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7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73화(241/343)
“당연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투어 목록에 해외도 있더라. 와…, 동화야, 너는 잘 모를 수도 있는데, 투어라는 게 뭐냐면.”
채하민이 침대 위에서 방방 뛰며 소리쳤다. 그룹 내 유일하게 내 비밀을 알고 있는 인간이라 설명해 주려는 건 고맙지만.
“…알아, 하민.”
아무리 지난 가능성에서 아이돌에 관심이 없었어도 현업으로 한 지 꽤 됐는데 모를 리가 없잖아.
“그래? 그럼 뭘까. 음.”
침대에 등을 기대고 눕듯 앉아 노트북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나를 한참 응시하던 채하민이 박수를 한 번 짝 쳤다.
“아.”
“뭐.”
“얼마나 큰일인지 모르는 건가?”
“그것도 알아.”
투어를 목표로 하는 가수가 많다는 것도, 규모가 큰 공연장, 돔이나 스타디움 같은 곳에서 콘서트를 여는 게 꿈인 사람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우리도 블로센스 감사제같이 작은 공연은 했지만, 장해진 팀장님의 방침―콘서트나 투어를 시작할 거면 충분히 성장한 후에 해야 한다는 방침. 해외에서도 진행할 거라면 특히.―에 따라 나름대로 규모를 갖춘 투어는 진행하지 않았다.
요즘은 국내의 구매력보다 해외의 구매력이 더 큰 경우도 있어 국내에서 자리를 잡기도 전에 해외 공연을 하는 그룹도 있다곤 하는데, 일반적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러니 공식적으로 투어를 하겠다고 확정된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알겠다.
가만히 해설을 듣던 채하민이 다시 박수를 쳤다.
“…목표가 달랐던 거구나.”
노트북을 닫았다.
놀라운 마음에 절로 손이 움직였다.
세상에, 채하민이 이 정도의 추론 능력을.
“그러고 보니까 궁금하네. 동화, 너는 꿈이 뭐였어?”
“시간을 되돌리는 거였을걸.”
그리고 지금 네 눈앞에 있지, 목표 달성의 결과물이.
“그건 기지생 씨 꿈이잖아.”
어려운 문제네. ‘나’의 목표가 될 무언가를 미리 알고 있는 나는 ‘나’와 같은 존재냐는 거잖아.
동일자 간 대체가능성 규칙을 고려하면 비동일자로 보는 게 합리적이고, 인과적으로 볼 때, ‘내’가 내 삶에 개입하지 않는 한 나도 똑같이 ‘나’의 목표를 가지게 될 거라는 점을 고려하면…….
두 개의 시공간적 위치를 한 존재가 점유하는 게 거시적으로는…….
“그렇게 어려운 질문 아니야! 그냥 스물아홉 살 때 지동화의 목표가 뭐였냐고!”
채하민이 침대를 팡팡 치며 소리쳤다.
말로 하지도 않았는데, 여전히 잘도 눈치채는구나, 하민.
“…글쎄.”
노트북을 내려놓고 베개를 끌어안았다.
그때 나의 일과는, 전날 밤에 잤다면 아침 6시쯤 일어나서 글을 읽다가, 글을 쓰고, 읽을 게 남았다면 글을 읽으며 밤을 새우고, 그렇지 않으면 자는 날의 반복이었다.
어떤 목적이 있었다면.
“최대한 많은 걸 알고 싶었는데.”
진리가 있으면 그걸 알고 싶었고, 없다면 없다는 사실도 알고 싶었지.
다만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많아져서 역사나 철학과 함께 심리학을 들쑤시고 있었을 때였지.
심리 철학 관련 논문을 읽던 날 밤에 이리로 넘어온 게 기억이 난다.
[몇 주 지났으면 과학도 들쑤시기 시작했을 겁니다!]저런, 역시 학문의 세계는 더럽게 넓다. 학문 사이 교류가 없는 게 왜 문제인지 여실히 알 수 있어.
“와, 진짜 너 같아서 좀 그렇다.”
“웃으면서 모욕하지 말아 줄래.”
‘나 같음’이 뭔지도 우선 정의해 주고, 망할 토끼놈아.
“그랬구나. 생각할수록 힘들었겠다. 갑자기 연습생이 된 거잖아. 아버지가 강제로 자기 회사에 다니게 하는 거랑 비슷한 거네?”
그런 비유면 기지생이…….
[양아버지라 불러도 좋습니다.]닥쳐 줘.
“그래서 그랬구나…….”
“뭐가?”
“덜 기뻐 보여서. 우리 1위 했을 때랑 비슷한 정도이길래 뭔가 싶었거든. 좀 놀랐어.”
