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68)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68화(236/343)
위엄 넘치는 한 마리의 맹수가 왠지 모를 이유로 코를 박고 뒹굴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 깊은 곳에서 안타까움이 싹텄다.
“…왜, 이러는지.”
고개를 돌리자, 홍헌민 사육사님이 가운을 입고 축 처져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교수님…….”
단 한 문장만으로 방송과 현실 사이의 벽을 허물어 버리는 사육사님.
교수님이면 오랜만이면 안 되는데, 지쳐서 깊게 생각할 힘이 없어 보였다.
“심바가, 오늘따라, 여기서 안 나가더라고요. 원래는 차 타고 가서 만나는 게 목표였는데.”
“어디 아픈가요?”
예전 기억이 떠올라서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요. 엄청 건강해요. 아침부터 그러기에 건강 체크 좀 해 봤거든요.”
유리창 너머에 있던 심바는 어느 정도 고통이 가셨는지 유리창에 발을 올리고 나와 사육사님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세상에, 귀여워. 거친 발바닥이지만 그 모양이 귀여웠다.
그러나 이쪽을 맹수가 보고 있다는 건 명확한 사실이니까 추측해 보자.
“배가 고픈 건 아닐까요.”
냉정하게 보면, 일단 우리도 심바 씨에겐 고기 정도로 보이지 않을까.
잃어버렸던 자식을 보고 수많은 감정을 느끼더라도 그 자식의 눈에는 웬 아저씨가 염병 떠는 걸로 보이는 것처럼.
“저희 연구소 굶기고 그러는 곳 아닙니다! 저보다 잘 챙겨 먹고 있거든요.”
“그렇군요.”
나는 유리창에 조금 더 다가가 책상다리로 앉았다.
심바 씨는 유리창에 올려둔 다리를 내려 편하게 목을 누이며 나를 바라봤다.
“어렸을 때부터 동화 씨 영상을 자주 보여 줬거든요? 얼굴은 아마 안 잊었을 거예요.”
사육사님이 축 처진 어깨를 돌리다 의자를 하나 가져와 권했다.
그제야 무의식적으로 품위 없게 바닥에 앉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으려 일어서자 심바 씨가 다시 발을 툭 유리에 올렸다.
…자만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를 도시락으로 여기든, 친밀하게 여기든, 둘 중 하나는 확실한 것 같다.
자리에 앉자마자 툭 다시 발을 내려 얼굴을 괬다.
…망할, 귀여워.
“오랜만에 만났는데 두 분 시간 좀 보내게 자리 비워 드릴게요!”
한참을 심바 씨의 위용과 대비되는 귀여움에 감탄하고 있자, 대뜸 사육사님이 소리쳤다.
“…네?”
아쉽지만 심바 씨에게서 고개를 돌려 둘러보니, 어느새 사육사님을 제외한 나머지 제작진분들은 이미 나가 있었다.
“소회 좀 나누세요. 들어보니까 동물이랑 소통이 가능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둘 중 하나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컨셉을 지키든, 지키지 않든, 자아에 혼동이 올 것 같습니다. 마치 호랑이에게 심바라고 이름 붙여 놓은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방송은 잘 몰라서…, 심바도 멘탈 수업 애청자니까 대화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기 할 말만 재빨리 뱉어낸 사육사님이 곧장 문을 열고 나섰다.
탕, 문이 닫히고 한 번 떨렸던 공기가 가라앉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사육 장소와 맞닿아 있는 공간이라 그런지 아무것도 없는 방 안에, 유리를 사이에 두고 나와 호랑이 한 마리만 마주 앉아 있었다.
* * *
#지동화의 멘탈 수업 편집본
말없이 심바를 내려다보고 있던 지동화는 의자에서 일어나 털썩 자리에 앉았다.
유리에 고개를 기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앉아서 말없이, 소리도 없이 유리를 슥 훑어본다.
심바는 발로 유리를 톡톡 쳤다.
이건 뭐길래 지금 당장 달려가고 싶은 자신을 막냐는 듯, 불만이 담긴 것 같았다.
지동화도 그에 맞춰 톡톡, 손끝으로 유리를 쳤다.
‘…엄청, 성장했네요.’
아무런 배경 음악도 깔리지 않은 화면. 목소리는 적막을 깨지 않고 그저 녹아들었다.
