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75)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75화(243/343)
한 인간에게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지목화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마음속에 정해 둔 답이 있었다.
형 만나서 배에 주먹 한 방만 때리기.
자신과 깊게 알지 못했던 이들은 ‘형이 엄청 센가 봐.’라거나 ‘형이랑 사이가 별로구나!’라며, 웃곤 했다.
원래 형제 사이엔 다툼이 잦고, 보통 청소년기에는 형이 육체적으로 더 강하니까 생긴 오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건 실감되지 않았다. 어렸던 형이 직접 그 빈자리를 모두 채워 주려 노력했으니까.
밝고 쾌활한 아이, 어른들이 자기를 보며 안타깝다고 한 적은 있지만, 그걸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
그걸 떠올릴 때면, 지목화는 지동화와 자신이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를 깨닫곤 한다.
자신이 형이었으면 불행을 온몸으로 막을 수 있었을까.
노력하겠지만, 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게 보통 독기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형의 품을 떠나 만나게 된 새로운 부모님은, 조금 더 가까운 타인에 불과했다.
감사한 분들이며 평생 은혜를 갚으려 하겠지만,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아버지나 어머니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지목화는 그게 늘 죄송했다. 그의 머릿속 가족이라는 범주엔 한 사람밖에 없었으니까.
그렇게 생긴 인생의 유일한 목표.
형을 다시 만나고, 그 배에 주먹을 한 방 꽂아 넣기.
학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적었지만, 더 크고 나면 찾을 수 있겠지.
적어도 형이 서른이 되기 전엔 찾을 거라고, 지목화는 희망했다(놀랍게도 ‘지동화’는 공간에도 정을 주고 싶지 않아 이사를 밥 먹듯이 했고, 자주 들락거리던 ‘이현재’가 흥신소 직원이 뒷조사하는 걸 눈치채고 예쁘게 처리한 덕분에 그 꿈은 어느 가능성에선 이뤄지지 않았다.).
어쨌든 한 가지 목표를 세우자 모든 가치관이 새롭게 정리됐다.
성공을 위한 눈치와 적당한 거리로 쌓아둔 인맥, 그리고 형을 찾을 돈이 최상단을 차지했다. 그다음이 어렸을 적부터 꿈이었던 데뷔.
그렇게 차근차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던 지목화에게, 너무나 뜬금없이 목표를 달성하게 될 일이 생겼다.
“…벌써 3년.”
주먹질 한 번 하게 된 지, 벌써 3년. 침대에 드러누웠다.
갑자기 데뷔를 건 서바이벌에 출연해서 재회하다니, 수많은 재회 시나리오 중에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형은 자신과 재회하려고 아이돌이 됐다지만, 지목화는 믿지 않았다.
형이 미친 사람도 아니고 그냥 양부모님한테 찾아갔으면 그만인 일이다. 굳이 아이돌이 되고 나서 만난다는 괴상한 발상을 할 리가.
‘분명 뭘 숨기고 있어, 이 망할 형.’
3년 내내 의문스러워도 숨긴다면 숨길 이유가 있겠거니, 언젠가는 말해 주겠거니 생각하고 대놓고 묻지는 않았지만, 도저히 말해 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말해도 괜찮다는 뉘앙스로 계속 캐물었는데도!
시간이 흐르며, 가족 사이에도 비밀이 필요하다는 현대적 발상을 지목화는 그리 좋아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행복해 보이니 따져 물을 수도 없고, 망할. 궁금해 죽겠네.
끙끙 앓으며 침대 위를 뒹굴거리다가 너무 격한 몸놀림에 상반신이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머리가 바닥에 박으며 쾅, 큰 소리가 났음에도 궁금함이 더 격렬해질 뿐, 아파서 신음을 흘리지도 않았다.
“와! 뭐야!”
넘어지는 소리에 놀랐는지 김현진이 퍼뜩 방에 들어와서 물었다.
“형…, 뭐 해?”
침대에 저런 식으로 누울 거면 왜 산 거냐는 의문이 떠오르는 풍경. 김현진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
“누가 비밀을 말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 중.”
형이라는 인간이 동생이 들어왔으면 자세도 좀 바로 하고 그래야지, 누가 허리를 꺾은 채로 답을 해.
일단 대화가 시작됐으니 김현진도 침대에 앉았다.
