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95)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95화(263/343)
침착해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해 보자.
…망할, 이름도 모르잖아. 기지생!
[음성을 들려 드리고 싶어 죽겠습니다. 세상에, 지금 엄청 웃고 있거든요.]내 과거도 아니잖아. 네 과거도 아니고. 왜 아무도 하지 않은 짓이 이렇게 돌아오는지.
눈앞에 있는 사람은 한껏 꾸미고 온 게 분명한 차림새다.
추론, 추론을 해야 한다. 뇌를 어떻게든 갈구다 보면 그럴듯한 답을 내놓겠지.
후배, 재수, 나보다 한 살 어릴 확률이 높고(두 살이 어렸으면 알아서 공부했을 테니 재수를 안 했겠지).
내가 존재를 몰랐다는 걸 보면 번호조차 교환하지 않았으며(수능 성적도 모른다, 사소한 것조차 기억한다는 앞의 말은 모의고사 성적에 한정된 얘기로 보는 게 낫겠다).
번호조차 교환하지 않았는데 저렇게 친밀하게 구는 거면…, 아니, 그게 가능한가.
“두 분은 친하셨나요?”
“아니, 친했다기에는 좀 애매해요. 사실 선배님이 학교에서 친하게 지낸 사람이 0에 수렴해서. 연습생 하느라 엄청 바빴거든요.”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무슨 관계가 있었고, 나는 왜 존재조차 몰랐고, 기지생은 내게 왜 그걸 숨겼으며, PD놈이 준비한 조작된 상황이라는 게 이것이라면 의도도 궁금하다.
“오, 그럼 왜, 여기…….”
일단 아는 인간 한둘쯤 만나게 하는 게 목적인가 보다. 방송이 학창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은 환상을 보여 주고 있으니까.
“아마도 그나마 제가 동화 선배님의 학창 시절에 대해서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라.”
그러니까, 왜 아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한번, 자기소개를 하는 게 어떨까.”
“아, 그렇네요. 안녕하세요! 룸넛 여러분, 저도 룸넛 가입했어요!”
이름 말하라고. 눈치껏 말해 줘. 내가 지금까지 당신의 이름을 단 한 번도 육성으로 뱉은 적이 없잖아요.
“동화 선배랑 같이 고등학교 시절 보낸 류병규입니다!”
웃음이 활짝 피었다.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무엇도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은 채, 도서관으로 걸음을 옮긴 우리.
사립 고등학교답게 변한 거라곤 운동장 잔디밖에 없다는 듯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이 망할 학교. 싹수부터 글렀어.
우리 학교에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게 있었다면, 도서관 이용률이 0에 가깝다는 한 가지 사실이었다.
도서관은 정자처럼 누가 잘 찾아오지 않는 곳이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있어서였다.
이용률이 적어서 이용하던 정자와는 달리 도서관은 내가 이용해서 이용률이 낮아진 곳인 셈이다.
그런데, 그런 도서관에서 저 사람이랑 대화를 나눴다고. 저 사람은 왜 거기 있었는데.
이쯤 되면 전제 조건부터 틀려먹은 건 아닐까. 사실은 AI가 오류를 일으켜서 학교의 인싸로 등극했다거나.
…이런 생각을 하면 기지생이 ‘내 기술력을 무시하지 마십시오.’라며 핀잔이라도 줘야 하는데 말도 없는 걸 보면, 웃느라 바쁜가 봐.
류병규 씨는 당연하다는 듯이 가장 안쪽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나를 쳐다봤다. 추억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눈빛.
젠장, 죄송합니다, 제가 미래에 이상해져서.
심지어 저 자리는 내가 홀로 도서관을 찾을 때 앉는 자리.
구라는 아니구나.
사실 한참 전부터 그 PD놈이면 나랑 일면식도 없는 인간을 친구랍시고 데려다 놓고 일부러 당황하는 반응을 보려 한 건 아닐까 미칠 듯이 고민했는데, 아니잖아. 더 절망적이다.
“근데, 뭐 하면 돼요? 제가 동화 선배 학교 썰 막 풀어드릴까요?”
신나 보이시네요. 그거 저 아닙니다.
[개소리. 실질적으로 당신이에요. 당신이었어도 그랬을 거라니까?]닥쳐, 철학을 잊은 인간아. 기능론적 지동화 따위.
