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8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83화(251/343)
차 안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아침에 그 일이 있고 나서, 황급히 숙소를 나오다 보니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아서 미묘했다.
“와, 벌써 막주……. 너무 짧다.”
“그러게요. 이번 앨범 저는 엄청 마음에 드는데.”
“후속곡도 예정되어 있으니까, 뭐.”
평소와 같은 대화를 나누지만, 평소와는 달리 은근히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인간에겐 아무런 해도 없지만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방 안에 파리 한 마리가 있는 정도의 불편함이 잔잔히 깔렸다.
샵에 도착해서 스타일링을 받을 때까지도.
블로센스에서 가장 싸움이 적은 멤버를 꼽으라면, 누구든 류이든을 꼽을 것이다.
이현재와 석준은 취향·성격·가치관이 아예 달라서 자주 투닥거리고, 지동화와 채하민은 한쪽(주로 채하민)의 감정 변화에 따라 서먹해지는 일이 가끔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류이든이 그룹의 일로 몇 번을 울었어도 개인의 일로 우는 걸 본 적은 없다.
멤버들과 다투기는커녕 대개는 눈치 빠르게 한발 빼는 게 류이든이다. 그런 류이든이 지동화와 아침부터 말다툼을 하고 울다니!
멤버들은 이 둘을 지켜보며.
“와, 방금 둘이 눈 마주쳤는데 어색하게 고개 돌렸다, 현재야.”
“저두 봤어요, 형.”
흥미진진했다.
저 둘의 사이가 틀어진다는 가정은 머릿속에 들어 있지도 않아서 그저 편안하게, 교통사고 영상을 보며 누구의 과실이 더 클지 토론하는 시청자의 입장이었다.
연습과 스케줄에 치이다 오랜만에 즐길 만한 유희였기에 셋은 최선을 다해 즐겼다.
“동화 형님 과실 백이야―. 확실해―.”
“사실 저두 그럴 것 같긴 해요. 이든이 형이 울 정도면…….”
“으응, 글쎄, 난 잘 모르겠다.”
“다른 가능성이 있을까요?”
“형이 울 정도 일이면, 누구 잘못은 아닐 것 같아서.”
채하민의 말에 이현재가 박 터지듯 감탄했다.
“하긴, 동화 형이 잘못해서 저런 거면, 화를 토해 냈겠죠. 하민이 형은 이든이 형 화난 거 본 적 없죠?”
“응.”
그 말에 석준이 PTSD가 온 것처럼 몸을 떨었다.
능글맞은 미소를 싹 지우고, 모든 걸 씹어 삼킬 듯한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 눈꼬리, 그러면서도 평온했던 목소리.
그 모든 걸 선명히 기억하는 석준은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연습실에서 머리끝까지 돌아서 일대일로 대화하구 돌아왔는데, 저희는 하루 동안 숨두 제대로 못 쉬었죠. 저는 그때 살벌한 기운이란 걸 처음 느껴 봤어요.”
그러나 이현재에겐 그 순간은 동경심을 갖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화가 나서 살벌한 기운을 펄펄 풍기는데도 평온한 목소리로 웃는 류이든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 싶었으니까.
“와…, 나도 보고 싶다.”
“그러게요. 저두 오랜만에 다시 보구 싶긴 하네요. 정겹구, 그립구, 참 늙었나 봐요, 저두.”
석준은 이 둘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다만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너는 아직 젊어―.”
지동화가 류이든에게 말을 꺼낼 타이밍을 호시탐탐 노리고 류이든은 아침에 있었던 일이 너무 수치스러워 지동화를 살금살금 피하는 전쟁의 현장에서, 셋은 그저 흥겨웠다.
* * *
사전 녹화가 끝나자마자 류이든이 천천히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무대 위에서 마주친 지동화가 입 모양으로 ‘대화 요망’이라고 말했지만, 자신은 아직 수치가 덜 가셨다.
아, 살면서 부끄러움이라고는 몰랐던 자신이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을까.
울어도 떳떳하게 울고, 뭘 요구해도 똑 부러지게 요구하던 자신이 어쩌다. 동생 앞에서, 질질, 짜면서, 떼를 부리다니……. 멤버들 앞에선 늘 의젓하고 싶었는데 완전히 실패했어.
잰걸음으로 빠르게 도주하던 류이든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턱. 누군가에게 어깨를 붙잡혔다.
삐걱거리듯 돌아가는 고개.
“어딜 가.”
지동화는 주변 시선을 의식하듯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화해야지.”
