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6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63화(231/343)
하, 숨이 곤란해. 이거 하고 나서 옷 바꿔서 한 번 더 촬영한다고 들었는데.
함께 모여 촬영본을 모니터링하는데 내 낯짝을 보고 있으니 조금 흉하다.
컨셉이 컨셉인지라 채하민의 여러 조언을 들으며 웃는 걸 연습했는데, 만족스러우면서도 부숴 버리고 싶다. 내 심리라지만 왜 이리 난해한지 모르겠다.
“와…, 이든이 형 춤 힘 좋다.”
채하민 말대로 화면 중간에서 독무를 추는 놈은 힘은 좋지만, 그래서 주변인이 힘들 때 공감할 수 없는 고질병에 걸려 있다.
지금도 이현재에게 장난을 치다가 발등을 밟혔으니 확실하다.
“이번 컨셉―, 이상―합니다.”
“그러니까.”
석준의 말에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친구의 모든 걸 질투하다가 빼앗는 놈이라니. 심지어 그 사람이 자신을 몇 번이나 구해 준 사람이라니.
이번 곡, ‘All mine’을 제목만 들었을 때는 ‘아, 또 집착하는 머저리 얘기구나’ 싶었다.
통계적으로 ‘전부 내 거야!’ 같은 소리를 하는 노래는 보통 상대방에게 집착하며 딴 사람을 보면 눈에 불을 질러 버리겠다는 가사인 경우가 많으니까.
인간을 전유할 수 있다는 헛소리를 하는 가사라 별로 맘에 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웬걸, 제작 회의에서 들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는 훨씬 더 가관이었다.
둘도 없는 단짝인 A 씨와 B 씨.
A 씨의 집에 B 씨가 입양된 후로 둘은 어렸을 때부터 한집에서 형제처럼 자랐지만, A 씨가 대부분의 분야에서 뛰어났다.
승승장구하는 A 씨와 지옥도로 발을 내딛는 B 씨, 성공한 인간이 찾아와선 위로랍시고 건네는 말을 들으며 B 씨는 습관 같은 질투와 불공평하다는 착각을 배웠다.
자신이 양자라, 애정이 적었고, 교육을 덜 받았고, 지원이 모자랐으며, 그로 인해 실패하게 된 건 아닐까.
어딘가 비뚤어진 성격과 매사에 자신감 없는 태도는, 저놈 때문에 만들어진 건 아닐까.
한 번 하게 된 착각은, A 씨의 부모가 최대한 B 씨도 사랑하려 노력했으나 거부한 건 자신이었으며, 그의 실패는 전부 자신의 책임이라는 잔혹한 진실을 가려주는 편안한 도피처가 되었다.
타오르는 질투와 지독한 애정 결핍, 그는 이윽고 더럽고 추잡한 계획으로 A 씨를 몰락시킬 계획을 꿈꾼다.
…라는 스토리.
이번 곡은 그 계획이 성공한 후, 통곡하는 A 씨 앞에서 웃고 있는 B 씨의 속내를 그려낸 셈이다.
‘…정신 나간 컨셉이야.’
이렇게 반인륜적인 컨셉이 어떻게 통과했는지부터 시작해서 무수히 많은 의문이 머릿속을 채웠다.
이번 앨범 스토리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장르가 피카레스크도 아니라고 하던데.
심지어 앨범 전체가 트랙 1부터 끝까지 전부 A 씨와 B 씨의 관점에서 적은 가사로 차 있다.
트랙 2에선 상대방에 대한 위로와 힘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고, 죽 흘러가서 마지막 곡인 트랙 7에선 거짓말에 대한 분노와 배신으로 인한 슬픔이 담겨 있는 구성이다.
타이틀 곡인 ‘All mine’은 6번 트랙이고 5번 트랙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목표를 이루겠다는 희망찬 곡이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건.
“아, 곡 진짜 좋다…….”
이 모든 걸 처음 제안한 놈이 류이든의 발등을 밟은 후 순진한 얼굴로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우리의 이현재라는 점이다.
이현재는 이번 앨범 제작 과정에서 모든 곡의 작사에 참여한 인물이자, 회사에 이야기의 골자를 써서 ‘이런 컨셉 어때요?’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나는 여전히 제작 회의에서 쑥스럽게 웃고 있던 이현재의 얼굴을 선명히 기억한다.
지금 화면을 보는 저 얼굴처럼 순진하기 짝이 없던 얼굴이라서.
나는 제작 회의가 끝났을 때 이현재에게 조용히 물어본 적이 있다.
‘…현재.’
‘네?’
‘그러고 보면, 어쩌다 쓴 거야, 이 글은?’
