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8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82화(250/343)
“나, 먼저 사과하는 법을 모르던 머저리였거든.”
홍차 향이 짙다. 다즐링의 세컨드 플러시, 묵직한 과일의 향이다.
선물받아 오늘 처음 마셔서 잘 모르지만, 와인 같은 맛이 났다.
“그래서 타임머신 같은 걸 개발하려고 했거든.”
“어?”
류이든은 급전개되는 이야기에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남은 홍차를 모두 마셨다. 질문하지 말아 줘.
하지만 내 바람을 산산조각 내며, 류이든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혹시 질문 괜찮아?”
한 손을 들어 올리고, 미소를 지은 낯짝.
“…응.”
“그러니까…, 목화 때문인 거야?”
그러나 어영부영 생략하고 넘어가려는 걸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눈빛.
이미 단 두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맥락을 파악했을 텐데 구태여 진실을 묻는다.
티끌의 오해도 원하지 않으며, 나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 할 뿐임을 그저 눈빛 하나만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그래, 네가 나보다 형이지. 정신적으로는 몇 배고.
그러니 류이든은 지금 리더가 아니라, 내 친한 형으로서 진지하게 나를 이해하고 싶어 하는 거구나.
망할, 조금 수치스럽네. 내 민낯을 내어놓고, 류이든이 그걸 보라고 연 대화의 장이라지만.
젠장. 채하민처럼 너도 좀 술에 취해 주지 않을래. 이 차, 와인 맛이 나니까.
“응.”
나는 차를 한 잔 더 따랐다. 목이 타서.
그러니 잡스러운 생각은 버리자. 류이든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신상을 수소문하고, 찾아가서, 사과한다.”
한 모금 마신다.
“그렇게 당연한 과정을 거쳐서 다시 살아갈 수가 없었거든.”
찻잔을 내려놓는다.
탁,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들 잠든 시각, 보통 나와 류이든만이 일어나 요즘 있는 시시콜콜한 일을 나누는 시간이라 고요한 와중의 파문이다.
“혹시, 속죄 같은 건가?”
그러자 류이든이 찻잔을 들며 물었다. 너무 잘 알아서 짜증 나는데, 이든.
“응.”
“이유는.”
“…내가 편하고, 좋자고, 이미 한번 대못을 박은 사람에게 다시 찾아가는 게, 옳진 않고.”
“계속 얘기해 줘.”
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학교에서 잘못을 저지른 학생이 된 모양새였다.
음, 내 인생에서 처음 있는 경험인걸.
“그런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건 더 옳지 않으니까. 그래서 혼자 조용히 죽으려고 최선을 다했어. 스물아홉이었을 적엔 계획대로 잘 됐고.”
류이든은 내 눈을 보더니 아직 뜨거운 차를 원샷하고, 탁 내려놓았다.
그는 속에서 타오르는 천불에 비하면 따스하다는 듯이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표정만 보면 염화미소(拈華微笑)다.
“너무 너 같다.”
그러나 온화함과는 달리 말에 담긴 감정은 지독한 답답함이었다.
“만약에 내가 네 옆에 있었으면 네 의사 다 무시하고 멱살 잡고 끌고 갔을 거야. 목화 씨한테 같이 무릎 꿇으면서 모자란 형이어도 잘 부탁한다고 빌 거다!”
그저 웃었다. 이제는 안다.
“멍청하면 몸이 고생한다, 비슷한, 뭐.”
지금 보면, 모두 멍청한 선택에 불과했음을.
목화의 의사는 하나도 고려되지 않은, 쓰레기 같은 짓이었지.
[동의합니다. 우리는 참 멍청해서.]기지생도 동의하는 분위기, 오랜만에 훈훈한 기류가 나와 기지생 사이에 형성됐다. 우리는 역시 우리 자신을 모욕할 때 합이 잘 맞는다.
류이든이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동생이랑 화해하려고 타임머신 개발을 다짐하는 걸, 이걸 멍청하다고 말해도 괜찮은 건지, 아닌지. 실제로 했으니까 여기 이러고 있는 걸 테고……. 이 세상에 너 같은 애가 있을까, 진짜, 형.”
두 손으로 얼굴을 비비고, 한숨을 내쉬고, 손으로 책상을 툭툭 치다, 고개를 들고 엄격한 부모처럼 경고했다.
“넌 꼭, 주변에 사람 한 명 이상은 둬야 해. 또 고민 같은 거 있으면 꼭 상담하고. 나 아니어도 좋으니까.”
“…알아.”
이쯤 되면 그걸 모르는 게 더 이상하잖아.
“어쨌든, 나는 몇 년을 연구하다가 세계의 비밀을 밝혔고, 그 결과로 시공간을 관리한다는 웬 놈한테 강제로 연행됐어. 나도 잘은 모르는데 신참이 필요하다나 봐.”
