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88)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88화(256/343)
“다음은 목화 씨가, 대답해 주세요.”
“물론이죠.”
“호랑이를 타고 가다 도중에 내리면 잡혀 먹히듯이 중도에서 그만둘 수 없는 절박한 형세를 뜻하는 사자성어는?”
기호지세(騎虎之勢).
나는 골똘히 고민했다. 과연 이건, 목화가 알고 있는 것인가, 모르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상식 퀴즈, 대체 무엇이 상식이고 무엇은 아닌가.
사실 상식이라는 말이 요즘은 ‘네가 나보다 멍청하네!’라는 비웃음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되어 버리고 말았지만, 사자성어 요즘은 잘 모르지 않나.
“다 적었습니다.”
무표정한 목화.
나는 찬찬히, 눈과 볼에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알아?”
“글쎄, 요즘 사자성어는 잘 모르잖아.”
진실.
“너는?”
“1점 앞서갔으니까 힌트 좀 줄까? 내가 좀 아량이 크니까!”
진실.
“난 몰라.”
거짓.
내가 너를 키운 시간이 헛되진 않았나 보네, 목화. 사탕을 먹지 않았다고 숨길 때부터, 나는 모두 간파했었잖아.
“그럼, 알고 있던 대로 제대로 썼어?”
목화의 얼굴에 당혹감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그걸 보자마자 나는 대답을 들을 틈도 없이 버튼을 눌렀다.
“네! 정답을 맞혔고 예측 성공! 모두 1점씩 획득합니다!”
목화는 입술을 삐죽였다.
“당황한 연기도 했는데, 왜 안 통해?”
“맞히는 게 손해 볼 일이 없으니까.”
역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언제 아는 게 나올지, 모르는 게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목화 입장에서 굳이 아는 상황에서 도박을 걸 이유는 없다.
목화 놈은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숨겼다.’라는 정보를 내게 주고, ‘들통나서 당황스럽다.’라는 연기까지 해 가며, 내 실수를 바랐나 보다.
“실수 좀 해 주지 그래. 동생 이겨서 뭐 해?”
“소원권 얻어서 어깨 안마권 10장으로 교환할까 생각 중이야.”
“늙은이.”
“담소 나누는 중에 죄송하지만, 저도 진행을…….”
“네.”
나는 미소 지으며 류이든을 노려봤다.
어딜 감히, 배신자가 껴들어, 내 눈빛을 본 류이든이 폐 속 깊숙한 곳까지 숨을 들이마셨다.
“동화 씨, 지금 1점 차로 지고 있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얼른 이기고, 숙소로 돌아가, 저희 팀 리더에게 자랑하고 싶습니다.”
“…네, 그래요. 다음 문제입니다, 동화 씨. 세계 보건 복지 기구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는 생물은 이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모기겠지.
이 방송의 스토리 흐름은, 장기―팔씨름―퀴즈쇼 순서로 이어지며, 목화가 스스로 얼마나 성장했는지 내게 보여 주려는 장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예의일 테다.
* * *
지목화는 생각했다. 형이 할 수 있는 선택지를.
형은 이기기를 원하니까, 1점 차이를 메꾸고 더 나아가 점수를 벌리려 들겠지.
그럼 전략적으로, 일부러 틀리는 것보단 지목화가 모르는 문제가 나올 때를 노리는 편이 합리적이다. 확실하게 1점을 얻어낼 수 있는 상황이니까.
첫 번째 수를 도박으로 던졌을 거라는 예감이 맞아떨어지고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더 줄어들었겠지.
저 문제의 답을 모를 리가 없다. 맞힐 것 같은데, 그게 합리적이라는 생각은 드는데…….
“다 적었습니다.”
문제의 답을 모를 리가 없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도 할 수 있는 생각을 형이 하지 않을 리가 없다는 게 걸렸다.
혹시 이렇게 생각할 걸 예측하고 틀린 답을 냈다면.
“예측하기 전에 질문하시겠어요?”
“네.”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형, 난 비밀이 싫어.”
“그런 것 같아.”
그러지 않고서야 일을 이렇게 크게 벌였겠냐는 눈빛.
역시 자기도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왜 이 난리를 떨고 있는지.
“비밀 중에 내가 모르는 건 모두 몰랐으면 하고, 내가 아는 건 나만 알았으면 좋겠거든.”
