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9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91화(259/343)
W앱 라이브가 시작되자, 인사보다 먼저 ‘?’가 올라왔다.
댓글창을 점령한 물음표들.
그 중심에는 ‘저는 동화 형의 신뢰를 배반했습니다. 모든 루미너스 여러분, 제게 돌을 던져 주세요.’라고 적힌 나무판자에 줄을 달아 목에 걸고 있는 류이든이 있었다.
모두 소파에 앉아 있는데, 홀로 바닥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류이든. 마치 멤버들이 사형 선고를 내리기 직전 같았다.
어느 정도 인원이 들어온 걸 확인한 이현재가 장난스레 포문을 열었다.
“신상 목걸이예요, 형?”
“…응.”
“잘 어울려요. 배신자인 형을 위해 준비된 아이템 같네요. 올해 F/W 시즌에 유행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형 덕분에 배신이 유행할지두 몰라요. 선한 영향력이 장난 아니에요, 형!”
청산유수처럼 술술 흘러나오는 반어법. 역시 우리 국문학계의 미래, 이현재다.
“…맞아.”
첫 번째 규칙, 모든 비난에는 긍정의 뜻을 내놓을 것.
류이든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신의 본분을 떠올렸는지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올렸다.
“저 배신자는, 여러분들을 환영해요! 단체 덥앱은 오랜만이죠?”
두 번째 규칙, 자기 자신을 칭할 때는 ‘배신자’라고 할 것. 단, 콘서트 공지 관련으로 라이브를 할 때는 예외로 한다.
“이든이 형, 나는, 형 그렇게 안 봤는데, 어떻게…….”
“저 배신자는, 엄청 후회하고 있어, 하민. 난, 난 진짜…….”
어허, 규칙.
나는 아무도 모르게 등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저 배신자는! 진짜! 반성해요!”
류이든이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든이한테… 동화가… 배신을 당해…? 역설법 무엇…?
나는 빠르게 올라가는 댓글창 속에서도 한 댓글에 시선이 꽂혔다.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떨어졌는지,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여러분, 무슨 일인지는 저 배신자가 직접 설명해 드릴게요.”
세 번째 규칙, 모든 설명은 본인의 입으로 직접 한다. 단, 늦게 오시면 모를 수 있으니, 이십 분 후에 한 번 더 한다.
“동화 형이 뭐를 촬영했는데, 이게 대결 컨텐츠였어요.”
스포일러를 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돌려 말하다 보니, 대결 컨텐츠가 된 겨울과 나무 촬영.
대결이 아니라 화합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시청자분들이 모를 거라는 게 참 안타깝다.
“그런데, 제가, 저 배신자가 준비 작업을 할 때 동화 형을 도와주는 척하면서, 상대편에게 정보를 흘렸습니다. 대결을 위해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지, 어떤 게임을 해야 유리할지, 상대편과 함께 고민했어요.”
―대형 스포.
―스포 없으면 섭한 그룹.
“사실, 대결 장면만 촬영하고 준비 과정은 촬영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저 배신자, 미리 사죄합니다. 부디 제게 돌을 던져 주세요…….”
체념에 빠진 류이든이 말을 마치고 소쿠리를 꺼내 들었다. 안에 든 건 유아용으로 몹시 안전한 공이 가득 들어 있었다.
네 번째 규칙. 얼굴을 제외한 곳에, 불쾌하지 않을 만큼, 다른 멤버들에게 공을 맞을 것.
“저희는 동화 형만 도왔어요.”
이현재가 가장 먼저 공을 집어 들어 팔에 툭 던졌다.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 그저 재밌어 보였다.
“저도.”
다음으로 공을 던진 채하민은 경악스러운 얼굴이었다. 어떻게 동화를 배신하냐는 책망이 진하게 깔린 눈이었다.
류이든이 잃은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평소 형을 존경하던 채하민의 믿음에 조금의 흠을 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채하민한테는 내 배신감을 굳이 구구절절 자세히 설명했다.
“저돕니다―!”
석준은 별생각 없어 보였다. 형이 시켜서 하는 기분. 역시 가장 선한 인간은 석준이다.
“난, 형을 끝까지 믿었어. 형이 해 주는 말이 전부 사실이라고, 그렇게.”
나는 공 대신 벽돌 쿠션을 꺼내 들어 류이든의 팔뚝을 한 번 약하게 후려쳤다.
피해 당사자인 나에 한해서 폭력이 허용된다. 이건 내가 폭력적인 게 아니라, 류이든이 한 대 때려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제가, 나빴습니다. 저 배신자는, 나쁜 개예요!”
