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5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59화(227/343)
“…아주 약간 예스.”
연습실에 오는 게 불편했냐는 질문에 한진 씨가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편히 말씀하시지, 그렇게 열심히 가르쳐 드렸는데.
“사실, 저희 연습생들 중에서 몇몇 분들보다도 연습실에 자주 오신 적도 있어요.”
“그게― 가능한가요?”
우리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무렵 연습실에 오지 않으면 류이든이 철저히 응징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석준은 쉬고 싶은 날에도 항상 류이든의 손에 잡혀 연습실에 끌려갔으니까.
류이든의 눈은 꽤 정확해서 인간이 쓰러지기 직전까지 굴리는 데 능숙하다. 아마도 19세기 영국에서 태어났다면 자본가로 이름을 알렸을걸.
“동화 선생님은, 정말, 저희들을 아껴 주셔서.”
그만, 더 듣고 싶지 않아.
“한번은 저랑 은구가 과연 선배가 며칠 오실까 세 본 적 있는데, 한 주에 다섯 번 오셨거든요. X튜브에 동화 선생님 새벽 교실 모음집이었나? 그거 빙산의 일각이에요! 가끔 쉬러 가고 싶어도! 선배가 오면! 절로 착석! 그게 아주 아주 아주 약간 불편했던 적이 딱! 한 번 있답니다.”
“형님. 새벽에 집에 안 들어오고 뭐 하세요.”
“집 가는 길이었어.”
최소한 편곡하는 인간들은 떨어지지 않게끔 하고 싶었을 뿐이다.
실시간 댓글창에 농담으로 나를 놀리는 분들을 보고 있으려니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
“여러분, 제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단 한 번도 제가 강제한 적은 없다는 겁니다.”
내가 당당하게 어깨를 펼치자 은구 씨가 목을 축이려고 마시던 물을 뿜으려다가 가까스로 참아냈다.
“은구 씨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형님.”
“아, 아니, 그, 저는 동화 선배 진짜 존경하고, 또 매번 감사하고, 질문지에도 불편한 적 없었다고 적었거든요.”
“으, 은구야, 너 얘기가 다르…….”
순간적으로 배신감에 치를 떠는 한진 씨는 잠시 내버려 두자. 뭔가 이야기가 오갔나 보지.
“형은 좀 닥, 조용히 해요. 어쨌든 그랬는데…….”
웬 다람쥐 한 마리가 여전히 나를 흘깃흘깃 봤다.
이 근본 없는 방송은 격식 없는 게 본질인데, 선배라서 눈치를 보고 있다니.
입 모양으로 ‘뭐든 괜찮습니다.’라고 말해 주자 그제야 툭 던졌다.
“동화 선배는 존재만으로도 사람을 감금할 수 있어요!”
정말 힘겹게 뱉어내는 소리.
정말 그렇다면 그건 인류 차원에서 제거해야 할 빌런이 아닐까.
석준도 순간 고개를 숙이고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리 지쳐도 동화 선배님만 보면, ‘아, 그냥 앉아서 일해야겠다.’ 싶어진단 말이죠. 선배님은 잠죽자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데, 내가 쉬는 게 가당키나 하나… 그런 생각에.”
잠죽자가 뭘까. 맥락상 쉰다는 개념이 머릿속에 없는 놈을 뜻한다는 것쯤은 알겠다. 물론, 나는 쉴 때 쉬는 인간이지만.
“아, 저도 압니다!”
석준이 슬픈 눈으로 두 게스트에게 공감을 표했다. 자신의 일상이라는 듯,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저희가 데뷔하고 나서, 저희 서바이벌 때 곡을 다시 둘러봤는데, 전부 다 편곡란에 동화 선배 이름이 있더라고요.”
“아, 맞아요. 새삼 신비롭더라고요. 심지어 작곡해 주신 곡도 많고.”
갑작스레 시작된 미담.
앞서 있었던 대화를 포장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게다가 커피도 제일 많이 사 주셨죠. 고민 상담도 제일 자주 들어주시고.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은지도 막 알려 주셨어요.”
은구 씨의 눈에 점차 광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니지만, 무언가에 집중은 하고 있는 상태.
그 위에 은근한 미소를 얹으니 뭔가,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 풍겼다.
“편곡할 때 필요한 자잘한 테크닉부터, 기존 곡들 해체하는 방법, 말할 때 어디에 강세를 넣어야 관심이 모이는지도 배웠고.”
