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8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89화(257/343)
개인 인터뷰 촬영을 마치고 나오자, 목화가 편안한 차림새로 날 맞아줬다.
회사끼리 같이 만든 컨텐츠라 그런지, 이후 스케줄이 없는 것도 동일해서 느긋하게 대화를 할 시간이 찾아온 셈이다.
“이든이 형이 나한테 하소연했어.”
배신자는 내 동생 주변에 얼쩡대지 말아 줘.
“뭐라고?”
“비밀은 지켜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계속 우는 시늉 하시더라. 뭘 했길래 저러셔.”
“아무것도.”
정말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
고민 좀 해 보고 싶거든. 어떻게 하면 엿 먹일 수 있을지. 화는 가장 냉정할 수 있을 때 표출해야 한다는 말은 늘 옳은 법이다.
“밥 먹으러 갈까.”
“오늘은 내가 사.”
“소원권 쓰면 내가 사게 해 줄 거야?”
가방을 메다가 멈칫, 손이 굳어 움직이지 않는다.
자기가 뭘 들었냐는 듯이. 그 힘든 게임을 모두 끝내고 얻은 소원권인데 그럴 수 있냐는 듯이.
“…그렇게 막 써? 무슨 작업 도와 달라며.”
류이든 위협하느라 그렇게 말한 거지, 너한테 바라는 건 그렇게 많지 않거든.
딱 하나, 부디 오늘 들을 이야기에 놀라지만 않았으면 할 뿐이다.
“작업은 혼자 하게.”
“어려운 건 아닌가 보네.”
“세상에서 제일 쉬운 작업이라.”
“좀, 나한테 기대치를 높여 봐. 누가 보면 내가 무능한 줄 알겠어.”
목화는 억울해 보였다. 소원권까지 써서 자신에게 부탁하려던 게 그런 일이었냐며.
이렇게 개방된 공간만 아니었다면, 장황하게 여기서 모든 얘기를 해 주고 싶었다.
“이제 가자.”
불만스레 나를 보다가, 불퉁하게 중얼거렸다.
“오늘은 얻어먹을 테니까, 소원권은 조금 더 소중히 해 줘. 혹시 모르잖아.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을지.”
“무슨 일이 있어도, 어차피 도와줄 거잖아.”
내가 살면서 너한테 소원을 빌 일이 뭐가 있고, 또 불만이 생길 일이 뭐가 있을까.
만일 네가 범죄를 저지른다고 해도, 소원을 빌진 않을 거다. 설득하고, 네 힘으로 제정신이 되길 기다리며, 네가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는 걸 지켜보겠지.
내가 업어 키운 내 동생은 범죄를 저지를 일도 없겠지만, 자력으로 바른길로 되돌아올 힘이 없는 인간도 아니다.
동생에게 거는 신뢰는, 수십 번을 배신당하고 나서도 여전히 내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럼 나중에 내가 형 때리려고 할 때 막는 용도로 써.”
“내가 맞을 만한 짓을 하지 않았을까.”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소원권이 의미가 없는 것 같다는 확신이 드네. 목화도 동의했는지 설득된 표정이었다.
“그래서 식당은 어딘데?”
아, 그러고 보니.
“비밀을 얘기해도 안전한 곳.”
그리고, 조금 전에 나눈 대화가 모조리 쓸모없게 되는 곳.
* * *
낮은 단독 주택. 한적하고 조용한 곳.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서 큰맘 먹고 구매한 집.
내가 관리할 시간은 없어서, 업체를 통해 보안과 청결을 유지 중인 이 세상에서 가장 안심되는 장소.
덕분에 흐르는 시간 속에 멈춰서, 옛날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문화유산 관리하듯이 관리하는 중이니까. 말년에 이 집 근처에 실버타운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아.
한 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목화가 집 이곳저곳을 보며 설레했다. 어렸을 때 식탁 앞에서 본 표정이랑 너무 닮았다.
이 집이 그런 것처럼, 목화에게도 변하지 않은 점이 있는 것이다.
“난 비싼 음식보다 형 음식이 더 입에 맞더라.”
“그거 먹고 컸으니까.”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들 하니까.
십 년을 타지 생활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면 가장 먹고 싶은 게 괜히 집밥일까.
집에 들어가서 불을 켜자 지난번에 나왔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서 오늘 메뉴는?”
“닭볶음탕.”
“역시. 재료 보면서 그럴 줄 알았어.”
마치 과거의 언젠가처럼. 부엌에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재료를 꺼내 놓으니, 한결 사람 사는 집 식탁 같다.
앞으로 세 시간 정도만 흐르면 모습뿐만 아니라, 집에 흐르는 냉랭한 분위기도 사라질 것이다.
“난 뭐 하면 돼?”
“말동무.”
“아, 죄책감 느껴지잖아. 둘 다 일하고 왔는데.”
“늙은이한텐 그게 최고라서.”
“그걸 또 맘에 담아두고!”
짜증 난다는 말투였지만 얼굴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저 즐거워 보여.
닭을 손질하려 꺼내며 물었다.
