하며 제목을 적어 넣었다.
‘자화상(自話像)’.
그림을 의미하는 ‘화(畵)’ 자를 ‘말할 화(話)’ 자로 바꿨다. 한문 문법에 딱 들어맞진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철학과 출신이라.
엔터를 누르고, 나는 눈을 비볐다.
망할, 졸려. 작업 기간 내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더니.
고개를 돌렸다. 내가 쓰러져도 들을 수는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깊게 잠든 채하민이 보였다.
침대가 1인용이라 빈자리는 없고, 저놈을 깨워서 숙소로 가기 전에 졸음에 쓰러질 것 같다.
음, 별수 없네. 나는 의자를 최대한 뒤로 눕히고 몸을 누였다.
* * *
그랬는데 눈을 떠 보니 어째서 침대 위일까.
잠귀가 예민하기로는 우리 그룹에서 류이든과 우열을 다투는데.
“…하민?”
소파에서 일어나 아래를 보고 언젠가의 풍경처럼 쓰러져 있는 채하민이 보였다.
얜, 왜 바닥에서 자고 있어.
“…동화야?”
놀랍게도 한 번 불렀을 뿐인데 채하민이 눈을 떴다. 비공식 세계 신기록이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채하민은 겨울잠에서 깬 짐승처럼 주변 상황을 살폈다. 그러고는 고개 한 번 갸웃.
“어, 나 왜 바닥에서 자고 있어?”
지난번부터, 그런 걸 나한테 왜 묻냐고.
어벙한 채하민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터졌다.
“나 여기로 옮기고 네가 내려가서 잔 것 같아.”
“…아! 맞다. 그런가 봐.”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기지개를 켰다. 긴 밤샘 작업 끝에 드디어 푹 잔 거라 정신이 청명하다.
채하민도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통통 치다가 내 옆에 걸터앉았다.
“그래서, 곡은 완성됐어?”
“들려줘?”
어차피 멤버들에게 최종 검수를 받을 예정인데.
“와! 그렇게 안 들려주더니!”
녹음한 멤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작업 중 9할이 너희들 목소리를 듣는 중이었기 때문에 들려줄 게 없었다.
채하민은 호들갑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내 자리에 앉더니 곧바로 헤드셋을 끼곤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틀어!’, 아무 말 없이도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다.
작업 후유증으로 상상하는 건데도 그 디테일이 말도 안 된다.
나는 잠금을 해제하고 곧바로 작업물을 틀었다.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채하민은 뻘쭘한 표정으로 헤드셋을 벗고는 나를 잠시 째려보다 말았다.
스피커는 그러거나 말거나, 모든 멤버들의 허밍을 쏟아냈다.
녹음할 땐 아무런 화음도 맞추지 않았지만, 내가 수작업으로 소리 사이사이를 잘라서 화음을 맞췄다.
그러나 그럼에도 완전히 잘라내지 못한 소리들이 불협화음처럼 여기저기 튀고, 잘린 부분이 조금은 부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불안했다. 마치 TV의 전파가 불안정한 것처럼 툭툭.
소리는 조금씩 전자음처럼 변조되더니 신스 리프처럼 변했다.
목소리가 전자음으로 뒤바뀌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와, 지금 이거 우리 목소리야?”
“응.”
정확히 3일간 고생했지.
석준의 둔탁한 비트 박스, 후보정으로 거의 드럼에 가깝게 바꿨다. 다만 일부러 숨을 들이켜는 짧은 소리를 남겨 사람임은 알 수 있게끔 했다.
처음부터 시작되는 이 곡의 후렴구.
자화상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전부 이놈들의 목소리로만 구성했다.
그리고 후렴이 끝나면.
내 이름이 낯설게 들렸던 열 살 무렵
거울을 봐도 깨진 줄을 몰랐고
내 이름이 나라는 게 싫었던 스무 살 무렵
거울을 보면 내 손으로 깨 버렸어
채하민은 내 과거의 모든 이야기를 알아서 순간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걸 가사 주제로 삼을 줄은 예상도 못 했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스무 살 무렵, 정확히는 스물한 살, 내 자신이 혐오스러워서 거울을 깨 버리고 뺨에 상처가 났던 일까지 알고 있는 놈은 내 주변에 기지생과 채하민밖에 없으니, 저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다른 사람은 아무도 알 수 없다.
프리코러스, 멤버들의 울음과 웃음을 잘 다듬어서 하나의 반주로 만들었다.
후렴구로 들어가기 전에 분위기를 끌어가는 파트라 과하지 않고 잔잔하다.
자화상, 말하지 못했던 나, 내 이름
오랜만에 해 보는 일
자화상, 누군지 몰랐던 나, 내 초상
이제야 답하는 질문
정적, 그리고 울려 퍼지는 한마디.
(너, 누구야.)
류이든의 목소리다.
녹음 당시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는 나를 보며 류이든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던 걸 그대로 사용했다.
