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6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64화(232/343)
이현재는 우리를 보더니 퍼뜩 정신을 차렸다. 흐르던 눈물을 서툰 손길로 툭 닦아내고는 씨익 웃는다.
“퇴근길에 이게 무슨 민폐인가 싶네요, 죄송해요.”
“어우, 또, 또!”
류이든은 후딱 다가가 이현재를 가볍게 들고 양옆으로 휘저었다. 언어가 발달하지 않은 원시 부족의 위로 방법 같다.
“형, 비켜요.”
환멸이 한껏 담긴 얼굴, 그러나 그 너머에 있는 안도감과 기쁨은 이현재가 류이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여 준다.
자기 아버지를 볼 때는 전혀 비치지 않았던 존중과 존경이 비치고 있다.
그건 다른 멤버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라서, 아직도 눈에 고인 눈물이 역설적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하지만 지금 울고 있는 건 끝이라는 단어에 대한 생리적 반사 작용 같았다.
어떤 사람은 3년 동안 지지고 볶고 싸우며 제 연인에게 모든 정이 사라진 상태라 할지라도, 자신을 구성하고 있던 하나의 관계가 완전한 종결을 맺었다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흘리곤 한다.
그건 슬픔의 눈물보다는 차라리 가을의 바다를 보았을 때 고이는 눈물과 닮아 있었다.
“…아니, 내려놓으라니까요.”
여전히 류이든에게 들려 있었지만, 어느새 환멸은 사라지고 유치한 미소가 입에 걸려 있는 이현재.
아마도 이현재는 괜찮을 것이다.
멘탈이 유약했던 이현재가 점점 성장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고, 나는 명색이 멘탈교육학과 교수라 이현재가 무너질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
인간의 정신적 성장은 육체와 달리 시간이 절로 가져다주지 않는 만큼 올곧게 성장한다면 나무가 성장하듯 견고하고 단단한 법이다.
“…오늘 뭐 먹고 싶어.”
나는 물었다.
완전한 끝을 위해 제 부모의 치부를 입에 올려 낱낱이 파헤치는 경험을, 보통은 겪기 쉽지 않은 일을 경험한 사람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난 멍청해서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음식은 뇌에 다양한 영향을 끼치므로 ‘위로’의 한 형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이현재는 모르는 걸까.
“음, 글쎄요. 오늘은 왠지 하민이 형이 해 준 닭볶음탕이 먹구 싶네요.”
이런 말은 뭣하지만,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으려 하다니.
예전에 W 라이브에서 채하민이 해 줬던 닭볶음탕, 그 뒤 요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몇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은 전부 지옥에서 최고의 진미일 법한 맛이었다.
“…어?”
아까 전부터 뭐라 말을 할까 망설이며 우물쭈물하던 채하민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현재야, 많이 힘, 그, 어, 내가…….”
휘적휘적, 정처를 잃은 손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한다.
복잡한 요리는 한참 전에 포기하고 계란프라이나 밥같이 단순한 것들만 도전하던 채하민에게는 갑작스러운 취직 제안이라고 할 만하다.
“조금 많이 매운 걸 먹고 싶어서요.”
그리고 덕분에 실업자가 된 나는 내 요리가 지옥식 만찬에 밀렸다는 사실에 조금 씁쓸해지고 말았다.
“아…, 오늘은 동화가 밥하는 날인데!”
“저만, 딱 1인분만, 형이 해 준 닭볶음탕으로, 안 될까요?”
혼자 죽겠다는 비장한 선언은 최후를 알고 있음에도 달려드는 전쟁터의 장군을 떠올리게 했다.
* * *
자신의 탄생화가 괜히 국화는 아닌가 보다, 이현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개인곡으로 선물받은 ‘Under the snow’는 매화를 주제로 삼아서 그런지 희망으로 나아가던데, 이 모든 일을 겪은 자신은 겨울로 향하려는 걸 보니 확실하다.
자신의 입안에서 미칠 듯이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닭의 살을 씹으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정리했다.
음, 아마도 다 들었겠지. 웬 놈이 자기 그룹 막내한테 찾아왔는데 그걸 가만히 두고 볼 형들이 아니니까.
다들 말을 꺼내진 못하지만, 연민이나 동정 같은 게 있을 테다. 그런 걸 원하지는 않았는데.
