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6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66화(234/343)
해결사무소 촬영이 끝난 회식 현장.
오늘 촬영의 스토리는 갑자기 도둑질을 해 달라는 여자의 말에 이끌려 생체 실험 소재로 쓰일 뻔했다는 불쾌한 내용이었다.
이 프로그램, 인간 불신을 조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보다는 도둑질 제의를 받아들인 우리가 조금 맛탱이가 간 거 아닐까, 막내야.”
“제 기억에 선배님이 금액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이래서 기억력 좋은 애랑은 말을 잘 안 하는데.”
한호 선배가 술을 따라주는 걸 받으며 나는 편하게 미소 지었다.
해결사무소라는 웬 괴상한 프로그램이 꽤 인기를 끌면서 잡힌 회식. 일종의 잔치인 셈이다.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 건 출연자로서 당연히 기뻐할 일이다.
나 같은 아이돌은 아이돌에게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더욱 좋은 일이다.
나를 입구로 삼아 다른 멤버들에게 붙잡히면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이기도 하다.
“우리 막내가 또 이번에 컴백을 했습니다, 여러분!”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경우 선배가 소리쳤다.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이 환호하는 제작진 분들.
“…취하셨나요.”
“미친 거지.”
한호 선배가 고기를 내 앞접시에 옮겨 담으며 짧게 답해 줬다.
“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막내 곡 좀 들어보라고 그렇게 염병을…….”
“형도 그러지 않았나?”
강희 선배가 한호 선배가 굳이 숨기려던 사실을 들춰냈다.
“너는 언젠가 눈치 없고 입 가벼워서 사단 한번 날 거다.”
경우 선배는 사소한 다툼 따위 관심도 없다는 듯이 다시 소리쳤다.
“막내가 대박 나게 우리가 홍보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좋은데, 정말 좋은 일인데, 왜 이리 싫을까.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나도 매일 홍보해.”
그러면 눈이 마주친 준성이 형이 똑같은 소리를 한다.
“요즘 팬분들이 나 때문에 너희 무대 영상에 빠졌다고 말씀도 많이 해 주신다?”
그러고는 한참을 요즘 자기가 우리 앨범의 몇 번 트랙을 자주 듣는지, 그 곡이 왜 좋은지, 현재의 성장이 얼마나 기꺼운지 하나하나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그걸 피해 고개를 돌리면 막내 곡 좋다며 일장 연설을 펼치는 실력 좋은 장광설이 한 명 있어서 다시 고개를 돌려야 했다.
망할, 어디를 보든 같은 결론에 도달하다니.
“…감사합니다.”
내가 앞접시에 시선을 내리고 조용히 답했을 때, 경우 선배가 풀썩 자리에 앉고는 수치스럽다는 듯이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우, 부끄러워.”
“그러니까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러냐, 너는.”
“죽을 때가 됐나 봐.”
고기를 한 점 먹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와, 그건 그렇고 이번 무대 멋지더라, 막내! 아주 그냥 중간에 웃는데 소름이 돋아서!”
경우 선배가 브릿지의 내 안무를 따라 하며 웃었다.
“나는 걔. 현재 있잖어. 걔 표정에 독기가 한가득인데, 친구였으면 잘 맞았겠다 싶더라.”
그건 그럴지도.
“하민이도 그냥…, 걔는 관절 검사 한번 받아야 돼. 어떻게 몸을 그렇게 써.”
이어서 이어지는 끊임없는 칭찬.
류이든의 남성미, 석준의 랩, 다시 돌고 돌아 내 작곡, 기타 등등 모든 것이 화두에 오르며 죽죽 칭찬만 이어졌다.
그러면서도 사이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디스가 섞여 간간이 웃음을 유발했다.
“그러고 보니, 경우야, 제수씨가 금주 명령 내렸다지 않았냐?”
“대화로 해결했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했지.”
“타협할 때 협 자가 혹시 뺨 협(頰) 자냐? 내가 새벽에 자는데 웬 남자가 뺨 맞는 소리가 들려서 깼거든.”
“나 집이 잠실이야. 형은 노원구고.”
자연스럽게 중년들의 시시콜콜한 대화로 넘어가며, 그제야 나는 몸이 편안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편안함을 보기 싫었던 우리의 위대하고 놀라운 준성이 형이 미련이 남은 듯 입을 열었다.
