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8)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8화(28/343)
28.
지동화가 마지막이랍시고 질문권을 쓰기 5분 전,
‘기지생’은 흔들의자에 앉아 욕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말았다.
저 멍청한 자식이 본인이 고생해서 준 기회를 맨발로 걷어차기 직전이니까.
‘지동화’가 붙여준 이 기이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까진 상관없는데, 저건 과해도 너무 과하다.
“…저 자식도 확실히 정상은 아니야.”
동생에 관해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던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본 것 같은데도… 대체 왜 예측대로 움직여주질 않는 건지…….’
기지생의 눈앞엔 30개의 모니터가 공중에 떠다니며, ‘지동화’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비추고 있다.
원래 예측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정경우 PD가 과욕을 부려서 헛짓거리를 하고.
둘째, 그 헛짓거리가 탈락자 팬들의 뒤틀린 분노로 논란으로 이어지면.
셋째, ‘지동화’는 정신적 충격을 받지만 채하민을 비롯한 이들에 대한 애정 때문에 고민만 하다가 시간이 흐르는 것.
‘지동화’의 죄의식은 처음 맛보는 정으로도 막아내기 힘든 것이었다는 걸, 미처 몰랐다.
‘…하기야, 나 역시 저 입장에 처한 적은 없었으니.’
그렇게 기지생이 ‘지동화’가 서바이벌 포기를 결심하는 것을 직관하며 한숨이나 뱉고 있을 때.
[기지생, 류이든 긴급 퀘스트 때 받은 1회 질문권… 지금 사용 가능해?]말을 걸어왔다. …그래, 이제 와서 다 끝난 판국에 시공간 사이의 질서니 뭐니, 뭐가 중요하겠냐. 다 물어봐라, 시공간 이동의 원리를 하나하나 다 가르쳐주지.
“가능합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선택이 뭘까?]…음, 미련이 아예 없는 건 아닌가 보군.
다만 질문이 모호하다. 평소의 ‘지동화’라면 말하기 전에 깨달았을 텐데, 지금은 정신 상태가 고장 나서 그런가.
“결과적으로 옳은 일인지, 당신의 도덕에 비춰 볼 때 옳은 일인지 우선 확정하여 질문해 주시길 바랍니다.”
[…결과.]…미련이 큰가 보군.
그래, 마지막 기회다, 멍청한 놈아.
직접 어떻게 행동하라고 보내는 건 통신에 무리를 줄 테니까, 약간 장난질을 쳐야겠군.
“당신은 ‘1회 질문권’을 사용하셨습니다!
답변 : W8”
아무 짓도 하지 말고 ‘기다려’, 멍청한 인간아.
* * *
‘W8이라…….’
나는 무의식적으로 종이를 꺼내서 W8이 의미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W가 들어가는 단어를 이리저리 끄적이다가 나는, 멈칫했다.
WWWW
MMMM
‘오, 치아인가?’
나는 멍하니 네 개의 W와 그걸 거꾸로 한 네 개의 M이 맞닿아 있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입의 모양을 형상화한 거면, 입으로 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거군.’
입으로 하는 행위 중 당장 떠오르는 건 노래, 식사, 대화 정도가 있겠다.
모르겠는데… 잠깐. 대화?
“역시 관두라고 말하라는 건가…….”
그 순간이었다. 알림 창이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크프리트는 니벨룽겐의 노래에 등장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훌륭한 등장인물입니다.] [화학과 물리학은 지구의 근본구조에 대한 해석입니다.] [바로 당신은 지금 그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보리밭에서 자란 호밀과 같습니다.]여기까지 읽고, 잠시 이전의 슬픔도 싹 가신 채 멍하니 있는 내게 하나의 알림이 더 온다.
[냐.]…기지생, 이 망할 놈이. 이런 철 지난 세로 장난질이라니.
그래, 관두지 말라는 그 의지는 알겠다. 일단… 그냥 기다리라는 건가?
[당신은 놀라운 침착함으로 답을 알아냈습니다!보상 : 없음.]
아, 슬픔이고 자시고 일단 짜증이 나는군.
만약 이런 식으로 나를 침착하게 만들 셈이었다면, 성공적이었다. 다행히 이성을 되찾은 것 같으니.
기지생이, 나한테 거짓을 말한 적은 없으니, 일단, 믿어볼까.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호흡을 안정시킨다.
‘…그래, 믿고 기다려 보자. 지금 관두는 건, 연습생 동료나, 팬분들한테도 못 할 짓이니까…….’