‘그땐 나름대로 데뷔 초였는데.’
자막으로 ‘지동화/현직 아이돌’이라는 문구가 스쳐 가듯 떠오르고, 작은 화면으로 지동화가 아픈 심바 옆에서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이 소리 없이 흘러갔다.
심바는 누였던 목을 들어 지동화와 눈을 맞췄다.
과연 짐승의 뇌로, 한 인간과 보냈던 3일이라는 시간은 무슨 가치가 있을까.
애초에 처음부터 자신에게 친밀하게 굴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동화의 눈에는 그런 의문이 조각조각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심바의 눈에는 그런 고민 따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한 생물체가 친밀하고 편안하게 느껴질 뿐인 것처럼 보였다.
‘모든 시간은 현재에 의존해 재구성되니, 과거가 동결된 형상이라는 말은 틀린 것 같습니다. 그러면 현재도 그렇겠네요.’
조용히 자막에 ‘???’가 있는 듯 없는 듯 떠올랐다.
‘심바 씨가 자란 현재도, 생동하는 과거처럼 보이네요.’
그러자 ‘죄송합니다, 교수님. 진도가 빨라요.’라는 문구가 화면 구석에 아주 작게 적혀 있었다.
그렇게 잠깐 자기만 알아먹는 소리를 중얼대던 지동화와 그걸 가만히 들으며 편안하게 누워 있는 심바.
지동화가 미소 지으며 유리창에 고개를 기댔다.
‘어차피 편집될 것 같은데, 조금 더 얘기해 볼까요?’
지동화가 분량을 학살하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심바는 우연처럼 ‘크릉’하는 소리를 냈고.
‘교수님, 쉬는 시간인데요?’
짤막한 자막이 흐르며 컷이 전환되고 말았다.
* * *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은 인지하기 어렵다.
하루는 해가 지고 뜨는 걸 보며 분명히 인지하지만, 한두 달이나 더 긴 일 년 정도의 시간은 ‘흐른다’라는 말보다는 ‘흘렀다’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어느새’, ‘정신 차리고 보니’ 같은 말들이 ‘일 년이 흘렀다’라는 말과 자주 쓰이는 걸 보면 그럴 듯싶다.
어떨 때는 특별한 계기 없이는 흘렀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때도 많다.
목화를 다시 보았을 때,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는지 깨달은 것처럼.
그래서 나는 눈앞의 심바 씨를 보며 시간이 흘렀음을 느낀다.
이 호랑이가 아직 새끼일 때 처음 만나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발톱을 갖게 된 지금 재회하며, 심바 씨 속에서 나의 시간을 깨닫는다.
“저는 잘 지냈습니다. 친구들과 더 친해졌거든요.”
톡톡, 심바 씨는 여전히 유리가 불만이라는 듯 발을 움직였다.
문득 이 유리가 거울처럼 느껴진다.
“팬분들도 저를 아껴 주시고, 제 노동의 결실이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몸이 이완되는 기분.
이제야 새삼 깨닫는 것이지만, 나는 동물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버지가 사육사였으면 자연스레 그 뒤를 따라갔을 거라는 확신도 슬며시 들었다.
“류이든이라고 개가 한 마리 있는데, 우리가 나름대로 성공했다며 기뻐하더라고요.”
심바 씨는 유리를 두드리는 걸 포기하고 다시 나른하게 누웠다.
“당신은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꽤 긴 시간을.”
현재에 와서 시간을 되돌아보면, 과거는 재구성되곤 한다.
우연이었던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내게 큰 영향을 미쳤던 사건은 과장하고, 그렇지 않은 건 축소하며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과거를 토대로 현재의 의미를 정한다. 그래서 과거도 현재도 실시간으로 생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비밀을 털어놓을 때, 심바 씨는 꽤 넓은 숲을 걸어 다니고 있었고, 내가 작업실에서 다음 타이틀곡을 작곡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 심바 씨는 한 뼘 더 자랐을 것이다.
시간 그 자체인 심바 씨 앞에서, 나는 부정적인 감정은 수용하고, 긍정적인 감정은 만끽하며, 한 인간으로서 걸어온 자취를 되밟아 갔다.
그리고 현재의 의미를 정한다.
“…행복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분에 겨울 정도로.
이렇게 말로 꺼내 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심바 씨는 어떤가요.”
띠링.
