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7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76화(244/343)
“와아아으어으!”
채하민이 문자로 모두 표현할 수 없는 비명을 힘차게 질렀다.
얼굴에 두 손을 가져가 눈을 막아 보려 하지만, 자기 눈이 막혀 있다는 걸 깨닫곤 자리에 앉았다.
“이거, 너무! 너무 무서운! 으어, 입 벌리지 말아 주라! 내가 밥 줄게!”
“…이거 영상이야, 하민.”
상대방이 무언가를 알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네가 무섭든 말든 촬영된 대로 움직이고 있는 상어에게 대화를 걸어 봤자.
“동화야! 구해 줘!”
“아니, 영상이라니까, 하민.”
그저 VR 헤드를 벗으면 되는 거란다. 나도 쓰고 있어서 차마 내가 벗겨 줄 수는 없지만.
“상어가! 상어가!”
나는 그저 말없이 웃었다.
토끼 귀에 경을 읽어 준다고 갑자기 진리를 깨우칠 수는 없는 법이지.
동물에겐 동물만의 진리가 있을 텐데, 내가 너무 인간 중심적이었나 보다. 죄송합니다, 피셔.
* * *
사건의 발단은 조금 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PD놈의 믿을 수 없는 거짓말로 시작된 ‘휴양’.
“지난번에, 인터뷰로 위장하고 저희는 조사를 했답니다. 여러분들을 위한 완벽한 휴양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끄덕.
“동화 씨와 현재 씨는 조용한 곳에서 쉬고 싶다고 말해 주셨고, 나머지 세 분은 뭉뚱그려서 새로운 곳에 가서 놀고 싶다고 해 주셨어요. 서로 정반대인 요구라 참 곤란했지만, 해답을 찾아냈습니다.”
끄덕.
“우선 세 분의 의견을 따라 다양한 경험을 준비했어요. 미리 알려 드릴 순 없지만요.”
채하민이 환호하며 박수를 짝짝 소리가 나게끔 쳤다.
아직 촬영 중이 아닌데도 높은 텐션, 여행을 간다는 생각에 설렌 게 틀림없다.
“그런데 그러면 조용한 곳을 원하는 두 분의 요구를 들어드릴 수가 없잖아요.”
그냥 조용한 곳 두 군데를 일정에 추가하면 해결될 일을.
“그래서 이번 여행은 새로운 경험을 하시는 동안 목소리가 일정 데시벨을 넘어가시면 안 돼요. 공포의 집을 가든, 롤러코스터를 타든 목소리는 고요해야만 해요. ‘고요의 팻말’이라는 게 있는데, 그게 보이면 데시벨 중지! 그러니 기본적으로는 엄청 소리 지르면서 즐겨 주시면 됩니다!”
“…네?”
PD놈에게 말대꾸할 수 있는 인간이 나라서 나는 대표로 의문을 표했다.
그게 무슨 휴양이에요, 라는 표정을 확인한 PD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휴양을 만들어 드릴게요.”
무시가 습관이 되어 버렸네요, PD님.
“짐 다 챙기셨으면 차로 갈까요?”
뒤돌아서는 PD놈, 촬영이 컷 되는 사인을 보고 류이든이 아주 조용히, 내게만 들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분, 진짜 이상한 분인 것 같아.”
“내 프로그램 보면서 못 느꼈어?”
그게 더 신기한데, 이든.
“프로그램 기획은 무슨 의도인지 알겠는데, 말씀하실 때 눈이…….”
“뭔지 알아.”
무언가에 집착하는 과학자 같은 눈이라서.
“가자!”
그러나 무언갈 깨닫지 못했는지 채하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행복한 낯짝. 이 세상의 모든 걱정과 슬픔을 버린 인간의 초상.
아무리 봐도 채하민이 기대하고 있는 행복한 여행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느낌인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뭐, 큰일이야 있겠어? 하민이 정도면 공깃돌만 가져다줘도 잘 놀 것 같은데.”
“…그래.”
나와 류이든은 채하민의 낙천성을 믿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버스 앞에 도착하자, PD놈이 잠시 우리를 멈춰 세웠다.
“자, 여러분, 이 팻말이 보이시나요?”
스탭 한 분이 손에 큼직하게 ‘고요’라고 적힌 나무 팻말을 들었다. 글자가 궁서체로 적혀 있어서 진지해 보였다.
“이 팻말이 있을 땐 크게 소리 지르시거나 하면 안 돼요.”
버스 앞에 있는 카메라 옆에서 말하는 PD놈.