* * *
한 아이돌 커뮤니티, 지동화를 화형에 처하기 직전 같은, 아니면 모든 이들이 법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자유롭게 죽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 같은 분위기가 펼쳐져 있다.
[어? 데뷔가 힘들다고?](지동화가 웃는 짤)
가족을 팔면 됩니다.
댓글
―ㄹㅇㅋㅋㅋㅋㅌㅋㅋㅋㅋ
―진짜 안 지겹냐 그 허접한 프레임
―응~ 하루 종일도 쌉 가능~~~~~ ㅎ
(후략)
지동화의 팬들은 마땅히 반격할 만한 소재가 없어서, 어서 빨리 소속사의 공식 해명이라도 나오길 기다리고 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렇게 지동화의 팬들이 서서히 지쳐서 하나둘 개인 SNS에서 울기 시작할 때였다.
커뮤니티에, 슬며시 글이 하나 올라온 것이다.
[동화 형 친동생입니다.]안녕하십니까, 저희 형 팬 여러분들! 저는 지동화 동생 지목화입니다. (현재는 다른 집에 입양되어 있어 이목화지만, 제 주변 지인들에겐 여전히 저를 지목화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로 인해 형이 논란이 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놀란 마음으로 직접 글을 남겨봅니다. 저희 형은 성격상 저한테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미안해서 논란에 제대로 해명도 못 할 테니까요.
저희 부모님은 저희 형이 아홉 살, 제가 일곱 살이었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때부터 형은, 형도 어렸으면서 저를 돌봐 준다고 이리저리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저희 부모님이 남겨주신 유산은 집과 약간의 재산이 전부였고, 또 돌봐줄 제대로 된 후견인도 없어서, 동화 형이 직접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습니다.
또, 제가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하자 학원비를 벌기 위해서 청소년노동허가증까지 발급받아 일을 하며 제 학원비를 충당해 주기도 했고요.
(그때는 제가 철이 없어서 몰랐지만, 양부모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못난 동생이 맞습니다. 형이 저희 집의 가난함을 그 작은 몸으로 가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풍족한 줄 오해해서 바라는 게 많았거든요.
그러다 고아들에 대한 정부 지원금이 줄어들고 형이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짤리며 (이 모든 건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더는 혼자서 제 ‘꿈’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생각이 되었을 때, 지금의 부모님께서 저라도 맡아주겠다고 동화 형에게 뜻을 밝히셨다고 합니다.
그걸 듣고 동화 형은 일부러 제게 모진 말을 하며 입양 갈 것을 재촉했습니다.
그때 당시엔 원망했던 것 같아요. 왜 형이 갑자기 나를 버리려는 건지도 몰랐고. 저도 욱하는 마음에 입양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입양 이후, 서서히 양부모님과 정을 트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동화 형이 저를 왜 입양 보냈는지에 관해 듣게 되었습니다.
동화 형은 자신이 모자라서 꿈도 제대로 못 꾸는 환경에서 동생이 자라고, 자신이 더 챙겨주지 못해서 동생이 매서운 현실과 다툴 바에야, 자기 하나가 동생의 인생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게 더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중략)
저는 이후 동화 형과 함께 살았던 집으로 찾아가 보았으나, 동화 형은 어디로 간 건지 집은 텅 비어있었고,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동화 형은 자기가 먼저 동생을 버렸다는 생각에, 제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게 미안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잘 살고 있을 제게 나타나서, 저를 뒤흔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요.
그래서 동화 형이 방송에서 연락할 이가 없다고 말했을 겁니다. 저를 돌보느라, 공부하느라, 집안일 하느라, 아르바이트하느라, 실제로 동화 형은 늘 혼자였으니까요.
어렸을 적에 알았다면 좋았을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부디, 동화 형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시길 바랍니다. 동화 형은 가족을 팔 만큼 냉정한 사람은 못 될뿐더러, 저를 지키려고 늘 최선을 다했던 멋진 형이니까요.
Ps. 형, 나 번호 아직 안 바뀌었어. 아직도 형이 사줬던 그 핸드폰 쓰고 있고. 아이돌 연습생 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야. 제발 전화 한 번만 해줘.
(초등학생 때 발권해서 입양 갈 때조차 버리지 않고 있던 가족관계증명서)
(형이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사준 날 낡은 피쳐폰을 들고 있는 형과 함께 찍은 사진)
(지목화 학생증)
이 글이 나온 순간, 지동화를 사냥하는 데 진심이었던 이들은 갑작스러운 본인 등판에 당황했고, 지동화의 팬들은 글을 읽다 울면서도 쾌재를 부르며, 반격에 나섰다.
* * *
‘신은, 신은 죽지 않았다!’
