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9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90화(258/343)
‘기지생.’
[네.]‘어때.’
[감질납니다.] [너무 좋고요.] [그리고 이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목화가 울고 있는 와중, 기지생은 미칠 듯한 속도로 텍스트를 보냈다.
이 정도로 빠르게 알림창이 뜬 건, 예전에 기지생이 자기 터전을 테러하고 나한테 그 과정을 설명할 때 이후로 처음이다.
기지생은 어째서 자신이 누리지도 못할 행복을 내게 줬을까.
결국 목화 때문일 것이다. 평생을 자길 기다린 동생을 보며, 나라도 보내기로 결정한 거겠지.
다른 놈들이 왜 내게 답답해하는지 알겠다. 선택을 할 때 자기는 배제하고 하니까.
아무리 감정을 되찾니 뭐니 해도, 자신이 직접 겪을 일도 아닌 걸, 오로지 남을 위해서 그 긴 시간을.
미친놈이 분명하다. 거기에 공감하고 있는 나도 똑같은 놈이다.
‘아직인데.’
아직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체험판, 얼리 엑세스. 내가 너만큼 고생하고 열어 줄 미래의 예고편이다.
[못 한다니까요?]‘네가 한 것보다 오래 하면 어떻게 되겠지.’
[못 본 새 낙관적으로 변하셨네요. 저는 이미 만족했습니다. 당신이 행복한 것도 좋고, 지금 저도 행복해서 좋습니다.]‘…음, 목화 심정을 조금 알 것도 같네.’
[네?]‘믿어 줘, 기지생.’
[자기도 자기 잘 안 믿잖습니까? 제가 못 하는 것과 당신이 못 하는 건 어느 정도 비슷하지 않겠습니까?]‘그러게.’
나는 웃음이 샜다. 저 말로 무엇까지 내포하려 했는지도. 자신이 못 했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그런 심보가 보여서 조금 안타까웠다.
왜 확정 지을까, 나는 알지 못하는 영역이라 모르겠다.
“형.”
“어느 형?”
“늙은 형.”
[응.]나는 텍스트를 그대로 읽었다.
나지만 나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람을 대변하는 건 기묘한 기분이 든다.
혹시 옛 역사 속의 접신이 이런 것 아니었을까. 절대 믿지 않을 미신이 맞을 가능성을 고민하게 된다.
[왜.]“내가 기억을 못 하잖아, 등신아. 기억하게 해 줘!”
악에 받친 목화.
슬픔과 분노의 극한에 다다른 인간의 얼굴이다. 그런데도 잘생긴 걸 보면, 정말 내 동생 말고 누가 아이돌을 해야 할까 싶다.
기지생이 내게 작곡 능력 같은 선물을 주지 않았다면 나 같은 인간은 엄두도 못 냈겠지.
[그건 네 앞에 있는 사람한테 부탁해야지.]“…그럼 기억해서, 형 여기로 오자마자 때려도 돼?”
[나도 한번 맞고 싶었어. 얼마나 부러웠는데. 지금은 아픈 것도 못 느끼는 상태라.]나한테 말할 때랑 말투가 이렇게 다르다니, 놀라울 지경인걸.
입은 쉼 없이 놀리고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잡생각을 하며, 최대한 이 대화에서 벗어나 있으려고 노력했다.
이건, 아직은 무능한 내가 기지생에게 마련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대화의 기회니까.
조금만 더 유능해지면 좋겠어. 내가 경험한 모든 걸, 내게 다시 선물로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럼, 진짜 믿고 기다릴게.”
[응.]“…고마워.”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끝이야?”
“그런 것 같은데.”
나는 텅 빈 허공을 바라봤다. 더 얘기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무리 불러도 응답이 없다.
무슨 생각 중인지 알겠기에 더 부르진 않았다.
“실감이 안 나.”
“그래?”
목화는 영혼이 나가 있었다. 갑작스레 벌어진 일들이 버거워 보였다.
“사실, 뭐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고……. 처음엔 형이 미쳤나 싶었는데, 괜한 소리 할 사람은 아니니까…….”
“나도 잘 몰라. 기지생만 알거든.”
“기지생이라니, 이름 따로 있잖아.”
그러다가 문득.
“아니, 근데 그럴 거면 형이 나 내보내기 전으로 되돌렸어야 하는 거 아냐? 왜 3년이나 떨어져 지냈어, 우리.”
매우 합리적이다.
“나도 안 물어봤어.”
“왜?”
“이미 과분해서 투정 부리기 뭣하길래.”
아마 실험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아닐까.
