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8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81화(249/343)
땅에 도착했을 때, 나와 직원분을 묶어 주던 장치가 풀리는 동시에 다리의 힘이 풀려 자연스레 쓰러졌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놈들이 놀라서는 헐레벌떡 달려왔다.
“형, 형, 괜찮아요?”
“죽, 죽으면 안 돼요, 형님! PD님! 의료팀!”
“동화야아! CPR! CPR! 적십자 다닐 때 배웠는데!”
난리 치지 마, 망할 것들아.
채하민이 흉부 압박을 하려고 시도하는 걸 쳐내며 몸을 일으켰다. 이현재가 옆에서 등을 받쳐 주었다.
“하.”
나는 숨을 내쉬며 이현재의 팔에 몸을 기댔다.
장군이 전사할 때나 볼 법한 장면인데 너무 과해도 어쩔 수 없다. 살아 있잖아,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이 원초적인 형태로 감사한 순간을 맞이할 기회는 많지 않다.
“숨, 숨 쉰다! 동화, 살아 있어!”
“다행이에요! 형님 죽는 줄 알고!”
미친놈들. 이현재가 웃으며 나를 바로 세워줬다.
그때 털썩, 조금 멀리서 누군가가 착지하는 소리와 함께 탁탁, 흙을 박차고 뛰는 소리가 들리더니 류이든이 쏟아져 들어왔다.
“동화 형! 미안해! 내가! 내가 잘못했어!”
“조용히 해 줘, 제발.”
쪽팔리니까.
나는 모두 쳐내고 이현재의 부축만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하, 살았다.”
류이든은 내 말을 듣고는 이번엔 자기가 다리의 힘이 풀렸는지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나는 진짜, 살면서 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수를 다 가정했다, 우리 동화야.”
“…원래 다들 그렇게 살아.”
석준 빼고.
“옮았다, 옮았어.”
나는 힘이 없는 손을 주무르며 류이든을 내려다봤다.
안도감이 느껴지는 표정이다. 나랑 비슷한 경험을 했을 개 한 마리와 이 감동을 나눠야겠다.
“어땠어.”
너도 이 땅 위에서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느꼈니.
“네 걱정 들던데. 얘 심장 마비 오면 어떡하냐, 이러면서.”
“…헛소릴.”
내가 개에게 너무 많은 걸 바랐다.
“그 정도로 무섭진 않던데.”
나는 환멸을 느끼며 류이든에게 팔을 건넸다.
“다행이다, 진짜. 뛰기 전에 뭐 그렇게 의미심장한 말을 해서!”
“음?”
“뭐, 알게 될 거라니! 난 무슨 진짜!”
그걸 대체 뭐로 오해할 수 있길래 저렇게 난리일까.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말을 하면!”
류이든이 잡으라는 팔은 안 잡고 흙바닥을 뒹굴며 몸부림쳤다.
“…알게 될 거라는 말이 그렇게 해석될 수가 있어?”
“몰라! 느낌이 그랬다고! 나 진짜…….”
추태.
정말 추태라는 게 뭔지 알 것 같아. 쇼핑몰에서 떼쓰는 초등학생 같아.
멤버들도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류이든의 몸부림을 그저 지켜만 봤다.
“…와, 저 이든이 형 부끄러운 거 오랜만이에요.”
이현재가 조용히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나도.”
나 역시 고개를 돌려 산을 바라봤다.
아, 저 산, 아름다웠어. 저 너머에는 사람들이 건물을 짓고 있었지.
채하민과 석준도 부끄러운지 서로 손을 부여잡고 거기에 얼굴을 묻었다. 이례적인 상황이다.
류이든이 아직까지 뻗고 있던 내 손을 부여잡았다.
“…일으켜 줘.”
이제는 자기도 부끄럽나 보다.
나는 손에 힘을 줘 류이든을 일으켜 세우며 스탭분들이 계신 곳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봐, 저기. 저 PD님 당황하는 거, 오랜만에 봐. PD님도 부끄러우신가 봐.”
“하, 우리 동화는 참…….”
이렇게 류이든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도 오랜만이다.
* * *
류이든은 억울했다.
마치 비행기에서 떨어져 죽을 사람 같은 처연한 표정으로 ‘너도 곧 알게 될 거야.’라고 말하면.
게다가 그 사람이 평소에는 아무런 겁도 없는 것처럼 살다가 조금 두려운 표정을 짓고, 마치 패배를 직감하면서도 적진으로 향하는 장군 같은 모습이었는데!