지목화는 형의 양심을 툭툭 건드렸다. 이든이 형한테 말한 건 분명하니까.
“어떻게 이든이 형은 아는 걸 나는 몰라? 정말 불공평하다.”
“…그러게.”
“그러니까 1점만 더 줘. 장기 둘 때도 말 안 떼고 그냥 했으니까.”
지목화는 안다. 지동화의 가장 큰 약점은 자신에게 약하다는 점이라는 걸. 떼를 쓰면 어지간해선 들어주고, 자기가 손해를 봐도 감수한다.
지목화의 투정에 지동화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피식 웃고는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예! 지목화는 환호했다. 1점 더 따고 들어가면, 자신이 무조건 이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그럼 다음 질문에 예, 아니요, 둘 중 하나로 대답해 주라.”
끄덕. 약속은 성사됐다.
“제대로 적었어?”
“아니.”
곧바로 예측 버튼을 눌렀다.
미리 생각해 온 전략 중 하나, 떼를 쓰기.
어렸을 때부터 사탕 하나만 더 먹고 싶다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하면 결국엔 하나 더 꺼내주는 게 형이다. 물론 두 번은 어림도 없지만.
침묵이 흐르고, 류이든이 발표를 외치는 순간, 화면에 ‘모기, X’라는 표시가 떠올랐다.
“정답, 그리고 예측 실패, 동화 씨가 2점 획득합니다.”
지목화는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자기가 뭘 당한 건지 감이 오질 않았다.
어차피 맞는 답을 적어 냈으니, 자기가 손해 볼 일은 없다고 생각해서, 지금 동생한테, 거짓말을…….
“…세상에.”
삐걱 소리가 날 정도로 뻑뻑한 고개를 돌리자, 온화하게 웃고 있는 형이 보였다.
“다 컸잖아, 목화.”
어리광부리면 받아 주던 형은 어디 가고, 냉정하게 자기를 쳐다보는 형만 남았는지.
지목화는 가슴 깊숙이서부터 어떤 감정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아, 이게 뭘까, 기쁜 것 같은데. 살면서 배신당한 게 기쁠 일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저 배신은, 절대 봐줄 생각이 없다는 의사 표현이고, 문자 그대로 ‘다 컸네.’라는 뜻이니까.
어린애랑 말싸움을 하는 데 진심이 되는 인간은 아니니까.
한껏 유지하고 있던 무표정이 무너져 내리고, 진짜 미소가 튀어나왔다.
우리 형은, 이 방송의 목적이 비밀 밝히기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구나.
“형, 나 지금 감동받았어.”
그러자 지동화도 무표정을 지우고 씩 웃었다.
정말, 냉한 얼굴이 웃으면 저렇게 따뜻해지는 것도 신비로운 일이다.
“나도.”
단 한 번의 배신으로 이뤄낸 감동.
이곳에 있는 모두, 형제만을 제외한 모두가 뭔 개소린가 싶을 뿐이었다.
* * *
합리적인 계산과 의심, 그리고 예상과 실패가 오가며, 마지막 한 문제만을 놔둔 상황.
“현재 12 대 12로 동점!”
류이든이 박수 치자 지목화도 따라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여기까지 끌고 오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으나, 카메라 앞에서 지칠 수는 없으니까.
반면 지동화는 똑같이 박수를 치고 있었지만, 달리 지친 기색은 없었다. 평소 살던 대로 살면 되는 게임이라서 그랬다.
흥미진진한 상황, 류이든은 마지막 문제를 보면서 웃었다.
“목화 씨! 승리를 눈앞에 둔 상황이에요!”
“소원권을 얻으면 형을 제 노예로 일주일 정도 부릴 예정입니다.”
“안마권으로 교환하겠다던 동화 씨랑 사뭇 비교가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전 동생이니까.”
“네, 저도 누나한테 개길 때 그런 핑계를 자주 대요. 그럼 동화 씨는 생각의 변화가 좀 있으신가요?”
“네. 이기면 제가 숙소에 가서 할 작업이 남았는데, 도와 달라고 할 예정입니다.”
“…그, 렇군요.”
커흠, 헛기침이 절로 나왔다.
류이든은 ‘작업’이라는 게 자기 시체를 치우는 일은 아닐지 조심스레 의심하면서 마지막 문제를 꺼냈다.
“목화 씨, 문제 드릴게요.”
지목화는 떨렸다. 곧 다가올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유럽에서 르네상스가 가장 먼저 시작한 국가의 이름은?”
