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7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70화(238/343)
“오늘의 1위는…….”
“블로센스입니다!”
화약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화려한 컨페티가 눈앞을 가득 채운다.
류이든이 먼저 나서서 트로피와 마이크를 받는다. 주변의 다른 출연진들이 축하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축하와 기쁨이 날뛰는 시간.
이 순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현재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직 표독스러워지기 전이었던 우리의 이현재는 순한 얼굴로 순한 말을 입에 담았다.
“1위요?”
“응.”
“음…, 방송사마다 다르긴 한데요, 기본적으론 음원 인기, 팬분들 투표, 음반 판매, 소셜미디어 점수 정도로 구성될 거예요.”
“소셜미디어?”
다른 건 어떻게 정량화되는지 어느 정도 알겠는데, 저건 전혀 알 수가 없군.
“사실 그게 말이 많긴 해요. 정말 공정한 기준인지에 대한 여부도 있구. 어쨌든 기본적으론 X튜브에 올라오는 영상 조회수랑 좋아요 숫자 같은 걸 본다더라구요.”
“그럼, 1위를 구성하는 요소는 전부.”
“네, 본질은 팬분들이 노력해 주시는 거죠.”
…라는 대화를 연습실에서 한 적이 있었다.
대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빚을 지는 것일까. 나는 컨페티 한 장을 손에 잡으면서 생각했다.
원래 같은 사건이 반복되면 익숙해지고 그때 느껴지는 감정도 건조해지는 법인데, 그런 얘기를 들은 후부터는 기쁨보단 감사를 느끼며 그것은 언제나 생생했다.
기쁨과 달리 감사는 메마르기 힘든 감정이니까.
무대 조명이 빛을 발하면 그 아래는 어두워지지만, 공식 응원봉의 색깔은 선명히 반짝거렸다.
하나하나 눈에 담다 보면, 어느새 리더 놈의 소감이 끝이 난다. 그리고 앵콜 무대까지 그 반짝이는 빛에 시선을 빼앗기고 나면, 순식간에 곡이 끝나고 만다.
서양에서 빛은 고대부터 중세까지 진리이자 미(美), 그리고 선(善)을 의미했는데, 그 영향은 여기저기 남아 있다.
현대 문학에서 태양을 진리의 표상으로 사용하거나, 선한 인물을 그림으로 묘사할 때 반짝이를 칠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그러니 우리의 팬덤명이 루미너스인 건 정말 적절한 선택이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보답이 필요하다. 1위라는 영광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한 분들에 대한 보답이.
석준과 이현재가 카페에 가서 한산한 대기실. 난 소파에 가만히 앉아 깊게 고민했다.
“무슨 생각해, 동화야.”
채하민이 내게 물을 건네며 물었다.
“1위 공약.”
“어? 그거, 이미…….”
“그러게. 참신한 게 없어.”
채하민의 말을 끊고 껴드는 류이든, 고민이 깊어 보이는 자세였다.
“파트 바꾸기 했었고, 동물 귀도 했었고, 안무 영상도 다른 버전으로 올렸고! 다 뻔해! 예상 가능한 이야기는 더럽게 재미가 없어! 너도 지루했지, 동화 형!”
그리고 급발진. 정말, 미친 사람 같아.
“그러니! 우리는 우리만의 새로운 공약을 걸어야 한다고!”
저렇게 난리를 떠는 걸 보니 분명히 이미 생각해 둔 게 있다. 류이든은 하늘을 보며 선언했다.
“우리는, 1위를 하면 스카이다이빙을 한다.”
멱살을 부여잡았다. 반사 작용이었다.
“닥쳐.”
왜 자살 행위를 선택하지, 망할 개.
어째서 우리가 1위를 한 공약으로 죽을 확률이 있는 행위를 해야 하는데.
게다가,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우리 말고 1위를 할 사람이 없잖아. 실현 확률이 백 퍼센트라고.
“이미 팀장님과 매니지 팀장님한테 언질을 드려서 괜찮겠다는 확인을 받았지!”
“…뭐?”
손에 힘이 풀린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류이든이 빠져나갔다.
“하하! 내가 손이 좀 빠르지!”
내게 삿대질을 하며 승리의 미소를 입에 걸고 있는 개 놈. 아니, 개 같은 놈.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몸을 앉혔다. 다리를 꼬고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 노력하며, 찬찬히 사고한다.
저 개 놈이 어째서 스카이다이빙을 입에 올렸을까.
