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6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61화(229/343)
지동화는 느긋하게 홍차를 마시며 종이를 내려다본다.
그 옆에 앉은 이현재는 정말 때 묻지 않은 소년의 얼굴을 하고 천장에 있는 무늬를 바라보고 있다.
“약은 먹었니.”
“…네.”
한결같은 무표정, 이현재는 속으로 차갑다고 생각했다.
“꿈은 나아졌고?”
“…꿈이 아녜요.”
지동화가 종이에서 천천히 시선을 뗐다.
“그럼, 질문을 바꿀게. 망상은 나아졌어?”
화륵, 이현재의 속에서 순간 분노가 솟아오른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자신의 의사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성적인 인간, 정상으로 규정된 게 아니라면 모두 광증의 일부로 분류하는 사람.
그걸 알고 있어서, 이현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언제나 같은 말뿐이다.
“망상도 아니에요.”
환자를 보는 눈이라기엔 한 줌의 공감이나 연민도 없다. 아마 저 사람에게 자신은 연구 대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테니까.
“…더 심해지면, 약물 말고 다른 걸 시도해 볼 거야.”
저 사람에게 자신이 보는 세상은 모두 비정상일 테니까.
그러나 비정상이라니, 대체 누가 그걸 정해 준다는 걸까. 자신의 기억은 선명하고, 명확하고, 사실인데.
분명히 자신은 그 세 명과 친구였고,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과도 친구였는데.
순간 어떤 단어가 툭 튀어나오는 걸 이현재는 미처 막지 못한다.
“형.”
움찔, 못 들을 말을 들은 사람처럼 미간을 찌푸리는 지동화. 분명히 광증이라 생각하고 있는 표정. 오늘도 이현재는 그렇게 상처를 받는다.
어째서 자신에게만 이토록 많은 기억이 있는 걸까.
그리고 왜 단 한 번도, 그 누구도 믿지 않는 걸까.
이현재는 가끔 그것이 궁금했다.
* * *
…라는 내용의 VCR. 촬영을 하고 나니 이현재는 기력이 빠진 듯 푹 늘어졌다.
나는 가죽 장갑을 벗었다. 아직 OK 사인이 떨어진 건 아니지만, 갑갑한 건 질색이라 잠시만.
게다가 배역이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는 환자한테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자세도 모르는 되먹지 못한 의사라니, 더럽게 감정 이입이 되지 않는다.
“아, 감정 이입이 너무 안 되는데요?”
그리고 그건 이현재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래?”
“네, 무슨 자기만 아는 진실이 있다 쳐두, 그걸 왜 굳이 티 내서 병원에 입원할 사태를 만드는지. 소설이면 분석하구 이해하구 넘어가면 끝인데, 연기라…….”
이현재가 읽는 소설 세계가 얼마나 드라이한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다.
같이 책을 읽을 때 인물의 감정에 이입하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으니.
PD님이 모니터링을 끝내고 OK 사인을 보냈다.
총 5번의 테이크.
이현재가 이입에 실패해서 무감정하게 ‘형’이라고 부르거나, 내가 순간적으로 얼굴에 힘이 풀려 덜 냉정해 보이는 등 몇 번의 재촬영 끝에 드디어.
대체 무슨 줄거리로 흘러가는 걸까, 이 앨범의 내용은.
PD님이 유독 우리 둘이 나오는 씬에 공을 들이는 게 보이니 중요한 장면인 건 알겠는데, 내가 이현재 치료하는 의사라는 건 이미 지난 앨범에서도 풀린 사실이니 그건 제해야 한다.
게다가 지난번 이현재의 개인 컷은 사람들 다 죽일 것처럼 섬뜩한 느낌으로 촬영했는데, 이번에는 갑작스레 너무 순진한 어린애가 되어 있다니.
그러면 내가 치료하는 과정에서 애가 광증이 심해진 건 분명한데, 그럼, 나는 대체 뭐 하는 놈일까. 이 장면이 중요한 것도 어쩌면.
“형이 나쁜 놈인가 보네요.”
“…그런 것 같긴 하지.”
한숨.
회사에서 들은 바로는 초기부터 짜인 스토리라고 하던데, 그때부터 내가 악역인 스토리였다는 거잖아.
“이상하긴 해요. 형은 선한 역할이 어울리는데.”
“그렇지.”
류이든처럼 눈이 부정확해서 사람 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게 아니고서야 시골 할머니를 악인으로 오해할 수가 없지.
