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9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93화(261/343)
카메라의 발명 덕분에 우리는 기념하고 싶은 순간을 남길 수 있다. 어떨 때는 당사자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순간이 사진으로 남아 낯간지러울 때도 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두 살배기인 내가 홀로 일어서는 데 성공하는 순간을 기록한 사진처럼.
나도 전부 기억하지 못하는 유년 시절, 가령 신생아 시절의 내 모습 같은 건 사진이 아니었다면 말로만 전해 들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목화는 우리 집에 보관 중인 사진첩을 보며 감탄했다.
“와, 형, 이때도 눈매가 사나웠네. 몇 살 때야, 이거?”
“두 살.”
기억이 나지도 않는 때지만, 부모님의 일기를 통해 정황은 추측할 수 있다.
내가 일어서자마자 아버지는 입을 틀어막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어머니는 주접떨지 말라면서 셔터를 여러 번 누르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손대는 기계마다 망가뜨리는 재주가 있어서 사진을 찍는 건 늘 어머니의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눈매는 사나워.”
“그래?”
“정확히는 냉해. 어떻게 아기 얼굴이 이렇게 냉정해 보일 수가 있지. 혼자 일어서는 건데 누가 보면 무거운 주제로 토론하는 사람인 줄 알겠어.”
그 나이대에 혼자 일어서는 건 굉장히 무겁고 심오한 주제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어쨌든, 그래서 나는 혼자 서는 사진을 패러디하기 위해, 문자 그대로 촬영장에 혼자 서 있다.
맨몸에 재킷만 걸친 근본 없는 의상에서, 다른 의상으로 갈아입었다.
스웨터는 스웨터인데, 약간…….
나는 아직, 어째서 내 의상을 골라주시는 분들께서 하나같이 목이 훤히 드러나는 옷만 고르시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분들끼리 서로 모종의 약속을 나눈 것은 아닐까? 밀약이 성행하는 업계잖아.
“동화 씨, 촬영할까요?”
사진작가님의 말에 목화가 ‘화이팅!’이라고 입만 뻐끔거리며 빠져나갔다.
컨셉 포토 찍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렌즈 앞에 혼자 있으면 수치가 몰려온다.
“동화 씨,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뽐내 주세요. 자연스럽게 포즈 취하시면 제가 딱 잡아 드릴게요!”
어른이 뭔지 정의해 주십시오, 라는 생각은 데뷔 초에나 할 법한 생각이다.
지금은 항상 그런 모호한 요구만 받다 보니 어느 정도 숙달된 덕분에 멍청하게 되묻는 일은 없어서 다행이다.
나는 벽에 기대어 서서, 렌즈를 바라봤다.
소위 뒷골목에서 만나면 인상이 찌푸려지는 건달 같은 자세다. 대체로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요구했을 때, 건달 같은 자세를 하면 통용되곤 했다.
추측하건대, 내 얼굴에서 연상되는 어른스러움이 불량함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오, 좋아요, 약간 내려다보듯이 봐 줄래요?”
사진작가님이 바닥에 앉아 카메라를 들었다.
나는 고개의 각도를 조금씩 꺾었다. 류이든이 말하길, 나는 왼쪽에서 약간 사선으로 올려다볼 때 볼 만하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보다.
“흐, 역시 핏이 전부야……. 하체 길이가 바람직해…….”
잘 찍으시던 작가님이 몸을 점점 뒤로 기울이시다가, 갑자기 괴상한 웃음을 흘리셨다.
이런 말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변태 같아.
“어떻게 저기에 장기가 다 들어가…….”
제 배 속을 궁금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선생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작가님이 걸음을 옮겨 내 왼편에 와 섰다.
얼굴 클로즈업을 찍겠다는 강렬한 열망이 눈에 비쳐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왼편으로 몸을 틀어 고개를 벽에 기댔다.
“아, 좋아요! 시선 다른 곳으로!”
내 어깨 끝을 보듯 눈동자를 기울였다.
“아! 와우! 아주! 아주 좋아요! 유전자가 탐나요!”
세상 누가 그런 칭찬을 하나요. 인체 개조 실험을 하는 과학자가 할 법한 소리잖아.
“의자! 의자 세팅해 주세요! 동화 씨 이 위에 쭈그려 앉아 봐요!”
세상에, 의자의 용도를 벗어났다. 해체주의네.
* * *
“형, 아주 날고 기더라?”
“그만.”
내 동생한테 이런 과정을 보여 주는 건 처음이라 죽고 싶을 따름이다.
