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9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94화(262/343)
고등학교를 떠올려 보면, 별로 좋은 기억이 많지는 않다. 그때는 조금…, 소위 중2병 비슷한 상태여서 세상에 불만만 가득 차 있었으니까.
아마 가정 교육을 조금이라도 덜 받았으면 절로 탈선의 길을 걷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까 궁금하다. 너 없을 때도 학교는 다녔다는 거잖아?”
“응.”
“아니, 그럼 그건 누구야. 너라고 할 수가 있어?”
“철학적이네.”
외양과 행동, 성격 등이 모두 인간과 같은 기계는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한 면이 있다.
[알 게 뭡니까?]조용, 망할 과학자. 너도 이십 대 후반에는 똑같은 거 공부했잖아. 네가 만든 AI가 초래한 혼란을 보라고.
류이든에 이어 이현재와 채하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러면 가서 무슨 말을 해요? 모르는 거잖아요.”
“난 그래서 동화랑 늦게 친해진 게 나은 건가 싶더라. 더 일찍 친해지고만 싶었는데, 원래는.”
“그러게요. 기억 못 하는 친분이면 전 좀 상처받을 것 같아요.”
“…기억 못 하는 친분?”
뭘 봐, 동물 놈들아.
그 눈엔 걱정이 어렸다. 안타까워하는 눈이네. 3년간 쌓아 둔 인맥이 다 사라졌거나, 사라지지 않더라도 반토막이 난 게 틀림없어서 그러나 봐.
“내 성격 보면 알잖아.”
“설마, 친구가 한 명도 없을 리가.”
류이든이 생전 처음 보는 표정을 지었다.
절대로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라니, 류이든처럼 대부분의 일을 우선 받아들이는 사람이.
“기지생 씨한테 물어봐. 진짜야?”
“응. 어제 하루 동안 고등학교 때 있었던 일을 대충 들었거든.”
나는 어젯밤에 침대에 누워 한참을 기지생과 떠들다 단순한 결론을 내렸다. 하교 시간이 빨라진 것을 제외하고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다만 정말 사소한 것들, 연습생으로 활동하기 위해 담임 선생님께 설명을 하는 것처럼 사소한 것들이 다를 뿐이었다.
내가 다녔어도 그랬을 거라는 확신이 드니 불쾌할 지경이다.
“…그게, 가능해?”
“불가능할 것도 없지.”
“아니, 네 성격에 어떻게 그게 가능해?”
내가 아닌 누가 그게 가능하지.
“너였으면 누구 도와주다가 친구될 가능성이 백인데.”
“…어?”
듣다 듣다 보니, 정말 참신한 헛소리를. 내가 너희들이니까 돕고 사는 거지, 무슨.
“내가 고등학생 때 어땠는지 잘 몰라서 그럴걸.”
“어땠길래요?”
* * *
가능성이 개변되기 전, 지동화의 모교에는 삼 년 내내 1등을 놓치지 않은 악독한 인간의 전설이 있다.
보통 그러면 성적이 전설로 남아야 하는데, 학생들한테는 다른 이야기가 더 회자되곤 했다.
다크서클을 안경처럼 달고, 데자와와 커피를 수액으로 맞으며, 말을 걸면 대답은 해 주지만, 어딜 선을 넘으려고 드냐는 듯한 눈빛이 함께 따라오는, 한 인간의 전설.
폐인 같은 몰골이지만 자세는 꼿꼿해서 예의가 바르고, 남한테 먼저 말을 걸진 않아도 듣는 귀는 열려 있는,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강력하게 거부해 버리는 한 미친 인간.
머리카락은 장식으로 달고 사는지 적당히 자기가 자르고, 교복 핏 같은 데 신경 쓰느니 그 돈을 저축하는 게 합리적이라 되는 대로 적당히 큼직하게 입고, 몇몇 질 나쁜 무리가 다가가려 하다가도 정작 얼굴을 마주하면 눈이 미친놈 같아서 조금은 피해 다녔던 인간.
그러니까 말 잘못하면 칼에 찔릴 수도 있겠다 싶은 인간. 그게 지동화였다고 한다.
물론 지동화는 그저 착실하게 학교에 다녔다고 믿고 있다.
실제로 일으킨 사건 수는 제로, 마찰을 일으킨 횟수도 제로, 사소한 말다툼조차 제로.
