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78)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78화(246/343)
류이든은 지동화라는 인간을 떠올릴 때마다 이상한 점을 발견하곤 했다.
그건 전적으로 지동화 덕분이었다.
가끔 허공을 보며 글을 읽는 듯한 움직임의 눈동자. 자는 척하면서도 인상을 조금 찌푸리는 얼굴.
밖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던 행동을 숙소에서는 조금씩 관찰할 수 있었다.
지동화는 ‘너는 자기 사람한테는 무르네.’라는 소리를 한 적 있지만 그건 지동화가 더 심하면 심하지, 덜하진 않다.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에서는 한껏 풀어져 있으니까.
‘우리 보고 동물이니 뭐니 해도, 쟤가 진짜 영역 생활 아닌가?’
심바라는 호랑이랑 어떻게 그리 친한가 싶었는데, 혹시 지동화, 영물 같은 거 아닐까.
한 천 년 산 호랑이라 심바도 어르신 대우해 주는 것 아닐까.
같잖은 생각을 하던 류이든은 짐을 마저 챙겨 들고 밖으로 나섰다. 여름밤인데도 시원한 공기였다.
캠핑장이라더니, 진짜 공기 하나는 끝내주는구나. 요양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곳이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류이든은 결론 지었다.
‘귀신이라도 보나 보지, 뭐.’
아이돌이 되지 못해 한을 품은 귀신의 한을 풀어주려고 자기 능력을 십분 활용하다가 해 보니 나쁘지 않다, 이런 스토리 아닐까.
즉, 기지생이라는 귀신이 와서 한을 풀어 달라니까, 작곡가였던 귀신 내림굿 해서 미래도 좀 들여다보며 열심히 살다 보니 동생이랑 재회도 하고, 팬분들이 아껴주시는 것도 좋고, 친구들도 생겼다!
…같은 무당의 휴먼 성공 스토리가 아닐까?
그렇게 보면 지동화에 대한 여러 의문은 물론이고, 예언이 형이랑 갑자기 난리를 친 것도 납득이 된다.
예언이 형한테 씐 귀신의 퇴마 정도 했던 거겠지.
실제로 지동화의 퇴마 이후에 예언이 형을 대하는 게 한결 편해졌다.
‘완전 헛소리네.’
류이든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삼 년을 고민해서 내린 결론치고 이렇게 조잡할 수가 있나.
그러나 류이든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본인이 말을 안 해 주는데 어떻게 알아.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홀로 고민하다 보면 이상한 걸 알아도 최면에 걸리듯이 믿게 되더라.
‘하아, 나이가 드나. 별게 다…….’
이상한 점을 묻지 않은 건 언젠가 말해 주겠거니 싶은 안일함 때문이었다.
그런데 채하민에게 말해 준 건 티가 나는데, 자신에겐 말해 줄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서러워, 믿고 의지하는 만큼 믿고 의지해 주길 바라는 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텐데.
누군가가 의지할 수 있는 인간이고 싶다.
자신이 리더로서 모든 멤버들에게 의지하듯 다른 멤버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류이든에게 지동화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가장 멘탈이 튼튼한 건 중요하지 않다. 걔는 먼저 힘들다고 말하지 않잖아.
캠핑 현장에 도착할 때 류이든은 미소를 한껏 끌어올렸다.
여기서부터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고 했지.
모든 제작진은 빠지고, 우리들끼리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시간. 드디어 제대로 된 휴양 시간이다.
“얘들아, 형 왔다!”
중앙에 캠프파이어가 큼직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밤에 보는 불은 참 아름답다.
멤버들은 이미 서로 일을 나눠서 하고 있었는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형, 빨리 와요. 저 고기 굽는 중.”
이현재가 바비큐 불판 앞에서 기분 좋은지 쾌활하게 손을 흔들었다.
옆에 있는 석준은 바나나를 구우며 헤실거리고 있었다.
위에 올린 버터를 보니 설탕이나 시나몬 가루 같은 것도 뿌릴 심산인가 보다. 저건 도저히 못 먹겠는데.
한편에선 지동화와 채하민이 채소를 씻고 있었다.
채하민이 지동화에게 손으로 물을 뿌리자, 지동화는 곧바로 호스를 들었다.
‘와, 반칙!’이라는 외침과 ‘과학의 힘이야.’라는 무심한 발언, 여기저기 날뛰는 물줄기.
그런데도 정작 채하민은 아슬아슬하게 피해 가는 걸 보면, 맞힐 생각이 아예 없었나 보다.
아, 즐겁다.
류이든은 잠시지만 모든 상념이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반년에 한 번씩만 이런 순간이 온다면 언제든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아.
류이든은 눈을 감고 숨을 다시 들이마셨다. 고기 굽는 향과 풀 내음을 만끽했다.