[도움을 드리자면, 심바 씨도 잘 지냈고 오랜만이라며 반갑게 인사하고 있습니다. 고작 3일의 기억이 강렬하게 각인되다니, 참 신묘한 일입니다.]…여기 애니멀 커뮤니케이팅 학과 전공자가 있었네.
[아쉽게도 철학과입니다.]* * *
한 시간, 멘탈 수업의 PD는 시계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들어갈까요?”
지동화라는 인간 덕분에 꽤 성공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PD는 그에게 휴식 시간을 선물로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하는 게 그에게 휴식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쉬이 답하지 못했다.
취미는 실뜨기라고 하는데 그건 시간을 죽이는 것에 가까워 휴식이라기엔 애매하고, 촬영이 끝나면 작업실에서 쉰다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또 다른 노동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러다 기어코 오늘과 같은 기획을 생각해 냈다.
미술관에서 의자에 앉아 거대한 검정색 캔버스를 가만히 바라볼 때 상념에 빠지듯이!
예전에 본 호랑이가 엄청 거대해진 걸 보며 숭고를 깨닫는!
원래는 자연 속에 있는 호랑이를 보는 게 계획이어서 틀어진 건 사실이지만, 인생을 복잡하게 사는 지동화라면 알아서 상념에 빠질 거라고 쉽게 추측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한 시간 동안 호랑이와 마주 앉아 있으라 하면 체벌이라 느낄지도 모르지만, 우리 동화 씨는 반쯤 미쳐 있어서 도리어 즐거워할 거라고 그는 확신했다.
“사육사님, 들어가 주시면 될 것 같아요. 밥 주는 것도 한번 촬영해야 하니까!”
“네!”
사육사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옆에 있던 FD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심박수, 완전 평온해요.”
“에이, 됐어! 오늘은 힐링! 다음에 조지면 되지!”
그리고 애초에 지동화 심박수가 기준을 넘어선 건 손에 꼽을 정도다.
“아무리 봐도 호랑이가 동화 씨 물 것 같지는 않은데, 아쉽다.”
“PD님, 그거 미친 짓이잖아요.”
“우리 프로그램이 언제 정상인 적이 있었나 싶다.”
당연히 PD가 진짜 미친 건 아니라서 가능하더라도 하지 않을 짓이긴 하지만.
잡담을 하다가 다시 도착한 문 앞.
노크를 하고 사육사님이 들어가는 걸 촬영하며 PD는 쾌활하게 웃었다.
아, 동화 씨가 기뻐하면서 우리 프로그램 계약 연장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 발자국 내디뎠을 때.
“쉿.”
방 안에서 작지만 날카로운 소리가 화살처럼 날아왔다.
“산군님 잠드셨습니다.”
유리창 앞 바닥에 앉아 등을 편히 기대고 있는 지동화와 그 유리창 너머 곤히 자고 있는 호랑이.
호랑이가 인간 옆에서 저렇게 잘 수가 있나, 순간 경악이 차올랐다.
아무리 뭣도 아닌 것처럼 여겨도, 다른 생물 곁에서 잔다는 건…….
“이야, 제가 볼 때 동화 씨는 사육사 체질인데, 아깝다.”
사육사님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PD는 평화로운 분위기에 만족했다.
“놀랍네요.”
“호랑이는 원래 사육사도 죽일 이유가 없어서 안 죽이는 거라 저렇게 곁에서 자는 건 흔한 일은 아니거든요.”
자기 목숨이 걸린 일인데 그렇게 쉽게 말해도 괜찮냐는 물음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참았다.
“교수님.”
“네, PD님.”
“솔직히 말해 주세요. 진짜 동물이랑 대화 가능하시죠?”
“…네, 가능합니다.”
목소리를 낮춘 지동화의 말에 PD도 따라서 소리 없이 웃었다.
아, 이 방송은 ‘지동화 교수’가 자기 이미지를 기괴하게 만들어 내는 게 제일 재밌는 것 같아.
PD는 지동화의 표정 곳곳에 묻어 있는 안정된 표정을 보며 그래도 제대로 된 휴식 시간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음, 평화롭고 훈훈한 기운.
“…다음에는 진짜 카수 마르주 어떤가요?”
“다음에는 저도 행동으로 옮길 겁니다.”
물론 그 훈훈한 시간은 3초도 가지 못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