“음, 이해했어.”
약간 아득한 무언가를 보듯 초점이 흐려진 류이든.
기계적인 것 같은 답에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질문은?”
너, 이해 못 한 것 같은데.
“없어요, 교수님.”
좋아요. 이대로만 하시면 A+ 유력입니다.
“강제로 연행된 곳에서 우주가 겪은 시간보다 긴 시간을 연구한 끝에, 바꿨다는 이야기야.”
류이든이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감탄했다. ‘와.’ 하는 짧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직 이 이야기의 가장 미묘한 부분을 듣지 못해서 나오는 소리다.
“정확하게 정정하면, 이미 시공간을 떠나서 다시 돌아올 수 없었던 나는, 대신 내 인생을 바꿨다는 이야기야.”
류이든이 이번에도 소리 없이 입을 열었다. ‘아?’ 하는 의문이 내포되어 있었다. 의문을 품었으니 A0.
손가락 하나를 들어 천천히 나를 가리켰다.
류이든의 동공이 내 손끝을 따라오다가 내게 멈췄다.
“네 눈앞에 있는 나는, 스물아홉 살의 어느 날 밤, 논문을 읽으며 잠들었다가 갑자기 눈 떠 보니 연습생이 된 지동화고.”
나는 흘깃 허공을 바라봤다. 네 차례라는 뜻이다.
[제 창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랑 연결을 유지하는 것도 꽤 힘들거든요. 제가 할 수 있었으면 벌써 목화부터 시작해서 당신 주변 동료들 전부 인사하고 다녔을걸요.]음, 아쉽네. 어차피 모두가 알게 될 일이니, 직접 기지생과 인사시켜 주고 싶었는데.
“지금 내 눈앞에 나만 보이는 글자를 보여 주면서 신경을 슬슬 긁는 망할 놈은, 그 이후의 지동화야.”
“아니, 잠깐.”
저런, A-.
“그러니까, 응? …어?”
아이쿠, B+.
“그럼, 귀신 보고 그런 건 아닌 거지?”
세상에. C+, ‘지동화 이해학’은 재수강하도록.
“대체 뭘 상상한 거야.”
“아니, 나도 진짜 믿은 건 아니었어.”
“음.”
미심쩍지만, B0. 재수강으로 다시 볼 일은 없겠다.
갑작스러운 정보의 범람, 류이든은 약간 혼란스러운지 차를 한 잔 다시 따랐다.
찻물이 흐르는 소리에 나는 편하게 앉았다. 새삼 말하고 나니 부끄럽지도 않고, 도리어 해방감만 가득했다.
“그러면, 너는 원래 혼자서, 그 긴 시간을.”
“연구만 한 거지. 기지생 얘기라 나는 경험 없어.”
류이든은 자신이 묻고 싶었던 건 그게 아니라는 듯이, 눈썹을 모았다.
“나는, 네 인생에 없었어?”
“응.”
“그림자도?”
“글쎄. 내가 여기저기 이사를 자주 다녀서. 거의 반년에 한 번꼴로. 그러니 한 번쯤 그림자 정도는.”
네가 술이랑 담배 사다가 나 하나쯤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드디어 나온 자신의 미래에 관한 화두. 나는 미리 할 말을 정리했다.
그러고 보면, 너도 정말 멍청한 선택을 했어.
술이나 담배야 개인의 기호이니 과하지만 않으면 괜찮지만, 네가 이 직업 말고는 행복할 수 없는 인간인 건 왜 몰랐어.
하지만 류이든은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 따위 궁금하지도 않다는 듯이 목소리를 조용히 억눌렀다.
자신의 삶을 묻는 것보다.
“스물, 아홉 살까지 어떻게, 버텼는데.”
내 이야기가 조금 더 궁금한가 보다. 정말, 고마운 인간.
등을 기대 천장에 드리운, 창에서 여기까지 파고든 빛줄기를 훑었다.
어두웠던 부엌이, 새벽 어스름으로도 밝다고는 못 했을 이곳이 빛줄기 하나로 부서져 내렸다.
“죽지 않으면 살아져.”
“…그럼, 내일 죽었으면.”
“달게 받아들였을걸. 말도 안 되는 목표인 건 알았거든.”
이제는 완연한 빛이 커튼으로도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환하게 공간을 점령했다.
동이 텄나 보다. 이렇게 또 새로운 하루를, 새로운 관계 위에 쌓아 올렸다.
“난, 대체 뭐 하고 있었는데.”
나는 커튼 쪽을 바라보던 고개를 퍼뜩 돌렸다. 류이든이 어깨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굵직한 팔뚝으로 눈가를 벅벅 닦는다.