저 형은 거꾸로 봐도 잘생겼네, 빡치게. 대체 저 앵글에서 어떻게 굴욕이 없지.
“비밀? 누가 뭐 숨겨? 혹시 연애?”
드디어 우리 그룹도 열애설 한번 나나! 공식적으로 형들 갈굴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그런 짓 안 해.”
“그럼?”
“우리 형.”
그래, 저 인간이 무슨 연애람. 김현진은 실소를 터뜨렸다.
우리 그룹에서 열애설이 날 만한 인간은 한 명도 없지. 눈앞에 거꾸로 매달린 인간은 연애할 시간에 춤출 인간이고, 나머지는 리더가 꽉 잡고 있으니까.
“그럼 그냥 물어보고 답 안 해 주면 싸우는 거지.”
“어?”
김현진의 말에 지목화가 퍼뜩 자세를 바로 했다.
“싸운다고?”
“응.”
“이 나이에?”
“에이, 원래 형제자매는 커도 싸우지.”
“…그게 보통이라고?”
“응! 형이 궁금해할 정도면 꽤 중요한 거 아냐? 그럼 알아낼 때까지 싸우는 거지, 뭐. 나도 동생이 나쁜 짓거리 하는 것 같아서 엄청 싸웠거든. 그때 걔 담배를 태웠다는 거야! 지금은 내 덕에 노담이지만.”
“그건 어떻게 싸우는 거야?”
김현진은 바로 표정이 썩었다.
뭐 그런 걸 물어. 말다툼하는 법을 배워야 할 정도로 멍청한 사람 아니잖아, 형.
“형이랑은 한 번도 싸워 본 적이 없거든. 다른 형제는 어떤가 싶어서.”
“…와우.”
김현진은 악동 같은 미소를 입에 올렸다.
이거, 재밌는 냄새가 난다.
“내가 도와줄게, 형.”
* * *
멘탈 수업 심바 씨 특별편이 공개된 날, 나는 눈앞에 있는 글을 읽었다.
[심바 씨](멘탈 수업 캡처)
심바 씨
댓글
―심바 씨
―심바 씨
―심바 씨
―혹시 여기 규칙이 심바 씨 말고는 글 못 쓰는 건가요?
└심바 씨
이건 약간, 광기가 섞인 글이고.
[지동화는 동물을 좋아한다]동족이라 그렇다.
(팬싸에서 고양이 귀 끼고 흥 추는.gif)
댓글
―동물농장 관리자인 줄 알았던 내 최애가 사실 동물이었던 건에 관하여.
└설레는데요.
―하… 지동화는 진짜… 어제 나온 모습이 실제 모습에 제일 가까울 거라 생각하니까 막 기분이 존나 묘해.
―차가운 얼굴이나 한국대 이미지 덕에 그런 지적인 거 위주로 부각되는데 그냥 동물한테 말 걸면서 순박하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라니 젠장.
└학교에서 말도 잘 안 하고 공부만 하는 전교 1등인데 토끼 사육장에 매일 아침 밥 주면서 뺨에 흙 묻히고 웃고 있는 거 몰래 발견한 심정
└비유 너무 내 심정 ㅋㅌㅋㅋㅋㅌㅋㅋㅋㅋ 그날로 짝사랑 시작될 듯
└얼굴이 지동화라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이건 수치스러운 글이며.
[어제의 수확](멘탈 수업 비하인드 컷 : 지동화와 심바 씨의 한 시간 축약본 영상 링크)
동화가 카메라 의식 1도 안 하는 거 처음 봄. 심지어 바닥에 앉는 것도 진짜 지친 상태 아니고서는 하지도 않는 애가 선뜻 바닥에 앉아서 유리창에 기댈 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희열이 있었다고.
댓글
―근데 신기하다. 호랑이가 원래 그렇게 기억력이 좋나…?
└w앱에 가끔 심바 씨랑 영상 통화했다고 자랑한 적 있음 ㅋㅋㅋㅌㅋㅋㅋㅋ
―어제부로 최애가 바뀌었습니다. 심바 씨로.
└ㅋㅌㅋㅋㅋㅌㅋ 팬덤명 정해!!!!! 굿즈 내놔 연구소!!! 뭐 하는데!!! 일 ㅈㄴ 못해!!! 내 지갑은 열려 있고 연구비 충당할 수 있잖아!!
└심바 씨 그르렁 소리 asmr 출시 기원합니다.
