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7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74화(242/343)
“판다는 육식 동물의 소화 체계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대나무를 주식으로 해 살아가는 생물이라고 합니다.”
“정말로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일상에 치여 그럴 수 없는 현대인과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판다는 하루에 평균 12kg의 대나무를 먹어 치우면서 살아갑니다. 대나무를 먹어서 얻는 영양가는 현저히 떨어지지만, 판다는 그저 최선을 다해서 먹을 뿐입니다.”
“하루가 억지로 대나무를 먹는 것처럼 고될지라도 최선을 다한 여러분들과 함께―, 일단 방송은 시작했습니다―.”
나와 석준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진한 씨와 목화가 당황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오늘의 게스트, 인기 아이돌 그룹이자, 제 별명을 ‘목화의 형’으로 만든 분이 속한 그룹, 호핀의 두 분입니다.”
청취자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목화는 곧바로 묻고 싶었던 질문을 입에 올렸다.
“오늘도 형이 쓴 건가요?”
“오늘은 준이랑 같이 썼어. 여러분, 준이가 어제 처음으로 책을 돈 주고 사 읽었습니다.”
“동물 백과사전입니다.”
“참고로 인터넷 서점에선 초등 저학년용으로 분류해 뒀더라고요. 남들이 정한 기준에 맞춰 살지 않는 용기를 보여 준 준이를 응원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게스트분들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처음 뵀던 게 언제였죠?”
“제가 태어날 때부터죠.”
웃으며 말하는 목화.
그래, 내 질문이 모호했다는 걸 인정한다. 진한 씨가 어벙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받았다.
“저는 저희 쇼케이스 때 선배님이 오셔서 동화 선배 먼저 뵙고, 석준 선배는 나중에 저희가 인사드리러 갈 때 뵀어요. 두 분 용안이 반짝거려서, 저는 감동했습니다!”
“사실―, 저보다는 동화 형님이 호핀분들이랑 친하죠?”
“네! 저희 곡을 써 주시기도 하니까요. 세 곡이나 주셨거든요. 저희가 성공하는 데 일등 공신이고, 또 선배로서 조언도 해 주시는 분이거든요!”
“형님, 예상대로네요.”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턴가 게스트가 나오면 대본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은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에 우리 얼굴을 금칠하는 것이 통과의례라도 되는 듯 관습화됐다.
겸연쩍고 부끄러운 건 둘째 치더라도, 본디 게스트가 왔다면 게스트가 빛나야 하는 법인데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네, 게스트분들이 여기 오시면 항상 저흴 칭찬해 주시는 게 관례처럼 굳어졌으나, 이 근본 없는 방송은 늘 악습을 타파하려 노력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이스 브레이킹 때는 저희만 두 분을 칭찬하고, 두 분은 아주 약간의 사족만 달 수 있답니다.”
“…네?”
“참고로, 아무리 부끄러워도,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 주셔야 해요.”
“코너 남발해도 괜찮아요?”
목화가 조심스레 물었다.
“네. 원래 이런 방송이거든요.”
예전에는 ‘동화&준과 함께하는 상사 욕하기 코너’도 있었다.
실시간 반응이 전체 이용가가 아닐 정도로 격앙되는 감이 있어서 1회로 종료했다.
“저희는 두 분의 개인 직캠과 예능 출연 영상 및 개인 라이브까지 모두 분석해서 칭찬거리를 한껏 들고 왔죠.”
“어젯밤에 동화 형님 작업실에 가서 밤을 새우며 준비한 칭찬! 그 목록은 이렇게 깁니다!”
석준이 자랑스레 품 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두루마리로 두 개!”
“A4용지로 환산하면 10장 분량.”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10장가량의 칭찬을 가만히 앉아 듣고 있는 것도 힘들지만, 그걸 당연하다는 듯이 거만하게 받아들이는 건 더 어렵다.
한국 사회에 일반화된 대화의 격률을 이용한 게임.
“두 분은, 더는 듣고 싶지 않을 때 포기를 선언해 주시면 됩니다―. 더 오래 버티신 분이 승리예요.”
이렇게 악독한 게임이라니, 예상외겠지만 내가 생각한 게임이다. 당해 봐라, 게스트놈들.
* * *
“목화 씨는 턱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아름답습니다.”
