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67)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67화(235/343)
여기, 혹시 카수 마르주 제작 실험 같은 거라도 하나. 구더기가 더욱 잘 자랄 수 있도록 생장 물질을 넣는 경우가 많다던데, 그런 건가.
…심바 씨 교육 환경이 무슨. 내가 심바 씨 부모라면 맹자 어머님은 가뿐하게 이길 것 같은걸. 지동화의 오천지교(五遷之敎).
나는 언젠가 보았던 정문을 가만히 바라봤다. 추억 비슷한 게 슬며시 되살아나려 할 때쯤.
“교수님.”
떨어진 촬영 사인.
자연스레 미소를 지었다. 짧지 않은 시간 이 망할 촬영을 하면서 몸에 밴 버릇이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도 찾아온 지동화라고 합니다.”
…음, 그 망할 구더기를 씹어 삼키는 일은 다행히 없겠네.
천천히 앞서 있었던 대화를 상기한다. 카수 마르주에 미쳐서 대화의 세부 사항을 놓친 게 틀림없다.
‘원래는 음식 체험을 할까 했거든요?’라는 말로 시작된 카수 마르주 이야기.
‘는’이라는 보조사가 달려 있으니까, 아마도 카수 마르주는 장난질인가 보다.
만약에 정말 먹인다면 참고 먹은 다음에 어떻게든 법적·사회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 뉴스에 한마디도 뜨지 않게끔.
“이번에는, 동물 친구들을 만나러 왔습니다.”
밝은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PD놈이 끼어들었다.
“여기서 카수 마르주가 개발 중이래요.”
이미 다 들통난 소릴.
그러나 겉으론 내색하지 않고 방송용 미소를 지었다.
“정말 맛있겠네요. 오랜만에 맛을 볼 생각을 하니 즐겁습니다. 아침마다 빵에 발라 먹었는데.”
PD놈이 ‘쯧’ 혀를 한 번 찼다.
당황하지 않고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구는 게 글렀다는 걸 깨달았나 보다.
“오늘은 교수님의 수업에 대해 저희 학생 여러분이 보답을 하는 시간입니다.”
헛소리.
설문 조사하는 꼴은 본 적이 없고, 만일 내 학생이 당신이라면, 당신은 더 이상 학생이 아니게 될 텐데 무슨 소리를.
“혹시 학생이 제작진 여러분인가요?”
“네!”
펄럭, 백기를 올렸다.
“전원 F입니다. 자퇴를 권합니다.”
집에 돌아가서 자신이 이 학교에 어울리는 인간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도록 하세요.
“학생 없는 교수가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럼 교수직을 포기하겠습니다.”
그럼 당신들도 아무 의미도 없겠네요. 혼자는 아니라 다행입니다. 이 얼마나 상호의존적인지.
“악하네요.”
물론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건 감사한 일이다.
다만 이 PD놈이 내가 힐링할 만한 컨텐츠를 만들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확신을 못 할 뿐.
“여긴 그래서 정말 왜 온 건가요.”
방송 구성상 이쯤 백기를 들고 설명을 듣는 시간이 필요하다.
“에이, 아시면서.”
“…정말 심바 씨랑.”
“아쉬운 건, 그분께서 엄청 성장하셨더라고요. 안전상의 이유로 예전처럼 뒹굴거리고 그럴 수는 없답니다.”
이 연구소는 어느 정도 성장이 이뤄지고 나면 방목에 가깝게 기른다고, 사육사님께 들은 바가 있다. 사파리 체험이 되겠네.
그러나 자연스럽게 눈에 불신이 싹튼다. 이 인간과 촬영을 한 지 꽤 된 덕분에 무슨 헛짓을 할지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오늘은 동화 씨가 그간 고생을 하도 많이 하셔서, 힐링하는 시간이에요.”
“그렇게 말하면서 혹시 심바 씨와 뵐 수 있는 시간을 걸고 노동을 한다든가 하는 건 아니겠죠.”
“동화 씨, 아무래도 저희 결혼할까 봐요.”
“비혼주의니까 조용히 해 주십시오.”
“맞답니다!”
PD놈이 종이 쪼가리를 하나 꺼냈다.
“여기, 스탬프예요. 원래는 교수님일 때 드려야 하는데, 지금 받고 싶으셔서 백기 든 거 다 압니다.”
종이를 펼쳐 보니 연구소를 마치 놀이동산처럼 만들어 놓고 스탬프란까지 남겨 뒀다. 고등학교 수학여행도 이것보단 고풍스럽겠다.
“아, 이 표정도 괜찮네요. 클로즈업으로 3초간 내보낼 거예요.”