“그래서, 나한테 류이든 얘기 알려 준 저의는 뭐야.”
나야 고마운 일이지만, 거래를 하는데 조건을 지키지 않아서야 되겠니.
목화는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알아서 도마와 칼을 꺼내 내 앞으로 내밀었다.
“음, 이런 단어 쓰면 형이 싫어할 것 같긴 한데.”
“뭔데?”
“꼬와서.”
목화야. 비속어잖아.
“…왜?”
“말했잖아.”
채소를 꺼내 물에 씻으며 목화는 웃었다.
“세상에 비밀은 나만 알든가, 아무도 모르든가. 둘 중 하나여야 한다니까.”
목화는 자기도 도마 하나와 칼 하나를 챙기더니 양파를 반으로 잘랐다.
“이든이 형은 아는 눈치길래, 한번 호되게 당했으면 좋겠더라.”
칼 들고 그렇게 말하면서 웃으면, 참, 그렇네.
“너한테도 말해 줄 생각이었어.”
“순서가 틀렸으니까.”
“마침 결심했을 때 바로 눈앞에 있던 게 류이든이라.”
만취한 채하민에게 밝혔던 건 말하지 말자. 그건 반쯤 잊힐 각오가 있어서 할 수 있었던 얘기니까.
“아, 같은 그룹을 했어야 하는데. 하민이 형이나 다른 분들도 다 알아?”
진솔해져야만 한다.
“…응.”
우뚝 멈춘 칼질, 닭볶음탕에 들어가는 양파는 적당한 크기로 썰면 되는데, 거의 다질 기세로 썰어 댔다.
다진 양파라니, 닭볶음탕의 혁신이네.
“그럼, 밥 먹으면서 들어봐야겠다, 나도.”
탁, 칼질이 끝나고 목화는 나를 보며 싱그럽게 웃었다.
“형이 왜 아이돌이 된 건지, 그리고 뭐길래 나한테 그렇게까지 숨겼는지.”
말해 주려는 건 진즉에 눈치챘네, 우리 동생.
역시 다 컸다. 내가 얼마나 추한 인간인지 알아도, 그리고 얼마나 멍청한 선택을 해 왔는지 말해 줘도 상관없을 만큼.
[추하다니요. 말씀이 심합니다.]너는 조금만 기다려 줘. 체험판의 기회가 곧 있을 테니까.
* * *
절반 정도 밥을 먹었을 때, 형은 말문을 열었다.
“원래 이런 날도 없었어, 목화야.”
닭볶음탕이 맛있어서 입에 욱여넣던(정확히는 최대한 복스럽게 보이려고 노력 중이다) 지목화는 숟가락을 입에 넣은 그대로 뭔 개소리냐는 눈이 되고 말았다.
“꽤 긴 이야기니까, 천천히 들어줘. 너무 놀라지는 말고.”
여전히 숟가락을 넣은 채 지목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저토록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작한 적이 있던가, 굳이 숨길 이야기니까 그럴 만도 한가.
꿀꺽 삼키고, 숟가락을 빼내 당당하게 소리쳤다.
“절대 안 놀라지. 듣고 싶었던 얘기 듣는 건데 왜 놀라.”
형은 ‘절대 그럴 리 없지만.’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뭐길래 저렇게까지.
“형은 딱 기다려, 사안이 중하냐 중하지 않냐에 따라서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
그러니까, 절대로 놀라지 않을래.
형이 저렇게 확신하는 걸 보니, 오늘 형에게서 패배했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은근히 자존심을 세우게 되는 지목화였다.
그러나 자존심은 무슨, 지목화는 형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에 잠시 멍해졌다.
“…그러니까.”
형이 미친 건 아닐 테고, 못 보던 새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도 아닐 테고, 마땅히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일 텐데.
“그러면.”
원래 우리들은 평생 떨어져 살았다고, 아마도 자기가 도망쳐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하는 형의 말을.
“형은.”
그렇게 도망치고 살 거면 잘 살기라도 할 것이지, 평생 후회만 하면서 연구에 찌들어 폐인 몰골이 됐다는 말을.
“나한테.”
그러고는 웬 기상천외한 곳으로 끌려가서는 스물아홉 살짜리의 자신을 여기로 보내 버렸다는 말을.
“진짜 나빴다.”
믿으라고?
지목화는 쉽사리 그럴 수 없었다.
자신에게 형이란 사람은 언제나 버팀목이 되어 줄 사람이라고, 잠시 떨어져 지냈던 짧은 시간 동안에도 굳건하게 믿고 있었으니까.
“미안.”
형은 그저 진심을 담은 눈으로 나를 쳐다볼 뿐, 어떤 부정도 내뱉지 않았다.
“…형이, 두 명인 거야?”
“응. 서로 다른 삶을 살고는 있지만.”
“진짜, 어쩌지. 그 형한테 가서 명치 치고 싶어.”
약간 안도하는 형.
“지금 형 명치도, 엄청 때리고 싶고.”
곧바로 얼굴이 굳는 형.
“소원권 써?”