류이든도 마땅히 웃었다.
“하하, 당연하죠.”
속으로는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근데, 형, 저희 어디로 가는지는 알고 가면 안 될까요?”
그러나 지동화는 아무런 말 없이 뒤에서 어깨를 잡고 한참을 밀고 가다가 그들의 차 앞에서 멈춰 섰다.
“그래, 아우. 저기로 좀 들어갈까.”
방송국에 딱 하나 있는 사각지대.
하, 도축장이구나, 저기가.
류이든은 죽더라도 최후에는 당당하게 죽기 위해 자신의 발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타자마자 곧바로 따라 타는 지동화.
류이든은 의자에 앉자마자 메이크업이 지워지지 않게 손끝으로만 헤어라인을 누르며 좌절했다.
흑역사를 만든 지 몇 시간 되었다고 이렇게 다시 일대일로…….
“저를 여기로 왜 데려왔을까요……. 혹시 놀리려고 그러시나요?”
“…아침엔 좀 당황스럽긴 했어도, 고마웠는데.”
“뭐가?”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이 지동화가 툭 던졌다.
“네 꿈만큼 우리 멤버가 소중하다는 얘기로 들려서.”
류이든은 팔뚝에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그 지동화가, 이런 말을.
어안이 벙벙해서 류이든의 입은 저절로 벌어지고 고개는 저절로 올라왔다.
조심스레 지동화의 얼굴을 흘깃, 쳐다봤다. 지동화는 토할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곧바로 나오는 안도의 한숨.
그래, 저게 지동화다. 저게 내가 아는 동생이다.
형은 무슨, 나한텐 언제나 동생이다. 나보다 형 같은 동생, 그래서 의지해 줬으면 하는 그런 동생.
“맞아, 내가 널 좀 소중히 여기지.”
“…실수한 걸로.”
“나뿐만 아니라, 멤버들 전부 다.”
그래서 류이든에게는, 지동화가 아무렇지 않게 말한 과거들이 너무 슬펐다.
홀로 조용히 죽으려 했다는 말이, 그걸 아무렇지 않게 말하려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무슨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무엇으로 여겼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한때 지동화는 자기 자신을 장기판 위의 말처럼 쓰는 데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을 거고, 우리의 성공도 어느 정도 그 덕을 본 셈이다.
류이든은 그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 자기 자신에게.
“그러니까 다신 그런 생각 하지 말아 주라.”
지동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아침의 비밀을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은,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그래, 그거면 됐어. 네 말대로, 바뀐 일이잖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용서하진 않았다.
류이든은 자신이 모든 걸 포기하고 되는대로 산 것이 짜증 나서 죽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막 살 거였으면 지동화라도 구했어야지, 쓰레기다.
“그래서 네가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형.”
이게 본론인가 보다.
“뭘?”
“다른 애들한테도 말하려고.”
“준이랑 현재?”
“응, 나는, 내 이야기를 할 때는 객관적으로 못 말하겠더라고. 오랜 습관은 바꾸기 어려워서.”
류이든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너한테 제일 먼저 말했으니까.’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다른 멤버들이 슬퍼하지 않게끔 도와달라는 거구나.
“어떻게 도와줄까, 나 뼈 갈아서라도 다 도와줄게!”
이렇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다니. 류이든은 뿌듯했다.
드디어, 저 인간 입에서 두 번째로 도와달라는 말을 듣는구나. 앞으로 세 번, 네 번, 몇 번이고, 더 그렇게 만들고 말 것이다.
* * *
숙소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다 같이 모여 식탁에 앉아 있는데, 화기애애는 무슨, 화기(火氣)가 피어오르는 듯이 가슴이 갑갑해지는 분위기다.
바닥에는 이현재가 떨어뜨린 젓가락이 볼품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젓가락의 주인인 이현재는 더 볼품없었다. 입가로 내가 손수 끓인 계란국이 흐르고 있었으니까.
나는 티슈를 뽑아 혼란스러워하는 이현재에게 건네며 그 옆에 앉은 류이든을 쳐다봤다.
‘네가 식사할 때 말하자며.’라는 뉘앙스의 책망의 눈빛. 류이든은 손가락으로 ‘그만’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뭘 그만해, 망할 놈아.
“좀, 복잡하네요.”
이현재는 뺨을 닦으며 혼란스러운 눈을 눈꺼풀 뒤로 숨겼다. 꼭 감은 눈 아래로 무슨 생각이 흘러가고 있을지.
석준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고 있는데, 신비롭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감정이다.