“저 선생님 피사체 따라서 반응이 확확 갈리는 분이래.”
류이든한테 듣긴 했다.
“비율 마음에 안 들면 전신샷은 기대도 못 하는 분이라고 하더라고. 어떻게든 다리를 감춰 버린대.”
“응.”
“형은 전신샷을 찍었지.”
삼단 논법으로 놀리는구나. 리틀 지동화 다 됐다.
“너도지, 망할 동생아.”
목화도 방금 전신을 찍고 왔다.
“부모님도 비율 좋으셨어?”
“글쎄.”
애초에 자기 부모님을 볼 때 누가 ‘비율이 황금비에 가깝네.’라고 생각해.
“어머니도 너무하시다. 아버지는 전신사진 하나 안 남겨 주시고. 별로 안 멋지셨나?”
“…그건 아닐걸.”
첫눈에 호감이 갔다는 일기의 내용에 따르면, 그러기 힘들지 않을까. 첫인상의 8할은 외양이 결정하니까.
“말도 안 된다. 그럼 학교 근처 공원에서 만났을 때부터…….”
“그렇겠지.”
고등학교 때 만난 연인이 서울에서 함께 대학을 다니고 결혼해, 아이를 둘 낳아 잘 길러낼 확률은 몇일까.
나는 목화의 뒤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찍을 장면의 원본 사진은 목화가 어렸을 때 내 품에 앉아 있는 사진.
덩치가, 왜 이렇게 커졌어.
“…음, 나도 좀 부끄럽네, 이건.”
내가 뒤에 앉아 가만히 있자 목화가 멋쩍었나 보다.
“뼈 좀 줄여.”
“형이 할 말이야? 형이 그 그룹 내에서 상대적으로 왜소한 편이라 그렇지, 객관적으로 골격이 작은 건 아니지.”
나는 소파에 앉아 등을 안았다.
이게, 타향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온 자식을 안아 보는 부모님의 심정이군.
이해했다. 다 컸구나, 이제 완전히 한 사람 구실을 하는구나, 싶은 마음. 빈 둥지 증후군이라도 걸리면 어쩌나 싶다.
“자, 찍을게요. 둘 다 웃어 볼까요?”
사진작가님이 해맑게 소리쳤다.
“목화 씨, 조금 뻣뻣해요! 형이랑 사이 안 좋아요?”
그랬구나.
“아뇨. 다 크고 이런 사진 찍는 건 처음이라, 뭔가.”
수치스럽다는 뒷말이 생략됐다. 다 큰 형제 둘이 이런 걸 촬영하면 수치스러운 게 보통이지 않을까.
“제가 예쁜 가족사진 하나 남겨 드릴게요. 제 작업물 중에 가족사진은 처음이라, 저 지금 상당히 떨리거든요?”
목화는 입을 열어 표정을 마구 일그러뜨렸다. 화장을 지우지 않고 얼굴 근육을 풀기 위해 애쓰는 인간의 모습이다.
“자, 그럼 자연스럽게, 아무 포즈든 좋으니까 취해 주세요.”
그러게, 다 크고 둘이 사진관에 가 본 적이 없네. 목화가 아주 어릴 때 딱 한 번 갔었는데.
“두 분 과거 사진 나온 거 보자마자 내가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어떻게 형제가 쌍으로 어릴 때랑 판박이예요.”
나는 몰라도, 목화는 정말 잘 컸다. 괜스레 내가 뿌듯해지는 걸 보니, 자식 자랑하는 부모의 심정을 또 배운다.
* * *
촬영을 마치고 대기실 소파에 몸을 누였다. 사진작가님이 열정에 불타오르셔서 그런지, 내 기운까지 빨린 것 같았다.
목화는 화장을 지우고 나와 털썩 앉았다.
“그러고 보니까 형은 고등학교 때 썰이 안 도네.”
“글쎄.”
[따돌림당했잖습니까, 우리.]동생한테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대놓고 숨기는 기색이 나서 그런지 목화가 불퉁하게 한 번 쏘아봤다.
“그럴 줄 알고 내가 알아봤지! 형은 관심 없을 것 같더라.”
“그게 돼?”
대체 어떤 수를 쓰면 나를 아는 인간을 찾아낼 수 있지.
“화양 어르신한테 부탁하니까 해 주셨어. 진짜 형은 아니었어도 궁금하잖아.”
“그게…, 되겠네.”
화양 어르신은 사려 깊으신 분이니 따돌림당했던 건 말하지 않았을 거다.