다섯 번째 규칙. 스스로를 개로 칭하는 것도 허용. 단, 적어도 한 번은 ‘배신자는 나쁜 개다.’라고 선언할 것.
“여러분, 이 모든 건, 제가 직접 계획했답니다.”
마지막 규칙. 이 모든 건 스스로 자처했음을 밝힐 것. 거짓말이어도, 그게 그림이 예쁘잖아.
“동화가 저 배신자 때문에 마음고생 꽤 했거든요.”
―와 ㅋㅋㅌㅋㅋㅋㅌㅋㅋㅋㅋ 뭔데 ㅋㅌㅋㅋㅋㅋㅋㅋㅋㅋ
―오래 살아 볼 일이다 리더 땜에 동화가 맘고생을 하는 날이 오네
―ㅋㅋㅌㅋㅌㅋㅋㅋㅋㅋㅋㅌㅋㅋ 동화 소감 궁금해!
“제 소감이요?”
“동화야! 전부 말해 드려! 너 오늘 아침에 엄청 슬퍼했잖아!”
그랬구나. 나도 몰랐던 걸 채하민에게 배운다.
슬픔보다는 기대가 조금 더 컸던 것 같은데, 채하민의 눈에는 내 슬픔이 보였나 보다.
“전, 형이 언제나 제 편일 줄 알았어요.”
“배신자가 미안해…….”
“서로 고민 상담도 자주 하거든요. 저한테 힘든 일 있으면 먼저 물어보고, 같이 고민해 주고.”
“…….”
“그런데, 믿는 개에게 손을 물린 심정입니다.”
나는 간략하게 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든 게 하나의 유쾌한 촌극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내가 과장해서 서운해해야 된다.
그래서 원망과 배신감이 섞인 눈초리로, 입으로는 자조적인 웃음을 뱉었다. 내 처지가 초라해서 웃음이 난다는 뜻으로.
―불태우자.
―이든아, 실드가 안 돼…
―어떻게 커버 쳐 주고 싶은데… 내 최애는 오늘부터 그저 배신자…
―(돌을 던진다.)
화력이 장난 아니다.
사이사이 외국인분들 댓글과 분탕 치려는 댓글을 다 제하고 보면, 마치 중세 시대 화형이 집행되는 현장 같았다.
어떡해, 이든. 예상보다 잘 먹혔어.
나는 그런 뜻을 담아 류이든을 쳐다봤으나, 류이든은 하필 바닥에 앉아 있어서 보지 못했다.
“하하, 아, 여러분, 컨텐츠 꼭 보셔야 해요. 이든이 형이 배신자인 거 알구 보면 더 재밌어요!”
너도 안 봤잖아, 현재야. 홍보해 주는 마음은 고맙지만.
“언제 나와, 동화야?”
“글쎄, 회사에선 한 달 내로 나온다고 하던데.”
목화랑 찍는 화보 공개 전에는 나오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중앙 자리를 비웠다. 류이든이 앉을 수 있게끔.
공개 처형을 당하고 있던 류이든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무엄하다, 이든아!
―죄인이! 판관 사이에 앉다니!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저 배신자는, 죄인이지만, 진행을 해야 해요, 여러분!”
류이든이 장난스레 울먹였다. 너무 진지해지기 전에 자르는 게 옳으니까.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할게, 동화야.”
“안 받을 거야.”
“시나리오랑 다르잖아, 형!”
내 왼편에 앉아 있던 채하민이 류이든에게 한 번 더 공을 던졌다.
“받을 때까지 해야지, 형. 어떻게 동화가 믿어 주는데 배신을!”
“그러게요. 평생 밑줄 그어야 하는데, 법이 아쉽네요.”
그러면 사회면에 나오잖아, 현재. 그걸 바라지는 않아, 난.
석준은 헤실거리며 댓글창을 읽고 있을 뿐 별다른 말을 얹지는 않았다.
이쯤 오자, 류이든은 영혼이 반쯤 나간 상태가 되고 말았다.
입을 벌리고, ‘나는, 배신자, 난, 배신자.’라고만 중얼거리며 소파에 고개를 기대 혼절한 시늉을 했다.
이거, 생각보다 재밌다. 한 번 더 배신당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류이든 소동이 얼추 마무리되고, 댓글창도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다.
다만 류이든의 혼이 덜 돌아와서 가끔 ‘저 배신자는 나쁜 개…….’라는 중얼거림이 들렸지만, 알 바 아니다.
“여러분, 대형 소식.”
“두구두구두구.”
“저 배신자와 네 명의 선한 인간들이.”
그룹명 왜 그따위야. 내가 들었던 모든 그룹 중에서 가장 별로다. 삼십 년 전에도 그렇게 이름 지었으면 대중문화를 비판하는 여론 확산에 충분히 기여했을 것 같다.