누가 뭐래도 생활기록부상으로는 정말 착실하기 그지없었으니까(한국대에 갈 인재의 생기부를 조져 놓는 선생님은 많지 않다).
하지만 지동화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착실하게 다닌 건 맞지만, 태어난 김에 산다는 느낌이라서 시한폭탄에 가까웠다는 걸.
부모님이 잘 물려준 유전자는 그 당시 빛을 발하지 못했기에, 다른 학우들이 보기에는 어쩔 수 없었다.
‘얌전히 학교만 다녔거든.’
그러니까 이런 소리나 하고 있는 것 아닐까.
‘더 다가오려던 사람도 없던데.’
있었다. 다만 지동화가 눈으로 쫓아냈을 뿐이다.
다른 이에게 정을 주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는 고등학교 때 정점을 찍었기에, 채하민이 그때의 지동화를 만났다면 친해지는 데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세상에, 현재, 쟤는 진짜 눈치가 없다.”
지동화는 조별 과제를 할 때면 늘 혼자 하고, 체육 수행평가에서 자신과 해 주려는 인간이 없으며, 눈만 마주치면 피하는 걸 두고 모종의 따돌림이구나 생각했지만.
기지생은 이제 알고 있다.
제3자의 눈으로 자신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까.
“어떻게 내가 거짓말하는 것도 모르지.”
별로 다르지 않기는 무슨. 완전히 다르던데.
처음 AI 활동 일지를 보여 줄 때, 학교생활은 비슷하겠거니 싶어서 회사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만 대충 적어 넣었는데 이런 차이가!
연습생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 하나만 넣어 놓으니 인간이 머리도 미용실에 가서 하고, 교복도 적당히 재단해서 입고, 눈도 미친놈보다는 만사에 무관심한 정도로 변했으면서.
연습생이라고 하나 달아놓으니 최소한의 자기관리를 놓치지 않은 것도 너무 우리다워서, 기지생은 조사하다가 탄식하고 말았다.
“언제부터 쟤는 자기를 저렇게 믿었대.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친구랑 연을 맺지 않은 건 변하지 않았어도, 빈틈이 왕창 열린 게 사실이다.
덕분에 고등학교 때 썰은 0에 수렴하고, 가끔 있어도 ‘지동화는 겁나 조용했음 ㅇㅇ.’이라는 짧은 한마디 정도만 나오지만.
인터넷 세계엔 미처 다 말하지 못한, 혹은 잘 몰라서 말하지 않는 것들이 무수히 많은 법이지.
기지생은 웃었다. 품에 얌전히 안겨 있는 여우 로봇은 자길 만든 인간이 가끔 미쳐 있는 게 익숙해서 하품이나 했다.
헛된 희망을 심어 줬으니까, 나도 헛된 안심 정도는 심어 줘도 괜찮잖아.
“당황하는 거 기대된다, 그렇지?”
뭣도 관심 없어 보였지만, 기지생은 흥미진진했다.
놀거리가 없는 곳에서는 작은 유희도 지상 최대의 파티가 되는 법이다.
* * *
교복을 입고 있으려니 조금 낯간지럽다.
몇 년 전 얘기야, 대체. 적당히 늙은 류이든은 설렜던 것 같지만, 이 정도로 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주책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근데 교복이 이렇게 핏이 좋았나.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입었던 교복은 손 하나는 들어갈 정도로 컸을 텐데.
“다른 멤버는 전부 모교로 갔나요?”
“네.”
내 말에 대답해 주시는 친절한 작가님. 익숙한 얼굴이긴 해도, 일단 그 PD놈이 나한테 붙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PD님은 누구 쪽으로 가셨나요?”
“이든 씨 쪽으로 갔다고 합니다. 아쉬우신가요?”
하하, 류이든 쪽에 뭔가 큰 게 준비되어 있나 보다.
그 인간은 자기가 준비한 가장 큰 엿을 상대방이 손수 먹어 주는 모습을 보는 낙으로 사는 인간이니까.
“그럼요. 멘탈 수업 2교시도 끝나고 뵐 일이 줄어드니.”
너무 행복합니다.
나를 찍어 주시던 카메라맨님이 떨떠름한 내 낯을 보곤 피식거렸다.
행복해라. 기지생 피셜, 문제없음. PD가 오지 않았으니 또 공식적으로 안전한 상태. 누구도 오늘 나의 스케줄을 방해할 수 없다.