스카이다이빙장에서 부린 추태는, 조금 과하긴 했어도 누구나 그랬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 지동화의 함정이다…….”
“스스로 빠진 함정이니, 네 함정이지, 이든.”
그러므로 클로징샷을 찍고 차 안에 들어섰을 때 류이든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형, 그래서 그거 무슨 뜻이었어?”
“너 궁금했던 거, 말해 줄 거라는 뜻이었는데.”
지동화는 편하게 몸을 누였다. 여태껏 밖에서 본 지동화의 모습 중 가장 풀어져 있었다.
반면에 류이든은 지동화의 말을 듣자마자 몸을 굳혔다.
“카메라 앞에서는 말 못 하니까. 숙소 같은 곳에서 말해 주려고.”
“…와, 이거 영광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네.”
“아, 혹시 목화한테 연락 더 온 거 있어?”
류이든은 자기 핸드폰을 살펴봤다.
사실 더 깊은 대화를 나눴지만, 원래 싸움에 동참한 이상 자기 편을 위해 모든 걸 숨겨야 하는 법이다.
“없었어.”
“…거짓말이네.”
하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맞긴 한 건지 지동화가 자신의 속내를 곧바로 간파해 냈다.
류이든은 말없이 눈을 피했다.
“목화한테 숨기던 게, 형한테 숨기던 거랑 같을 확률은 몇일까.”
창을 가만히 바라보던 지동화가 중얼거렸다.
철학자를 실제로 만나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 ‘관조하다’라는 단어를 가장 잘 표현한 표정이었다.
“…난 적에게 동조하지 않아, 형.”
물론 그 확률을 계산해 볼 것도 없이 류이든은 십중팔구 똑같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밝힐 수는 없었다.
“서운하네.”
그렇게 서운하다는 목소리를 내다니, 요망해, 아주. 하나도 안 서운하면서 연기를.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단호한 대답을 듣던 지동화가 팔짱을 풀었다.
“…그럼, 벽돌은 답을 알고 있을까.”
곧바로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고 두 팔로 머리를 가렸다.
지동화의 벽돌 펀치는 갈수록 그 정확도가 높아져 타격과 터치 사이 어딘가에 있어서 열 대가 넘어가면 살짝 따끔하다.
류이든은 가끔 지동화가 최선을 다해서 때리는데 그 정도인 건지, 아니면 갈수록 분노의 정도가 더해지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멈춰 서 있던 류이든은, 아직도 지동화가 벽돌을 내리치지 않은 걸 의아해하며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어 옆을 바라봤다.
“…형, 자?”
세상에나 만상에나, 살다 살다 지동화가 차 안에서 저렇게 곤히 자는 모습을 다 보네.
류이든은 사진을 찍어 채하민에게 한 장 보내 ‘차 안에서 곯아떨어진 지동화 데이’라는 말을 적었다. 채하민의 다이어리에 기념일이 하나 추가되겠지.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잠든 차. 류이든은 가만히 웃었다.
드디어, 인정받았다. 오늘 숙소에 가면, 지동화가 본인의 입으로 모든 걸 밝힐 거야. 귀신을 보니 뭐니, 그런 억측을 모두 깨부숴 줄 거야.
류이든은 벌써 행복한 기분이었다.
* * *
숙소로 돌아왔을 때, 나는 온몸의 피로를 직격으로 맞았다.
여행은, 돌아온 날 하루 동안 움직이지 못할 각오를 해야 하는 건가 봐.
나는 씻고 침대에 누워 사지가 녹아내리는 기분을 만끽했다. 무대를 여러 번 했던 날보다 오늘의 탈력감이 더 컸다.
“동화야, 몸 좀 괜찮아?”
고작 스카이다이빙 한 번 한 걸로 환자 취급 받는 건 이 세상 모든 환자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하민.
“응.”
“진짜 재밌었어, 이번 여행.”
팔딱팔딱, 채하민의 두 다리가 침대 위에서 날뛰었다. 류이든이 낮에 부렸던 추태와 유사한 몸놀림이다.
그새 동작을 따다니, 역시 안무를 만들고 있는 인간답다.
“다음엔 촬영 말고도 가면 좋겠다.”
“그러게.”
“이상한 옷 입고 밥도 안 먹겠지? 나 진짜 토끼 귀 달고 샐러드 먹는데 부끄러워서! 팬싸에서는 몇 번을 쓰든 상관이 없는데, 밖에서는 왜 그럴까!”
“흐하하.”
