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6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60화(228/343)
박은구는 고개를 숙였다.
눈앞에 가장 존경하는 선배의 동생이 있어서 긴장되는 손을 어찌할 수가 없다.
“와…, 키네티카분들이죠. 형 때문에 챙겨 봤어요, 아제공.”
동화 선배의 동생. 호적상 이름이 아니라 스스로를 항상 지목화라 부르는 사람.
친해지면 무조건 좋다. 인간관계의 손익 계산은 잘 모르지만, 동경하는 선배의 동생이니까!
“네! 이번에 무대 너무 멋있었어요, 선배님.”
그러나 우리의 지목화는 다르다. 자기 형 앞에서는 아이가 되고는 하지만, 그룹 내에서 리더를 제외하고 사람 보는 눈은 가장 좋은 인간이다.
순식간에 박은구가 가지는 가치를 계산해 본다. 알고 있을 때 어떤 득이 될지부터, 더 친밀한 관계를 맺을 때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까지.
리더 놈이 정치력 하나는 죽여 주는 인간이라 그 옆에 붙어 있다 보니 물들어 버린 습관이다.
‘알아둬도, 뭐.’
딱 보니까 자신처럼 사랑받을 상이다.
가만히 있어도 호의를 얻는 인간이니, 저절로 인맥이 넓어질 사람.
“이번에 곡도 편곡 참여했다고 다 들었어요.”
곧바로 얼굴에 떠오르는 대외용 미소.
친해지고 싶다는 뉘앙스를 문장에 담아내서 한마디를 남겼다. 그러자 뒤에 앉아 있던 진한도 똑같이 계산이 끝났는지 달려와서는 가식적으로 웃고 있었다.
형 덕분에 미세한 표정도 잘 관찰할 수 있게 된 지목화라 바로 보였지만, 우리 신인 후배분은 모르겠지.
짧은 대화, 진한의 주도로 번호 교환까지 끝마쳤다.
후배의 감동받은 눈과 ‘이게 아이돌 데뷔구나…….’라는 깨달음이 담긴 얼굴, 키네티카가 떠나가자마자 지목화는 의자에 앉아 얼굴을 쓸어내릴 뻔했다.
“왜 그래, 쟤랑 뭔 일이라도 있었어?”
핸드폰을 두드리며 번호를 정리하는 진한이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계산해 가면서 인맥 만드는 나한테 자괴감 느끼는 중.”
“…동화 선배도 그러시지 않나?”
애초에 사회인은 대부분 그렇지 않나? 할머니의 조언을 떠올리며 진한은 중얼거렸다.
“음, 우리 형은 인맥을 만들 사람은 아니지.”
아마도 사람보다 동물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지목화는 그러리라 확신했다.
아마 좋은 머리를 굴려서 인맥을 만들려고 노력하기보단 적당히 트집 잡히지 않을 정도의 예의를 갖추고 친하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그러니 인맥을 만든다기보다는 어쩌다 보니 친해지는 거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실제로 업계에서 들리는 블로센스의 이야기 중 팔 할은 류이든의 소식이고, 나머지 이 할은 채하민이었다.
형은 곡이 좋다는 말은 나올지언정 어느 누구랑 친하다더라, 같은 소리는 한 톨도 나오지 않았다.
‘1군 아이돌이 이렇게 인맥이 없어도 되나……?’
문득 지목화는 형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1군이라는 말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팬덤 규모만 보면 그렇게 불러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런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그래도 괜찮나?
“하…, 형이랑 휴일이든 활동기든 하나는 좀 겹치면 좋겠네.”
전화로 안부는 듣고 있지만, 잘 지내고 있나 어떻게 지내고 있나 궁금할 따름이다.
어버이날에 형한테 카네이션을 보내긴 했지만, 그것도 직접 달아주고 싶었는데.
“그러게, 그건 신기하다. 어떻게 선배는 매번 대형 그룹들은 전부 피해 가는 느낌이네.”
어떻게 빈집만 미친 듯이 털 수가 있담.
물론 지금 블로센스 체급쯤 되면, 블루잭이랑 같이 컴백해도 묻힐 리는 없고 더 큰 화제가 될 가능성도 있겠지만.
“형이니까, 어떻게 했겠지.”
진한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했지만, 지목화는 진심이었다.
“…너는 나를 좀 그렇게 믿어 봐.”
“너는 사람 대할 때 너무 가식적이라 평생이 가도 못 믿어.”
