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77)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77화(245/343)
채하민과 함께 벌칙을 수행하고 돌아오는 길.
VR 현장 중간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이현재가 보였다.
반쯤 방치되어 있지만 카메라맨분이 따라붙은 걸 보면 저기서 대기하는 것도 촬영하나 보다.
“혼자 뭐 해, 현재야? 다른 멤버들은?”
채하민이 퍼뜩 다가가 옆에 앉았다.
아마도 벌칙이겠지. 석준은 적어도 마지막 오징어의 빛무리를 보고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둘이 벌칙하러 가서요. 잠시 여기 있는 책자 읽구 있었어요.”
역시나, 준이는 질렀구나.
나도 이현재의 오른편에 앉으며 책을 들여다보니 심해어의 생태계를 설명한 글이었다.
“이거, 신기해요. 초롱아귀 종의 번식 방법이 나와 있거든요?”
“응.”
“수컷이 암컷 몸을 깨물면, 서서히 몸이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혈관을 공유하다 마치 한 덩어리처럼 변한대요. 의식까지 사라지면 정소만 남아서 암컷의 장기가 되어 버린다더라구요. 그럼 평생을 하나의 개체가 되어서 사는 거예요. 신기하죠?”
그런 얘기 하면서 너무 맑은 눈을 하고 있으니, 참 뭐라 말해 줘야 할지 모르겠어, 현재.
달에 토끼가 산다는 이야기를 하는 아이 같은 눈을 하고 그러면 당황스럽다고.
심해에서 번식 상대를 구하기 힘드니 한 상대와 오래 번식할 수 있기 위해서 그렇게 진화한 거겠지.
꺼림칙한 감이 있지만, 원래 자연계엔 인간의 눈에는 잔인해 보이는 일이 비일비재한 법이다.
“그럼, 평생 하나인 거구나.”
채하민이 감탄한다.
솔직히 질색할 줄 알았는데, 나와는 다른 감상이 있었나 보다.
“네. 맞아요, 하민이 형.”
“와…, 로맨틱하다.”
채하민의 입에서 터져 나온 짧은 말. 손을 기도하듯 모아 입술에 대며 감탄하고 있었다.
“네?”
“어?”
나와 이현재는 동시에 채하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라는 거야, 미친 토끼 새끼.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절로 그런 소리가 울리는 듯싶었다. 초롱 아귀 번식의 어디에서 낭만을 느껴야 하는 건데.
“평생의 사랑을 약속하고 완전히 하나가 되다니, 진짜 로맨틱하다, 그렇지?”
세상에, 너 뭔가 뒤틀렸어, 하민.
물고기 번식 방법을 보고 로맨틱하다고 말하는 건 특히.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동의를 구하는 채하민의 눈을 결국 피하고 말았다.
카메라 앞에서 차마 뒤틀려 있다고 답해 줄 용기가 내겐 없었다. 심지어 리얼리티 촬영이라 캐릭터 뒤에 숨는 것도 안 된다.
이현재가 몇 차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현재. 아무 눈치도 보지 말고 무너뜨려 줘.
그러나 이현재의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들은, 내 기대를 철저히 배신했다.
“…음, 로맨틱하긴 해요. 사랑 하나 때문에 완전히 몰락하다니 낭만주의적이에요. 그렇죠?”
그런 낭만이 정말 괜찮은 거 맞을까. 게다가 초롱 아귀의 번식법이?
이사야 벌린―『낭만주의의 뿌리』의 저자―이 조금 안타까워할 것 같은데.
하지만 나는 다시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칭찬을 요청하는 이현재의 눈도 결국 피하고 말았다.
카메라 앞에서 낭만주의가 무엇인지를 토론하는 건 적어도 아이돌 리얼리티에 어울리는 행보는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바닥재의 생김새나 살피고 있을 때, 채하민과 이현재의 시선이 뺨에 느껴진다.
노골적인 대답의 요청.
그러자 머릿속 프로세스가 작동한다. 아무리 저 PD놈이 미치광이여도 이런 장면을 쓸까.
실제로 심바 씨한테 혼잣말 중얼거리는 것의 8할은 잘려 나갔다. 멘탈 수업의 방송 목적에 알맞지 않아서.
안타깝게도 내가 무슨 대답을 해도 이걸 방송용으로 살려낼 자신이 없다.
하, 어차피 편집될 거.
“…너희들, 둘 다 뭔가 뒤틀렸어.”
결국, 뱉어 버렸다.