“특히 춤출 때 조금 비틀리면 움푹 파이면서 골이 생기는데, 팬분들은 거기에 커피를 따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월요일도 즐거울 거라고 하시던데요. 사실일까요?”
“…네, 당연하죠. 제가 목선이 예쁘기로 방송국에 소문이 자자하거든요.”
이를 악물고 말하면서도 일부러 카메라에 목선을 자랑하듯 고개를 드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네.
“복근이 또 유명합니다―. 격한 안무를 소화한 후에 일부러 상의를 들어― 땀을 닦는 경우가 포착되었습니다. 동료분께 여쭤보니 연습실에선 옷 젖는다고 절대 그러지 않으신다고 하던데―, 사실일까요.”
“…목화야, 사실대로 말해 줘.”
나는 안타깝게 목화를 바라봤다. 류이든이나 할 법한 짓을, 우리 동생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는 동종 직업 종사자로서 십분 이해하지만, 동시에 형인 입장으로서는 가슴이 아리다.
나와 눈을 마주친 목화가 몸에 힘이 풀렸는지 털썩 의자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만, 그만 들을게요! 죽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워요!”
“하하, 제가 더 오래 버텼네요. 승리!”
“디키 형, 조용히 해. 애초에 내가 너무 불리하잖아. 가족 앞에서 저런 얘기 들으면!”
아이스 브레이킹치고는 좀 길었지만, 게스트의 매력 포인트를 소개하면서 부끄러움을 가르칠 수 있다니, 제작진분들이 마음에 들어 하면 정규 코너로 넣고 싶다.
“우승 상품은 뭐예요?”
방송을 할 때 진한 씨는 늘 이렇게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구나.
기대에 부풀어서 어떤 선물을 받을지 설레하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아이 같은 표정이라니. 본성을 알고 있다 보니 그닥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어쨌든 게임은 게임이며, 뭐든 상품이 주어져야 하는 법.
“우승 상품은 놀랍게도 저희 앨범입니다.”
“저희 둘 사인도― 들어 있습니다.”
석준이 건넨 CD.
혹시 섭섭하지 말라고 A 버전과 B 버전을 하나씩 준비했으니 목화에게도 나눠 주지 않을까 싶다.
“와아아아아…, 너무 좋아요…….”
“고작 이걸 얻으려고 꾸역꾸역 버틴 게 아니라는 표정, 정말 달콤했습니다.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할까요? 다음은 또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코너.”
“그, 진짜 괜찮은 거 맞아, 형?”
“응, 원래 이런 프로라.”
코너라는 게 살아남으면 좋고 아니면 그만이다.
즉, 자연선택에 가까운 거니 우선 아무렇게나 막 지르다 보면 살아남는 코너 한두 개는 나오는 법이다.
마치 과학 이론처럼 살아남는 게 정설이 되듯이.
“여러 시청자분의 안타까운 흑역사를 듣고, 두 분이 위로 차원에서 즉흥 세레나데를 불러 주시면 됩니다. 다만 가사는 제비뽑기로 뽑을 예정입니다.”
“참고로 사연을 보내 주신 분은 전화 연결을 통해―, 목소리 출연을 하게 된다는 점, 잊지 말아 주세요.”
“자신의 흑역사를 본인의 입으로 말하고, 위로가 되는지 아닌지 애매한 세레나데를 듣는 시간. 지금부터 ‘이게 좋은 건지 긴가민가해요.’ 코너를 시작하겠습니다.”
참고로 이것도 내가 제안했다.
* * *
게스트가 오는 날은 마음껏 실험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사연 방송을 하면 새로 코너를 만들기도 뭣하니까.
그 덕분에 정제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날것의 광기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을 위한 방송이 점차 완성되어 가고 있다.
이게 다, 석준 덕분이지. 우리 그룹 최고의 광기를 보유한 방송이라 저절로 그렇게 성장하는 중이다.
“…아무리 봐도 형이 더 미친 것 같은데.”
“아무 데서나 옷 벗고 다니지 마, 목화. 감기 걸린다.”
이현재에 따르면 ‘끼 부리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던데, 그러는 것도 좋지만 자나 깨나 건강 걱정이 먼저 드는 늙은 할머니 같은 내 심정을 무시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아! 아아! 이 라디오도 이상해. 형이 하는 방송은 왜 다 하나같이 뭔가 조금씩 나사가 풀려 있는 거야.”