“전략 잘 짰더라. 무대 동선부터 시작해서, 어떻게든 확 눈에 띄려고 했잖아.”
말마따나, 이번 타이틀곡에서 가장 고생한 건 안무가 선생님과 채하민일 것이다.
어느 각도에서 보든 볼 만한 요소가 있게, 어느 순간을 보든 사로잡히는 게 있게끔 하려고 했단다.
물론 나는 작곡만 해서 그런 어려운 건 잘 모르지만, 어떻게든 무대 위에 하나의 스토리를 선명하게 구현하려 노력했다는 것 정도는 알겠다.
“하민이가 노력했거든요.”
“네 곡도 대단하지.”
“…그렇습니까.”
“어쨌든, 보면서 나도 생각 많아지더라고.”
준성이 형이 아련하게 천장을 넌지시 바라봤다.
“처음 서바이벌 할 때보다 실력은 배로 늘었고…, 나는 저 때 뭐 했나 생각 들고…….”
“연습하셨겠죠.”
사실 알고 있었다. 우리 연차의 TOT는 막 빛을 보기 시작할 무렵이라는걸.
선배들의 후광 덕택에 처음부터 주목받았던 우리와 달리 이 사람들은 본인의 능력으로 하나하나 이뤄갔던…….
“그건 과장이지. 해진 팀장님이 엄청 노력했거든.”
“팀장님은 계속 형만 칭찬하던데요.”
“…어, 잠깐만.”
나는 기억 속에 있던 일화를 모두 끄집어내 전부 준성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했다.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툭툭 튀어나오는 칭찬.
준성의 얼굴이 붉어지며 수치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만!”
“그리고 그때, 준성이 형이 예언 선배 쓰러지나 걱정돼 매일 밤 1시간 단위로 알람 맞추고 컨디션을 돌봤다는 일화를 보면…….”
“미안! 미안! 내가 잘못했어.”
말을 멈추고 고기를 한 점 씹었다.
“…친해지면 이런 문제가 있구나.”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준성이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낮은 소리로,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작은 소리지만, 내 귀에는 분명히 들리게 적당히 조절하며 귓속말을 속삭였다.
“어쨌든, 축하해. 콘서트 얘기 나오더라. 이 얘기 해 주려고 그렇게 빌드업 쌓았지.”
“…네?”
“아, 이거 비밀이랬는데.”
절대 비밀을 지킬 의도가 없었던 표정으로 얄궂게 웃는 준성.
“어떻게 아셨습니까.”
정보는 언제나 소중한 법, 아마 지금 내 눈에는 옅은 욕심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 그건 비밀이라.”
어쩌지, 이 인간에게서 약간 류이든이 겹쳐 보이는데.
특히 벽돌로 내리치고 싶다는 점이.
* * *
―축하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짧은 문자 메시지를 보고 나는 다시금 깨닫고 말았다.
내가 얼마나 정치력이 없는지, 화양 씨가 알고 있는 사실을 아직 몰랐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곧바로 류이든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어, 왜, 동생아.
“얘기하지 않은 비밀, 털어놔.”
―어…, 그, 미안, 네 책 라면 먹을 때 냄비 받침으로 썼어.
거짓말이다.
―진짜 네 책인 줄 모르고, 내 건 줄 알았는데, 그…….
“또.”
―어? 아니, 그, 네 사진 찍어서 방금 올린 건, 너도 하길래 그런 거지!
이것 역시 핑계다. 목소리만 들으면 알 수 있는데 굳이 숨기려는 노력이 가련하다.
“다야?”
―하하, 그건 다 같이 들어야 하는 거고.
역시, 이 망할 놈이 모를 리가 없지.
당황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굴다가, 내가 아는 게 틀림없어 보이니 능글맞게 웃는 게 참…….
―너는 대체 어디서 들은 거야.
“너는.”
―나야, 뭐, 눈치껏?
내가 말없이 있자 류이든이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 나갔다.
―우리 회사가 어느 정도 급에 단콘 여는지는 이미 통계적으로 알 수 있거든.
“현재도 알겠네.”
―아니, 막내는 우리 무대 후기만 보느라 전체 체급은 안 보이나 봐.
류이든은 꿍얼꿍얼 설명을 늘어놨다.