높은 확률로 내가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멤버 중 나를 제외하면 익스트림 스포츠에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은 없으니까.
거기에 류이든이라는 인간은 그룹의 일을 결정할 때 우리와의 상의 없이 진행할 인간이 아니다.
최소한 4인이 동의하지 않고는 회사에 의사를 전하는 경우가 없으므로.
“…이미 다 동의했지?”
나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과 합의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맞아! 너를 제외한 모두의 동의를 얻었지! 우리가 정한 규칙을 어기지 않기 위해!”
지독한 배신감.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다수결은 그 자체로 폭력에 불과하다.
다수결이 윤리적 정당성을 얻기 위한 필수적 절차가 배제되어 있으니, 이 그룹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난 형이 동화, 너한테도 허락받았다길래.”
눈치를 보던 채하민이 귓속말로 내부 고발을 진행했다. 심지어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거짓까지 입에 담다니.
“언질이면, 확정은 아니네.”
“응, 아무리 그래도 네 허락 없이 할 수는 없잖아.”
그건 위선이잖아, 망할 개. 이미 엿 먹일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했으면서.
“이유는.”
“스카이다이빙 하는 우리 모습을 팬분들이 좋아해 줄 거라는 통계에 기반한 거지!”
통계 같은 소리 하네, 네가 이현재도 아니고. 그런 부정확한 정보를 믿을 리가 없잖아.
그렇게 톡 쏘아붙이려던 때.
“맞아요.”
툭, 이현재가 한 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첨언 했다.
뒤에 쿠키 프라페를 들고 있는 석준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걸 보니,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상황을 파악했나 보다.
“제가 맨 처음 제안했거든요.”
말을 마치고 빨대를 한 번 쪽 빨아 먹는 이현재. 어쩐지 얄미워 보이는 모습이다.
“이든이 형은 자기가 동화 형의 분노를 모두 감내하겠다구 염병을 떨었지만.”
“현재야.”
류이든이 상처받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꼴 좋구나, 개.
“지난번에 몰래 팬카페에서 투표해 봤거든요. 1등이 스카이다이빙이었어요.”
“…투표?”
“네. 열 개 정도 생각해서 올렸는데, 그게 1등이더라구요? 저희들이 노는 모습이 오랜만에 보구 싶으신가 봐요. 감사한 일이죠.”
난 곧바로 소파에 몸을 누였다. 체념이 마음을 뒤덮었다.
그래, 죽을 만큼 싫지는 않으니까.
심각한 고소공포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리적으로 불가능한 영역도 아니니까.
만약에 구더기가 들어 있는 치즈를 먹으라고 했다면 팬분들의 뜻이라도 거절했겠지만, 스카이다이빙이 그 정도는 아니지.
이현재가 웃으며 류이든 쪽을 바라봤다. 류이든은 울상을 짓고 있었다.
“애초에 이렇게 말하면 동화 형은 알아서 설득된다구 했잖아요? 그런데 왜 멱살까지 잡히구 그래요, 형은.”
이현재의 일침. 류이든은 아까워 죽겠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게 재밌단 말이야!”
미친놈. 부디 닥쳐 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신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
“형은 존경스럽다가두 주기적으로 그러지 않을 사유를 제공해 주시네요. 정말 감사해요, 형.”
“요즘 내 인생 최고 낙이란 말이야!”
한껏 비꼬는 이현재와 여전히 미쳐 있는 류이든.
둘의 다툼을 배경 음악 삼아서 앉아 있는 나는 모든 걸 포기한 얼굴이지 않을까.
“…나 유럽 가서 해 봤는데 별로 안 무섭더라, 동화야.”
하민, 은근슬쩍 재력과 담력을 동시에 뽐내지 마.
“하하! 어쨌든! 동화 형이 스카이다이빙 할 땐 무조건 나랑 같이 비행기 타야 해!”
그딴 일로 신나 하지 마.
곧 있으면 라디오를 하러 가야 한다니 이 위태로운 정신으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 *
“사회인이라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완수해야 할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책무만이 강요된다면 사람은 버틸 수가 없겠죠. 오늘 이 시간은 모든 책무를 벗어던지고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형님, 멘트가 대본이랑 달라요.”
“제 도피성 망상이 반영됐습니다. 1위 공약으로 스카이다이빙이 확정 났거든요. 어쨌든, 이렇게 근본 없는 방송, 일단은 시작했습니다.”