“…PD님들이 나사가 조금씩 풀려 있어서.”
“그것보다 단순한 해답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 형?”
동일한 현상이 여러 곳에서 관측될 때, 동일한 조건이 존재했다면 그 조건을 원인으로 추정하는 건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논리적 오류를 내포할 확률이 높다.
암 발생 환자는 대부분 우유를 마셨겠지만, 그렇다고 우유가 암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
내가 그 우유다.
“우연히 그런 PD님들을 만난 셈이지.”
“형은 변명도 참, 그런 식으로, 하하.”
물론 진실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만, 때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도 있는 법이잖아.
“어쨌든, 재밌었어? 나오고 싶어 했잖아.”
“나오고 싶었던 건 형 프로그램이니까 얼굴 비추고 싶은 거였지만, 재밌긴 했어. 세레나데 가사는, 진짜 누가 쓴 건지 머릿속이 궁금해지더라.”
그건 작가님이란다. 그러니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좀 거둬 주겠니.
목화는 방송국에 있는 벤치에 앉아 다리를 휘적이며 나를 봤다.
어렸을 때부터 있던 습관인데 키가 자라는 바람에 다리가 왕복 운동을 하지 않고, 바닥에 턱턱 걸려서 괴상한 소리가 났다.
기분이 좋을 때면 늘 저런 식으로 발을 휘저었는데. 즐거웠나 보다.
“다행이다.”
“뭐가?”
나도 가만히 옆에 앉았다.
목화를 따라 다리를 휘저으려다 스스로 어떤 꼴일지 상상해 보니 구역질이 나서 그냥 다리를 꼬았다.
“지난번에 멘탈 수업 촬영장에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형 엄청 재밌어하는 게 보여서.”
“…대체, 뭐가.”
특히 전자는 정말, 아무리 동생이어도 참을 수 없는 오해인걸.
“처음에 형이 웬 아이돌인가 싶어서 쭉 지켜봤는데, 의외로 천직인가 봐, 형. 나는 당연히 형은 교수로 근무할 줄 알았어. 그런데 갑자기 아이돌이라니……. 어떻게 되려나, 형이 만족은 할까, 아이돌이 꿈인 사람도 데뷔하고 힘들어하던데 괜찮으려나, 그런 걱정이 좀 있었는데.”
목화는 내 경악을 못 본 체하며 쫑알쫑알 말을 이었다.
“지금은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다.”
“그래?”
“어. 뭐든 일단 행복하면 그만이니까.”
행복해 보이는구나. 다행이야.
“너는?”
“나?”
“응.”
“…글쎄, 요즘 인맥 쌓기에 환멸을 좀 느끼는 중?”
“나는 잘 모르는 분야네.”
그건 전문가가 따로 한 명 있어서.
“그런 거 있잖아. PD님 얼굴도 알아두고, 예능 나가면 선배님이랑도 친해져야 하고, 가끔 친구가 그리울 때가 있어.”
“…진한 씨한테 다 맡겨.”
“어?”
나는 저기 건너편에서 PD님과 웃으며 대화하고 있는 진한 씨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맥 관리에 저만한 인재가 또 있을까. 아마 속으로는 ‘성장 가능성 중간’이라고 선 긋고 있을 게 뻔하다.
“재능 있는 인간을 한계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로 굴리는 게 효율이 높으니까.”
“와, 그래서 형이 밤새워 가면서 작업하는 거구나.”
“그리고 너는 친구나 왕창 사귀면 돼.”
넓고 얕은 인맥보다 좁아도 깊은 친구가 더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상호 보조를 하면 되는 일이다.
목화는 가만히 핸드폰을 만지작대다가 웃었다.
“그럼 은구 씨랑 더 친해져야겠다.”
“은구 씨?”
“응. 사람이 좋더라고. 아무 계산도 없어 보여서 좋았어.”
은구 씨랑 목화가 친해질 예정이라…….
“기분이 오묘하네.”
“왜? 이 친구랑 무슨 일 있어? 형 엄청 존경하는 것 같던데.”
“아무것도.”
그러고 보면 내가 목화한테서 친구 얘기를 들은 적이 있던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