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57)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57화(225/343)
“늦잠.”
“엥? 너, 늦잠 잤어?”
류이든을 중앙에 두고 양옆에 앉아 있던 석준과 이현재도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물으면.
“…늦게 깨면 할 수 있지.”
라고 밖에는 답할 말이 없는데.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 그게 가능해. 넌데…….”
류이든이 ‘나는 그런 거 몰라, 무서워.’라는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이야기가 급물살을 타며 ‘아무래도 지동화가 힘든 게 분명하다. 밤을 새우면 새웠지 저 인간이 늦잠을 잘 리가 없다.’라는 결론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나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니, 얘들아. 오늘 연습은 우리끼리 하고 동화는 방에 감금할까?”
내 의사는, 망할 놈아.
썩어 들어가는 내 표정과는 다르게 옆에 시무룩해져 있던 채하민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 그래두 사람을 감금하는 건 인권 침해…….”
내 과외생.
“현재야, 형은 늙어서 그런 거 몰라. 구시대적인 사람이야.”
인권 개념이 언제 발명됐는지 모르는 게 분명하다. 구시대 사람들도 알아야 정상인데.
“일단, 곡 완성하느라 그런 거야.”
이런 화제에 논리적으로 대응하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내가 감금되는 비합리적 결론도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최선책은 화제를 전환하는 것.
“그 아무 녹음, 그거?”
“응.”
이런 식으로 관심을 보일 법한 화제를 던져주면, 내 감금에 진심인 채하민을 제외하면 순간적으로 쉽게 화제를 돌릴 수 있다.
“완성하고 긴장 풀려서 너무 푹 잤거든.”
“살다가 네 입에서 푹 잤다는 말을 듣다니, 형은 감동했어.”
류이든은 우아하게 의사봉으로 눈가의 눈물을 닦는 시늉을 했다.
…미친놈. 망치로 눈물 닦는 광전사 같아.
“같이 들어볼까.”
나는 자연스레 연습실에 앉아 파일을 담아온 노트북을 켰다.
솔직히 자신 있다, 별로라고 비판받지는 않을걸. 시간 투자는 아주 높은 확률로 결과물에 비례하는 법이다.
* * *
멤버들은 곡이 끝나자마자 외마디 감탄을 내뱉었다.
“아니, 이게 우리 목소리 맞다고?”
“형, 잘 들어보면 들려요. 저 허밍할 때 습관도 티 나구.”
“…비트박―스, 이것보다 못하는데.”
“후보정이 엄청 발전하긴 한 것 같죠?”
그렇지.
“형, 이 정도면 그 말두 안 되는 녹음 몇 번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추가 녹음 한다고 할 때 도망쳤으면서.”
“뱉은 말은 지켜야 하니까요.”
“가사 귀엽다. 동화, 네 개인 곡이라길래 당연히 이해 포기하는 가사일 줄 알았는데, 훈훈해.”
어느새 연습 시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서로 둘러앉아 내 개인 곡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팀장님이 지나가다 보시면 바로 류이든한테 태클 들어올 장면이다.
“곡―, 정말 좋습니다!”
“너희들 덕에.”
“우리 동화가 아주 훈훈한 분위기 만드는 데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이든이 형은 속상하다.”
네가 밖에 나가서 3인칭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똑같이 수치스러워할 예정이니까 걱정하지 말도록.
“이거 티저는 언제 나가, 동화야?”
“안 나가.”
채하민이 순간 당황해선 고개를 한 번 갸웃거렸다.
그러나 이내 깜짝 공개인가 보다, 납득하며 화제를 돌렸다.
“…응, 그래? 그럼 뮤비는?”
“그것도.”
모두 없을 예정이다. 다만 내가 직접 만든 메이킹 필름과 가사 영상이 올라갈 뿐.
애초에 유행하라고 만든 곡이 아니라, 팬분들이랑 우리끼리 소담하게 즐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든 곡이다.
즉, 과한 투자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이 곡에 쓸 돈으로 이번 앨범에 투자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렇게 회사에 부탁드리니, 장해진 팀장님이 극구 반대하며 개소리하지 말라는 격앙된 반응까지 보였지만, 우리 회사 방침은 ‘아티스트 의사, 최대 존중’이 기본이라 내가 이겼다.