내가 없는 동안 AI로 괜찮은지 실험했다고 하니, 아마 그때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목화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그러자 아주 작은 알림창에 [그렇습니다. 아예 어릴 때를 고려해 봤는데, 그러면 당신이 못 버팁니다.]라는 문구가 작게 적혀 떠올랐다.
“…하, 또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 자기만 아는 이유.”
“그런 것 같―”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목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툭 끊겼다.
“그 전에, 형.”
“응?”
“난, 형을 너무, 때리고 싶어.”
웃지 말아 줄래, 목화야.
“…그래.”
나는 이미 다 식은 밥상에서 일어섰다. 양팔을 벌리고 어느새 앞까지 다가온 목화를 맞이했다.
목화는 내 어깨를 왼손으로 붙잡더니 오른손 주먹을 꽉 쥐었다.
몸을 뒤틀고, 하체의 회전력을 실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주먹.
나는 복부에 힘을 줬다. 류이든의 트레이닝을 통해 기른 근육의 방어력을 믿는 수밖에 없다.
이내, 퍽, 소리와 함께, 세상에, 류이든, 돌팔이. 아무런 도움도 안 되잖아, 방어에. 믿을 게 없어서 또 류이든을 믿는 꼴이라니.
나는, 컥, 소리와 함께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진짜 다 컸네, 목화. 예전에 맞았을 때보다 더 아파, 망할.
“난, 평생을 그렇게 보낸 형이나, 십 년 정도 그렇게 보낸 형이나, 다 이해 못 해.”
“…응.”
“그럴 거면 잘 살기라도 했어야지, 둘 다 엄청 고생하면서 산 것도, 다 이해 안 돼. 그런 꼴이 내 눈에 보였으면, 난 형을 반쯤 죽여 놨을걸.”
“기쁘게 맞을, 자신 있어.”
숨이 툭툭 끊겨서 나와 목소리가 흔들렸다.
목화는 내 앞에 쭈그려 앉았다. 나는 복부에 남은 통증조차 잠시 잊고 고개를 들었다.
너무 애처로워 보여서 어깨라도 토닥여 주고 싶은데, 쉽사리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지만 목화가 말하는 외롭게 죽어가는 나는 이제 없는 일이다.
오로지 나만 알고, 정확히는 기지생만 기억하는 일이 되고 말았다.
“형이 돌아와 줘서, 고마워.”
“그건 늙은 형이.”
“그리고 성정에 잘 맞지도 않는 아이돌이 된 건 형이지. 몸 움직이기 싫어하고, 책 읽는 거 좋아하고, 남 앞에 나서는 것도 별로잖아.”
“뭐든 했을걸.”
다가올 미래가 이런 줄 알았으면, 뭔들 못 했을까.
심각한 범죄만 아니면 고민도 없이 저질렀을 것이다.
만일 슈퍼마켓 도둑질 같은 잡범으로 살다가 류이든에게 검거돼서 면회 온 목화와 재회한다고 해도, 할 만할 것 같은데.
“나한테 찾아와서 사과하는 것만 빼면, 뭐든 했을 거라는 그 마인드가 제일 싫어.”
입을 다물었다. 도무지 할 말이 없다. 이유는 이미 말했지만, 목화는 절대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니까.
“하, 나 좀, 효도하게 해 줘, 형. 왜 강제로 불효자식 돼야 해.”
“응.”
“앞으로, 나한테 미안한 일 있으면, 무조건 말해. 난 절대 실망 같은 거 안 하고, 형이 미워질 리도 없다고. 만약에 형이 누구 죽이고 와도 나는 철저하게 숨기고 쫓아오는 사람까지 다 죽일 거라니까.”
입이 절로 움직였다.
“…세상에.”
내가 뭘 기른 거야.
“그러니까, 다음부턴 죄책감 같은 거 가지지 말고, 와서 미안하다, 한 마디만 하면 다 용서할 거야. 사람이잖아, 형도.”
“알아, 이젠.”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나를 봤다.
그럴 만도 하지. 내가 그렇게 만든 셈이다. 앞으로 또 바뀌게 하는 수밖에 없다.
“정말로.”
그러자 이윽고 의심을 거두고 밥상에 돌아가 다 식은 밥을 퍼먹는 목화. 참, 복스럽다.
“…왜 식어도 맛있어, 짜증 나게.”
네가 그거 먹고 커서 그래. 나는 차마 입 밖으로 뱉지 못하고, 마주 앉아 내 몫의 밥을 씹어 삼켰다.
“늙은 형이랑은 언제든 말할 수 있어?”
“얘가 답장만 해 주면.”
