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7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79화(247/343)
류이든이 목화와 통화를 하러 간 동안, 나는 고기를 몇 점 먹다가 내려놨다.
진짜 아무거나 해도 되는 거구나. 아무도 제재하지 않는 방송이야.
얘네들, 요리나 해 줄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바빠서 밥을 자주 해 주지 못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옆에 앉아 있던 채하민이 얼굴에 물음표를 그린 채 날 돌아봤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여기 오기 전에 마트에 들러 여러 식재료를 사 놨으니 웬만한 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숙소에서 미리 챙겨 온 양념들도 있으니.
“오, 음, 어…, 아.”
뭐 해, 하민. 언어 구성이 잘 안 되니.
“나중에 일주일에 하루 정도 시간 내서 진짜 요리 배울까 봐, 동화야.”
“네가 가진 가능성에 한계를 짓고 싶은 건 아니지만…….”
포기하는 편이 현명하지 않을까, 라는 말은 뱉지 못했다.
차라리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고 요리를 해 주실 분을 고용하자, 하민, 우리에겐 돈이 있고 여긴 자본주의 사회야, 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내 한탄에 이현재가 웃었다.
“제가 들은 것 중에서 제일 예의 바른 비난이었어요, 형.”
채하민이 밥그릇을 옆으로 탁 옮기며 얼굴을 박았다. 그러고는 마치 떼를 쓰듯 뺨을 비볐다.
고기 기름 묻게 뭐 하는 짓이니, 하민아.
“으아, 나도 요리 잘하고 싶다. 너희들 배부르게 먹여 주고 싶어.”
“왜요―?”
석준이 양 볼에 양껏 음식을 집어넣고 웅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대화보다는 음식에 더 관심이 쏠린 모양새였다.
“그런 거 있잖아.”
휙, 고개를 든 채하민의 뺨은 옅게 번들거렸다. 나는 티슈를 한 장 건네며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메뉴는 언제 말해 주는 건데. 나도 너처럼 요리가 하고 싶단다, 지금.
“아, 멤버들 고생하는 거 보니까, 따뜻한 밥 한 끼 챙겨 주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
“그래서 주방에 들어서면 보통 따뜻한 사약 한 접시가 만들어지잖아요.”
“으어!”
이현재가 웃으며 뱉어내는 말이 채하민에게 화살같이 꽂혔다.
내상을 입은 채하민이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동화 형만 내성 있어서 다 먹구. 전 가끔 동화 형 위장이 궁금해요. 어떤 소화 과정을 거치는 건지 열어 보구 싶을 정도로.”
피식, 웃음이 샜다.
난 정말, 네가 그런 표정으로 내 배를 갈라 위장의 생김새를 보고 싶다고 말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현재.
“내가 들은 것 중에 제일 무례한 비난이었어, 현재.”
“죄송해요. 근데, 하민이 형이 저희를 생각해 주는 마음은 정말 사랑하지만, 요리까지 사랑할 수는 없었어요.”
채하민이 ‘흐어.’라는 한숨과 함께 의자에 몸을 누였다.
“난 진짜 왜 요리에 재능이 없을까. 동화야, 슬프다.”
“노력할 거면 응원할게.”
“진짜? 이런 말 하긴 좀 그런데 엄마도 포기하라고 하셨는데 괜찮아?”
“한 십 년 정도 하다 보면 늘지 않을까. 해 놓으면 일단 내가 먹을게.”
사실, 맛없어도 영양분 공급만 제대로 되면 살 수는 있다. 미식의 즐거움이 내 인생에서 그렇게 큰 것도 아니고.
“십 년…….”
그 시간이 얼마나 긴지 가늠하는 듯 미간을 좁힌 채하민, 그걸 보던 이현재가 문득 말했다.
“그러고 보면, 십 년 전에 꿨던 꿈들, 거의 다 이뤄졌어요.”
“그래?”
“네. 비방용인 거 하나 빼면, 데뷔도 하구, 솔로곡도 하나 있구, 멤버들이랑 사이도 좋구. 이게 말이 되나 싶어요.”
이현재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밤하늘을 바라봤다.
잠시 별이 보이는 하늘을 만끽하다가 고개를 툭 떨어뜨리며 웃었다. 나는 그 비방용이 뭔지 조금 궁금해졌지만, 묻진 않았다.
“고마워요. 형들 덕이에요.”
그렇게 말하고 이현재는 뻘쭘한 듯 밥그릇에 고개를 파묻고 고기를 입에 넣었다.
“에이, 현재. 너 맨날 연습실에서 살았으면서. 쉬는 날 보컬 룸에 너가 없는 걸 난 본 적이 없다! 내가 고마워해야지.”
채하민이 밥상을 탕탕 내리치며 소리쳤다.
“음, 근데 그런 식이면 형두 마찬가지잖아요. 연습실 대실 횟수가…….”
“지난번에 청소하는데 준이도 가사 써둔 공책만 몇 권 되더라.”