“형은 학교 나와서 계속 공부만 하니까 애들이 말도 못 붙여 봤대. 말 걸고 싶었다던데.”
“…내가?”
내가 경험했던 것과는 꽤 다른걸.
“어, 어르신이 그러던데. 듣자마자 ‘아…….’ 진짜 형이었어도 그랬을 것 같다, 싶더라.”
[조사해 보니까 진짜인가 봅니다. 사실 당신 학창 생활 따위 관심 없어서 안 봤거든요.]“이상하네. 원래는 그럴 리가 없거든.”
화양 어르신이 내 기를 살려 주려고 거짓말을 하시는 게 아니라면, 연습생이 되어서 생긴 변화지 싶다.
“재수 없다더라고.”
“왜?”
나는 제일 처음 재수 없는 놈이라는 말을 듣게 된 계기를 떠올려 봤다.
“모르는 게 있다길래 혼자 생각해 보라고 해서.”
“형이 늘 하던 말이네.”
“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씀이기도 하고.”
물론 지금은 뭐가 문제인지 안다. 세상에 우리 집안 같은 곳이 많을 리도 없잖아.
“친해지려고 다가갔는데 그랬으면 나도 좀 서운하긴 하겠다.”
“…음?”
얘는 말을 제대로 듣질 않았나 보다.
“모르는 게 있었다니까, 목화야.”
“보통 그런 핑계로 말 붙이잖아. 형은 1등 했을 거 아냐.”
우리 목화는 여전히 나를 과대평가하는구나. 그때 내 몰골을 보면 누구라도 말 걸기 쉽지 않았을걸. 세상이 역겹게 느껴졌던 시기라 표정부터 같잖았거든.
만약에 다른 게 있다면 기지생이 정정해 줬을 텐데 잠잠한 걸 보면 틀림없다.
* * *
장해진 팀장님과 PD놈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정말로 협업하는구나, 저 망할 PD놈이랑.
“자체 컨텐츠 하나 찍을 거예요. 각자 모교 찾아가는 거.”
“…네?”
모두들 내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고등학교 때는 내가 자리를 비운 상태라는 걸 아는 건 얘네들밖에 없다.
“사생활 이슈가 없는 청정 그룹이 세상 어디 흔한가 싶어서 한번 찍어 보게요. 아니다 싶으면 촬영한 거 그대로 버리면 그만이지.”
팀장님은 ‘투자금을 넣고 실패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푼돈’이라는 뉘앙스로, 느긋한 사자같이 웃었다.
권력을 갖고 자신의 뜻대로 휘두르는 사람의 자신감이 드러나는 표정이다.
요즘 바빠 회사 소식을 들을 일이 없어 몰랐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
“옆에 앉은 PD님이 인간극장 느낌의 연출을 잘하시거든요? 멘탈 수업 보면 거의 다큐멘터리잖아요.”
“상황이 약간 조작됐을 뿐!”
절로 인상을 찡그릴 뻔했다.
약간이라니. 아무리 상대적인 단어여도 그렇게 막무가내로 쓰면 어떡해.
“…저, 가서 뭐 하나요?”
류이든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냥 옛 추억팔이 좀 하는 거죠. 여기 매점에 뭐가 맛있다, 여기가 뭐니, 이 교실이 뭐니, 그런.”
“물론, 상황은 약간 조작되긴 할 거예요! 아! 말해 버렸다. 비밀인데, 원래.”
닥쳐, PD놈. 네가 하는 조작은 인간을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거잖아.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엔 채하민조차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PD놈을 쳐다봤다.
“다들 오랜만에 교복 입고 등교하는 기분 좀 내 봐요. 늙으면 교복 다시 입고 싶잖아요?”
류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늙은 놈.
“사전 조사 다 해 봤어요. 부정적으로 기억하는 선생님들도 안 계시더라고요. 그냥 가면 될 듯합니다.”
“…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콘서트를 앞두고 미리 촬영해 두는 자체 컨텐츠, 대체 무슨 촬영이 될지.
[오늘 밤 동안, 선생님들과 있었던 사건을 하나하나 보내 드리겠습니다. 외울 수 있죠?]도움을 요청하기도 전에 기지생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응, 학교는 내가 다녔던 곳?’
[네, 학교 자체는 당신이 다녔던 곳과 같으니, 따로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그래,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지금이나, 고등학교에 다녔던 그때나 본질적으로 다를 것도 없지. 말없이 등교해서 공부하다 사라진 인간에게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