나 좀 믿어 줘. 절대 실망으로 바뀌게 두지 않을 테니까.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리든, 무슨 규칙을 어기든, 무엇을 희생하든.
지금 나의 행복한 기억이 전부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해내고 말 것이다.
[…그래요. 희망을 줬으니 그 책임을 다하십시오.]“늙은 형도 허락했어.”
“다행이다. 내가 말동무 해 줄 거야. 형이 형이랑 대화하면 계속 답답한 소리만 할 것 같으니까. 나한테 직접 연락은 못 해?”
[불가능해.]“불가능해.”
“…그렇게 확언할 정도면, 진짜 안 되나 보네. 뭐 이래, 세상이. 그럼 내 기억은 꼭 형이 지켜 줘. 그래야 그 형도 명치를 좀 때리지.”
“응.”
[뭘 안다고 입을 함부로 놀리십니까? 내 동생한테 헛된 희망 심어 주지 마십시오.]기억을 할 수 있다면 약속을 지킨 거고, 기억하지 못한다면 약속이 사라지는 거잖아.
게다가 나는 어떻게든 해낼 거라는 확신이 있다. 기지생이 그 증거니까.
원래여도 불가능했을 일을 해낸 예시가 눈앞에 있는데, 내가 하나 정도 얹는 건 할 수 있지 않을까.
* * *
목화와 하룻밤을 집에서 보내고, 아침에 숙소로 돌아오니 류이든이 무릎 꿇고 손을 들고 있었다. 그것도 현관 바로 코앞에서.
얘가 드디어 정신줄을 놨나 봐. 이 층에 다른 사람은 살지 않는다곤 하지만, 문 열었을 때 누가 보면 어쩌려고.
“뭐 해, 이든.”
“형, 왔어요? 제가 반성하는 의미에서 매니저 형이 출발한 거 보자마자 무릎 꿇었어요!”
“어제부터 꿇었어야지.”
“사실 제가 어젯밤에 준이한테 부탁해서 무릎 꿇고 침대에 앉아 있는 거 찍었어요!”
“영상?”
“…사진이요.”
“그럼 못 믿겠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데 얼마나 큰 노력이 들까, 개놈.
“진짜, 한 시간 동안, 그러고 있었는데…….”
거짓말.
“거짓말이에요. 어제 저 스케줄 끝나고 와서 같이 보드게임 했거든요.”
방문을 열고 하품을 하며 나온 이현재가 증언했다.
“네가 같이 하자며, 막냉이! 왜 그래!”
“형의 의지를 시험해 보구 싶었어요.”
파들파들 떠는 류이든.
그 덩치에 파들파들이라니, 아무리 봐도 어울리지 않아서 놀라울 따름이다. 배신감에 치를 떠는 것 같은데, 그게 내 심정인 걸, 네가 알까, 이든.
“어떻게 날 배신할 수 있어.”
“죄송합니다. 가볍게 생각했어요. 둘이 진지하게 싸운다기에는, 처음에는 가벼운 느낌이었거든요……. 반성 중이에요!”
“거짓말이에요. 어제 목화 형이 사진 보내 주면 바로 팬분들 보여 줄 거라구 설레했거든요. 반성의 기미는 없고, 어떻게 하면 형이 화를 덜 낼까만 고민하던데요?”
“…이든.”
어떻게 알면 알수록 괴담밖에 없어, 이든.
불쏘시개를 한 손에 들고 있는 느낌으로 이곳저곳을 마구 찔러 대던 이현재가 해맑게 웃고는 화장실로 들어섰다.
“저건, 진짜 거짓말이야, 동화야! 미안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한테 매달리는 류이든.
낯짝을 보니 저건 진심인가 보다.
“나는 형을, 우리 멤버 중 가장 신뢰해.”
다른 멤버가 거짓말을 한다는 게 아니라, 개라는 동물의 특성이잖아.
전래동화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개의 신뢰 관계에 대해 논하는 글이 얼마나 많은가.
“아직도.”
장난을 치기 좋아하는 놈인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배신감이 들긴 해도, 내가 철저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처음 보는 인간이었으면 몰라, 잘 알던 개다.
“…진짜?”
“하지만, 신뢰의 대가는 무겁잖아. 처음을 잘 매듭짓지 않으면, 언제든 반복될 수도 있고.”
침묵.
“나무판자 같은 거 없나.”
“…때리게?”
“날 뭐로 보고.”
세상에서, 가장, 비폭력적인 인간인데.
“그러고 보니, 판자 남은 게 회사에 있었지.”
기대해 줘, 류이든. 오늘은 W앱 단체 라이브가 예정된 날이니까 최대한 즐거운 하루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