“뭐 해, 형.”
지동화가 상추 바구니를 들고, 가만히 풍경을 보고 있던 류이든에게 말을 걸었다.
와, 재벌집 자식이 농촌 체험하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싶다.
“그냥, 이 풍경만으로도 흥겨워서.”
지동화는 류이든을 따라 풍경을 한번 봤다.
“음, 자연이 아름답긴 해.”
아마 자신이 전하고 싶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겠지.
저 아름답다는 말에도 근거가 있을 거다. 조화니 비례니 뭐니 류이든은 잘 모르지만.
“야외 캠핑장에서 다 함께 모여 있잖아. 막 온몸에 힘이 나.”
“그럼 일해.”
“그렇게 사장님처럼 말하면 제가 서운해요, 형.”
류이든은 땅에 ‘방송 불가 판정’ 팻말을 꽂아 세웠다. 무슨 토템을 세우듯이.
지동화는 뭐냐는 듯이 팻말을 보다가, 아직 설명해 주지 않았는데도 무슨 용도인지 이해했는지 ‘아…….’ 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PD님이 챙겨준 팻말.
리더 특권으로 ‘이 부분은 없는 장면입니다.’를 표시할 수 있는 팻말이다.
PD님조차도 이 부분은 보지 않고 잘라낼 거라는 확답도 받았다.
“무슨 일 있어?”
“난 언제든 들을 준비 되어 있어, 형.”
“…어?”
‘내가 할 소릴 왜 네가 하고 있지, 이든.’이라는 표정이다.
지동화가 힘든지 아닌지 체크하려고 항상 노력한 보람이 있다.
“가족 사이잖아?”
“음, 무슨 소리야.”
네가 귀신을 본다고 해도 괜찮거든.
류이든은 생각했다. 지금처럼, 고개를 돌리는 척하면서 빠르게 글을 읽는 것 같은 동공을 해도 마찬가지다.
* * *
‘얘, 왜 이러는 걸까, 기지생.’
[당신도 알 것 같은데요?]음, 알 것 같긴 해.
“닦달하는 건 아니고, 알아만 줘.”
류이든은 웃으면서 거기까지만 말하고 팻말을 뽑아 들었다.
한쪽 어깨에 걸치고 내 손에 있던 상추 바구니를 들고 흥겹게 걸음을 옮겼다.
“얘들아! 밥 먹자!”
나는 그걸 보며 마저 채소를 씻으러 수돗가로 향했다.
[그냥 말하세요. 뭐 큰 비밀이라고.]기지생의 말도 일리는 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니지 않나.
내가 사실 시간을 넘어 너희들 곁에 왔다, 반갑다, 아이돌이 꿈은 아니었어도 너희들과 팬분들 덕에 즐겁다, 부디 정신질환으로 의심하지만 말아 줬으면 한다고 말하면 그만이지.
‘…이것보다 큰 비밀이 있을까, 기지생.’
[그걸 모든 사람에게 알리면 정신질환자로 지정되겠지만, 당신들 주변 사람 정도는 괜찮잖습니까.]그러나 모든 건 일상이 되었을 때가 문제다.
미래를 경험했다는 이야기는,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긴다.
지금은 비밀의 탈을 쓰고 있기에 채하민이 그런 주제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에 일상에 그 비밀이 스며든다면, 나도 조금은 궁금해질 것 같아. 혹시 리만 가설은 풀렸습니까, 그렇게 물어보겠지.
난 차마 멤버들에게 내가 본 ‘미래’가 어땠는지 전할 수 없다.
말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도 없다. 그렇게 물었을 때 침묵을 지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뻔하다.
그리고 만일 거짓을 고한다면 석준을 제외하면 모두 곧바로 눈치채겠지.
채하민이 아직까지 내게 ‘혹시 그때도 난 아이돌이었어? 혹시 콘서트도?’라고 물어보는 눈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네 동료가 된 사람이 네 다리를 부쉈고, 네 아버지는 그걸 기뻐하셨어.’라고 말하는 나의 모습은, 끔찍하다.
류이든에게 ‘데뷔를 포기하고 스스로 학대하면서 살고 있던데.’라고 말하거나, 석준에게 ‘그룹 내 따돌림으로 온몸에 멍이 있었지.’라고 말하는 건, 더욱더.
그걸 숨기기 위해 여러 거짓을 덧대거나 지독한 침묵을 유지하는 것보다, 그렇게 거슬리지 않는 단 하나의 비밀을 단 한 명과 공유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채하민이 내 비밀을 알게 된 순간, 뒷맛이 씁쓸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겠지.
언젠가 모든 걸 털어놓으면 개운할 줄 알았는데, 더 복잡해질 뿐이다.