└동화랑 심바 씨 화보 출시 기원.
└하, 적금 깹니다…
―동화가 멤버들 동물로 취급하는 거 보면 또 정신을 잃음.
―pd님… 늘 동화 괴롭히시다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영상을 만드시면 제가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인터넷 발전에 감사하다. 심바 씨를 이렇게 단체로 주접을 떨 수 있다니, 덕질이 이렇게 재밌다 진짜.
이건 비밀을 들킨 기분이 드는 글이다.
심바 씨와 촬영한 멘탈 수업 영상이 공개됐다길래 검색했는데 [심바 씨]라는 제목에 끌리듯 들어갔다가 조금 봤더니 놀라운 것들로 가득했다.
우리 팬분들이 뭘 좋아하시는지 잘 알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수치스러움도 그만큼 큰 것 같다.
“와, 형, 이렇게 해맑은 웃음도 지을 줄 아셨구나!”
그리고 그때는 심바 씨에 미쳐서 알지 못했는데, 이놈이 놀리는 것도 정말 큰 문제네.
“나 이거 캡처해서 프로필 사진으로 해 둬야겠다.”
“…이든.”
“왜?”
“내가 어디까지 떨어지게 만들 셈인데.”
“음, 벽돌 말고 주먹으로 한 대 쳐 주면, 아, 이제 그만해야겠다, 싶을 것 같긴 하다.”
저런, 그러면 평생 멈출 일은 없겠네, 망할.
나는 일흔이 됐는데 여전히 놀리려 드는 류이든을 상상했다가 그것만으로도 진절머리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
그때 내 몸이 벽돌을 휘두를 수 있을 만큼 건강하기를.
그런 기도를 할 때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목화한테 문자가.
―형, 난 전쟁 준비를 끝냈어.
“…얘는 전부터 왜 이렇게.”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난번엔 김현진이 장난을 치는 바람에 오해한 거라고 하던데.
‘왜?’라는 짧은 문자를 보내자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전쟁이야. 만나기만 해.
세상에, 뭐지, 이건 진짜 무서운데.
나는 곧바로 류이든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얘, 왜 이럴까.”
“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류이든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보더라도 무언가 알아냈다는 제스처. 이건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이다.
눈이 마주치고, 류이든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내가 어떻게 알아.”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지 마.
“알아야지.”
“아니, 이건 너무해! 그래도 지난번엔 그럴 만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어떻게 알아!”
흠, 정말 뭘까.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었나.
우리 지난번 라디오 녹음할 때 굉장히 긍정적인 분위기로 헤어졌던 것 같은데.
내 모든 행적을 돌이켜 봐도 그럴 만한 일이 없으니 곤란했다.
혹시 내복 선물을 내가 진심으로 고마워해서 이러는 건가, 젠장, 내가 신세대 문화를 조금 더 잘 알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이유가 뭐야’라는 다섯 글자를 고심해서 작성하고 핸드폰을 덮자마자 반가운지 보기 싫은지 헷갈리는 낯이 불쑥 튀어나왔다.
“뭐 해요, 동화 씨?”
PD놈.
“오늘 여행 가는 날인데 웃어야죠! 참 동화 씨는 심바 씨 앞이 아니면 항상 그러시군요!”
자기도 신이 난다는 듯이 폴짝폴짝 뛰는 PD놈. 우리 멘탈 수업에서만 보는 비즈니스 관계잖습니까.
“안녕하십니까, PD님.”
“서운하게! 누가 보면 남인 줄 알겠어요.”
몇 명 제외하면 저한텐 전부 남입니다.
“오늘 여행 계획 세우면서 엄청 설렜어요. 제가 아이돌분들 리얼리티 제작하는 건 또 처음이기도 하고. 인연이 이어져서 정규 코너로 이어지면 좋겠다는 마음에 노력했답니다.”
“이번엔 진짜 먹이실 건가요?”
뭔지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것.
“불신이 이렇게 깊어서야.”
PD놈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제각기 흩어져서 짐을 챙기고 있던 멤버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여러분들! 오늘 여행의 컨셉은 휴양이랍니다.”
나는 류이든의 등을 툭툭 치며 ‘거짓말’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니 걱정 말고 저만 믿으세요.”
류이든이 알겠다며 고개를 아주 미약하게 끄덕이고는 웃으면서 PD님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우, 감사합니다. PD님! 오늘도 잘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