“차라리…, 음, 하민이 형이 악역에 어울리지 않나?”
세상에. 이현재의 눈이 류이든과 동급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채하민은 무대 위라면 모를까 평소에는 몹시 선한 인상인데.
내 표정을 흘깃하더니 움푹 보조개가 패어 들어갔다.
이현재의 활짝 짓는 미소가 오랜만이라 순간 자세히 관찰했다.
자녀가 성장하면 그 부모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얼굴을 눈에 새기느라 유심히 본다던데, 정말인가 보다.
“원래 악역은 선한 인상이 맡는 게 좋잖아요.”
훈훈했던 생각에 금이 가고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이현재는 멍청한 인간은 못 되고, 나를 돌려 까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석준이었으면 모를까.
“…현재.”
곧장 폴짝 뛰어올라 사라지는 이현재.
곧바로 류이든에게 달려가더니 촬영이 끝났으니 커피 좀 사러 가자고 꼬드겼다―사실 명령했다는 쪽이 더 맞았다―.
하, 이제 과외를 하지 않으니 괴롭힐 수단이 없구나.
* * *
거울. 오랜만에 찬찬히 거울을 들여다봤다.
외모 관리의 9할은 전문가분들에게 맡겼더니 정작 본인 낯짝이 어떤 생김새인지 볼 이유가 없었다. 참고로 1할은 류이든이다.
눈, 옅은 다크서클로 인해 피로해 보인다. 그러나 반사된 빛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별 이상 없이 제 기능을 수행 중이다.
코, 코의 기능에 충실해서 실시간으로 공기가 흐르는 중이다.
입, 입일 뿐이다. 꾹 다물려 있을 뿐 특이사항은 없다.
전반적인 얼굴, 사람이다. 생물학적으로도 그러하니 확실한 평가다.
이 모든 요소를 종합해 봤을 때, 사람인 건 알 수 있지만 그 외에 어떤 지식도 담겨 있지 않았다.
지식의 조건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보통 정당화, 참, 믿음, 세 가지 정도는 충족해야 한다고 본다―물론 예외가 있다.―.
그러나 얼굴만 보고 무언가를 판단하는 건, 정당화되지도, 참이지도 않고, 나는 믿고 있지 않아서.
“…인간인 건 알겠는데.”
정말 그런 게 어울리는 얼굴인가.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듣던 소리라서 데카르트가 와도 ‘그쯤 되면 의심해 보지 않아도 참일 법하다.’라고 말할 것 같은데.
“동화야, 부수면 안 돼.”
채하민의 말에 나는 스타일리스트분이 선물로 주신 손거울을 내려놨다.
참고로 디자인은 핑크색으로 석준이 좋아하는 위즈니 프린세스가 쓸 법한 물건이다. 선물인데, 버릴 수도, 없어서, 일단, 쓰고는 있다.
“하, 해결사무소 모니터링, 같이 하고 싶었는데!”
“연습이 먼저니까.”
“심지어 해결사무소 끝날 때 개인곡도 공개할 거라며! 팬분들 반응 현재랑 같이 봐야 하는데!”
“그래도 연습이 먼저지.”
냉정하게 들렸는지 채하민이 연습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품위가 없구나, 하민.
“아, 다 맞는 말이라 할 말도 없어. 억울해애.”
품위 없는 데에 더해 채신머리까지 없는지 바닥을 휩쓸 듯 몸을 뒤틀어 댄다.
“억울할 필요가.”
“동화야…, 난 공감이 필요해…….”
이번에는 채신머리없는 데에 더해 기력까지 없는지, 휘적거리던 사지가 얌전히 가라앉았다.
“…공감은 자기도 그렇다고 느낄 때 할 수.”
벌떡, 채하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워 있는 상태 그대로 아크로바틱을 하듯, 불쑥 솟아오르는 걸 보면 참 대단한 도약력이다.
“으아! 철학과 싫다, 진짜! 동화, 너, 자퇴하자!”
음, 사실 그래도 상관없긴 한데.
아이돌 노릇에 학벌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대학교는 도서관 말고 쓸모가 없고.
나는 장난삼아 툭 던졌다. 물론 내 기준 ‘장난삼아’라서 남들이 보기엔 진지한 표정일지도 모른다.
“그럴까.”
“…어?”
마치 저놈처럼.
농담 삼아 한 말에 진지하게 나오니 반응이 곧바로 튀어나오지 않나 보다.