말하는 와중에 버스의 문이 열리는지 소리를 냈다. PD놈의 옆이라 자연스레 눈이 그쪽으로 쏠렸다.
“예를 들어.”
그리고 문이 완전히 열리자 한 사람이 뒤돌아 서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아치처럼 뒤집고 네 발로 짐승처럼 계단에서 우리를 째려보더니, 펄쩍, 그 상태로 땅을 딛고 우리 쪽으로 달려들었다.
공포 영화에서나 볼 법한 연출.
어떻게 저 상태로 달려드는지 모르겠지만, 고양잇과 생물의 관절 구조를 보는 것 같은 인상. 몸의 전반이 꼬여 있다는 느낌.
내 어깨까지 통증이 느껴진다고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채하민이 곧바로 소리를 지르며 넘어졌고, 류이든과 석준은 넘어지진 않았지만 소리를 지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이현재조차 놀랐는지 굵고 짧은 ‘으억’이라는 괴상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컨토션(Contortion, 서양 기예의 일종으로 인간 몸의 유연함을 극한으로 뽐내는 것)을 한 상태로 뒤로 넘어진 채하민 앞에 도달한 분이 허리를 꼬아 몸을 바로 하며 손을 흔들어 주셨다.
“…아, 안, 안 아프세요?”
습관적으로 따라서 손을 흔든 채하민이 경악한 표정 그대로 조심히 물었다.
“평소 팬이었어요.”
그러고는 다시 몸을 아치형으로 뒤집고는 네 발로 달려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시는 컨토셔니스트.
“으어어!”
채하민이 다시 화들짝 놀라며 앉은 상태로 재빨리 몸을 뒤로 물렸다.
이 망할 PD놈, 이럴 줄 알았다.
“이렇게 소리를 지르시면! 벌칙을 수행하셔야 합니다!”
그러자 한 스탭님이 손에 동물 귀를 네 개 들고 가져와서는 나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었다.
“다음 팻말을 통과할 때까지, 착용해 주세요.”
“아니, 와, 저분, 어떻게. 어, 어깨가! 180도!”
자기 관심사도 아닌데 태평했던 석준이 평소의 느긋함은 어디다 내다 버렸는지 손을 바르르 떨며 컨토셔니스트분이 떠난 쪽을 바라보며 소리 질렀다.
“전문가시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이게, 휴양이군요.”
내가 중얼거리자 PD놈이 활짝 웃었다.
“새로운 경험이죠! 저런 곡예는 보실 일이 거의 없잖아요?”
채하민의 입이 활짝 벌어진다. 치가 떨리는 배신감이 샘솟는 표정.
안타깝게도 저 PD의 실체를 눈앞에서 확인하며, ‘여행’이라는 말이 자신이 기대하던 그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고 말았나 보다.
그런 배신감을 즐기는지 PD놈이 활짝 웃으며 손짓으로 동물 귀를 가리켰다.
채하민은 동물 귀를 받아들면서도 ‘어떻게! 그런!’이라는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동화 씨까지 놀라는 건 역시 무리였나 봐요.”
“그러니까, 더 심한 걸로 하자니까. 동화 씨는 살인범이 갑자기 어깨를 잡아도 안 놀라고 왜 그러시냐며 물어볼 거야.”
“…폭탄이라도 터뜨렸어야 했나?”
“그럼 침착하게 대피하자고 소리치긴 했을 것도 같다.”
웅성웅성, 스태프분들이 단체로 속닥이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익숙한 얼굴들. 충격에 쓰러진 채하민을 앞에 두고 할 얘기로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다.
집단의 도덕성이 개인의 도덕성보다 떨어진다는 훌륭한 연구 사례다. 니부어, 당신은 옳았나 봅니다.
다른 멤버들은 혼이 쏙 빠진 얼굴로 동물 귀를 손에 받아들, 아니, 보아하니 류이든은 연기다.
“PD님, 믿었는데.”
앉은 채 토끼 귀를 쓰는 채하민. 공들여 지은 집이 다 무너져내린 비버 같다.
나는 채하민을 피해 류이든 쪽에 다가섰다. 흉측하게도 골든 리트리버의 귀 모양 머리띠를 쓰고 있었다.
“혹시 취향이야?”
류이든이 놀란 눈으로 나를 잠시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림상 너 혼자 안 놀라는 게 낫겠다 싶어서.”
“…그래.”
“그럼 여러분, 그 모습 그대로 우선 식사하러 가실까요? 걸어갈 예정이에요. 한 20분 정도. 아쉽게도 버스 진입 불가 맛집이라서요.”
