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6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62화(230/343)
평소 지동화의 이미지는 ‘이상한 애’, ‘똑똑한데 이상한 애’, ‘냉정한 듯 따뜻한데 이상한 애’, ‘노동에 진심인데 이상한 애’ 정도.
공통적인 ‘이상함’을 제외하고 나면, 종합적으로 ‘어른스러운 애’가 남는다.
어른은 아이의 결핍된 형식이므로, 순수하지 않고, 솔직하지 않고, 항상 머릿속이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해 보였다.
그룹 내에서도 형 라인, 실제로 류이든이 꼽은 ‘활동에서 의지하는 멤버’이기도 했다―여담이지만 지동화는 채하민과 류이든 중 끝까지 고민하다가 입 모양으로 류이든이라고 답했다.―.
그런 지동화는 현재 방송 속에서,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순수해 보이는 미소는 오래된 룸넛이 아니고서는 낯선 것이었다.
‘무언가를 함께 해나가고 있음’, ‘방송 걱정을 전혀 하지 않고 있음’,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누구나 옹호해 줌’ 등, 무수히 많은 요소들이 지동화를 편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고, 잠시 짐을 잊게 만들어 주었다.
평생을 책임에 얽매였던 인간이, 잠시나마 책임을 잊을 수 있을 줄 몰랐고, 그 모습이 이렇게나 보기 좋을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적어도 기지생은 그렇게 보았다.
“현재야.”
“낑?”
로봇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손에 닿는 건 기계적 감촉이 난다.
살아 있지 않다는 증거, 기능론적으로만 유사하다는 결론이 실감 난다.
“저건, 좀 부럽네.”
웃고 있는 자기 얼굴을 보며 토기가 올라오는 것도 참은 채로, 하염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는 눈은 어느새 수많은 감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잊는 데는 그렇게나 오래 걸렸는데, 되찾는 데는 고작 지구 시간 기준 몇 년이라니.
심지어 평생을 살면서 한두 번 느껴볼까 말까, 했던 부러움까지 느끼다니.
화면 속의 지동화는 누군가를 부러워한 적이 거의 없을 텐데, 이렇게 또 하나 차이점이 늘어만 간다.
기지생은 눈을 감고 드러누웠다. 로봇 네 마리가 기지생 위에 올라타 훼방을 놓았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녀석들과 놀아줄 수 없었다.
“…음, 외로워.”
기분 전환을 위해, 하는 수 없이 오늘도 상관을 만나 테러라도 하고 와야겠다.
기지생은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들었다. 시운관은 재건되었지만, 아직 안정기는 아니니까 도움도 줄 겸.
‘부수고 세운다니. 해체주의네.’
개 같은 농담이다.
* * *
[해결사무소 ‘걔’, 개인곡 냄](지동화가 직접 만든 자막 영상 링크)
(지동화가 직접 편집한 곡 제작 비하인드 영상 링크)
홍보글 쪄옴. 우리 새끼 곡 듣고 며칠 후에 있을 컴백 많관부.
댓글
―거울을 보면 내가 아니라 네가 보인다는 지동화…. 존나 왜 나는 거울을 보면 네가 보이지 않니 동화야… 왜 그저 헤실대고 있는 인간 하나의 추한 낯짝과 마주할 뿐이니… 슬프다… 오늘은 내 거울 속에 좀 와 주지 않을래….
―얘는 혹시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뭐 그런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ㅌㅋㅋ 왜 볼 때마다 일하고 있어 ㅋㅌㅋㅋㅋㅋㅋㅋㅌㅋㅋ
└그런 지동화도 해결사무소에선 해맑게 웃고 있겠지…
―와 씨 소름 돋는다 멤버들 목소리로 전환될 때 내가 뭘 듣고 있었는지 다 잊고 걍 멍해짐
[동화 개인곡 ‘자화상(自話像)’ 감상문]곡 자체만 보면 자존감 없이 살던 한 사람이, 좋은 사람 만나서 자존감 되찾는 스토리.
당연히 동화 얘기라고 봐야겠지? 난 동화가 자존감 개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곡에 있는 악기 전부 멤버들 목소리로 대체 ―>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곡’에 멤버들 목소리로 가득 채운 게 ㅈㄴ 그룹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 감도 안 온다
댓글
―졸라 귀여워
―악기 아님?!!!
└(영상 링크) 이거 보면 한 땀 한 땀 지동화 장인의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 형, 이 글을 봐 봐요.”
내가 무심하게 모두 읽어 내리자, 이현재는 안도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귀가 붉어지네요. 수치도 잊은 줄 알았는데.”