나는 너한테 이런 걸 가르친 적이 없다, 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원래 남들한테 존경받는 선인이 몰락해야 비극이잖아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애를 반쯤 망쳐놨구나.
‘그리고 악인이 성공하는 건 현대의 비극이구요. 저는 비극이 좋더라구요.’
나머지 반은 현대 사회가 망쳤고.
이후에도 한참을 억압된 총체성, 페이소스, 상황적 아이러니 같은 용어가 쏟아지는 이현재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조용히 생각했던 것 같다.
‘미친 여우.’
가만히 쏟아지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갤 돌리더니 갸웃거렸다.
저 얼굴에 대고 차마 뭐라 할 수 없어 한 번 웃고 말았다.
그런데 미친 여우는 까먹었다는 듯이.
“아, 그때 말씀 안 드렸는데, 이거 B 씨는 모델두 있어요. 각색했지만.”
라는 소리를 남겼다.
음,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정말 친해지고 싶지 않은걸. 떨어지지 않는 입을 애써 열었다.
“…누군데?”
“음, 있어요. 위선 떨면서 속으로는 남 깔보는 게 버릇인 사람. 어떤 교수님인데, 제가 알기루 자기 대학원생 재능 질투해서 논문 빼앗는 게 취미래요.”
그럼 A 씨는 그 대학원생이겠네.
B 씨가 누군지 알 것 같으니 더는 묻지 않기로 했다. 짧은 감상문을 전해 줄 뿐이었다.
“이젠, 글로 쓸 정도네.”
곧바로 눈치챈 나를 보며 ‘역시!’라는 눈빛으로 보다가 해맑게 웃는 이현재.
“그죠?”
글로 쓸 수 있다는 건 모든 게 끝났다는 증거다.
* * *
퇴근할 시간, 삭신이 쑤셔서 휴식이 간절했지만 그러지 못할 것 같으니 가만히 상념에 빠져들었다.
부모의 역할은 무엇일까.
경제적 지원은 그 해답이 아닌 것 같다. 만일 그랬다면 나는 부모님을 원망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니까.
아직 부모가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론적으로는 정서적 기반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한다.
거기에 실패하면 부모와 자식 사이 관계가 어찌 될지, 그리고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으면 어떻게 될지 이제는 알 수 있겠다.
“…문자 하나만 남기고 떠나는 게, 부모한테 할 짓이니.”
“어? 저 열심히 주석도 달았는데.”
무심한 눈으로 앞의 사내를 바라보는 이현재.
그나마 있는 거라곤 귀찮음뿐이지 당황이나 후회 같은 감정은 그 편린조차 보이지 않았다.
“…먹여 주고 키워 줬더니 이 쓰레기 같은 놈이.”
“제가 배부른 돼지는 못 되나 봐요. 그리고 저 키워 준 만큼 돈으로 보내겠다구 하지 않았어요?”
퇴근하러 대기실로 향했을 때, 신입 매니저님이 ‘가족분이 응원차 오셨다!’라고 하시기에, 모두들 고개를 한 번 갸웃거렸다.
“한국대 합격했다길래 그 멍청한 대가리도 좀 깨어났나 싶었는데. 돈이면 다가 아니잖아, 등신 같은 새끼야.”
“받은 만큼 주는 게 기본이니까 돈이면 다잖아요. 제가 다른 걸 받은 적이 있던가?”
목화는 오늘 스케줄이 있다고 했으니 나는 아니고, 이현재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는 연락받은 바가 없다고 한다.
‘하하!’ 순간적으로 이현재가 알겠다는 듯이 웃으며 대기실로 잰걸음으로 달리듯 가서 문을 활짝 열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빨리 따라 들어가 봤더니 지금 이 상황.
이현재는 무심하게, 이현재의 아버지는 분노에 가득 찬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조용히 눈으로 사인을 주고받으며 밖으로 나갔다.
다만 감정이 격한 것 같으니 만일을 대비해 문을 약간 열어 둬 소리가 새어 나오게끔 했다.
“…이게 뭔 상황이야.”
“이현재 아버님이 찾아오신 상황.”
“그건 나도 알지, 동화야!”
채하민이 류이든의 팔을 붙잡고 동동 뛰면서 어떡하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직도 저놈은 이현재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 알지 못한다.
“알아서 잘 해결할걸.”
물론 이현재의 단어 선택이 우리와 대화할 때처럼 순화되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한 마디 한 마디 상대방을 짜증 나게 하려고 작정한 기세라서.
“그야 그렇지.”
이현재의 변화를 자세히 알고 있는 류이든도 동의했다.