나는 가만히 첨언했다. 석준은 성격상 이런 걸 전혀 어필할 놈이 못 되니까.
“동화 형이 제일이지.”
통화를 마쳤는지 류이든이 자리에 털썩 앉았다. 눈에 한껏 장난기가 담겨 있었다. 무슨 소리를 듣고 왔는지 궁금해 죽겠는걸.
“애들이 그러던데.”
“아, 맞다. 저 말한 적 있죠. 동화 형이 쉬는 날 작업실 가 있으면 왠지 그냥 몸이 알아서…….”
“나도! 나도 동화 따라서 연습실 간다.”
뭔데. 왜 갑자기. 이런 분위기에 제일 면역이 없는 걸 알면서, 염병을.
나는 무표정을 유지하며 류이든과 눈을 맞췄다. 왜 갑자기 지랄이냐는 눈빛을 보내니까 그저 웃고 있었다.
“나는 이든이 형 보면서 매일 작업실 나가.”
“어?”
“매일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잠도 몇 시간 못 잤는데 운동하고, 우리 스케줄 챙기는 거 보면서 작업으로 보답하고 싶었거든.”
“나는 네가 노력하는 거 보면서 열심히 사는 건데?”
불꽃 튀는 눈빛.
내용은 훈훈하지만, 나와 류이든 사이에는 치열한 다툼이다.
서로 리더를 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며 다퉜던 어느 날과 비슷하지만, 이제는 서로를 칭찬하는 데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다.
“맞아, 이든이 형두 보면 존경스럽죠.”
이현재가 눈치채고 곧바로 내 편을 들었다.
“동화 형만 못 하지.”
“원래 성실함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고 관대함의 잣대로 남을 평가하라고들 하잖아.”
나는 조심스레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컵을 든 손의 움직임, 시선이 끌렸다. 화양 씨에게 배운 주의를 집중시키는 법이다.
“형은 자신이 더 성실하길 바라니까 내가 더 성실해 보일 수밖에 없지만, 그건 네가 관대해서 그런 거지. 리더로서 갖출 덕목은 전부 갖췄네. 존경해.”
“와우.”
류이든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냐?”
“전혀. 나는 형 보면서 닮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라.”
류이든은 할 말이 없는지 잠시 입을 벌리고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류이든이 ‘너도’라고 말한 순간 자신은 그렇다고 인정한 셈이고, 나는 부정하면 그만이다.
논리를 켜켜이 쌓을 때는 조사 하나도 허투루 사용하면 안 되는 법이다.
실제로 류이든이 서양 중세 시대에 살았다면 고위 성직자가 됐을 것이다. 성실하고 자기 사람들에게 관대하니까.
그리고 나는 무신론 내지는 회의론 관련한 글을 썼다가 화형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남들을 관대하게 대하지 못하는 놈이라.
그러나 여긴 토론장이 아니고, 논리를 넘어선 무언가가 이 세상엔 존재하는 법이다.
“거짓말! 너는 이든이 형 없었어도 알아서 작업실에 틀어박혔을걸! 내가 몇 번을 막! 내가 요즘 말은 안 했어도 진짜!”
채하민이 격앙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앞의 내용 따위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그저 모두 부정할 뿐이었다.
“그렇긴 하죠. 둘 다 그러면서 별 해괴한 논쟁을…….”
현재, 우리 둘의 놀이 문화야. 이해해 줘.
“난 빼 줘! 진짜 동화 닮으려고 그런 거란 말이야!”
“형, 내가 할 말인데.”
“동화, 너는 그러면 안 된다, 진짜!”
다들 먹으라는 밥은 안 먹고 누가 가장 성실하며, 우리는 누구를 닮기 위해 노력했는지 논쟁하는 사이, 배불리 밥을 먹었는지 석준이 배를 통통 두드리며 의자에 앉아 웃었다.
“저는 둘 다 닮으려고 했습니다―”
“한 명만 골라 줘! 준아!”
“물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옳은 답이 있는 경우가 있다.
‘나는 나다.’라는 명제가 당연히 옳은 것처럼 나보다는 류이든이 몇 배는 닮을 만한 인간이다.
“너니까, 당연히!”
석준은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왜 이거에 목숨을 거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둘 다 똑같은데요.”
“준, 똑같다는 건 논리적으로 정말 많은 근거가 필요해.”
“그…….”
“하, 누가 봐도 동화 형이 더 성실한데!”
이현재는 진절머리가 났나 보다. 순간 머리를 불끈 쥐더니 ‘이게 우리 그룹이었지…….’라는 표정으로 체념 상태에 빠져들었다.
“루미너스 여러분, 이 형들 평소에 이러구 놀아요.”
그러고는 조용히 중얼거리는 이현재.
나는 새삼 카메라 앞에서 무슨 추태를 부린 건지 깨닫고 말았다. 망할 류이든.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류이든에게 물었다.
“지금 먹고 싶은 메뉴, 말해.”
“어? 고길 먹어서 샐러드가 당기는데 왜?”
그게 진짜 먹고 싶은 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들어 주게.”