나는 덜떨어진 웃음을 터뜨렸다. 몸이 노곤해서 저항력이 낮아졌다.
채하민이 멍하니 날 보다가 흡족하게 웃었다. 네가 웃기는 건데, 하민.
“그 PD놈, 언젠가 복수할 거야.”
감사와 앙심 중 경중을 따지자면 후자가 훨씬 더 클 것 같다.
“당연하지! 나도 도와줄게. 이날의 치욕, 잊지 않겠어.”
“고마워, 나도 요리 도울게.”
“불 끌까?”
“응? 벌써?”
“너 졸려 보여서. 나 이 표정 엄청 오랜만에 봐.”
그렇군. 내가 지금 졸린가 보다.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걸 보면, 정말 오랜만에 몽롱하네.
* * *
새벽 네 시, 나는 절로 눈이 떠졌다. 늙으면 아침잠이 준다던데, 사실인가 보다.
오늘은 ‘All mine’의 마지막 활동 주가 시작되는 날, 여태껏 쌓인 모든 피로가 해소된 것처럼 개운했다. 새로운 몸에 뇌만 이식한 기분이다.
최근 들어 잠귀가 밝아진 채하민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얘는 왜.’
소파에 누워 있는 류이든을 보며, 나는 놀라고 말았다.
아직 안 일어나 있는 것도 놀라운데, 심지어 방도 아니고 소파에서 자다니.
“형.”
나는 찻물을 끓이고 와서 소파에 있는 류이든을 흔들었다.
감겨 있던 눈이 서서히 떠졌다.
“더 잘 거면 들어가서 자.”
멍하니 나를 보던 류이든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슬픔이 한가득 담긴 얼굴에 차를 타러 가려던 발걸음이 멈추고 말았다.
“동화야.”
“뭐.”
“…형은, 어제, 여기서 너를 기다리다가 잠들었다.”
짧은 한마디에 모든 상황이 파악되고 말았다.
하지만 내가 장소는 지정했지만, 시간은 지정한 적이 없을 텐데. 숙소 같은 곳에서 말해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잠시 말을 멈추고 어제 있었던 일련의 사건을 되새겼다. 몽롱했다고는 하더라도,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있으니까.
그리고 최종적으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해할 만한걸, 망할. 이렇게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말하다니, 어제의 나는 대체.
“미안. 어제 내 상태가 정상이라고 보긴 어려웠거든.”
류이든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슬픈 표정은 전부 사라지고 나랑 같은 아침의 개운함만 남아 있었다.
“아니, 안 그래도 돼. 사실 문 열어 보고 너 자는 거 확인했는데도 기다렸거든.”
음?
“너한테 기다렸음을 보여 주려고 했지.”
아무리 봐도, 수백 번을 고쳐 생각해 봐도 이 그룹에선 내가 제일 정상이다. 수학계에 공리로 제출해도 인정될 것 같아.
“그래서, 이제 밝혀 줘.”
“나 정신 연령으로 서른 넘어.”
“…어?”
“스물아홉 살이었는데 스무 살로 돌아왔거든.”
“그럼, 진짜로 형인 거야?”
“응, 동생.”
사실 생년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겪은 시간은 그렇지.
나는 주방으로 걸어가 차를 두 잔 따랐다. 평온한 나와 달리 류이든은 다급하게 탁자에 앉았다.
“자세히.”
류이든 앞에 차를 한 잔 내려놓고, 나도 맞은 편에 앉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기지생.”
나는 눈치 볼 것도 없어서 그냥 육성으로 뱉었다.
진실을 밝히는 것에 대한 기회비용은, 이놈들이랑 진실한 관계를 맺는 것에 비하면 조그맣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제학은 보통 합리적인 결론을 제시해 주는 법이다.
주어진 상황을 모두 인정하고, 나는 이들과 목표가 달랐음을 받아들이고, 다시 쌓아나가면 그만이지.
류이든은 허공에 말을 거는 나를 보고 놀라고.
[음, 저희가 동생한테 말 걸 용기가 없던 멍청한 새끼였다는 사실부터 시작하죠.]허공을 보면서 글자를 읽는 나를 보며 다시 놀랐다.
음, 이거 조금 재밌다. 채하민은 당시 술에 취해 있어서 이렇게 이성적인 반응을 보여 주지 않았는데.
“나, 먼저 사과하는 법을 모르던 머저리였거든.”
기나긴 시간에 관한 이야기, 나는 겪을, 기지생은 겪은 시간에 관한 이야기, 삼 분 이내로 요약해서 전달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