“…조금만 기다려 봐.”
지목화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았다. 자신은 형이 도망쳤다고 금방 포기할 성격이 못 된다는 걸.
정확히는 평생에 걸쳐서 찾아 헤매다가, 형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울었으리라는 것도.
결국, 평생에 한 번을 못 이긴 것이다.
가진 수단을 전부 써서 찾아 헤맸을 텐데, 그저 ‘집이나 삶의 터전에 정을 붙이기 싫다.’라는 단순한 목적 하나로 피해서 살았던 형한테 진 거야.
“내가, 꼭, 언젠가, 형을 이길 거야.”
지목화는 단어 하나하나를 짓씹듯 뱉었다.
“다른 형이 있다는 거기도 내가 따라가서, 명치 칠 거야.”
아직 어안이 벙벙하지만, 자기 형이 멍청한 선택을 하면 지목화는 망설임 없이 때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음.”
“오늘부터 과학 공부하면 돼?”
형은 그에 잠시 고심하다가.
“직접, 물어보는 건 어때.”
“…직접? 저 멀리 있는 형이랑?”
괴상한 소리를 했다.
“나는 그대로 전달하기만 할 테니까.”
“그래도 돼? 무슨 규칙 같은 거 있다며.”
“자기가 감당할 거라고 했어.”
거기까지 가서도 형은 그런 식이구나. 전부 자기가 감당한대.
지목화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자신은 경험하지 못한 사건, 평생을 홀로 살던 형에게 무슨 말로 포문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낯설다. 자기가 아는 형이 아닐 것만 같아서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자기 인생을 전부 바치고, 그것도 모자라 죽은 후에도 단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서 산 형이다. 그 목표는 바로 자기 자신이고.
지목화는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걸 느꼈다.
오늘 먹은 닭볶음탕의 맛은 기억도 나지 않고,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까 고민하다,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말해 주고 싶어.
딱 그 생각 하나뿐이었다.
“그럼, 이제부터 읽을게.”
형은 허공에 눈을 옮겼다. 책을 읽는 것처럼 눈동자를 움직이다가, 망설이듯 입을 달싹거렸다. 그리고 한참을 고민하다 마침내 한마디 했다.
“사랑하는 동생아.”
오글거려 죽겠다는 눈.
자신의 의지가 아님을 강하게 피력하는 형의 눈빛.
“오랜만이네.”
지목화는 대뜸 눈에 물이 고였다.
저 짧은 한 단어가, ‘오랜만’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의 부피를 갖고 있는 단어인지 지목화는 알 수 없었으니까.
“지금, 형이, 그러니까, 늙은 형이야?”
눈앞의 형은 단어 선택이 웃긴지 미소를 지었다.
“응.”
“…옆에 누구 없어?”
“로봇 여우랑 강아지, 토끼랑 공룡 한 마리씩 있지. 내가 직접 만들었거든.”
외로울 것 같아.
눈앞의 형도, 그 형이 보고 있는 텍스트 속의 형도, 자신이 없는 동안 너무 외로웠을 것 같아서, 지목화는 눈물이 났다.
“그런데 목화야.”
“…응.”
형은 눈앞에 있을 텍스트가 의아한지 고개를 한 번 갸웃거렸다.
“네가 진 게 아니라, 내가 진 거지.”
그제야 진짜라는 실감이 났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마음을 읽어.
“난, 네 생생한 목소리를, 내 두 귀로 한 번 더 듣는 게 꿈이었거든.”
지목화는 답을 할 수 없었다.
“한 번 더 대화하고 싶었고, 밥도 해 주고 싶었거든. 그 닭볶음탕, 내가 해 주라고 징징댄 거야.”
형은 한참이나 입을 열지 않았다.
지목화는 멍하니 형의 입술만을 바라보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러니까 내가 진 거지. 이긴 동시에 졌거든, 난.”
그렇게 말하는 형은 너무 씁쓸해 보였다.
형조차 알지 못하는 것. 동시에 늙은 형은 알고 있는 것.
승리와 패배를 결정하는 것 자체가, 저 형에게는 꿈과도 같은 일인 셈이다.
“그리고 망할 동생아.”
자기 입을 틀어막는 형.
망할 동생이라는 말이 자기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게 싫어 죽겠다는 뉘앙스였지만, 약속했던 대로 어떤 말도 첨언하지 않고 그저 읽기만 했다.
“여긴 사람이 살 곳이 못 되거든. 올 생각은 하지도 마.”
끝까지, 저 형은, 정말. 모든 걸 자기가 감당하려 한다. 그러는 자기는 거기서 살고 있는 주제에, 자기는 사람도 아니라는 거야, 뭐야.
“닥쳐, 어떻게든 따라가.”
독기가 차올랐다. 어떻게 거기서, 혼자 살게 내버려 둬.
“…아니, 기다려 줄래.”
그리고 잠시 또 정적이 흘렀다.
“네 눈앞에 있는 인간이 약속했거든.”
형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남은 말을 이었다.
“네 곁에 보내 주기로. 딱 기다려. 가자마자 명치부터 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