“남의 외양만 보고 기쁨의 정도를 알 수 있다니, 그게 더 놀라운데, 하민.”
“지금 사진 몇 장 주면 줄 세울 수도 있어.”
미친놈.
“너한텐 투어가, 팬분들 기대 충족시켜 주고 우리랑 함께 성공한 거라 기쁘다, 이 정도구나…….”
정말 미쳤구나. 내가 1위 할 때 그런 생각으로 기뻐하는 걸 알고 있었다는 건 소름까지 돋는걸.
아련한 눈으로 천장을 응시하는 채하민을 피해 나는 더 안쪽으로 들여 앉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 따라서 해외 여행을 자주 했거든?”
“어.”
그렇게 답하면서 한 번 더 거리를 벌렸다. 아직 눈치 못 챈 것 같아 다행이다.
“아버지가 바빠서, 나는 비서님이랑 같이 길거리를 돌아다닐 일이 많았단 말이야. 그때 어떤 크루가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어. 눈앞에서 단체로 춤을 추는데, 와…….”
환상을 보는 듯한 눈.
저 작은 머릿속에 무슨 그림이 펼쳐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중한 추억인가 보다.
“돌아와서 나도 어설프게 따라 추는데, 어머니가 엄청 칭찬해 주셨다? 진짜 못 췄는데, 캠코더로 촬영도 하시고. 그때 더 많은 사람이 나 보고 칭찬해 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던 거지.”
“그래서 아이돌?”
“응. 아버지가 근엄한 얼굴로 ‘뭐, 젊을 때니까 하고픈 거 우선 하고 있거라.’라고 하셔서 그게 무슨 소린지도 모르고 기획사 오디션에 쫄래쫄래 간 거지. 원래 어릴 때는 그게 얼마나 힘든지 모르고 꿈부터 꾸잖아? 엄마 손 잡고 첫 회사 구경하는데 돔 같은 데서 관객 꽉 채우고 춤추면 무슨 기분일까 엄청 설렜어.”
잠시 말을 멈춘 채하민의 낯이 어두워진다.
“근데 연습생이 되고 회사도 옮기고 하면서 듣는 게 많아지니까, 아, 데뷔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 그때 좀 슬펐어.”
어릴 적에는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구성되니까 그럴 만도 하다.
초등학생이 동네 지도를 그리면 자신의 집을 중심에 두는 것처럼, 자신이 중심이니 바라면 이뤄지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곤 한다.
그러나 바다에 익숙했다고 생각하던 한 어부의 배가 표류하거나 난파하는 것처럼, 친숙했던 세상이 낯설어지곤 한다.
불안해지고 의문스러워지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예정된 성장 혹은 혼란.
마치 내가 이 시간대로 처음 왔던 날과 같다. 그때는 정말 세상에 던져졌다는 기분이었지.
“근데! 지금 한 발짝 뗀 거거든!”
채하민이 침대를 이전보다 훨씬 더 격하게 쳐댔다. 매트리스의 스프링에서 끼익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토끼는 진동에 예민해서 멀리 떨어져도 발로 땅을 치는 걸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하던데, 틀린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숙소 근처 산에서 한 토끼가 ‘왜 불러’라며 화답하고 있겠지.
“더 크고! 더 성장해서! 돔 투어까지! 어렸을 때 꾸다 마음 한편에 밀어둔 꿈이! 막! 다가와! 막 심장이 뛰어!”
어쨌든, 채하민은 그런 혼란을 거치면서도 꿋꿋이 견뎠다.
다른 연습생 동료가 염병을 떨고 아버님과 갈등을 겪으며 눈앞에 아이돌 세계의 현실이 일렁이는데도 꾸역꾸역.
“그래서 너한테도 이 느낌을 막 전해 주고 싶단 말이지!”
두 손을 불끈 쥐고 있었다.
팀 단위로 연구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밝혀 낸 과학자의 눈을 하고 있었다. 어서 빨리 자신의 생각을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고 기쁨을 나누고 싶은 눈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는 그 연구팀 소속이 아닌 거지.
심지어 철학과 소속이라 하는 말에 반도 못 알아듣는 거야.
“나도 궁금하긴 해.”
어렸을 때부터 정해 뒀던 꿈에 한 발짝 다가선 기분은 어떤지.
“내가 꼭 알려 줄게. 이게 어떤 느낌인지. 그러니까 너도 이런 목표 좀 말해 줘, 동화야! 우리 둘이 손 맞잡고 미친 듯이 뛰어야 해!”
고마운 마음이다. 채하민답기도 하고.
하지만 애초부터 틀려먹었다.