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걸 퍼뜩 막았다. 어차피 채하민은 내가 한 번 졸업한 것도 알고 있는데 저렇게까지 당황할 줄은 몰랐다.
“형, 무슨 헛소리예요. 저를 집어넣었으면 끝까지 책임져야죠.”
쾅쾅, 바닥을 치는 이현재. 웃고 있지만 미친놈 같았다. 예언 선배가 떠오르는 얼굴이야.
“제가 얼마나 고생해서 들어간 건데, 졸업까지 절대 못 나가요, 형.”
말 한마디에 집념이 담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맞아. 동화야, 너는 뭐 그렇게 막! 막! 한국대인데! 쉽게 포기하고 그러면! 우리 동화 나중에 큰일 나겠다, 정말!”
아니, 그 한국대가 내 커리어랑 하등 상관이 없는걸.
차라리 수능을 다시 치르고 작곡과로 재입학하는 쪽이 편할 것 같…, 잠깐. 어머니랑 동문이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만 같은데.
“형, 뭘 생각하든 미친 짓이에요.”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
“형, 지금 아무 말 녹음 때랑 표정이 똑같거든요.”
저런, 상당히 즐거워 보이나 보네.
* * *
만일 지동화의 어머님이 살아계셨다면 사서 일 벌이는 건 제 아빠랑 똑같다고 불평할 거고, 아버님이 살아계셨다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게 제 엄마랑 똑같다고 자랑스러워할 소리를 하고 있을 때.
해결사무소의 1화가 절찬리에 방영 중이었다.
지동화가 들어오기 전, 다른 출연진들이 하나둘 컨테이너에 들어와 한 명씩 드러누울 때였다.
이미 친한 이경우, 류한호, 강희 셋은 편하게 누운 반면, 누가 봐도 준성 홀로 군기가 딱 잡혀 있었다.
―아니, 오늘 신입 뽑았다며.
―어, 우리가 할머니 흰머리 뽑는 회사인 거 모르니까 주의해.
―…애초에 회사가 아니지 않나, 우리?
―H대 출신이야.
―걔는, 무슨 죄를 지었길래.
―준성아. 신입이 어떤 앤지 좀 조사해 왔니.
―아, 당연하죠. 제가 또 스토킹 하나는 소질 있잖아요.
―역시 우리 중 유일한 대졸자.
―가방끈이 좋긴 해, 스토킹도 머리가 돼야 하는 거지.
짧은 담소를 나누며 준성이 파일을 꺼내 들었다.
―이름, 지동화, 나이, 23세. 대학 갓 졸업하고 경우 선배의 간사한 혓바닥에 농락당했습니다.
―가방끈이 의미가 없긴 해, 사회생활은 학벌이 해 주는 게 아니네.
―이건 아무리 봐도 제작진분들 설정 오류 같긴 하죠? 우리 동화는 이런 애 아니거든요!
―설정 지켜!
―너는 신입 누군지 모르는 컨셉이야!
준성의 밑에 ‘지동화와 같은 회사 소속 아이돌’이라는 자막이 달렸다.
―어쨌든, 낯가림이 심하고, 친구가 적고, 돈 벌고 싶은 마음 한껏인 사회 초년생의 전형. 등쳐 먹기 딱 좋은 스타일.
―어우, 준성아, 넌 인성이…….
―이거, 한호 형이 써 준 대본이잖아요.
빠르게 전환되는 컷들.
막내를 제대로 등쳐 먹기 위해, 즉 여기에 말뚝을 박게 만들기 위해 여러 계략이 오간다.
―친밀감 느끼게 우리 다 형이라 부르라 그래. 가족 같은 회사 경영으로.
―오…, 진짜 X세대 그 자체네요, 한호 형.
―음, 이거 풀 자막 지원이면 이런 거 되나?
류한호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혹시 ‘X 같다’라는 뜻에서의 X야?
삐 소리와 함께, 비속어가 들어갈 자리를 X가 채운다.
―한호 형, 미쳤나 봐.
곧바로 개그 의도를 눈치 챈 경우가 꺄르르 웃으며 좋아했다. OTT가 공중파보다 규제가 프리한 건 확실해 보인다.
―어쨌든, 오늘은 무조건 동화가 우리 좋아하게 만드는 게 목표야.
그리고 정색. 오늘 하루 그들의 목표는 정해졌다.
‘방송 내적으로는 신입이 우리를 좋아하게 만들 것.’ 그리고 ‘방송 외적으로도 막내가 우리를 좋아하게 만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