조금 의심이라도 해 줬으면 좋겠어, 준. 이러다 내가 사기 칠 마음이라도 먹으면 네 전 재산 털 수 있을 것 같아.
“나한텐, 그렇게 자세히 말 안…….”
원망스럽다는 듯 나를 보며 꿍얼거리는 채하민.
하민, 처음 말해 준 게 너라는 사실을 조금 더 자랑스러워해 줄래. 아무리 네가 취해 있었어도 내가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모르겠니.
아침과 똑같은 부엌, 하루가 마무리되는 때, 고요하게 흘러가는 순간. 이현재가 웃었다.
“…그럼 저는, 데뷔 못 했겠네요. 형 덕분에 한 거니까.”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형이 누군지두 몰랐을 거고요. 부모님이랑 연 끊을 용기두 못 냈겠어요.”
조목조목 짚다가.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네요, 형이.”
눈을 떴다.
혼란 대신 감사함이 가득 찬 눈. 꽤 긴 시간 눈을 감고 내가 없이 어떻게 살았을지 고민했나 보다.
개운해졌는지 젓가락을 줍고, 새로 하나 꺼내, 국을 한 숟갈 떠먹었다.
내 과외생치고 이렇게 많이 틀린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하나 빼고 다 틀렸어, 현재.”
“네?”
[진짜 서운하네요. 제가 유일하게 마음을 열까 말까 고민하게 만든 주제에!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친구였거든요! 어떻게 그걸 기억 못 하지! 우리 사이가 그것밖에 안 되니, 현재야!]닥쳐, 기지생. 나중에 이현재한테 직접 말해.
“데뷔는 못 했지만, 나랑 알고 지냈어.”
입에 숟가락을 물고 있다가, 뒤늦게 내 말이 이해됐는지, 툭 숟가락이 떨어졌다.
“네 손으로 직접 부모님과의 관계도 정리했고.”
그리고 한 번 더 계란국을 흘렸다.
“나는 네가 고마워할 정도로 똑 부러진 인간도 못 됐거든.”
[맞아요! 만약에 그랬으면 저놈이 망치 들고 와서 우리 집 문을 따는 일은 없었겠죠. 참 똑 부러진 친구였네요.]“도리어, 내가 고마워했을걸. 다른 곳으로 떠나기 전에, 미련이 남았던 두 사람 중 하나가 너였대.”
그렇지, 기지생.
[맞습니다.]이현재는 손을 바들바들 떨다가 입을 틀어막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까 전과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나는! 나는 동화야!”
채하민이 끼어들었다.
“넌 몰랐어.”
“저는요, 형님!”
석준도.
“너도.”
내 단호한 대답에, 둘이 순차적으로 자기 숟가락을 툭 떨어뜨렸다.
오랜만에 저녁 스케줄이 아무도 없어서 모인 시간, 하나같이 수저로 비트라도 만드는 모양새다.
가만히 대화를 듣던 류이든이 자기 복부를 주먹으로 세차게 내리쳤다. 끄윽, 소리를 자기 입으로 낼 정도로 힘이 실려 있었다.
갑자기 광견병이 도진 게 틀림없다.
“흐하하하.”
호쾌한 웃음, 아니, 미친 사람이 웃는 것 같은 소리.
이현재가 폭소하며 다른 멤버들과 하나씩 눈을 맞췄다. ‘봤어요? 봤냐구요.’라는 식의 오만이 드러났다. 미친 사람 같아, 현재야.
“기지생 씨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형이잖아요.”
나는 밥알을 씹느라 입을 열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문학 공부하다가 형 만났나 보네요?”
끄덕.
“아…, 똑똑하게 태어나서 다행이에요. 제 유전자가 혐오스럽기만 했는데, 이젠 애증이네요.”
밥을 절반도 먹지 않았는데 배부르다는 듯이 의자에 늘어지는 이현재, 그걸 지켜보고 있던 류이든이 ‘공부, 할걸.’이라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망할 놈의 동생만 남았다. 나는 밥을 씹어 삼켰다.
“이제 너희는 다 알았으니, 협조해 줘야겠어.”
숟가락을 내려놓고 시선을 집중시켰다. 화양 씨에게 배운 억양은 정말 두고두고 써먹는다.
“뭐를요?”
“집안에 내전 났거든, 지금.”
나한테는 한 통도 안 보내면서, 너희들한테는 다 문자 보냈다며. 안 봐도 이 망할 것들, 재밌어 보여서 도와주겠다고 했겠지.
“이제 스파이네, 너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