아마 류이든은 자기가 실없이 뱉었던 농담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겠지.
짧은 정적을 깨부수면서 여러 소리를 더해 희망차고 밝은 분위기의 후렴이 이어진다.
퓨처베이스를 기반으로 해서 귀를 사로잡는 후렴구. 준비한 최선의 답변이다.
내 이름을 구성하는 것들, 멤버들의 목소리와 내가 쓴 곡, 함께 녹음한 추억, 그 모든 것이다.
내 이름을 힘겹게 들었던 때에는
거울 속에 나만 있는 줄 알았고
내 이름이 나라는 게 좋은 지금은
거울을 보면 네가 있는 걸 깨달았어
거울을 보면 멤버들과 동생, 회사 스태프분들과 팬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존재를 상기시켜 준다.
내가 감사한 모든 분이 가사에 담긴 뜻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었다.
자화상, 말하지 못했던 나, 내 이름
오랜만에 해 보는 일
자화상, 누군지 몰랐던 나, 내 초상
이제야 답하는 질문
(누구야, 너!)
프리코러스.
류이든 대신에 명확한 지시가 없는 나를 보며 똑같은 소리를 했던 채하민의 목소리가 나왔다.
“와…, 나다.”
천장을 보던 채하민은 후렴이 시작되자 흐뭇하게 웃으면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천천히 눈을 감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콧노래로 후렴구를 따라부르는 걸 보고 있으니 나도 조금 흥겨워질 것 같았다.
“저것뿐만 아니라, 이 후렴구도 전부 너랑 다른 멤버들이야.”
“느낌 이상하다, 진짜. 뭔가 이상해. 뭔진 모르겠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알 것도 같아서 뭔가 무섭다!”
무섭다고 말하면서도 헤실거리는 걸 보면 절대 무서운 건 아니다. 무서움을 느낄 때 목소리가 어떤지, 나는 알고 있다.
마지막 후렴으로 넘어가기 전 브릿지.
내 이름을 지은 건 삶을 가르쳐 준 분들이었고
내 이름을 채운 건
(누구긴.)
류이든과 채하민이 누구냐고 장난삼아 물었을 때 했던 답을 따로 녹음해 붙이고, 마지막 후렴이 흘렀다.
지난번의 후렴이 희망차고 쾌활하다면 이번에는 청량하고 개운하다.
메인으로 삼은 소리가 이현재의 목소리로 바뀌어서 그렇다.
후렴이 끝날 때, 전자음 같았던 목소리는 천천히 멤버들의 목소리로 돌아온다.
맨 처음과는 달리 일부러 자르거나 수정하지 않아서 사이사이 불협화음이 섞여 있었지만, 그리 불편하진 않았다.
목소리의 주인들 사이에도 불협화음이 있지만 불편하진 않은 것처럼.
“…신기하다.”
채하민은 환상에 빠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우리 목소리야?”
“응.”
할 말을 잃은 듯 어벙하게 입을 벌린다.
“빨리, 다른 애들도 들려주러 가자!”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서는 발을 구르며 재촉했다.
“자고 있지 않, 잠깐만.”
“응?”
“…지금 몇 시지.”
나는 닫아뒀던 컴퓨터의 작업 표시줄을 열었다.
‘10:23’.
세상에.
“…우리, 연습 지각.”
당연히 내가 눈을 떴을 때니까 새벽일 줄 알았는데. 이 방에 햇볕이 들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안타까운 때가.
“흐허헝.”
채하민은 멍청한 웃음을 흘렸다.
“너 늦는 거 처음이다.”
“그러게.”
인생 통틀어서 병결은 해 본 적 있어도 늦잠 자서 지각을 해 본 경우는 없다.
“흐하, 동화가 나한테 비밀도 다― 털어놓더니, 이젠 지각도 같이 해 주네.”
“…음, 근묵자흑.”
역시 옛말에는 지혜가 담겨 있긴 하다.
“동화야, 나 그 정도는 알아.”
천재네, 하민.
* * *
연습실에 도착하자 류이든이 한 손에 의사봉을 들고 있었다.
지난번과 달리 근엄하게 서서 한 손에 망치를 들고 있는 모양새라, 금방이라도 우리의 머리를 부술 것만 같았다. 몸도 좋아서 토르가 떠올랐다.
“우리 자기들.”
…미친놈.
“이든이가 여기 온 건 8시였어요. 공식 연습이 10시라고 해도 일찍 모이는 게 불문율이니까!”
채하민은 기죽은 얼굴로 ‘죄송합니다!’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나 역시 할 말은 없어서 류이든의 3인칭이 조금 역겹지만 고개를 숙였다.
“전화를 몇 통을 하고, 작업실도 찾아갔는데 두드려도 답도 없고, 포기하고 돌아와서 이렇게 정의의 의사봉을 들었답니다.”
능글맞게 웃고 있는 류이든 낯짝이 약간 무섭게 느껴지는 건 처음인걸.
“자, 들어봅시다. 왜 늦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