“어? 동화야! 이거 진짜 낭만적인 건데!”
채하민이 내 말에 화들짝 놀랐다.
솜씨 좋은 화가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라고 소리치는 사람의 표정을 묘사하면 저런 느낌일 것 같다.
이현재는 옆에서 입을 가리고 웃고 있다.
저러는 걸 보면, 이현재는 분명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동화가 낭만을 모르네, 그치, 현재야.”
“그러게요, 하민이 형. 동화 형이 설명해 주면 좋겠네요. 왜 아닌지.”
하, 현재.
낭만주의와 사랑의 정의 문제, 감각질 여부와 그 동일성의 문제, 인간중심적 해석의 위험 등.
차근차근 설명하는 동안 채하민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이고 이현재는 다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라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
망할, 이래서 입을 열어선 안 됐는데.
그리고 이 모든 꼴을 가만히 보고 있던 PD놈이 웃으며 조용히 끼어들었다.
“두 분은 문과 같고, 동화 씨는 이과 같아요.”
…세상에, 그런 소릴.
“저도 문과입니다.”
우리 아버지부터 시작된 철학과의 유지가 있는데, 무슨.
PD놈이 회심의 일격이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너무 논리적이라.”
내 표정을 보고 있던 채하민이 순간 입을 틀어막았다. 아주 미세한 변화지만 그새 알아챘나 보다.
“…혹시 어떻게 하면 제 심박수가 오르는지 연구하시나요?”
언제부터 문과가 비논리로 환원되는 말이었습니까.
갑자기 알 수 없는 갑갑함이 치밀어올랐다.
이건 대체…, 초롱 아귀한테 한글 가르치는 기분이야.
“네, 어젯밤 자기 전에 생각한 멘트예요. 좀 심장이 뛰시나요?”
저 인간이랑은 반드시 연을 끊을 거다.
“…부디, 전국 문과 여러분의 분노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진심을 눌러 담아 저주를 남기는 사이, 멀리서 두 인영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아, 세상에, 류이든이 반갑기는 처음인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류이든을 마중했다.
“어서 와.”
채하민도 아니고 내가 마중한다는 게 의외인지 류이든은 화들짝 놀랐다가, 이내 능숙하게 농을 쳤다.
“오, 뭐야. 내가 없으니까 또 뭐가 안 굴러갔구만?”
“어.”
“무슨 일이야! 딱 말해. 이 동생이 해결해 준다.”
류이든이 옷 소매를 걷는 시늉을 하며 자랑스레 소리쳤다. 반팔이라 걷을 것도 없으면서.
다만 저건 연습실이나 작업실에서 무언가 문제가 발생하면 항상 하는 소리다. 실제로 저 말을 하면 90%의 문제는 해결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PD님 좀 바꿔 줄 수 있을까.”
“아?”
“동생, 해결해 줘.”
PD놈이 내 농담에 꺄르르 웃었다.
다른 제작진분들도 익숙하다는 듯 화기애애한 분위기, 그저 류이든만 ‘와, 그런 말 해도 괜찮아?’라는 눈빛을 내게 건네고 있었다.
다행히도 멘탈 수업 촬영할 때는 자주 하는 말이야.
“동화 씨, 이거 비밀이긴 한데요.”
대화를 듣던 PD놈이 촬영 종료 사인과 함께 입을 열었다.
“문과 비하하실 거면 비밀로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여기 문과생만 둘이라서요.
“저, 니체로 가요.”
“네?”
정확히 들었는데도 반문하게 되는 소리.
차라리 니체 곁으로 간다는 소리였으면 좋겠다.
“정확히는 협업이긴 한데, 블로센스 리얼리티, 주에 1회. 저 혼자 하면 방송이 미쳐 돌아갈 것 같으시다고 기획2팀장님이 다른 PD님도 섭외하실 거라고 하더라고요. 이게 1회예요.”
“…세상에.”
“일종의 한솥밥인 거죠. 못 바꿔요. 한동안은 더. 멘탈 수업 2교시 끝나면 해방일 거라 생각했다면, 저 얕보셨습니다.”
거머리 같은 인간. 어쩌면 저게 초롱 아귀 수컷 같은 거 아닐까.
곧 우리 회사에 붙어서 녹아내리겠네. 채하민은 그거 보면서 낭만적이라고 염병 떨 테고.
“그럼 속마음 캠프로 가실까요? 이든 씨는 잠시 주의 사항 전달드려야 하니까 저한테 와 주세요.”