진한이 억울한 마음에 뭐라 하려던 때, 김현진이 달려왔다.
“속보!”
“뭐, 또 별거 아니기만 해 봐.”
이렇게 셋이 모이면 높은 확률로 진한이 목화에게 멱살을 잡히는 경우가 많아서, 진한은 재빨리 도망칠 준비를 시작했다.
“목화야, 동화 형이 진행하는 라디오 게스트로 진한이 형이 확정이래.”
“…난.”
“넌 아니고. 진한이 형이 수를 쓴 거 아닐까!”
그런 적 없는데, 현진아!
김현진이 진지하게 의심스럽다며 뱉은 말에 분위기가 가라앉으며 예감이 사실이 된다.
지목화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진한은 빠르게 달려 ‘음료수 좀 사올게요!’라고 사람 좋게 소리치며 사라졌다.
그걸 보며 김현진이 꺄르르 웃었고, 지목화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 * *
“우리 동생이…….”
―형, 나는 형을 믿었어. 그런데 어떻게 라디오 게스트로 그럴 수 있어.
미친 것 같은데. 내 라디오에 너 부르고 싶다고 건의드린 게 전부인데 그럴 수 있냐니.
너야말로,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예전엔 나랑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면 다 좋아했으면서, 서운할 따름이다.
옆자리에 류이든이 앉으며 핸드폰을 흘깃 보더니 웃었다.
“또 뭘 했길래.”
“…글쎄.”
우리 목화가 최근에 얼굴을 자주 못 봤더니,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다.
떨떠름한 반응에 류이든이 곧바로 다른 얘기를 꺼냈다.
“머릿결은 좀 괜찮아?”
흥 활동 이후로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던 탈색. 곧 있을 컴백을 위해 다시 뿌리부터 탈색을 한 다음이라 머릿결의 손상이 있긴 하다.
“내가 준 걸로 관리 잘 해야 돼. 아니면 사십 넘어서 후회한다.”
우리 멤버 중, 염색이 가장 잦은 멤버는 채하민과 이현재지만, 이번에 선택받은 건, 채하민, 류이든, 이현재, 그리고 나까지 총 네 명.
그중 류이든은 갈색의 단정한 머리라 아무런 손상도 없지만, 레드와인 빛이 도는 머리에 자연스러운 느낌의 파마까지 한 채하민과 파마는 하지 않았으나 금발을 오래 유지하면서 머릿결이 개판이 된 이현재는 이야기가 달랐다.
나는 은발 머리를 톡톡 건드려 봤다.
음, 채하민이랑 비교하면 지나치게 양반인데.
“하민이가 더 문제지 않나?”
“걔는 모발이 워낙 튼튼하니까, 걱정이 안 돼.”
음, 확실히, 채하민의 아버님은 연세에 비해서 머리숱이 풍성한 편이셨지.
오늘은 곧 있을 컴백 쇼의 VCR을 촬영하는 날. 나는 갑갑할 정도로 꽉 채운 셔츠의 단추를 만지작댔다.
왜 우리 스타일리스트분들은 내 목을 갑갑하게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시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심지어 쓰리 피스 정장이라 조끼까지 하고 있으니 갑갑함이 배가 되는 기분이다.
이번 의상은 회사원이나 과거 집사 같은 사람들이 입을 법한 정장이 컨셉이었다.
그러나 류이든이 자켓도 입지 않고, 조끼와 셔츠의 단추도 풀어헤친 것에 비해 나만 한껏 격식을 차려입은 걸 보면, ‘어째서 나만’이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근데 이번 앨범, 컨셉이 좀.”
내가 곡을 쓰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세트부터 의상까지 하나하나 마피아 소굴 같다.
“비인륜적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런 불법 조직체 같은 분위기라니.
“…네가 제일 잘 어울리는 건 알아?”
“나처럼 선량한 인상이 또 어딨을까.”
푸흡, 류이든이 웃었다. 정확히는 비웃음과 웃음 사이 어딘가였지만.
“…불만 있어?”
“물도 있어.”
세상에. 나는 끔찍한 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그런 쓰레기 같은 개그를, 개그랍시고.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이 아니라는 격언은 류이든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게 틀림없다.
우리 쪽으로 다가오던 이현재도 끔찍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형은.”
동감이야, 현재. 아마도 미처 내뱉지 못한 뒷말은 ‘정말 광견병인가요.’일 테니까.