[음, 당신이 인생을 참 복잡하게 산다는 사람들의 말이 뭔지 잘 알겠습니다. 철학 말고 과학을 조금 더 공부해 보세요. 복잡성보다 단순성이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드리겠습니다.]나는 기지생의 글을 읽으며 마지막 상추 한 장을 꼼꼼히 씻어냈다.
[단순한 이유가 있잖아요. 소외감 느끼기 싫으신 거죠. 채하민이 ‘아, 너랑 나는 목표가 달랐구나.’라고 말할 때 느끼신 것처럼. 그게 공공연해지기 싫으시잖아요. 채하민 한 명 정도는 괜찮을지 몰라도, 모든 멤버들이 안다면 견디기 힘들 것 같다고, 그렇게 추측하고 계시잖아요.]‘그만, 기지생.’
남이 복잡한 논리로 숨기려는 사실을 들춰내는 건, 이럴 때는 예의가 아니야.
[물론, 이런 이유도 충분히 복잡하게 사는 것 같긴 하네요. 행복한 인간이 소외감을 느끼는 건 참 아이러니합니다.]그러게. 지금도 분에 넘칠 정도인데.
[저는 언제나 당신의 행복을 바랄 뿐입니다. 그러니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뭘 선택하든 우리는 행복할 겁니다.]나는 미소 짓고 말았다.
마지막 상추를 바구니에 얹었다. 별생각 없이 상추를 씻다 보니 소여물 정도 되는 분량이 쌓여 있었다.
세상에, 채식하는 분도 버거워하겠는걸.
가슴 속에서 구물거리는 미세한 감정을 쥐어뜯었다. 감정은 남들에게 보여 줄 수 없는 한 시간을 좀먹는 벌레다.
* * *
테이블에 가자 류이든이 왜 이렇게 늦었냐며 그제야 젓가락을 들었다. 모두들 기다리고 있었나 보네, 미안하게.
모두들 이미 앉아 있는 테이블, 음, 심바 씨가 보고 싶은 기분이네.
“상추가 많아서.”
“…그래?”
류이든이 ‘응?’이라는 표정으로 상추 바구니를 받았다. 있는 걸 다 씻어 온 상태라 엄청난 높이였다.
“와, 동화야, 이거 어떻게 다 먹어.”
채하민이 하나를 들어서 입에 쏙 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렇게만 먹으면 다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민.
“힘내서 먹으면 가능해.”
“작업실에서 하는 말이네요, 형.”
나는 자리에 앉으며 웃었다. 그러자 본격적으로 식사가 시작되었다.
고기와 고기뿐인 식탁. 정말, 이게 뭔가 싶다.
“맞다. 여기 팻말 보이지? 카메라 눈치 안 보고 아무 말이든 막 해도 돼. 내가 알아서 컷할 거니까.”
“그래두 돼요?”
류이든이 곧바로 팻말을 들어 올렸다.
“장해진 팀장님이 허락한 일탈이거든. 계약서에 적으셨대.”
류이든이 얼마나 신뢰받고 있는지 잘 알겠다.
하긴, 같은 편이기만 하면 류이든만큼 신뢰할 만한 인물도 드물지.
“무거운 주제도 되고, 뭐 아무거나 상관없대. 평소 고민 같은 것도 괜찮고. 싸워도 된다시던데.”
“…진짜요?”
“응. 서운한 거 있으면 그냥 말해 버려.”
그렇게까지 말하고 류이든은 팻말을 내려놨다.
그러다 시동을 걸려는지 류이든이 상추 하나에 삼겹살을 담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까, 목화 씨가 나한테 문자 했더라, 동화야.”
“…뭐?”
“도움을 청합니다, 형이랑 싸울 예정이에요.”
상추쌈을 야무지게 입 안에 집어넣었다.
“무슨 일이야, 대체.”
“우리 목화, 사춘기라도 온 걸까.”
진짜 알 수 없는걸. 아무리 봐도 장난치려는 것 같은데.
“근데 형제자매 있으면 자주 싸우지 않아요? 원래 그렇다던데.”
이현재가 말하자 석준과 류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상이지. 나는 아직 싸워.”
“나도─. 아끼는 게임기 몰래 중고로 팔았을 때 엄청 크게 싸웠어─.”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게 일반적인 거야 알지만, 우리가 겪은 삶이 그렇게 녹록지는 않았다.
“우린 싸운 적 없어서.”
“…한 번도?”
“응.”
“와, 더 궁금한데. 혹시 나 전화해서 좀 물어봐도 괜찮아?”
“대신 좀 물어봐 줘.”
안 그래도 쉬는 시간에 전화랑 문자 남겨 뒀는데, 안 받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