미친놈.
“채우기만 하면 됩니까?”
“네, 모든 스탬프를 채워야 합니다. 단순하죠?”
“정말 좋네요.”
얼른 심바 씨 내놔. 최근엔 사육사님이랑 연락도 잘 못 했다고.
* * *
“안녕하세요, 교수님. 저희 연구실에 와 주셔서 반갑습니다.”
처음 뵙는 분이 쾌활하게 인사했다.
머리엔 토끼 귀를 차고, 토끼 수염을 그리고, 흰색 가운을 차려입었다.
취향은 존중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이 차림을 하고 있으면 정신 질환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깡총.”
세상에, 인간 존엄의 문제잖아, 이건.
“…돈이 멘탈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다음 연구에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자 배우로 추정되는 분이 입술을 악 깨물었다. 웃음을 격렬하게 참고 있었다.
그러더니 우울한 표정으로 시선을 바닥으로 툭 떨어뜨렸다. 짙은 자괴감.
“사실, 얼마 못 받아요.”
저런.
“그렇다면 사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알게 됐습니다. 동료 교수에게 전달해 줄게요.”
“부디 부탁해요.”
“네, 반드시. 박봉으로 인간 존엄을 팔아먹는 작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개혁하겠습니다.”
감동, 격하게 끄덕이는 고개, 그러나 이내 자신의 직분을 깨닫고 만다.
“아, 맞다. 저희 깡총 사육장, 에 와 주셨는데, 어쩌죠?”
“사육장 이름 말할 때, 망설이시네요.”
“제가 사육장 안에서 당근, 을 잃어버려서.”
“지금도 망설이셨잖습니까.”
“지금 제가 스탬프를 찍어 드릴 수가 없어요!”
나는 대화하기를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 보이지만, 아마도 뒤에서 PD놈이 시선으로 주의를 주는 게 틀림없다.
“아, 주의해 주세요. 안에 있는 제 가족들이, 크흡.”
그리고 그런 시선으로도 막을 수 없는 자조.
“…나중에, PD놈에게 함께 반기를 듭시다.”
나는 조용히 귓속말을 남기고 사육장의 문을 열었다.
안전 교육은 받…….
순간, 무언가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달려들었다.
공기를 가르며, 새하얀 물체가, 내 명치를 향해.
컥, 강렬한 충돌.
마치 달에 운석이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내 귓가에 울렸다. 명치께부터 시작된 충격파가 머리를 울렸다.
“…저희 가족이 좀 흉폭해요!”
나는 뒤로 쓰러지며 배우분이 힘겹게 뱉어낸 설명을 들었다.
방송 모니터링을 하며, 성질머리가 나쁜 건 알고 있었지만, 문을 열자마자 이 염병을 떨 줄은 몰랐는데.
나는 품에 있는 녀석의 등을 쓰다듬었다.
“…성급하네요.”
그러자 녀석은 뭐가 불만인지 내 가슴판을 발로 쳐댔다.
나는 온화하게 등을 한 번 쓸어내렸다.
“무언가 불만이 있으시다면 저랑 상담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이래 봬도 상담에 소질이 있답니다.”
누가 보더라도 내담자에게 정서적 친밀감을 형성하려는 내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배우분이 순간 컨셉을 망각하고 중얼거렸다.
“…미친 사람.”
그런 분장을 하고 있는 사람, 게다가 토끼를 자기 가족이라 주장하는 사람에게 듣고 싶지 않습니다.
약 20분 동안 나는 토끼와 대화를 시도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잠시 현실 자각의 순간이 찾아올 때도 있었지만, 돈은 쉽게 버는 게 아닌 법이다.
“네, 그랬군요, 모모 씨.”
이 덩치 큰 토끼의 이름이 모모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탁탁탁, 반복적으로 바닥을 치는 걸 보니 말을 거는 게 재수 없게 느껴졌나 보다.
그러나 여기서 내 본래 성격대로 내버려 두고 치든 말든 무시하며 배우 분이 잃어버린 당근이나 찾으면 방송이 안 된다.
“웬 인간이 들어와서 토끼 분장을 하고 자기 가족이라 주장하는 게 그렇게 불만이셨군요.”
“…네?”
“부디 이해해 주세요. 인간은 가만히 있는다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자본주의 시스템을 설명해 드릴까요?”
탁탁.
“아, 모모 씨도 앉아서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연구 자료로 사용된다고요? 놀라워라.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이 있으셨군요. 개신교가 만들어지겠어요.”
탁탁탁.