그저 학교라는 공간이 갖는 젊은 활력을 보며 홀홀 대는 할아버지처럼 하루 거닐면 그만이다.
공연 준비 덕에 연습실에 틀어박힌 나날 중에 이런 힐링이 또 어디 있을까.
학교 정문.
솔직히 낯설다. 등교할 때는 땅을 보고 걷는 게 보통이었다.
걷는 자세만으로도 사람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다는 건 비약이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하다.
“학교에 오랜만에 등교하시는데, 어떤 기분이에요, 동화 씨?”
나는 명찰이 제대로 차져 있는지 확인하다 멈칫했다.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학교에서 어떤 학생이었는지?”
“조용했습니다. 연습생 생활하느라 친구도 없었거든요.”
“아…….”
노잼, 이라고 입 모양으로 말씀하시는 거 다 봤습니다, 작가님.
정문을 지나 언덕을 올라가면 운동장이 펼쳐져 있다. 여기, 잔디 깔았네. 누구한테 받은 기부금일까.
“운동장에서는 주로 뭘 하셨어요?”
“주로 등하교를 했습니다.”
학교에 있을 때는 교실에 틀어박혀 있는 게 취미였거든요.
오늘은 토요일, 우리 학교에는 특별 자습반이 있었는데, 성적순으로 끊었다.
나는 들어가지 않았던 곳이지만(기지생에게 더블 체크했다.) 그 반 학생들만 등교하는 조용한 날이라 운동장도 고요했다.
“…혹시 이상한 썰 같은 거라도!”
작가님은 조금 애절해지셨다. 어떻게든 재미난 이야기를 듣고 싶은 소망을 모르지는 않지만,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저기 있는 정자 보이시나요.”
학교에 하나쯤 있는 특색 있는 공간, 우리 학교에는 정자가 있다.
정자는 내다보는 풍경이 아름다워야 하는 법이지만, 그런 건 신경조차 쓰지 않고 구석에 어거지로 박아넣은 정자.
놀랍게도 이용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었다.
“저기서 책을 읽는 게 낙이었습니다.”
“…선비셨군요.”
착잡한 표정.
멘탈 수업을 촬영할 때 카메라만 들이밀면 분량을 만들어 내던 인간이 왜 이러나 싶으신가 보다.
“맞아요! 선비였습니다!”
…뭔데, 누구세요. 내 기억에 없는 얼굴인데. 기지생, 긴급 호출.
[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기지생, 무슨 상황인지 나는 설명이 필요해.
“선배님, 오랜만이에요!”
“응, 오랜만이네요.”
입이 절로 움직였다.
상대방이 더 어려도 높은 확률로 말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방이 말을 놓으라고 염병을 떨었어도 천성상 고등학생인 내가 그랬을 리 없지.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거니, 말을 놓았다고 해도 존댓말로 시작하는 건 이상하지 않다.
“에이, 말 편히 하시라고 제가 몇 번을. 졸업식에도 안 오시고.”
기지생, 나오라고. 뭔데. 왜 AI가 나보다 사회성이 좋은 거야, 망할 놈아.
[저분은 당신이 가르쳐 준 후배입니다.]제발, 왜 이러는 거야, 기지생.
[정말 실수할 것 같을 때만 개입할 테니, 끝까지 발버둥 쳐 보세요! 상대방의 행동과 정황만 갖고 어디까지 맞춰서 대화할 수 있는지 지켜보겠습니다.]“선배님, 이렇게 다시 봬서 너무 반가워요. 제가 재수하느라 선배님이 이렇게 데뷔한 것도 너무 늦게 알았는데…….”
재수, 내가 가르침, 성적 향상 있었음, 결론 : 성적에 대한 불만족.
“네가 만족을 못 했으니까. 그 정도여도 엄청 늘었던 건데.”
“와, 보셨죠. 동화 선배님이 이렇게 사소한 것 하나까지 다 기억하세요.”
대답이 마땅치 않으며, 예전에 내가 무엇을 기억했길래 저런 말을 했는지 모름, 결론 : 뭉뚱그려서 답하기.
“사소하지 않아서.”
기지생. 나와 보라니까.
[하하, 하하하, 하하! 하하! 꼴 좀 보라지!]이 미친 생명체가. 왜 그래, 네가 나잖아.
[제가 자학을 즐기나 봅니다!]난 안 그래, 망할 생명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