“형님…….”
안타깝게 보지 마, 준. 나는 지금 모든 걸 수용한 상태니까.
“오늘 방송의 주제, ‘추억과 현재’입니다. 여러분들의 추억을 사연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이번에도 많은 분들이 보내주셨어요. 소중한 추억, 잘 간직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동화 형님이 말씀하시길,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것도 하나의 추억이 될 거라 믿으면 어떻게든 견딜 수 있다고 하셨죠.”
“…내가 언제?”
“언젠가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뛰신다면 그럴 겁니다, 형님.”
네가 하는 위로를 내가 했던 말처럼 전하지 말아 줄래.
“그러나 우리는 잊고 싶지만 뇌 속에 남아 있는 기억을 추억이라 부르지는 않으니, 그럴 일은 없겠네요. 어쨌든 고마워. 그럼 첫 번째 사연 소개해 드릴게요. 준.”
“네.”
석준은 웃으면서 사연지를 꺼내 들었다.
“노원구에 살고 있는 스물여섯 살 루미너스예요. 일단 사연은 보내 봤습니다! 지난주에, 첫사랑이었던 남자로부터 문자를 받았습니다.”
음.
“잘 지내? 짧은 문자에 마음이 뒤숭숭하더라고요.”
이 이야기, 네 목소리랑 정말 안 어울리네, 준.
“청춘을 함께한 사람이었는데, 상대가 유학을 가는 바람에 헤어졌거든요.”
“로맨스 소설 같네요.”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요.
“그런데 문제는, 현재 제게 다른 애인이 있다는 겁니다.”
저런, 사랑과 전쟁이었구나. 오해했네.
“현 남친이 모자라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요즘 나누는 문자 때문에 마음이 뒤숭숭합니다. 만약에 유학이 아니었더라면, 하고 생각하면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어요. 정신 차리게 따끔한 한 말씀 부탁드려요!”
이입하지 마, 준.
“아―, 슬픈 사랑 이야기네요.”
“따끔한 말씀을 부탁드린다, 라고 하신 걸 보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끔 설득해 달라는 뜻이겠죠?”
요즘, 이 방송에 깊은 내용의 사연이 자주 온다. 분명 아이돌이 진행하는 만큼 가볍고, 웃어넘길 만한 사연 위주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따끔한 말은 저는 잘 못 드리니, 부탁드립니다, 형님.”
하긴 석준은 따스한 말 전공이지.
“일단, 경제학적으로 설명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처음 피자 한 조각을 먹을 때와 마지막 한 조각을 먹을 때 만족감이 다르잖아요?”
“맞아요! 마지막 조각은 맛이 없습니다.”
“그것처럼 첫사랑의 만족감은 처음이라 가장 크지만, 그다음 연애 때는 그 효용이 줄어듭니다. 그래서 첫사랑이 눈에 자꾸 밟힐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 첫사랑이 없어서 전 잘 모르겠습니다.”
“너는 거북이가 첫사랑이잖아.”
“앗.”
“하지만, 지금 다시 만나시면, 절대 그때만큼의 효용을 낼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연애 때의 만족감은 다시 되찾을 수 없고, 도리어 그때와 비교해서 현재를 상대적으로 불행하게 느끼실지도 몰라요.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그때만큼 행복하지 않다는 감각을 한 번, 두 번 느끼시다 보면요.”
나는 말을 잠시 쉬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랑 이야기를 떠들고 있다 보면 경험의 영역을 이론으로 채우려고 하니 뇌가 아플 지경이다.
“이론적으로는 현재 남자친구분이 더 좋았다는 생각도 하실 수 있답니다. 사연자님 말씀대로 정말 좋은 사람이라면 특히요. 그러면 경제학적으로는 너무 비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동일한 남성이 아닐 때도 한계 효용 체감이 발생하는지는 난 모른다. 연애 경험 0회인 나니까.
다만, 비슷하게 좋은 사람이라면 한계 효용 체감이 일어날 만하다는 이론적 추측일 뿐이다.
“그러니, 저는 추천드립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쪽을 저는 조금 더 선호하니까요. 물론 선택은 사연자분의 몫이지만요.”
* * *
쉬는 시간.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무거운 사연의 비율이 조금 는 것 같아.”
“아마 형님 때문 아닐까요?”
“…글쎄.”
그럴 리가 없지. 그저 요즘 세상이 조금 더 각박해진 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