“알겠습니다. 나중에 농림축산식품부와 노동청에 처우 개선과 배급되는 음식의 품질 향상을 요청하겠습니다. 특히 저 가족이라 주장하는 분은 제가 직접 처리할게요.”
그러자 놀랍게도 바닥을 치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럼 저는 이만 당근 좀 찾아 떠날게요.”
망할 제작진 놈들 당근 모형을 집 앞에 놓아두다니. 침입 행위로 보이면 끝도 없는 태클에 시달리겠지.
마침내 굴 앞에 도착하고, 당근을 집어 들었을 때, 나는 여유로운 척하며 곧 있을 충돌을 대비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어가면서,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낼 생각도 못 하고.
그리고 마침내, 문을 열고 사육장에서 나왔을 때 깨닫고 말았다.
“…세상에.”
아무도, 공격하지 않다니.
소통이 가능할 리가 없으니 최선의 추론으로 보더라도 기적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자연의 세계에는 아직 합리성으로 해명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사태가 존재하나 보다.
놀라움을 억누르고, 예상대로라는 표정을 연기한다.
이 방송 안에서는 비합리적인 상황과 그걸 합리적으로 연결 짓는 논리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
멍한 배우분과 제작진놈들에게 옷을 정리하며 승리의 미소를 날려줬다.
“제가 사실 부전공이 애니멀 커뮤니케이팅 학과입니다.”
합리적이다. 소설적 개연성을 충족했으니 사르트르가 보더라도 박수를 보내 주겠지.
“…진짜, 불만인 게, 제가.”
배우분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저 토끼들의 포학성을 알고 있었는지, 자신의 분장이 진정한 원인이라는 방송 속 개연성에 충격받았나 보다.
“다음에는 부디, 토끼로서 가족들에게 받아들여지기를, 매일 밤 기도할게요.”
“…네?”
내가 아는 친구 중에, 저 아이들에게 토끼로 인정받은 놈도 한 명, 아니 한 마리 있으니,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
* * *
“…진짜 애니멀 커뮤니케이팅 학과 전공이신가요?”
백기를 들고 있는 PD놈이 물었다.
“아니요. 복수 전공이나 부전공은 아직 없습니다.”
언제나 나는 아버지의 뜻을 이은 철학과였고, 동물 관련 학과는 관심조차 가져본 적이 없다.
“…스탬프가 너무 빨리 모이는 게 예상이랑 크게 다르네요. 어떻게 기린이랑 대화가 돼요?”
기린, 거북이, 그리고 웬 뱀 소굴 같은 곳까지 거치며 모든 스탬프를 모았다.
절로 발이 가벼워지고 조금 흥겨운 기분.
“애니멀 커뮤니케이팅 부전공이라서요.”
대화를 툭 자르는 한마디.
PD놈이 컨셉 밖에서 놀고 있으니 머리채를 잡고 컨셉 속으로 끌고 왔다.
‘진짜 카수 마르주를 준비할 걸 그랬나.’라는 미친 소리가 들렸지만 깔끔하게 무시할 수 있었다.
지금 내 기분은 마치 어느 시의 구절처럼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타고 있는 사람 같다.
현실을 벗어난 듯한 설렘, 고작 삼 일을 같이 보냈지만, 귀여운 생물이 내게 보내는 ‘목적 없는 애정’은 여전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서 가죠.”
“참고로 교수님은 심바 씨랑 초면이에요.”
“그건, 노력해 보겠습니다.”
벌칙 받으면 그만이지.
줄어드는 거리에 비례해 심장 박동이 격하게 울린다.
나를 기억조차 못 하겠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 괜찮다.
한 존재가 성장한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가 있으니까.
벌컥, 방의 문을 열었다.
유리로 분할된 공간, 그 너머, 거대한 한 마리의 호랑이.
귀여울 필요는 없다는 듯, 날카로운 송곳니와 단단한 발톱, 그리고 세상이 지루해 보이는 눈빛.
“…심바 씨.”
“첫 만…, 아니에요. 제가 백기 들고 있을게요.”
느릿한 걸음으로 유리에서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가만히 섰다.
기억 속에 있는 선명한 인상에, 그림을 한 장 추가하기 위해, 나는 심바 씨의 모든 걸 찬찬히 눈에 담았다.
그리고 마주치는 눈, 생물학적으로 앞에서 도망치는 먹잇감을 추적하기 위해 진화한 세로로 갈라진 동공.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심바 씨가 유리에 코를 박았다. 그러고는 아픈 듯 바닥을 뒹굴었다.
“…역시, 교육 환경이.”
왜 채하민 수준이 된 겁니까, 심바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