“너희가 이렇게 반응이 좋은데, 안 할 수가 없잖아.”
이현재는 한껏 경멸 섞인 눈으로 류이든을 보다 내게 고개를 돌렸다.
“형, 저희 촬영 들어간대요.”
류이든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시간이 드디어 찾아왔구나.
* * *
아무리 봐도 마피아 조직 같아.
나는 긴 소파의 중간에 다리를 꼬고 앉아 가죽 장갑을 만지작대며 생각했다.
탁자에는 홍차가 든 찻잔과 종이 뭉치, 그리고 축음기…….
멘탈 수업 첫 촬영 때 세트랑 왜 이렇게 닮아 있을까. 홍대 한복판에서 뜨개질을 하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불쾌한 심정이다.
다른 게 하나 있다면 포커 카드와 돈이 테이블 위에 흩뿌려져 있다는 점뿐이었다.
분명 정장을 입었는데 명문 고등학교 학생 같은 금발의 이현재가 내 옆자리에 앉자 본격적으로 촬영 디렉션이 시작됐다.
“동화 씨!”
“네.”
“조금 더 냉정해 보이게 부탁드려요!”
지금도 이미 다리도 꼬고, 머리도 적당히 넘겼고, 안경도 대충 걸친 채 종이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모자란가요.
나는 표정을 완전히 지우려 노력했다. 시골 할머니한테 이런 걸 요구하다니, 가혹해라.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얼마 안 가 내 표정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현재 씨는 좀 더 순진해 보이면 좋겠어요.”
“…네?”
아, 웃긴데. 이현재한테 순진이라니, 석준도 아니고.
입꼬리가 살짝 떨리며 냉정한 인간은커녕 웃음 참기 챌린지 중인 인간이 되고 말았다.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있고, 그 세상이 아름다워 죽겠다는 느낌이었으면 좋겠어요.”
석준 다큐멘터리를 이현재에게 요구하시는 PD님. 개에게 고양이의 모습을 바라고 계신다.
차라리 석준이었으면 존재 자체만으로도 달성할 목표인데 이현재라 실패하셨다.
그런데 대뜸 이현재가 가만히 PD님의 눈을 들여다보더니 중얼거렸다.
“…와, 그럼 스토리상으루 저는 미친놈인 게 맞네요?”
종이를 내려놓고 떠올려 봤다. 지금까지의 세계관 골자를.
대충 ‘이현재가 망상 혹은 그에 준하는 환상적 상황을 겪고, 지동화라는 의사에게 치료를 받는다.’라는 스토리였다.
여러 시대, 여러 공간에서 이현재와 우리는 항상 존재했으며, 다른 멤버들과 달리 이현재는 그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 것 같은 묘사가 나왔으니, 정신병이거나 전생을 기억하거나 둘 중 하나는 확실해 보인다.
‘흥’은 조선 시대,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에서는 중세 서양, ‘벚꽃 낙하’에서는 현재 시점이었으니까.
“어쩐지 오늘 하루 내내 멤버들이랑 스쳐 지나가면 제가 돌아보는 장면만 촬영하더니. 기분 묘하구 그러네요. 데뷔 처음부터 저는 미친 사람이었다니. 저도 모르게. 형한테 빨리 치료받아야겠네요.”
나는 다시 고심했다.
좁은 소견으로는, 이현재가 미친 사람인지 아닌지는 사실 굉장히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윤리적으로 ‘치료’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폭력성은 분명히 존재하므로, 본질적으로 이런 골자의 스토리는 우리를 고민하게 만든다.
즉, 행복한 망상과 불행한 현실 중, 누군가에게 어느 하나를 강제할 권리가 ‘나’에게 존재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둘 중 무엇이 옳냐는 건 차치하고서, 타인이 그걸 강제하는 게 옳을까.
“…그래요?”
“오늘 너, 개인 촬영 때 인공 눈물 넣었다며.”
“…아, 고통.”
“오랜만에 독서나 같이 할까, 현재.”
관련한 주제에 관한 좋은 책을 한 권 알고 있는데.
소파를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벽이 형성되고, 마치 작업실인 것처럼 둘만의 대화에 빠져든다.
“저, 저기.”
그리고 이 벽을 둔탁하게 뚫고 들어오는 한 목소리.
“우리, 촬영할까요?”
이 모든 대화를 지켜보던 PD님이 순간 애처롭게 건넨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