상식적으로 큰길을 따라 근처까지는 태워다 줘야 정상인데, 그저 우리가 이 꼴로 인파를 뚫고 사진을 찍히며 수치스러워하길 원하는 거잖습니까.
“그리고 가는 길에 지압 길도 있다고 하니 휴양을 위해 체험해 보려고 합니다.”
음, 그래, 그건 좀 휴양스럽긴 하네. 아니, 요양인가.
* * *
마침내 도착한 식당.
익숙한 곳. 샤르데나식 음식을 판다고 해 놓고는 버섯구이를 내어 줄 법한 비주얼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도착할 때 채하민은 PD놈의 모든 농간에 당하며 머리뿐만 아니라 손발까지 토끼탈을 착용한 상태다.
차라리 몸도 주지, 통일되어 있지 않으니 더 수치스러워 보였다.
정말 자기가 동물인 줄 아는 사람 같아서, 좀.
“…PD님, 나쁘다.”
결국 흑화하고 만 채하민.
“동화가 말하기를, 원래 저런 분이시래.”
수치를 모르는 류이든은 채하민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려 같이 놀라줬다. 덕분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에서 한 발짝 멀어진 모습이었다.
석준과 이현재는 한 번 견뎌내며 머리띠 상태였다.
“저 사진 찍히는 소리 여러 번 들었어요.”
“동화 형님만, 치사합니다―.”
“어떻게 그 지압 판을 걷는데 한 번도 소리를…….”
나는 다시 식당으로 눈을 돌렸다. 여기, 고급 레스토랑이잖아.
예상되는 미래에 눈을 꼭 감으며 나는 문을 열었다.
“…와, 진짜 나쁘다.”
문을 열자마자 채하민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식당 안은 모두 정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레스토랑의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맞춰 격식 있게 식사하고 있었고, 중간에 가장 큰 테이블, 모든 사람이 쉽게 볼 수 있는 곳만 텅 비어 있었다.
“하민, 괜찮아.”
저 인간, 그래도 설마 끝까지 이 스탠스는 아닐 테니까.
아마도 밤이 될 때쯤에는 정말 휴양에 걸맞은 컨텐츠를 내놓겠지. 완급 조절을 할 줄 알고 있을 테니.
채하민은 작은 목소리의 내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용감한 한 걸음.
반쯤 토끼인 상태로 정장을 입은 사람들 틈바구니로 걸어 들어갔다.
“만약에 진짜 휴양 시간 안 주면, 난 진짜…….”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다가오는 웨이터. 지난번에 뵀던 분이다.
“다섯 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도 버섯을 내놓으면 PD놈 멱살을 잡을 예정이었지만, 식사는 멤버들의 식성을 정확하게 파악한 게 분명한 메뉴로 구성되어 있었다.
채하민 앞에 버섯을 곁들인 요리, 내 앞에 비너슈니첼이 올라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놀랍게도 채하민은 아까 전의 분노는 어디 갔는지 진짜 맛있다고 극찬을 하며 먹어댔다.
“식사 다 하셨으니, 동물 관련 벌칙은 모두 끝입니다!”
사람이 분노에 눈이 멀기 그 직전까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놀리려 노력하는 인간이다.
* * *
그리고 다시 이곳.
VR체험장에 들어서며, 아까 전의 그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선택한 건 석준의 강렬한 요청으로 ‘심해 잠수함’ 체험.
상하좌우로 움직이는 좌석에 앉아 VR을 통해 잠수함을 타고 점차 심해로 내려가는 환상을 경험하다, 갑자기 나타난 상어가 잠수함을 물고 흔드는 연출을 보곤 채하민이 깜짝 놀라며 소리 지른 것이다.
그 와중에 시야 한구석에 오징어 한 마리가 ‘고요’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넘실거리고 있는 것까지.
정말 이 쓸데없는 데에 돈을 얼마나 쓴 걸까.
이럴 때마다 우리가 성장했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고 말았다.
더 깊은 심해로 내려가며 발광하는 오징어의 빛무리, 아귀의 초롱불까지, 어둡기에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빛의 아름다움이 펼쳐지자, 채하민이 옆에서 자꾸 감탄을 터뜨렸다.
분명 아귀 중 한 마리의 몸에 고요가 적혀 있는 걸 못 봤나 보다.
나는 류이든을 본받아 채하민을 따라서 큰 소리로 감탄했다. 원래 수치는 나누면 절반이 되는 법이니까.
정말, 대단한 프로그램이야. 이번에는 또 무슨 벌칙을 주려고 난리를 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