저런. 그게 왜 안도할 일인지 조금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을래.
블로센스 공식 인터넷 유목민이자 통계 분석가인 이현재에 따르면, 앨범 홍보를 위해 멤버들이 부단히 노력한 결과, 화력이 강해진 것이 눈에 띌 정도라고 한다.
내가 개인 활동을 할 때도 류이든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도 무던히 방송 여기저기에 얼굴을 비추며 홍보한 덕일 것이다.
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어차피 스타일리스트분들이 최종적으로 봐주시겠지만, 원래 준비는 되면 될수록 좋은 법이다.
곧 있으면 컴백 쇼. 녹화라고는 해도 적당한 긴장감이 찾아온다.
손목의 단추를 잠그고, 가죽장갑을 당기다 보니, 이현재가 흐트러진 옷을 미처 바로 하지 못한 게 보였다.
“현재.”
“네?”
나는 손가락으로 부드러운 재질의 옷깃을 가리켰다.
“거기, 좀 접혔네.”
이현재는 곧바로 웃으며 옷매무새를 만지작댔다.
지난번엔 고등학생 같았는데, 이번 복장은 아무리 봐도 마피아 조직 보스 막내아들 같다.
귀하게 자라서 사람 총으로 쏘는 데 거리낌 없을 것 같은 생김새다.
그리고 이현재가 잠시 반항기를 겪은 것 같은 차림새를 정리했을 때.
“블로센스 여러분, 스탠바이!”
FD님이 달려오며 소리쳤다.
‘…음, 긴장돼.’
분명히 이번 곡을 쓸 때 참고한 건 재즈바였을 텐데, 어쩌다 카지노나 마피아 같은 해괴망측한 것들과 연관된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류이든에 따르면 자신의 덩치나, 채하민의 몸선 같은 것도 영향을 주긴 했지만, 내 이미지를 고려한 결정 아니겠느냐고 말하던데.
재미없는 농담이다.
* * *
무대에 주황빛 조명이 흐른다. 느린 템포의 재즈가 배경에 깔린다.
류이든과 채하민은 포커를, 석준과 이현재가 체스를 둔다.
아지트 같은 아늑함과 느와르적인 퇴폐성이 뒤섞인 이곳.
또각, 또각, 구두 소리가 울린다.
지동화는 무표정하게 안경을 쓰고 걸어 들어온다. 노래부터, 멤버들 모두 멈칫하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 무대 중앙에 모였다.
2열 종대로 마주 보고 선 사이로 지동화가 중앙에 선다. 누가 봐도 조직이라는 느낌이 폴폴 풍기는 분위기.
아무 표정도 없는데 냉소적으로 느껴질 지경인 지동화의 얼굴이 무심하게 정면을 응시한다.
조금 전의 흥겨움은 사라져 버리고 곧 보스가 조직원 하나를 처리할 것만 같았다.
차라리 기대감이 느껴질 지경. 그러나 기대감을 배신하듯 지동화는 선한 미소―그는 최선을 다했다.―를 지었다.
그러자 피아노 소리가 정적을 깨부쉈다.
코믹한 영화에서 주인공 일행이 은행을 털고 나올 때 흐를 것처럼 경쾌하고 조금은 경박스러웠다.
또각, 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걸어 나온 지동화가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It’s all mine from now on
둔탁한 드럼, 흥겨운 피아노, 고상한 파티보다는 조금 더 흥겹고, 질 낮은 연회보다는 격식 있는 사운드다.
지동화가 그 사이 어딘가를 찾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지동화에게 다가오는 카메라에 클로즈업으로 잡히자, 뒤에 있던 채하민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톡, 카메라를 건드렸다.
그러자 지동화가 ‘세상에, 불쾌해라.’라고 적혀 있던 표정 그대로.
손 떼, 내 거니까
채하민이 화들짝 놀라 뒤로 빠지자, 지동화는 만족스럽게 뒤로 두 발짝 걸었다.
그러면 어느새 완성된 대형.
부러워 보여, 네가 이룬 세상
바꿔 줄래, 네가 만든 드라마
지동화의 얼굴은 여전히 미소 짓고 있지만, 눈 안에 탐욕이 어려 있었다.
손이 하나 불쑥 튀어나와 지동화의 어깨를 붙잡고 내동댕이치듯 당겼다.
튀어나온 채하민은 그 순한 얼굴에 한껏 광기를 보였다. 자기 장갑을 짱짱하게 당겼다.
불공평해 (Unfair) 모두 네 거래
제안할게 (That’s fair) 공평한 거래
드럼 비트가 거세진다.