마지막까지 뮤직비디오는 촬영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던 장해진 팀장님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내가 전해주고 싶은 말을, 전해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손수 전해주고 싶다.’라는 내 진심 어린 이야기에 심각하게 고민하시더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불만이 가득해 보였던 그 눈은 아직 잊지 못한다.
어쨌든 그래서 직접 가내수공업을 돌릴 계획이었다.
그래야만 나를 표현하는 곡의 의미가 살기도 하는…….
“뭐?”
내 이야기를 듣던 류이든이 곧바로 표정이 썩어 들어가선 말을 끊었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귀중한 모습, 우리 리더는 타인의 의견을 들을 때 말을 잘 끊지 않는데.
“다시 말해 볼래, 동화야.”
“합리적인 선택을―”
“하민아, 쟤 입 막고 붙잡아.”
뒤에 앉아 있던 채하민이 곧바로 나를 옴짝달싹 못 하게 옭아맸다.
남자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뒤에서 가두듯이 붙잡는 방식이다.
약간 분노한 게 분명하다. 화낼 때 숨소리가 뭔지 알고 있으니까.
반항해 봤자 나만 아프니까 얌전히 있었다.
류이든은 목덜미를 몇 번 주무르더니 쾌활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 우리 동화가 또 이상한 말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제가 얘기를 좀 할게요.”
끄덕.
“다른 멤버들은 다 개인 곡으로 뮤비 비슷한 게 하나씩 나왔지?”
끄덕.
“심지어 나는 개인 무대도 했고, 현재는 나름대로 유명해지니까 라디오 가서 여러 번 부르고 다녔지.”
끄덕.
“하민이 곡은 퍼포먼스 비디오에 돈 쏟아부었고, 준이 가사 영상이랑 메이킹 필름도 돈 좀 썼단 말이지.”
끄덕.
“그런 와중에 너만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주장하면, 멤버들 마음이 어떨까, 이 망할!”
석준이 ‘오―, 꽤 비슷했습니다.’라며 감탄하는 사이 나는 손을 들었다.
“하민아.”
“응.”
손이 떨어져 나가고 숨을 한번 골랐다.
“방금 저 곡을 들어서 알겠지만, 그룹에 투자해 달라는 게 나한테 투자해 달라는 것과 같―”
“하민아, 다시 막자!”
턱, 뒷말이 채 나가지 못하고 다시 발언의 자유를 잃고 말았다.
“우리 동화가 훈훈한 분위기로 어떻게 무마하려고 하다니, 아주 요망해. 막 나를 감동시켜서 넘어가려고!”
꺄르르, 소년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이현재. 잠시 틈이 생기자 툭 말을 던졌다.
“형은 진지하게 그게 합리적이라 생각할 사람인 걸 알구 있어요. 다만…….”
진짜 웃긴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웃고 있는 게 분명하다.
소리 분석으로 긴 시간을 보내고 나니 멤버들의 감정을 더욱 정확하게 추측할 수 있었다.
다만, 뒤의 말을 흐리던 이현재는 청아한 목소리로 마저 말을 마쳤다.
“아하하, 형을 말루 설득할 자신은 없는데, 계속 이러다 나중에 저두 멱살 한번 잡을 것 같아요.”
[저건 진짭니다. 주의하세요! 제가 잡혀 봐서 압니다! 진짜 잡아요!]곳곳에서 쏟아지는 질책과 정신 사납게 주의 사인을 울려대는 기지생의 알림창.
그러나 이 모든 고난을 겪고 있는 나는 여전히 채하민에게 입이 막혀 의사 표시를 할 수 없었다.
“아, 이거 안 되겠네. 동화가 우리한테 크게 잘못했다. 벌칙 정해, 벌칙.”
법이 적용될 사람의 의사가 배제된 법 제정은 현대 사회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나의 인권 변호사이자 유일한 희망인 이현재에게 눈을 돌렸지만, ‘아, 혼자였으면 분명 멱살 잡았을 거야. 다행이다. 존경하는 형 멱살 잡기 싫었는데.’라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그럼, 우리 동화를 위한 홍보의 장을 하나 열자!”
내 입을 막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 있는 채하민이 소리쳤다.
그보다 너희들 의사를 관철하고 싶으면 장해진 팀장님을 찾아가 추가 투자금을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나는 그룹에서 이런 선택을 할 땐 그래도 믿을 만한 인간인 류이든을 바라봤지만, ‘아, 뭔가 재밌는 향기가 난다.’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하하, 동화 풀어주자. 우리끼린 벌칙 정하면 되잖아.”