“콘서트를 합니다!”
우리는 단체로 박수를 쏟아부었다.
류이든이 잠시 자신의 목에 걸린 팻말을 돌리자 ‘콘서트명 : B.P.’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사실 저희도 이제 막 준비하는 중이라, 정확한 일정은 잘 모르지만, 콘서트 이름은 확정이 됐어요.”
“B.P.”
“근데, 동화야, B.P.가 뭐야?”
“그러게.”
“지동화도 잘 모르는 이 B.P. 과연 루미너스 여러분은 맞힐 수 있을까요.”
나는 준비된 대로 말하고 있는 류이든을 보고 있자니 괴롭히고 싶어졌다. 류이든만큼 타격감이 좋은 인간은 흔치 않으니까.
“혹시 배신자는 파멸하리라, 아닐까.”
“…어, 끝난 게 아니었을까?”
“형, 낙인 효과예요. 앞으로 평생 저 말 들을 각오 하셨어야죠.”
류이든이 툭 쓰러지며 몸을 뒤틀었다. ‘미안해.’만을 중얼거리는 게 정말 많이 아파 보였다.
다들 웃는 와중, 채하민이 말을 이어받았다.
“어쨌든! B.P. 뜻 맞히기 이벤트가 진행됩니다!”
“놀랍게도 저희도 정답을 몰라요. 저 배신자는 그냥 블로센스 파티같이 뻔한 것만 생각이 들더라고요.”
설마, 그런 거겠어. 아무리 콘서트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고 내용물이 핵심이라고는 해도, 그쯤 되면 홍보하기도 껄끄럽지 않을까.
내 차례가 되었다. W앱은 기본적으로 자유지만, 이렇게 공지사항이 있을 때는 약간의 대본이 있기 마련이다.
“사실 저희가 급조한 거라 선물은 조금 조악하지만요. 선물은 바로.”
“바로 저희 미공개 포토카드. 저희가 직접 찍구 골랐어요.”
환호의 현장 속, 한 루미너스분의 댓글이 유독 눈에 꽂혔다.
―동화는… 그… 다른 멤버가 골라 줬니…?
저 불안해 보이는 말투. 내 사진 실력을 믿지 않으시나 보다.
물론 내가 내 얼굴이 뭐가 더 나은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인 건 나도 알아서 할 말은 없다.
“네, 저는 배신자가 골라 줬습니다, 여러분. 이 정도로 믿고 따르는 형인데, 너무하죠.”
“제발! 그만!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동화야아, 내가!”
깊은 반성은 큰 좌절에서 오는 법이라고 했다. 류이든이 울먹거릴 듯이 나를 보며 손을 비볐다.
역시 저 인간은 다른 멤버에게 몰이당할 때 가장 멋지다.
* * *
공지 이후에도 한참을 떠들던 우리는 예정된 시간보다 길게 하고 말았다.
활동이 끝나고 단체 W앱 라이브를 하는 건 오랜만이라 서로 풀지 못한 이야기를 한껏 풀다 보니.
그럼에도 내가 기억하는 사소한 것들과 다른 멤버들이 기억하는 큼직한 것들을 모두 이야기하지 못해서 아쉽다.
“으허, 하민아, 끝났다!”
류이든은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에 판자를 벗어던지고 채하민 무릎 위로 쓰러졌지만, 채하민이 ‘형, 저는 배신자랑 안 놀아요! 미안해요!’라고 말하며 밀어내는 바람에 이현재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내가 왜 그랬을까.”
이현재는 다정하게 류이든의 어깨를 토닥였다.
“바보라서요.”
말은, 정말, 다정하지 않았지만.
“너한테 그런 말 들으면 진짜 같아서 슬퍼, 현재야.”
“형,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것 자체가 너무…….”
“그러게. 내가…, 미쳤나 봐. 우리 그룹에서 제일 독한 인간한테 왜 개겨서…….”
“형은 한번 그럴 줄 알았어요. 동화 형이 작정했으면 이것보다 더 심하게 했을걸요.”
가만히 얘기를 듣다가 나도 류이든에게 한마디 건넸다.
“오늘 고생 많았어, 형.”
“진짜 미안해, 다신 배신 안 해. 애초에 이거 배신이라고 생각도 못 했어, 내 생각이 너무 짧았어, 사과할게, 한 번만 용서해 줘, 사랑해, 동화 형, 다음엔 이런 일 없을 거야…….”
넋 놓고 그렇게 중얼거리는 걸 누가 들으면, 정말 내가 심한 짓이라도 한 줄 알겠다.
“즐거웠어.”
그것도 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