지난겨울부터 지금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를 확인한 장해진은 쾌재를 부르며 패드를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그러다 똑같이 커뮤니티를 살피고 있었는지, 기쁜 표정으로 뛰어들어 오던 김 대리가 장해진의 모습을 보곤 멍하니 바라봤다.
고개를 드는 장해진을 보고 김 대리는 물었다.
“…뭐, 하십니까, 팀장님?”
“기도.”
“…네?”
“기도.”
“…아, 그보다!”
“이미 봤어. 지동화 연습생한테도 이 사실을 알려야 하니 어서 불러와!”
김 대리는 거칠게 고개를 끄덕이곤 경보로 빠르게 사무실을 벗어났다.
* * *
나는 김 대리의 부름에 따라 걷다가 고민했다.
‘…기다리긴 했는데, 뭐가 되긴 한 건가?’
기지생, 이 자식, 설마 거짓말친 거 아닌가.
[당신은]알림 창이 뜨다가 말았다. 나는 멈칫했다가, 말을 하다가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 사람의 모습이 떠올라서 약간 미소 짓고 말았다.
얘도… 참 인간답군.
회의실에 들어서자 장해진 팀장이 밝은 미소로 맞아준다.
…정말 기다리는 게 답이었다고?
“우선, 제가 말로 하는 것보단 읽는 게 나을 거예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패드를 받아 읽었다.
…아이가, 글을.
* * *
지동화는 천천히 글을 읽더니 잠시 아무 말 없이 글의 마지막 부분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순간, 지동화의 눈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흐른다.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은 무슨, 칼조차 제대로 안 들어갈 것처럼 냉정해 보였는데…….’
그러곤 자기도 당황했는지 급하게 손등으로 닦아냈다가, 닦아내자 더 터져 나오는 눈물에 눈을 손바닥으로 꾹 누른다.
눈물을 막자 이번엔 입에서 작은 흐느낌이 새어 나온다.
장해진은 옆에 휴지를 하나 밀어두고, 그 옆에 지동화의 핸드폰까지 밀어둔 뒤, 한마디 하고 나섰다.
“공식 입장으론 사실이라고만 짧게 올릴게요. 동생분이랑 전화하시고 힘내서 연습하러 가요.”
* * *
결국 20분을 넘게 울고 만 나는 이제야 진정된 마음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천천히 버튼을 눌러 목화, 라고 적혀있는, 아이의, 내 동생의 번호를 띄워 두고, 조심스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짧은 통화음 끝에…….
“…….”
―…형도 번호 그대로네.
“…목화.”
나는 너무나 오랜만에 뱉어보는 단어의 울림이 지나치게 낯설어서, 그리고 더 말했다간 다시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짧게 말했다.
“…미안.”
―형, 나 입양 가고도 형이랑 살았던 집이 너무 그리웠어.
동생의 목소리에 천천히 울음기가 섞여든다.
―하루는 형이 해준 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내가 계란밥 해 먹었는데, 너무 맛이 없어서 싫었고, 학원에서 뭐라도 하나 배우면, 형한테 칭찬받고 싶은데 형이 없어서 너무 슬펐어.
나는 그 말을 묵묵히 들으며, 아이가 견뎠을 외로움의 무게를 깨닫는다.
―양부모님이 잘해줄 때마다, 형은 혼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너무 미안했어. 그리고… 형이 나 때문에 그렇게 고생했다는 거 알고 나선… 형이 왜 혼자 다 짊어졌는지 너무… 너무 원망스러웠어.
…나는 목화의 목소리에 내가 저지른 죄를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미안.”
―나는, 나는, 있잖아, 형.
목화는 천천히 한 글자씩 말하기 시작한다.
―내 꿈이고, 뭐고, 내가 고생 안 하는 것도 됐고, 그냥 형이랑, 가족으로, 있고 싶어.
나는 답 없이 가만히 있는다.
―나는 그냥, 형이, 형이, 내 형이었으면 좋겠어.
목화는, 내 동생은 울면서 애원하듯 말한다.
―다시, 다시 형 해주면 안 될까, 형.
…그렇게 말하면 내가 거부할 수가 있을까.
“…내 동생은 울음 많은 게 여전하군.”
그러자 목화는 잠시 당황했는지 웃으며 말한다.
―형도 울고 있는 거 다 들려.
“…다음 주 토요일에, 마지막 서바이벌 무대 보러 올래?”
그러자 목화는 다시 활력을 되찾은 목소리로 답했다.
―나도 연습생인데, 형이 나보다 먼저 데뷔하는 거 당연히 보러 가야지!
…연습량을 더 늘려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