세상에, 류이든이 우는데, 왜 울지. 계산해, 지동화.
[이야기에 공감!]‘세상에, 우리가 공감을 받을 수 있을 리가.’
나와 기지생은 단 2초 사이에 수많은 가설을 주고받았지만, 명쾌한 해답에 다다르지 못했다.
저 망할 놈은 이럴 땐 절대로 타인의 속내를 읽어 주지 않는다.
“나는, 뭐 하고 있었어, 동화야. 난…….”
두 번째 물음이 도착했을 때, 나는 자연스레 입을 열었다.
불타는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꼴이니까, 지금은.
“아이돌이 되어서,”
탁. 두 손이 책상을 짚는다. 손등에 힘줄이 우뚝 솟은 게 힘을 어지간히도 줬나 보다.
“거짓말하지 마.”
류이든이 고개를 들었다.
붉은 눈가, 쏘아보는 눈, 이를 악물고 말하는 어투.
세상 모든 인간이 죽지 못하고 남겨둔 천추의 한이 뭉치고 뭉쳐 인간이 되면 저런 느낌일 것 같은데.
이든, 오늘 음방 날인데 네 목소리가 접동새라고 해도 믿겠다. 목에서 피 나올 것 같아.
“아이돌 안 할 거면, 너랑 친구라도 됐어야지. 나는 진짜… 난…….”
너는 아이돌 아니었으면 평생 불행했을 인간이라고. 나와의 친분을 거기에 대면 안 돼.
“이든, 이거 마셔.”
나는 침착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홍차를 한 잔 따랐다. 따스한 차는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류이든은 차를 밀어내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진짜, 돌아가서 내 멱살 잡고 패고 싶다.”
“폭력은 안 돼, 형.”
너라도 너한테 맞으면 죽을걸.
“네가 할 말이냐고!”
류이든이 책상에 이마를 박듯 주저앉았다.
책상을 툭툭 두드려 봤는데도 어깨의 떨림이 멎을 생각을 안 한다.
“형, 지금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야.”
현실 인지 시도.
“네가 다 기억하잖아.”
실패.
“형이 구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런 건 어떻게든 해냈어야지!”
억지잖아.
“어떻게든! 너희들 모아서 계 모임이라도 만, 들었어야지! 왜, 왜 형, 너만 그렇게 외롭게, 내가, 가수 되는 거랑 너희 말고, 남는 게 뭐가 있다고…….”
“건강.”
“그것도 거짓말이잖아. 그럴 거면 뭐 하러 살아. 사는 이유가 없잖아. 최소한 너희는 구했어야지…….”
세상에, 대체, 어떻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얘, 무슨 수로, 전부. 표정을 보고 거짓말인 걸 알아챘다기에는 계속 얼굴을 박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대화 속 뉘앙스나 문맥으로 무언가를 파악한 듯싶다.
나는 얌전히 류이든이 우는 걸 바라봤다.
머리로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심했다.
아니, 지금은 셋 다 있잖아. 내가 과거의 기억을 잊으면 그만인가. 그럼 벽돌로…….
잠깐, 그렇게 되면 기지생에 대한 보은은, 젠장. 벽돌로 내리치면 간단한 문제인데, 기지생이 잘 조작해 주면…….
[기억 조작 능력은 제게 없습니다.]저런.
끼익, 이현재의 방 문이 열렸다.
눈을 비비던 이현재가 걸어오다가 우뚝 멈춰 섰다.
번쩍 뜬 눈으로 상황을 대충 파악하던 이현재가 멋쩍게 내게 말을 걸었다.
“형, 무슨 갈등 상황인지 몰라두 저는 둘 중 한 사람 편들라구 하면 좀 힘들어요.”
“…넌 내 편 들어줘, 현재.”
“그럼 이든이 형이 아무도 편이 없잖아요.”
채하민이랑 석준은 왜 확정일까.
잡생각을 하며 나는 황급히 냉장고로 달려가 아이스팩을 꺼내 왔다.
끼익. 이번엔 내 방과 류이든의 방이 동시에 열렸다.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채하민과 석준은 의아한 눈초리로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 중인가 보다.
아무리 봐도 나와 류이든이 다퉜고 내가 신인상을 탈 때 같은 상황만 제외하면 잘 울지도 않는 류이든을 울렸다는 결론이 났나 보다.
“저는 이든이 형님 편입니다―. 동화 형님은 보통 이럴 때 나쁘니까―.”
“아, 진짜요? 그럼 저는 동화 형 편으루 할게요.”
“…중립!”
망할 아침.
‘All mine’의 마지막 활동 첫째 날은, 이렇게 혼란스럽게 시작됐다. 이걸, 앞으로 총 세 번 더 해야 하는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