“그냥 팀장님께 가서.”
“쉿. 동화야, 돈이 문제가 아니야.”
도련님이 그런 얘기를 한다고 해서 세상이 갑자기 평등해지진 않아, 하민.
그보다 채하민이 곧바로 내가 무슨 소릴 하는지 눈치챘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내 사비로 영상 제작 업체 고용하고 너랑 연결해 줘도 되는 문제거든, 그건.”
그거, 네 아버님 돈이야, 하민.
“회사분들도 나빴어. 그걸 왜 나나 이든이 형한테 말씀도 안 해 주시고.”
내 가내수공업 소식은 직접 전해주고 싶어서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내가.
직접 한땀 한땀 영상 만든 거 보여 주면서 오랜만에 감정적 교류 좀 해 보려고, 이 망할 것들아.
그러나 류이든을 중심으로 이현재, 채하민이 합심해서 어떻게든 개인 곡 홍보도 할 겸 부끄러운 상황을 만들어 나에게 수치를 주겠다는 광란의 계획을 막을 수는 없었다.
“형님은―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 서툽―니다.”
이걸 지켜보던 석준이 내게 어깨동무하며 작게 속삭였다.
“저희는 형―님이 빛나는 것도― 보고 싶고, 선물―은 곡만으로도 충분한데, 과하셨습니다―.”
이번엔 조금 억울한걸.
다른 때와 달리 나를 수단으로 사용하려던 것도 아니고, 정말 내 개인적으로 그렇게 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래서 평소 행실이 중요한가 보다.
“…그래.”
석준은 역시 현명한 인간이다. 아이를 현자로 표현하는 동양의 글이 꽤 그럴듯한 것처럼.
“평소엔 똑똑한데, 이런 건 저―보다 멍청합니다.”
세상에. 살다 살다 멍청하다는 소리를 들을 날이 올 줄은.
* * *
…라는 계기로 지금 갑작스러운 자화상의 아카펠라 편곡 버전 시연 현장이 기획되었다.
스포일러 방송이라는 어그로, 리코더 연주를 통한 나의 수치심 자극까지.―물론 의도와 다르게 꽤 재밌게 연습해서 다른 괴상한 악기에도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어떻게든 내 개인 곡을 저예산으로 홍보하려는 수작이다.
모든 아카펠라를 마친 멤버들은 한마디 말도 없이 다시 쭈그려 앉아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화면 속에서, 초라하게 홀로 남은 내 모습.
잠시 허탈한 웃음을 몇 번 흘렸다.
“여러분, 이래도 모르시겠나요.”
―아니 ㅋㅋㅌㅋㅋㅋㅋㅌㅋㅋ 뭔데 이게 ㅋㅌㅋㅋㅋㅋ 왜 갑자기 ㅋㅌㅋㅋㅋㅋ
―너무 뜬금없잖아 ㅋㅋㅌㅋㅋㅋㅋㅋㅋㅋ
잠깐만, 이건 좀 수치스러운걸. 이 모든 뒷감당을 나한테 떠맡기다니.
처음 시작할 땐 그냥 웃긴 장난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상황이 닥치니 수치스럽다.
“놀랍게도 이건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니까.”
숨을 한 번 쉬고.
“다음 주, 공식 영상 채널 기대해 주세요.”
숨어 있던 멤버들이 어디서 사 온 건지 모를 생일용 폭죽을 터뜨렸다.
“와아! 월간 지동화 첫 번째 시즌 마지막 곡!”
“동화가 동화에게 선물하는 곡!”
“이름하여 자화상!”
“여러분, 메이킹 필름, 동화가 직접 만들었으니까, 꼭 보세요!”
류이든과 채하민이 주거니 받거니 홍보를 시작하고, 막내 두 명은 옆에서 박수나 치고 있는 꼴.
“그럼 이만!”
그러고는 모두 순식간에 작업실 문을 열고 도주했다.
다시 한번 황량하게 나 홀로 미소 짓고 있는 화면으로 돌아왔다. 당황스러워하는 채팅창을 보며, 나는 짧게 한마디 남겼다.
“…여러분, 저도 피해자입니다.”
원인 제공을 했다고 해도 피해자는 피해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