석준이 현기증 난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센터로 오면서 휘적댔다. 독주를 마시고 세상을 한탄하면서도 웃고 있는 마피아 말단 단원이다.
공평무사, 무사히, 둘 사이, Change, Fair? How dare, 어딜 감히, 내 거지
처음부터, 그래, 그래, 네 집안, 네 기만, 네 일상, 네 인성, 전부 내 거지
하나, 하나, 손가락을 접으며 자신의 것이었어야 할 모든 것들의 숫자를 하나하나 셌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다는 걸 깨닫고 화들짝 놀랄 때, 뒤에 있던 누군가가 석준을 발로 차 대각선으로 밀어냈다.
한껏 썩은 이현재. 지동화가 농담 삼아 자퇴한다는 소리를 했을 때 순간 지었던 표정이다.
석준이 사라지자 백댄서들도 황급히 도망치고 이현재 홀로 무대에 서 있다.
불쌍한 나란 인간
채하민이 뒤편에 와서는 과장된 몸짓으로 얼굴을 가린 채 어깨를 들썩인다. 희극에서나 볼 법한 우는 시늉이다.
질투 어린 삶에 출연자는 나 하나뿐
무대 양측에서 석준과 지동화가 나와 역시 희극적으로 우는 시늉을 하지만, 셋의 어깻짓이 묘하게 박자에 딱 맞아 신나 보였다.
불쌍한 너란 인간
썩어 있던 이현재의 얼굴이 조소로 가득 찬다.
후계자 구도에서 밀린 막내가 첫째의 등에 총알을 박아 넣으며 지을 법한 비웃음이었다.
그에 맞춰 뒤에 있던 세 명의 멤버도 얼굴을 가렸던 손을 양쪽으로 활짝 펼치며 해맑은 미소를 뽐낸다. 꽃받침까지, 울고 있다는 추측을 신나게 배신한다.
질투 어릴 삶에 출연자는 너 하나일걸
툭, 류이든이 멤버들을 밀쳐 내며 일부러 목을 긁어 쇳소리를 섞어 넣었다.
공평하게, It’s all mine (We’re fair, fair)
전의 피아노 소리가 울리고, 류이든은 리듬에 맞춰 홀로 춤춘다. 굵직한 선의 몸, 허리를 한 번 뒤틀 때조차도 힘이 실려 강인해 보였다.
손 떼, 내 거니까 (From now on)
류이든의 춤을 구경하던 멤버들이 군무에 참여했다. 정장을 빼입고, 탐욕에 젖어 들어간 눈으로, 흥겨운 피아노 소리에 맞춰.
자신이 평생에 걸쳐 염원하던, 갖고 싶었던 모든 걸 손에 넣었음에도 더 원한다는 듯이, 격렬한 군무.
2절까지 그 미친 것만 같은 텐션이 유지되다가 브릿지 부분에 피아노가 느릿하고 둔탁하게 느와르를 자아냈다. 느와르를 인간으로 표현한 듯 시니컬한 표정의 지동화를 제외한 모두가 등을 돌렸다.
How the hell do you feel, falling
밑바닥에 있을 땐 웃어야지, 나처럼
감미로운 음색으로 노래하며, 지동화는 안경을 벗어 재킷의 앞주머니에 툭 넣고 웃었다. 상대 조직 보스를 땅에 묻으며 지을 법한, 달콤한 웃음이었다.
공평하게, It’s all mine (We’re fair, fair)
마지막으로 터져 나오는 피아노 소리.
* * *
하, 망할.
나는 거친 숨을 가다듬으며 품위 없게 땅에 쓰러지듯 앉았다. 모두 무표정하게 서 있는 엔딩 장면을, 10초나, 유지하라는 지시가 없었다면 곧바로 쓰러졌을 테다.
‘흥’ 이후로 춤이 격렬할 것 같은 곡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을 철저히 지켰는데.
다른 멤버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은지, 정장 입고 격렬하게 춘 안무 덕분에 반쯤 쓰러져 있었다.
류이든만 제외하고.
류이든은 무대가 끝나자마자 PD님에게 달려가 여러 얘기를 듣고 해맑게 웃으며 돌아왔다.
인간 아니야, 저거.
“얘들아, 물 좀 갖다 줄까?”
“…내려가서, 먹을게.”
촬영 끝났으니 조금 쉬다 내려가면 되겠지.
그러나 휴식 생각에 한껏 부푼 마음은 류이든의 낯짝과 마주한 순간 반쯤 부서지고 말았다. 왜 이리 곤란해 보여, 이든.
“우리 한 번 더 촬영이래.”
모두가 쓰러진 무대, 그 중심에서 류이든이 잔인하게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