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6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69화(237/343)
한 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심바 씨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심바 씨도 나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사이사이 기지생의 도움을 받아서 그 속내를 듣긴 했으나 안타깝게도 나는 호랑이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졸린 걸 억지로 참고 있습니다. 짐승이 인간보다 낫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가령 지금처럼, 심바 씨가 졸린 걸 알고 있는데 자도 괜찮다고 말하는 방법은 알지 못하니, 곤란하기 그지없다.
졸리다곤 하지만 내 눈엔 말똥한 눈으로 고개를 바짝 들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으니, 기지생이 아니었으면 알지도 못할 속내였다.
그게 조금은 감동스럽고, 또 기지생에겐 언제나처럼 감사가 앞서서 자연스레 입이 움직였다.
“…그러면, 자도 괜찮은데.”
그러다 지금 내가 얼마나 편안했는지 카메라 앞에서 육성으로 답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멍청한 실수라서 옅게 미소가 새어 나왔다.
[저는 읽을 줄은 알아도 전할 줄은 모릅니다!]‘원리가 뭐야, 뇌 내 전기 신호?’
[정확합니다! 호르몬 수치도 분석하곤 합니다.]호랑이 뇌에 관해선 책을 읽어 본 적도 없으니 나는 무지한 영역이다.
인간은 무지한 영역 앞에서 입을 열면 수치는 둘째 치고 올바른 공론장을 형성하는 걸 방해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흠.”
자도 괜찮다고 전해 주고 싶은데.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 대화하는 건 곤혹스럽다.
목화가 아주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돌봐 주셨고, 대화가 가능한 시점부터 내가 돌보기 시작한 거라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됐다.
“…심바 씨, 혹시 한국어 배울 생각 있나요?”
“크흥.”
“음, 그래요. 아쉽네요.”
[미친 것도 옮나 봅니다.]방송 컨셉이니 말조심해.
타인을 이해하려는 자세 없이 남을 광증이라고 규정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푸코가 ‘광기의 역사’에서 이미 지적한 바가 있다.
우선은 대화 능력만 없지, 내가 의사를 전달할 수만 있다면 소통도 가능할 심바 씨에게 자도 괜찮다고 전할 방법을 고심해 보자.
“…음.”
어린아이는 무의식적으로 부모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경향이 있다.
목화에게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 무언가를 어지른 다음 목화를 앞에 두고 어지른 것의 절반만 치우고 가만히 바라보기도 했으니까.
특정 행위를 같이 한다는 안정감이 아동에게는 소중하다는 걸 열 살 무렵 책을 통해 읽은 결과였다.
그럼 호랑이한테도 통할까.
[동료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니 얼추 통하지 않을까요?]‘그래?’
나는 곧바로 심바 씨 쪽을 바라보며 몸을 누였다.
바닥이 청결한지는 모르겠지만, 품위보다 중요한 걸 앞에 두곤 달리 거슬리지도 않았다.
내 얼굴이 내려가는 대로 심바 씨도 들고 있던 고개를 내려 두 팔에 얼굴을 괬다. 자려는 것 같진 않고 그냥 눈이 잘 보이는 곳까지 고개를 내린 듯싶다.
눈을 깜빡인다. 속도를 천천히 늦추면서.
심바는 느긋하게 하품을 한 번 한다. 나는 이내 눈을 편하게 감았다.
숨을 고르게 내쉬었다 들이켰다. 어두워지고 나니 눈꺼풀 너머에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정확히 180초를 세었을 때 눈을 떴다. 곤히 잠든 심바 씨의 얼굴.
세상에, 엄청 귀여워. 이 세계의 모든 생물 중, 유아기를 지나서도 귀엽다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다.
귀여움은 본디 유아가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자연 선택된 특성이다.
그런데 제 한 몸은 지킬 수 있는 성체 호랑이가 귀엽다니, 공포감을 선택하는 게 훨씬 합리적인데도, 이렇게나 귀엽다니.
호랑이라는 종의 진화 방향성이 변한 건 아닐까. 유전자 단위에 귀여움이 각인된 게 아니라면 이런 생물체가 존재할 수가 없다.
어쩌면 귀여움에 관한 이론 자체가 틀려먹은 건 아닐까.
망할, 오늘 또 한 번 심바 씨로 인해 지식 체계가 재수립된다.
나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에 잠시 몸을 일으켰, 다가 곧바로 눈을 뜨는 심바 씨와 눈이 마주쳐 굳고 말았다.
야생의 감각, 이 얼마나 올바르게 자란 산군이란 말인가.