“현재야, 그거 괜찮아? 내가 만들었지만…….”
“네, 따스해요.”
물론 음식은 보통 따뜻하다. 이 음식은 혀가 따뜻함을 넘어서 따끔거릴 지경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낳아준 것에 감사하라는 말이 족쇄처럼 느껴졌던 건 언제부터였을까.
먹이고 재우는 것을 제외하면 보통의 아이가 받아야 할 무엇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언제부터였을까.
당연하게도 이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기획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류이든으로부터 시작된 깨달음이 최종적으로 지동화로 인해 완성되었던 날, 필연적으로 오늘 같은 순간을 겪어야만 했겠지.
이현재는 뜨거운 닭을 다시 꼭꼭 씹었다.
혀가 마비라도 된 듯, 어떠한 맛도 느껴지지 않고 무기질적인 무언가가 짓이겨지는 감각만 남았다.
‘…일찍 끊어 내서 다행이다.’
만일 그러지 않았다면, 무엇을 먹든 무엇을 하든, 무감각해졌을 게 틀림없다.
행복이라는 게 무엇일지 매일 고민하면서, 일생을 지금 닭고기를 씹듯이 살았을 테다.
엄청 매운 음식을 끊임없이 입에 넣다 보면 무감해지는 것처럼 우울과 자조에 익숙해져 행복도 몰랐을 게 분명하다.
“…하민이 형.”
“여, 역시 맛없지? 지금이라도!”
“아니요, 너무 맛있어요.”
‘특히 음식이 전해 주는 교훈이요.’
뒷말은 숨겼지만, 아마 동화 형이라면 깨달을 거라고 생각하며, 이현재는 기어코 채하민이 준비한 1인분의 닭볶음탕을 모두 먹었다. 미리 위장약을 먹어 뒀으니 문제는 없을 것이다.
방에 돌아와서는 의자에 앉았다.
문제집, 책, 악보, 가사지 등, 자신의 흔적으로 가득 찬 책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이현재는 습관처럼 태블릿을 꺼내 일기를 적었다.
이렇게 큰일을 겪고 나서 하는 일이 고작 살아가는 일에 불과하다는 게 기묘할 따름이다.
‘…형들한테 모자라지 않게.’
더 훌륭한 가사를 쓰고, 더 좋은 고음을 뱉고, 더 높은 격식을 갖추자.
자신이 존재할 이유를 만들어 주는 팬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부모와 연을 끊었을 때 느껴야 했을 지독한 공허감을 충만한 애정으로 메꾸어 준 이들을 위해서라도.
* * *
음악 방송 사전 촬영에서 나는 감탄하고 말았다. 쟤는, 왜 갑자기 실력이…….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는 근육을 단련하는 것에 가까워서 꾸준히 노력하면 실력이 는다고는 하지만 고작 며칠 만에 소리가 좋아지는 건 불가능하다.
혹은 가사에 담긴 감정을 깊이 이해하면 소리 자체가 단단해지기는 한다.
그러나 그런 사건을 겪고 자기 아버지가 모티브인 인물에 감정을 이입한다는 건, 혐오하는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만큼 역한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현재가 홀로 후렴을 부를 때였다.
그 목소리에는 지독한 탐욕과 저주스러운 분노,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과 그 밑에 깔린 자기혐오가 모두 뒤섞여 있었다.
즉, 이현재가 그 역한 작업을 해내고 말았다는 소리다.
작곡 의도 그 자체인 목소리라 작곡가로서는 감격스러운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작곡가일 뿐만 아니라 동료이자 이현재와 대학 동문인 인간이다. 힘들지는 않았을지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결국 무대가 끝나고 대기실에 도착했을 때.
“동화야.”
“왜.”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는지 류이든과 눈이 마주쳤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는 눈빛이었다.
의자에 몸을 푹 기대 심신의 안정을 꾀하고 있던 내게 류이든이 옆에 앉아 작게 속삭였다.
“들었지.”
끄덕.
“너는 목소리만 들었잖아.”
“응.”
“현재 후렴 부를 때 사이드에서 봤는데, 눈이……. 사람 한두 명은 묻어 봤나 싶을 정도였어.”
세상에. 이현재는 평소 표정 연기 지적을 자주 받았는데, 얼마나 깊게 몰입한 거야.