속마음 캠프, 그게 뭔진 잘 모르겠지만, 제 속마음, 감당 가능하시겠습니까.
* * *
류이든은 캠핑장에 들어서며 어깨를 두드렸다.
직접 저 PD님과 촬영한 건 처음인데, 지동화가 평소에 무슨 곤욕을 치렀을지 잘 알 수 있던 시간이었다.
‘아, 아까 동화가 짜증 최대치 찍었던 것 같은데, 옆에서 그걸 못 봤어.’
진절머리가 나 보였던 지동화로부터 시작한 사고의 흐름은 평소처럼 자연스레 멤버들에게로 이어진다.
오늘 하민이가 지쳐 보였는데, 괜찮을까. 준이는 게임기 멀쩡하니까 괜찮을 거고, 현재는… 요즘 항상 걱정되면서 대견해.
아까 전 상황도 ‘현재가 널 닮아가던데.’라는 지동화의 해설을 들어보면 장난기가 돌면서 시작된 일인가 보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멤버들끼리 캠핑장 같은 휴식 공간에 들어선 건 오랜만인 것 같다.
연습과 촬영 및 그 대기 시간을 제외하면 이동 시간이다 보니.
수면 시간은 많지 않지만, 가끔 모여서 밥은 먹을 수 있을 수준으로는 보장된 여가까지.
회사가 자신들을 개처럼 굴리려거든 할 수 있었을 텐데, 다행인 일이다.
물론 정말 그랬다면 자신은 둘째 치고 지동화가 진심으로 분노했겠지.
그게 더 무서워. 단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걔가 빡돌면 무슨 짓을 할지 감이 안 와.
그래, 늘 결론은 지동화에 대한 의문.
류이든은 PD님이 챙겨준 ‘방송 불가 판정’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한 그룹의 리더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사람, 류이든은 늘 자기 자신을 그렇게 정의했다.
그리고 리더는 흠 잡힐 일이 없어야 하는 사람, 류이든은 늘 그렇게 생각했다.
토할 것 같아도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맛이 없어도 식단을 관리하고, 피로해도 늘 웃고, 회사의 요청을 있는 그대로 실현하며, 연습실 분위기를 조성한다.
개인 혹은 유닛 단위 방송 출연이 많아지며 놓치는 게 있을까, 될 수 있으면 전부 모니터링하고, 실수한 건 없는지 소문을 듣고, 얼토당토않은 개소리가 들리면 마음속으로 가위표를 쳐 둔다.
모든 멤버의 스케줄을 외우고, 컨디션이 나쁘진 않은지 살핀다.
지동화와 채하민이 다투면 사석에서는 어떻게든 둘이 붙여 놓고―그러면 보통 해결된다―, 공부에 지친 이현재의 건강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힘든 석준의 옆에 달라붙어 감시한다.
석준이 사고를 칠 때는 보통 자신이 옆에 없을 때인 걸 보면, 지동화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석준을 조물딱 댈 수 있는 인간인 셈이다.
특히 지동화는 요주의 인물이다.
채하민이 비밀을 지켜 주긴 했지만 지동화 표정 특강을 열자고 했던 사람이 자신이기도 하고(그래서 류이든은 지동화가 자신을 내리치러 왔을 때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최근에 생긴 의문.
‘쟤, 안 기뻐.’
투어가 목표가 아니고, 어쩌면 아이돌이 목표가 아니었다.
지동화의 아이돌에 관한 지식을 고려했을 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지동화는 ‘최선을 다하고 떨어지자!’가 목표였다.
자신의 동생을 만나고 나서 ‘이 모든 것에 감사하다’라는 태도였지만, 그건 예상 못 한 횡재지 목표는 아닌 걸로 보였다.
그리고 예지몽 같은 소리 하기는, 자는 꼴을 못 봤는데.
지동화 성격에 자야만 미래를 보는 거면 주기적으로 자려고 난리를 쳤겠지, 그렇게 밤을 새울 리가.
낮에도 뭔갈 볼 수 있는 거거나, 이미 다 알고 있는 거거나, 아니면 누가 알려 주고 있는 거거나.
그러면 준이가 얘기한 기지생 씨는 누구일까. 최근에 하민이가 알게 된 건 무엇일까. 그걸 자신에게 밝히지 않을 이유는 무엇일까. 조금 슬픈걸.
류이든은 아무것도 표정에 드러내지 않은 채 그저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 너머로 조금은 복잡한 생각이 미칠 듯한 속도로 쏘다니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