마지막 상황에서 동점, 정답은 이탈리아.
일부러 틀리는 선택지 따위는 고를 수 없다. 맞혀야만 최소한 동점으로 끝나고, 일부러 틀렸을 때는 패배하는 수가 있으니까.
‘무승부가 본전’과 ‘잘못하면 패배’라는 선택지 사이, 무엇을 고를지는 자명하다.
“…다 적었습니다.”
그러자 늘 해 오던 대화도 없이 지동화가 곧장 화면을 눌렀다.
“예측 끝났습니다.”
“네, 좋아요! 확인해 볼까요!”
그리고 화면에 떠오르는 ‘이탈, X’라는 글자들.
저런, 세상에, 지목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 읽혔네. 적어도 무승부는 피하고 싶어 하는 심리까지.
“오답, 예측 성공, 동화 씨 1점 획득합니다!”
예산이 부족했는지(실제로 세트장에 과투자했다) 류이든이 직접 꽃가루 바구니를 들고 지동화에게 던져 주었다.
초라한 단상 앞, 초라한 꽃가루 아래, 지동화는 자기 뺨을 문지르며 굳은 근육을 달래 주고 있었다.
“우리 형이지만, 진짜 독해.”
거기까지 읽혔다는 건 이번 게임의 승부가 전적으로 지동화 손에 달려 있었다는 소리다.
“재밌었다.”
뺨이 다 풀렸는지 지동화는 지목화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환한 미소에, 재밌었다는 말까지, 살면서 동화 형이랑 했던 게임 중에, 진심으로 재밌었다고 말한 적이 있던가.
그래, 1점 차로 졌다는 사실이 소중한 것이다.
다음엔, 조금 더 확실한 게임을 가져와서 목동의 놀이에서 이기고 말겠다고, 지목화는 다짐하며 마주 웃어 줬다.
* * *
목화가 인터뷰를 촬영하러 간 시점, 나는 볼일이 남은 류이든 앞에 섰다.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던 류이든을 붙잡고 아무도 없는 대기실에 집어넣었다.
“류이든.”
“형, 성 붙여서 부르면 이든이 속상해요…….”
“3인칭은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니야.”
경멸 어린 시선에 류이든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신뢰의 대가는 무겁다고, 예전에 말한 적 있지 않나. 그런데 어떻게. 차라리 이중 스파이인 걸 밝혔으면 이렇게 치가 떨리진 않았을 텐데.
“제가 미쳐서 형을 배신하는 선택을 했지만, 이유가 있어요!”
“말해 봐.”
“우선 목화 씨가 마음고생하는 게 동질감이 느껴지고, 얼마나 고생했을지 아니까…….”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반면 류이든은 앉아도 되는 걸지 고민하는 눈빛이었으나, ‘앉아도 괜찮다’라는 한마디는 해 주지 않았다. 서 있으라고 한 적도 없으니까, 알 게 뭐람.
“그리고, 그게, 동화 형 과거 사진을 준다고 하길래! 제가 또 동화 형 좋아하기로는 업계에서 소문이 자자한 인간이잖아요? 어떻게 참고 넘어가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당당해지기로 마음먹었는지 류이든이 움츠러든 몸을 쫙 펴며 배 째라는 식으로 나섰다.
동질감은 기반으로 깔려 있는 감정이고, 그게 배신의 본 목적이었구나.
“말하면 내가 줬겠지.”
“…진짜?”
류이든은 기대와 함께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였다.
달라고 했으면 줬겠지. 이 정도도 공유하지 못할 신뢰 관계는 아니었으니까.
“이젠 아니지만.”
이런 배신은 참 옳지 않다. 감동도 재미도 없는, 그저 사리사욕만을 위한 배신이라니. 사회가 병드는 원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홉스가 와서 봤어도 ‘저렇게 이기적일 걸 가정한 적은 없는걸…….’이라며 고개를 젓겠어.
“…이제 아니야?”
나는 미소 지어 줬다. 뺨 근육을 오래 부여잡고 있었더니 오른쪽 입꼬리가 파르르 떨려서 비웃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너한테 쓸 소원권이 하나 남아 있었지, 형.”
“와, 동화 형, 잠깐만, 진짜 미안. 뭐 시킬지 모르겠어서 너무 불안한데.”
그러니까, 신뢰의 대가는 무겁다고, 망할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