…음, 그건 제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일을 할 땐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도 다 배웠거든요. 인생을 가르쳐 주신 선배님.”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은구 씨.
말을 마친 은구 씨는 기뻐 보여서 뭐라 첨언할 말이 없었다.
자라나는 신인에게 이런 말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그 표정은 마치 정신 나간 놈이었던 TOT의 예언 선배나,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았던 갓에이의 윤성호 같았다.
즉, 조금 순화해서 말하면, 주괴 얘기하는 석준 같았다.
라디오에서 가장 피해야 하는 게 정적이지만, 진행을 맡은 나와 석준이 입을 어벙하게 벌리고 있으니 순간적으로 고요해졌다.
둘 다 은구 씨가 내비치는, 나를 향한 격렬한 존경심을 마주하기에는 나약했다.
“우리 은구가 좀 동화 선배를 좋아하죠.”
그러니 한진 씨가 아니었다면 정적이 얼마나 이어졌을지 차마 알 수가 없다.
“…좀이구나.”
석준이 뱉은 말에 나는 좀, 웃음을 흘렸다.
* * *
“그래서 저희가 편곡을 해 갔는데, 동화 선생님이 냉정하게, ‘이거, 다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마감이 바로 내일인데!”
잘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고, 두 명의 실력이면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아, 맞아. 동화 선배님이 연습생 시절에 진짜 전설이었어요. 예전에 연습생용 작업 컴퓨터가 여러 대 있었는데, 이게 시간제한이 없거든요. 나가지만 않으면. 근데 동화 선배님이 캔커피 한 아름 들고 들어가시더니 3일 정도 안 나온 적이 있어요. 혹시 싶어서 안에 들여다보면, 계속 작업 중이었고요.”
나는 모르는 일이다. 기지생,
[몰라도 알 것 같지 않습니까?]저런.
“그리고 동화 선생님이 스케줄이 없는 날이었는데 어김없이 커피를 들고 나타나셔서는 편곡 팀을 불시검문 하셨답니다. 그리고 그중 절반은 밤샘 명령이 떨어졌어요.”
다시 하라고 했을 뿐, 밤새우라고 한 적은 없다.
다만 지금 입에 담았다가는 한진 씨가 커피를 뿜을 것 같으니 말하진 않았다.
파도 파도 괴담밖에 나오지 않는 나의 이야기.
이 자리는 내가 강력하게 추천해서 만들어진 당신들 홍보하라고 마련된 자리인데, 왜 정작 당신들은 자기 그룹 얘기는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습니까.
“이쯤 하고, 키네티카 얘기를 좀, 들어볼까요.”
“자, 여러분, 형님 표정을 잘 보십시오. 무표정 같지만, 하민 형님에 따르면 난처해서 화제 전환을 하려고 발을 동동거릴 때의 모습입니다!”
닥쳐, 준.
“와아, 블로센스 멤버분들은 다들 동화 선배 표정 읽을 줄 아나요?”
간절한 염원이라도 비는 모양새.
은구 씨, 그런 하등 쓸모없는 능력을 왜…….
“네, 저희끼리 스터디 만들어서, 하민 형님이 프레젠테이션 해 주십니다.”
몰랐는데, 전혀. 소름이 돋는걸.
“진짜야?”
“…아, 극비 사항이었습니다.”
석준이 입을 틀어막았다. 저들끼리의 비밀이었나 보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름 돋는 짓이니, 내가 알았으면 질색을 할 걸 저놈들도 알았다는 뜻이다.
어쩐지, 이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채하민만큼이나 내 표정을 잘 읽어낸다 했다.
실시간으로 경악하고 있는 나와 달리 은구 씨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소리쳤다.
“하민 선배…, 꼭 만나 뵙고 싶어요!”
“세상에.”
어쩌다 저 다람쥐는 저렇게까지 망가졌을까. 내가 원인이라면, 나는 슬플 것이다.
* * *
라디오가 끝나고, 나에게 다가온 은구 씨는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선배님!”
원래라면, 그러니까 아이돌 제작 공방 당시만 하더라도 귀여웠을 풍경인데, 오늘 하루 라디오를 같이 하고 나니 부담스러울 따름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존경을 받을 위인은 못 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은구 씨 뒤를 따라 쪼르르 달려온 한진 씨는 석준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한 사람씩 맡아서 인사드리는 계획인가 보다.