이렇게 귀여운 생김새로 온 산의 생물체를 호령하다니, 자연의 신비 그 자체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헛소리를 중얼거리다가 멋쩍게 웃었다.
심바 씨가 유리창을 톡톡 쳤다. 나는 건강 생각에 차마 다시 눕지 못하고 조금 느슨하게 몸을 기댔다.
그러자 잠시 고개를 발에 파묻은 심바 씨가 한참 나를 주시하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망할, 귀여워.”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줄도 모르고 잠든 심바 씨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 * *
그리고 막 한 시간이 지날 무렵, 드디어 현실 감각을 되찾은 나는 직감했다.
…나 완전히 미친놈 아닌가.
가만히 호랑이를 바라보다가 자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서는 먼저 자는 척해서 안심을 유도했다니, 틀림없는, 확신의 미친 사람이잖아.
그리고 다시 눈이 들어오는 심바 씨의 자는 얼굴. 올바른 등가 교환이었다.
벌컥, 문이 열리며 소란스러운 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쉿.”
아마도 내가 지금껏 지은 표정 중에 가장 적개심에 가득 차 있지 않을까.
사육사님과 PD놈은 산군이 잠들었다는 경고에 뭐라 뭐라 짧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교수님.”
“네, PD님.”
또, 뭐. 내 성역에서 나가, 망할 PD놈.
“솔직히 말해 주세요. 진짜 동물이랑 대화 가능하시죠?”
그리고 기지생을 떠오르게 만드는 물음, 난 방송 컨셉에 맞춘 척하면서 진실만 입에 올렸다.
“…네, 가능합니다.”
물론 절반밖에 되지 않는 진실이지만.
그렇게 몇 번 평소처럼 농담을 주고받다가 심바 씨 밥을 챙겨 줘야 한다는 소리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생물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니, 제대로 챙겨야만 한다.
그런데 뒤에서 위협적인 사운드가 울렸다.
맹수의 울음소리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듣는 건 처음이라 신기했다.
나는 몸을 돌려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왜 그래, 심바 씨.”
심바 씨의 동공은 맹렬한 기세로, PD놈 쪽을 뚫을 듯이 쏘아보고 있었다. 아, 귀엽다.
“함께 밥 먹으러 가는 겁니다.”
[안 전해진다니까요?]귀여운 생물에게 불가능한 건 없어, 기지생.
[…지능이 채하민 수준으로 떨어지시면 안 됩니다.]내가 말을 걸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심바 씨가 위협하던 몸을 풀고 내 쪽을 바라봤다. 젠장, 귀여워.
[동료 의식이네요. 축하드립니다. 호랑이에게 짐승으로 인정받았어요.]귀여운 생물이 거짓을 말할 리 없으므로 내 종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사실이 틀렸나 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명제지만, 인간은 자신이 원하면 멋대로 명제의 진리치를 바꿔 받아들일 수 있는 법이다.
“와, 어쩌죠. 동화 씨. 저 방금 약간 졸도할 뻔했어요.”
“이 귀여운 애를 두고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귀엽다고요?”
팔이 저린지 손으로 주무르면서 PD놈이 되묻는다.
“네, 어렸을 적 제 동생과 비슷한 수준으로 귀여운 생물입니다.”
“…동화 씨는 미감이 틀려 처먹으셨어요. 객관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릴.”
“고대 그리스인이 좋아할 소리네요.”
비례나 조화 같은 걸로 모든 미적인 정서를 재단하려는 순간 미학(美學)이 성립할 수 없다는 걸 왜 모르는 걸까.
심바 씨가 말없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앉았다.
하, 똑같은 생각을 몇 초 간격으로 동일하게 반복하다니. 머릿속 도서관이 어떤 꼴일지 안 봐도 눈에 선하다.
대충 중앙 정부가 마비된 사회의 단편적 모습을 담고 있지 않을까. 이성이 일하지 않는 인간은 이렇게 되고 만다.
심바 씨와 잠시 헤어지고 차에 타서 심바 씨에게 직접 밥을 건네줬다. 확실히 잘 먹고 있는지 양이 튼실하다.
“양이 엄청나네요.”
“네, 그런데 이상하네요. 교수님이랑 오늘 처음 보는 게 분명한데 이렇게 넙죽 받아먹다니.”
“…그 컨셉 아직 유지 중이신가요?”
“처음 뵀을 때 잘 못 살려서 노력 중이랍니다.”
“원래 처음 보는 분이 밥을 주면 ‘지금 네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밥을 먹으라니, 나한테 그게 가당키나 할 것 같아?’라는 얼굴로 무시하고 가거든요.”
“역시 교수님은 하이디였네요.”