선순환 구조가 있다고 한다. 방송에서 유입되는 사람을 붙잡을 수 있었다는 둥, 쏟아지는 설명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은 길었지만 요약하면 루미너스분들이 있었던 덕분에 성공했다는 소리다.
“…그래.”
백 번이고 동의할 수 있지.
―너 들어와도 말하면 안 된다? 애들이 놀라는 거 보고 싶단 말이야. 아, 이번엔 너도 놀랄까 싶었는데, 아쉽다.
“음습하네.”
‘변태 같은 놈’의 완곡 어법이다.
―들어오는 길이야?
“어.”
―들어와서 꿀물 먹어, 타 놨어.
“여담인데, 내 놀라는 얼굴은 준성이 형한테 뜯겼어.”
―아, 그 형이……. 알았어!
콘서트라, 솔직히 그렇게 놀랄 일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으니까, 콘서트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기 힘들어서.
평생의 목표로 꿈꾸던 사람과 눈을 뜨니 목표라고 들이 밀어진 사람 사이의 간극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애들 놀라는 건, 좀 보고 싶긴 하네.’
다만, 그 콘서트 당일이 되기 전까지는 그 사건이 내게 무슨 흔적으로 남을지 모를 거라고, 조심스레 추측할 뿐이다.
* * *
그리고 현재, 나는 아무것도 추측할 수가 없었다.
회식 사건이 있었던 다음 날, 나는 차 안에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지금 촬영 전이면 입 좀 놀려도 될까요.”
“촬영 중이지만 특별히 허락할게요.”
망할 PD놈.
내가 유일하게 PD놈이라 부르는 인간의 목소리에 심박수가 올라가려는 걸 억눌렀다.
“교수라는 사람을 연행하듯 끌고 가는 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교수도 범법 행위를 할 수 있죠!”
“혹시 제가 그랬던가요.”
매일 촬영할 때마다 솟구치는 폭력성을 억누르는 내가, 언제 범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음악 방송 촬영이 없는 날 중 하루, 다른 멤버들도 각자의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날.
나는 안대를 쓰고 수갑을 찬 채, 양옆의 남성들에게 팔을 붙들려 있었다. 대한민국의 인권 의식이 이렇게나 얕았나.
“멘탈 수업이 언제부터 범죄자 연행을 체험해 보는 방송이 됐습니까.”
“사실 오늘 고민이 좀 많았어요.”
무시하는구나, PD놈.
“원래는 음식 체험을 할까 했거든요? 샤르데나식 음식을 찾아보니까 기똥찬 게 하나 나오긴 하더라고요.”
…카수 마르주(Casu Marzu).
샤르데나 지방의 전통 치즈로 안에 구더기가 득시글 살고 있는 치즈다.
보통 샤르데나 사람들은 구더기가 있는 상태 그대로 먹는다고 한다.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이 떨어지지만, 그 지역 사람들에겐 소중한 음식이다.
그리고 나는 그 지역 사람이 아니지.
“이제야 연행이 좀 납득이 됩니다.”
지금 당장 도망치고 싶거든요. 살면서 스케줄을 도망치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와, 진짜 역시 동화 씨! 저랑 영혼의 단짝! 사랑하는 우리 자기! 말 한마디 없이도 카수 마르주 생각한 거죠, 지금!”
“PD님, 제가 진심으로 욕하는 걸 촬영하는 게 목표이신가요.”
“에이, 설마요. 소중한 우리 출연자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소중한 사람에게 구더기를 먹이는 문화권은 세상에 없습니다.”
“우주에는 있을 법하잖아요.”
“구더기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문과적 상상력을 너무 무시하시네요.”
“지금 제 눈에 보이는 건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라서요.”
안대 때문에 깜깜하거든요, 망할.
“어쨌든,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저희는 결심했습니다. 고통의 선택이었죠!”
“제가 느낄 고통인가 봅니다.”
차가 멈췄다.
카수 마르주를 한국에서 만드는 사람은 없을 것 같고, 그걸 한국에서 수입할 수 있을 거라 생각지도 않지만, 저 미친 PD놈이라면 직접 만들어서라도 먹일 것만 같아서 조금 두려웠다.
“이곳은.”
안대가 풀렸다. 밝은 빛에 적응하느라 몇 번 눈을 감았다 떴다. 눈앞에 보이는 정문은 너무나 익숙한 곳이었다.
“동물생태연구소입니다.”
…심바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