“막방 때, 선배님 꼭 뵙고 싶었는데, 아쉬워요,”
“그때 저도 스케줄이 있었거든요.”
“제가 데뷔 확정되고, 선배님한테 배운 게, 전부 떠오르더라고요. 정말, 감사하고, 존경스러웠어요. ”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눈.
사회생활을 하는 게 보였다면, 나도 별말 없이 빈말을 입에 담겠는데, 진심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입이 열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류이든의 사회성 특강 심화편, 훈훈한 미소는 많은 상황에서 침묵을 허락한다.
“선배님들, 곧 컴백이라는 소식 들었어요.”
드디어, 화제 전환.
“네.”
“이번에도, 자작곡인가요?”
“앞으로도 대부분은 그럴 예정입니다.”
내가 갑자기 머리를 다쳐서 작곡 능력을 상실하지만 않는다면.
“기대돼요. 저 선배님 개인곡 스포일러도 봤거든요. 다음 주만 기다리는 중.”
조잘조잘대는 폼을 보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서바이벌 때는 약간 의기소침해 보였는데.
실력에 자신 있지만 정치력이 0에 수렴해서 고생이 많았는데.
“그리고, 이건 모자란 제 머리로 생각한 건데요.”
음?
“저,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 * *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장은 이미 앞서 수차례 했던 말이다.
그러나 언어는 맥락에 따라 무수히 많은 의미를 갖는다.
‘모자란 제 머리로 생각’한 결과라는 말을 함께 고려하면, 고심해야만 알 수 있는, 내가 은구 씨 본인은 모르게 도와준 일이 있었고, 그걸 최근에 깨달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런 일이, 있긴 하다. 아마도 정확히 어떤 사정인지는 몰라도, 정황으로 추측한 거겠지.
우리 정경우 PD님은 퇴직하셨지만, 속내가 겉으로 다 티 나는 분이었으니까. 잘은 몰라도 은구 씨가 어떻게 아셨나 보다.
음, 별로 중요한 건 아니네.
그 속사정까지 다 알고 있다면 나로서도 곤혹스러운 일이지만, 그건 아닐 게 분명하다. 그보다 지금 내게 중요한 안건은 따로 있었다.
“하민.”
“응!”
파충류 사진을 큰 화면으로 보면서 웃고 있던 채하민이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에 방에서 나누는 대화, 즐거워라.
“준이한테 들었는데, 내 표정 읽는 법 강의했다며.”
“…응?”
“내 표정 캡처한 거 수십 장을 돌려 보면서.”
파충류로 인해 풀어져 있던 두 눈이 각성제를 맞은 듯 초점을 되찾았다.
“와아, 드디어 들켰다.”
실룩 뺨이 올라가며 웃는 걸 보고 있으려니 류이든이 아닌 사람에게 처음으로 벽돌을 내리치고 싶었다.
최근 들어 감정을 표현하는 데 능숙해진 나는 곧바로 쿠션을 집어 들었다.
“드디어?”
“응, 한 반년 정도 됐어!”
“…너희, 제정신 아니야.”
“에이, 원래 알았으면서. 그리고 내가 하자고 한 거니까, 나만 아닌 걸로!”
채하민이 침대에 놓여 있던 이불을 꺼내 들어 토끼굴을 파듯 몸을 숨겼다.
일단 내리쳐야 속이 후련해질 것 같아서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가 혹시 멤버들이 방 안에서 쓰러질 때를 대비해 만들어 둔 스페어키로 류이든네 방문을 열었다.
“…어?”
석준이랑 낄낄대고 있던 류이든은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굳었다. 나는 곧바로 벽돌을 내리쳤다.
“아니! 왜! 분위기상! 내가! 맞을 게 아니…….”
“연좌제.”
가족이 된 이상, 달게 받들어. 우리 그룹에서 때릴 수 있는 인간은 너밖에 없으니까.
“도, 동화야! 잠깐만! 다음 주에 우리 컴백이야! 막 다치면 안 돼!”
다음 주는 드디어 해결사무소 1화, 내 개인곡 발표, 그리고 우리의 컴백까지 모두 모여 있는 주다.
“난 안 다쳐.”
나는 자주 내리치다 보니 요령이 붙었으니까.
“난!”
넌 금강불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