나와 류이든이 고개를 끄덕이며 느긋하게 몸을 풀자, 채하민은 경악했는지 석준에게 달려들었다.
“준아! 이 사람들 미쳤나 봐!”
“혹―시, 때리기라도 하면!”
동동, 폴짝폴짝, 아주 염병이구나, 얘들아.
“불효자로 낙인찍혀 봐야 좋은 기사 나올 것 같진 않네. 네 엄마가 너 없다고 얼마나 슬퍼하는데.”
“에이, 요즘 늙으시더니 말씀이 틀렸어요. 제가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교수진 가족 모임에 들구 나갈 장신구가 없으니 낯부끄러우신 거죠. 실패작이긴 해두 구색을 갖춰야 하니까.”
오, 세상에, 현재.
나는 조용히 입을 막았다.
“정상적인 가족 형태를 원하실 뿐이잖아요. 한참 연락 없으시다가 곧 연례 모임이 다가오니 오시는 것두 이해할 만하네요.”
채하민과 석준뿐만 아니라 나와 류이든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결혼두, 자식을 낳는 것두 정상에서 벗어나는 게 두려워서 선택했던 당신들 주제에.”
석준이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효도라는 숭고한 단어를 입에 올리지 마세요. 격에 안 맞으니까.”
“…너, 어떻게 그걸.”
이현재의 아버님은 말하다가 실수했는지 말을 툭 끊었다. 아마도 ‘어떻게 알았냐’라는 식의 말을 하려다 만 것 같다.
그러게, 어떻게 알았지. 대단하다, 내 과외생.
“나한테 준 건 경멸 섞인 눈빛밖에 없었던 당신들이 내가 아이돌 되는 걸 허락한 것두, 멍청하지만 않구 격 떨어지지만 않으면 장신구로는 괜찮겠다 싶어서 한 선택이었잖아요. 연습생이 되는 걸 허락할 때는 어차피 망한 농사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으면서. 기준이 오락가락하는 걸 보면, 둘째를 못 낳은 게 핵심 원인이었다구 봐야겠죠?”
이번엔 채하민이 놀라서 석준의 한쪽 팔을 꼭 끌어안았다.
류이든은 날 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 정도면 멍청하지 않게 만들어 줄 것 같긴 해.’라는 표정이다.
“그런데 절연하고 나서 뭐라고 지껄이는지 들어보니 놀랍지두 않네요. 고작 내세우는 게 효도예요? 저는 혹시 돈 줄 테니 가족 흉내 내 달라구 하시면 어떻게 반박할지 고민두 했는데. 제 생각보다 멍청하세요.”
상대편의 거친 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걸 보면 화가 난 게 분명하다.
류이든이 문고리에 손을 올리고 조금이라도 더 분위기가 거칠어지면 달려들 준비를 했다.
“기왕 대화하는 거, 조금 더 말씀드려 볼까요?”
약간 웃음기 섞인 이현재의 목소리.
“제가 당신들 예상보단 똑똑했거든요. 어머니는 날 임신했을 때 낙태 시도를 한 적이 있구요. 당신은 자기보다 똑똑한 제자를 보면서 느낀 열등감 때문에 나를 멍청한 놈이라구 매도했죠. 저 처음 눈치챘을 때 얼마나 불행했는지 몰라요.”
끔찍한 소리에 석준이 뒤로 몇 걸음 걷다가 귀를 틀어막고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아, 맞다! 더 알아요. 당신 논문 아이디어가 사실 누구 건지, 어머니는 이력서 조작두 하셨다면서요. 어떡해요! 두 분 다 좋은 기사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아요.”
이후, 방 안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매니저님이 다가오며 고개를 갸웃거리셨지만, 누구도 쉬이 침묵을 깨고 설명을 시작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불효자로 낙인찍히니 뭐니, 이전투구(泥田鬪狗)할 생각은 말아 주세요. 아무리 개들끼리 싸우는 거래두 체급 차이가 너무 나잖아요.”
매니저님은 알아서 눈치를 채고 제 머리를 감싸 안았다. 자기가 출입을 허락한 셈이라 죄책감이 드나 보다.
“음, 그러니 이제 좀 나가주세요. 저 바빠서요.”
툭, 툭, 발걸음 소리가 점차 빨라지며 문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재빨리 몸을 숨기려 복도에 있던 의자에 앉아 모른 체했다.
벌컥 문이 열리며 뛰다시피 빠져나오는 한 사람의 뒷모습이 보이고, 모든 멤버들은 대기실로 달려갔다.
분명히 웃음기 섞인 목소리였던 이현재는 무심한 표정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