내 얼굴을 보고 확신을 얻은 듯, 류이든이 조심스레 자신의 추론을 내놨다.
“혹시 많이 아픈가?”
노래가 꼴도 보기 싫을 만도 한데, 그 모든 걸 무시하고 실력을 늘렸으니, 류이든은 애가 혹시 머리가 아픈가 조심스레 의심하고 있나 보다.
“…글쎄.”
“이럴 땐 현재가 너무 어렵다. 너처럼 무슨 생각하는지 보이면 좋을 텐데.”
망할, 그게 다 채하민의 ‘지동화 표정 특강’ 때문이잖아.
“내가 알아볼게.”
“역시, 우리 집안의 대들보.”
난 별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서 이현재의 옆에 털썩 앉았다.
태블릿 화면을 엿보니 커뮤니티를 보며 반응을 확인하고 있었다.
“…괜찮아?”
정말 괜찮은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확신이 없으니, 바보 같은 질문으로 포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네. 다들 엄청 좋아하구 계세요. 화력도 더 센데, 저희가 이런 컨셉은 잘 안 해서 그렇지, 일단 정장 핏이 말두 안 되는 사람이 한 명 있잖아요?”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않고 술술 답했다.
류이든 얘기 같지만, 그놈 칭찬은 별로 궁금하지도 않단다, 현재.
“그거 말고.”
“네?”
“너.”
이현재는 ‘아.’라는 외마디 신음을 터뜨리더니, 태블릿의 화면을 껐다.
그러고는 한 2초쯤 내 질문을 곱씹었을까.
“작곡가한테 칭찬받고 있는 거네요, 지금?”
샐쭉 웃으며 답하는 여우 놈. 그 짧은 시간에 화자의 의도까지 파악하는 걸 보니 국문학과다웠다.
‘음.’ 하며 말꼬리를 늘리던 이현재는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한마디.
“사실 괜찮은지 잘 모르겠어요.”
음, 그렇군.
류이든이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이럴 때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머릿속 도서관에 여러 책이 날아다니며 뒤죽박죽 뒤섞였다.
일단, 극단적인 사태를 체험하고 나면 일시적으로 현실 감각이 둔해지는 현상은 꽤나 일반적이다.
뇌가 큰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거니, 이럴 때는.
“오늘 한 거, 정말 괜찮았어요?”
툭, 상념이 끊겼다.
“…현재.”
“네.”
“류이든은 닮지 말아 줘.”
나나 다른 멤버를 닮는 건 몇백 번이고 괜찮지만, 류이든만은 사양이다.
놀림은 류이든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받고 있으니까.
이현재는 조금 전 천장을 바라보며 지었던 허망한 낯짝은 어디로 갔는지 어느새 옅은 장난기가 맴도는 낯으로 웃고 있었다.
류이든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죄송해요, 말장난하기 너무 좋아 보여서.”
순하게 웃고 있는 이현재를 보니 저절로 입이 움직였다. 거의 척수반사에 가까운 발화였다.
“…고생했어.”
부모가 갖는 정신분석학적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초의 관계이자 애착 형성의 기반, 프로이트가 모두 옳다고는 못 하겠지만 유아기의 경험이 삶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건 대부분 동의할 테니까.
그런 와중에도 홀로 우뚝 서 나아가는 이현재의 모습은 대견했다.
기지생이야 이 꼴을 보며 ‘쟤는 원래 미친 애입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미치는 거라면 사회적으로 권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고생은, 형이랑 이든이 형이 많이 했죠.”
“어이구, 우리 현재, 다 컸다! 다 컸어!”
이현재가 답하자마자 류이든이 울먹이는 얼굴로 벌떡 일어나 달려오며 소리 질렀다.
팔불출 아버지 같은 모습이라, 저 인간이 나중에 결혼하면 자식은 조금 괴로울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우리한테 속마음도 말해 주고! 아주 다 컸어! 응!”
이현재의 팔에 짓눌려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면서도 어떻게든 달려드는 류이든.
그런 류이든을 보며 이현재는 시니컬하게 답했다.
“더 자세한 마음은 절대 안 전해 줄 거예요.”
음, 가족 같은 사람들이라 보답하고 싶다, 이런 거 아닐까, 추측하며 채하민과 석준에게로 가 얌전히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