현재 내 삶의 최종 목표는 기지생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선물하는 거라서, 목표를 이뤘을 때는 내 곁에 채하민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그게 꼭 중요할까.”
어쩌면 계획에서 벗어난 삶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너를 비롯한 다른 멤버들과 한 그룹으로 묶인 날이나, 곧 다가올 그날처럼.
* * *
‘All mine’이 수록된 우리 앨범의 초동이 최근 아이돌들과 비교해서 어떻니 하는 이야기가 나올 무렵, 나는 목화와 마주 앉았다.
예정된 라디오가 시작하기 전 회사끼리 조율해서 마련해 준 저녁 시간.
어렸을 때부터 꿨던 꿈을 이룬 게 아니라 늙었을 때 꿀 꿈을 이뤄서 얻어낸, 계획에서 벗어난 삶의 의미.
어머니를 닮은 동생의 얼굴이 성숙해진 건, 그대로 살았다면 가까이서 보지 못했을 풍경이다.
채하민이 말한 것같이 터질 듯하고 벅찬 요동은 없어도 은은하고 잔잔한 감동이 있다.
게다가 이런 레스토랑에서 마주하다니, 자본주의 사회의 참맛이잖아.
“형, 요즘 아주 잘나가더라.”
“너도 그렇잖아.”
“에이, 대형이라 그렇지. 형만 할까? 해결사무소도 챙겨 보고, 멘탈 수업도 챙겨 보고, 라디오도 가끔 듣는데도 아직 안 본 영상이 계속 나온다니까.”
“금칠 안 해도 용돈은 계속 줘.”
“난 형이 아직도 용돈 주는 게 참 그래. 이제 나도 정산받는데, 내가 줘야 하는 거 아냐?”
“첫 정산 선물로 내복 줬으면 됐지. 겨울에 따뜻하더라.”
“…형, 설마 그거 입었어?”
목화의 얼굴이 경악으로 가득 찼다.
“그러면.”
에피타이저로 나온 연어구이를 조금 썰어 입에 넣었다.
맛있네. 옆에 있는 표고버섯구이만 아니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아쉬워.
“형, 그거 디자인, 아니, 진짜?”
“어. 사진도 찍었는데.”
“절대 올리지 마. 그거 일부러 아저씨 같은 걸로 고른 거니까.”
“…그래?”
나는 목화가 준 내복을 떠올려 봤다. 몬드리안의 ‘빨강, 노랑, 파랑의 구성’을 본뜬 것 같은 디자인의 내복이었지.
그게 촌스러움인가. 지금 봐도 기하학적 추상은 세련된 감이 있는데.
“형은, 미적 감각이 좀, 문제가 있었나? 아닌데, 형 예술 작품 보면서 이래서 좋니 뭐니 했다며!”
확실히 20세기 초반에 유행을 탄 거니까 올드하긴 하지만.
“기하학적 추상도 그 미학은 있어, 목화. 또 유행을 지났어도 역사적 가치는 남고.”
목화가 입을 쩍 벌렸다.
아직 아무것도 씹지 않았다는 걸 그렇게 증명해 줘도 곤란하다. 식사하는데 자리에서 들썩거리다니.
목화도 아직 어리다. 식사 예절을 까먹을 정도라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요즘 누가 내복을 입어, 형!”
어쩐지 채하민 앞에서 입으려고 꺼내는 순간 당혹스러워하고 류이든이 내가 입은 걸 보자마자 ‘몸에 걸친 거 내다 버리면 안 될까, 동화 형?’이라고 하더니, 요즘은 내복을 입지 않는 게 트렌드인가 보다. 우리 아버지는 항상 즐겨 입으셨는데.
“다른 멤버도 그래서 사적으로만 입었어.”
“…그럼, 형은 선물받고 진짜 기뻤어? 이 동생놈, 한 대 때려 말아, 이 생각을 한 게 아니라?”
“폭력은 한 사람을 제외하곤 가해선 안 되는 거라.”
“난, 형의 센스를, 진짜 모르겠다…….”
목화가 자리에 팔을 늘어뜨렸다.
그사이 우리 테이블을 지나가던 웨이터분이 ‘전채를 아직 손도 안 대셨네, 혹시 연어를 못 드시나?’라는 표정으로 말을 걸지 말지 고심하는 게 보였다.
“우선 먹어, 목화.”
그에 포크를 들고 버섯과 연어를 한입에 집어넣었다.
깊은 한숨, 얕은 원망이 담긴 눈으로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안 돼.”
“뭐가.”
“내가 번 돈으로 준 선물 목록에 그런 게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네.”
애초에 놀릴 의도였다 하더라도 내가 눈치 못 채서 과거의 일이 되었으니, 틀려먹은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