“제 부전공이라 이렇게 말하긴 좀 뭣하지만, 그거 유사 과학이라는 게 정설입니다.”
“흐하하, 그야 당연하죠. 아마도 동화 씨가 동물한테 엄청 무해하고, 안전하게 느껴지나 봐요. 사소한 행동이 공격성의 신호가 되기도 하는데, 동화 씨는 보면 습관적으로 그런 걸 안 하시더라고요. 분위기도 위압적인 게 없고.”
동물이라 밀어낼 이유가 없으니 방어 기제도 작동하지 않나 봅니다.
나는 집게로 고기를 한 덩이 더 집어 심바 씨에게 건넸다.
차 앞에 얌전히 앉아 입만 벌리고 받아먹는 심바 씨의 모습을 통해 복스럽다는 단어가 존재하는 이유가 명확해졌다.
“…진짜 잘 먹네요.”
내가 초등학생 때 단 한 번도 가 본 적 없던 생태체험관 같은 데 가면 지을 법한 미소를 짓고 있겠단 생각도 들었지만, 알 게 뭐람.
“얘는 잘 안 먹으면 사람을 먹어서요.”
“그야 동물이니까요.”
동물이 문제를 일으키면 거의 100%의 확률로 인간 잘못이다.
왜냐하면 잘못이라는 개념 자체가 동물에게는 성립하기 힘드니까.
도덕은 인간의 관념이고, 그걸 동물에게 씌운다면 인간 중심주의의 소산에 지나지 않는다.
“와, 이렇게 말하는데 겁도 안 먹으시다니. 역시 멘탈교육학과 교수님다우세요.”
나는 헛소리를 무시하고 다시 해맑게 웃으며 집게로 심바 씨의 입에 식사를 넣어 줬다.
* * *
숙소.
나는 털썩 쓰러지듯 소파에 주저앉았다.
분명, 방금까지 심바 씨에게 밥을 주고 있었는데. 어째서 정신을 차려보니 숙소일까.
시간 체험이 상대적이라는 근거를 경험적으로 알게 되다니.
온몸이 느슨해져서 일상을 부유하듯 유영하던 시간이 끝났다.
분명 심바 씨와의 인사, 인터뷰 촬영까지 모두 마쳤는데 아직 고개를 돌리면 심바 씨가 늠름하게 서 있을 것만 같다.
다섯 살 때, 나는 존재의 목적이 궁금했고, 아버지는 웃으며 ‘넌 어떤 것 같니’라며 반문했다.
그때 나는 하루 동안 고민한 끝에 ‘존재의 목적이 있다면, 그걸 충족하지 못하고 죽은 누군가는 존재할 가치도 없다는 소리처럼 들려서 반인륜적이다’라고 답했다.
아버지도 하루 동안 고민하시더니, ‘네 말도 틀리진 않은 것 같다.’라며 별말을 얹지 않으셨다. 훗날 알게 되지만, 아버지는 나완 생각이 다르셨다.
그러나, 약 이십 년 가까이 흐른 지금 답을 찾았다.
존재의 목적은, 심바다.
모두들 내 X튜브 영상을 통해 심바를 목도해야, 내가 반인륜적인 소리를 한 게 아니게 된다.
“동화 형, 왔다는 말도 안 하고 뭐 해.”
나는 습관적으로 나를 마중 나오는 류이든의 사진을 찍고 양적 완화용 사진을 비축했다.
“…계획 중.”
“뭘?”
“어떻게 해야 우리만큼 심바 씨가 유명해질지.”
“…무슨 개소린지 잘 모르겠는데, 어쩌지, 동화 형. 내가 살면서 너한테 이런 말을 할 날이 올 줄은.”
나는 얼굴을 구기는 류이든의 말을 흘려 넘기며 핸드폰을 열었다.
홍헌민 사육사님으로부터 사진 한 장이 전송되었다는 알림.
무의식적으로 누른다. 심바 씨가 유리창에 가까이 붙어 두 손에 고개를 파묻은 사진.
“이든.”
“어.”
“우린, 더 열심히 살아야 해.”
“…하민아! 여기 동화 형이 미친 소리 해! 제정신 아닌 것 같아!”
복잡한 머리가 완전히 씻겨 나간 느낌. 이국으로의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것만 같았다.
멤버들과 스케줄 외적으로 놀 때보다 훨씬 더 강렬하다.
채하민이 나오고 류이든이 무슨 일인지 설명하는 와중에, 나는 웃었다.
일상과 비일상, 그 경계에서 몽롱한 상태에선, 철학적 사고보다도 먼저 감정적 충만함이 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