발사믹 소스, 아마 가지고 왔겠지.
* * *
지동화가 캠핑장에 있는 주방으로 걸음을 옮기고, 류이든도 오랜만에 수치심을 느끼며 얼굴을 감쌌다.
“아, 원래는 동화만 놀릴 계획이었는데.”
관찰카메라밖에 없고 다른 사람이 없으니 순간 숙소에서 하던 것처럼 놀아 버렸다. 지동화는 음식을 핑계로 도주해서 홀로 모든 수치를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수치는 수치고 할 말은 해야 하는 게 류이든이라는 인간이다.
“아무리 봐도 동화가 내 롤 모델인데.”
“진짜요?”
“응. 내가 괜히 형이라 부르는 게 아니지.”
“형, 통화는 잘 하고 왔어?”
아, 맞다. 지동화랑 노는 게 너무 흥겨워서.
“응, 너희들한테도 문자 보낼 예정이었다고 하더라. 이유 자체는 별거 아니던데?”
아마도 지동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돕는 상황을 꿈꾸고 있는 것 같더라, 목화 씨. 자기 형 닮아서 제정신은 아니야.
“그래? 목화랑 문자하고 싶다. 이유는 뭐래. 동화가 막 전전긍긍했어.”
“형이 자기한테 비밀을 숨긴대.”
히익, 외마디 비명이 채하민 입 틈에서 새어 나왔다.
석준과 이현재가 의아한 눈으로 채하민을 바라봤다.
“여, 여기 벌레가.”
“야외라 그런가?”
류이든만 대충 그러려니 하며 웃었다.
“동화 형님한테 비밀이―”
류이든은 기지개를 켜며 팻말 쪽으로 손을 뻗었다. 뭔가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싶으면 곧바로 꺼내 들 예정이다.
“사실 동화 형은 잠이 필요 없는 생물이다, 뭐 그런 거 아닐까요.”
이현재가 곰곰이 생각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저희 그룹에 동화 형이 없으면 어떨지 상상이 아예……. 작업량만 보면 가끔 미친 사람 같아요. 일단 저희 활동 곡이 다 달라졌겠죠? 저희 개인 곡도 더 늦게 했을 수도.”
“맞아. 동화 형님이 맨날 내가― 꿈꾸는 곡 만들어 주셔.”
“저 형은 우리 진짜 좋아한다니까. 동화 처음 만났을 때는 이렇게 친해질 수 있을지 걱정도 엄청 많이 했는데. 알고 보면 우리 제일 좋아해.”
류이든이 이현재와 석준의 말을 들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맞아. 엄청 냉정해 보이잖아요.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표현만 서툴고 저희들 엄청 좋아해 줬던 것 같아요. 저 공부하느라 아플 때 동화 형 밤새우면서 옆에 있어 줬거든요.”
“그건 나돈데!”
“나도잖아!”
즉각적으로 터져 나오는 류이든과 채하민의 반박. 막내 사랑을 갈구하는 형들의 몸부림이다.
“미안, 현재. 나만― 잤어.”
“형은 잠 안 자면 다음 날에 죽으니까 별수 없잖아요. 그리고 진짜 한숨도 안 잔 사람은 동화 형밖에 없잖아요? 제 소중한 추억에 숟가락 얹지 마요.”
“하, 우리 막내는 진짜, 동화를 그렇게 좋아해서 어쩔까.”
잠시의 고요함. 류이든이 팻말을 땅에 꽂아 넣었다.
모두의 의아한 시선을 받으며 류이든이 곱게 웃었다.
“없어서 하는 얘기긴 한데, 동화한테 거리감 느껴질 때가 있잖아.”
이현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석준은 전혀 몰랐다는 표정이고, 채하민은 입술을 조금 깨물었다.
류이든은 그 반응을 가만히 살폈다. 우리 하민이는 연기는 잘하는데, 저런 건 정말 미숙해.
“맞죠. 가끔 먼발치서 지켜보는 느낌이……. 3인칭 관찰자 같을 때가 있어요.”
이번엔 류이든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 잘해 주자! 그런 거 다 사라지게! 어떻게 잘해 줄지는 각자 고민해 보고. 나는 나름대로 동화가 신경 못 쓰는 데 챙기려고 노력 중이거든.”
“그러면 저는, 작곡을 조금 더 제대로― 해 볼까 봐요. 형님은 쉴 시간이 너무 적어서 지쳐 그러는 거 아닐까요?”
“모르지. 동화는 먼저 말해 주진 않거든. 그러니까 나그네 옷 벗기듯 따스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게 만들어 버려. 알아서 술술 불게.”
촘촘한 별이 빛을 토해 내는 밤하늘 아래, 소담소담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있는 테이블, 그리고 그 모든 얘기를 테이블에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앉아 듣고 있는 지동화가 있었다.
그의 눈에는 별빛이 고스란히 담기고, 그 앞엔 짧은 문장이 둥둥 떠 있었다.
[말했잖아요. 뭘 선택하든, 당신은 행복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