“동화 선배님은 거의 뭐, 그런 분이었어요. 책만 읽는 사람.”
“진짜 선비였네요.”
“선비, 맞는 것 같아요! 자세도 늘 꼿꼿하고, 다리 꼬는 건 거의 본 적도 없고, 책은 엄청 읽고. 원래 좀 유명했거든요. 얼굴도 잘생겼고, 공부도 잘하는데, 말 걸면 예의상 대답만 하지, 친해지려고 하면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이라고. 세상을 따돌린다고.”
정말 신나셨네요. 어디 가서 말하고 싶어 근질근질했던 것 같았다.
“그럼 어떻게 친해지신 거예요?”
“하, 이거 설명하려면 또 제 흑역사도 같이 공개해야 하는데요.”
* * *
지동화의 인생에 있을 수도 있었던 관계를 모으고 모으다 보니, 그나마 친해질 만한 인간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렇게 친밀해진 결과로 동생도 다시 만난다는 것까지 알아내자 기지생은 곧바로 시공간 이동을 통해 가능성을 때려 패는 실험에 돌입했다.
어딜, 운명 같은 비과학적인 소리를. 인간의 의지는 늘 세계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성공해 왔다.
그러나 지동화를 통제하는 게 너무 번거로웠던 기지생은, 단순한 해결책을 떠올렸다.
잠시 지동화의 의식을 끊어 버리고 거기에 자신이 조작한 지동화의 인격을 심어 버리자고.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운행하면 딱히 신경 쓸 필요도 없이 통제된 상황에서 실험만 할 수 있다니, 얼마나 합리적인가!
당시 기지생 머릿속에 윤리 같은 건 그리 고려할 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애초에 자기 자신의 안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으니까.
죽으면 뭐, 다시 시작하면 된다. 자기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고 있으니 양심의 가책은커녕 일말의 안타까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기지생이 갖고 있는 연구 일지에는 지동화가 대학교에서 이현재를 만날 가능성부터 시작해, 지동화가 의사가 되어 다리가 망가진 채하민과 친해지는 가능성, 길 가다 폐인처럼 쓰러져 있는 류이든을 구출하는 가능성, 석준이 은퇴 후에 만화가가 되어 지동화가 글 작가로 들어가는 가능성까지 실험한 기록이 있었다.
결론은 모두 실패, 사유는 지동화라는 인간이 한 사람만으로 붙잡아 놓기에는 여간 미친놈이 아니어서.
그래서 늘렸다. 넷으로.
억지로 아이돌이 되게 만들어 보자.
반복적인 접촉과 친밀감 형성, 하나의 그룹으로 묶일 이름, 이 모든 게 지동화가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미친 과학자는 사소한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사소한 것 중 하나, 그게 바로 지동화(기지생 수정.ver)의 학창 시절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연습생이 되어 아이돌이 될 계획인 지동화가 학교를 다닐 적.
학교에서 지동화가 아이돌 연습생인 걸 아는 사람은 소수였다.
선생님은 지동화의 성적을 보고 대체 왜 네가 아이돌이 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하긴 했어도 꿈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동생이 보고 싶지만, 다가갈 자신은 없고, 그런데도 연습생을 하고 있는 내적 모순에, 지동화는 매일 아침이 괴로웠다.
이러다 동생과 만나면 도망치지 않을 자신은 있는지, 자신이 데뷔를 해서 버틸 수 있는 성격은 맞는지, 그 모든 의문에 지동화는 조금의 확답이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조종하는 것처럼, 어느 날 문득, 연습생이 되고 말겠다는 생각이 심어진 것처럼.
자신이라면 절대로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다.
삼 일 동안 정체 모를 병으로 쓰러졌다가, 그다음 날 곧바로 연습생 준비를 시작하는 게 인간이 할 짓인가.
심지어 동생이랑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헛짓을…….
지동화는 합리적으로 고민했다. 정확히는 의심했다. 정신병에 걸린 건 아닐지.
‘…병원에 가자.’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툭, 의식이 끊어졌다.
어딜 감히 연습생이 그런 행적을 남겨 두냐는 위험한 생각과 함께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날 이후, 지동화는 실험에 들어갔다. 과연 어떤 행위를 할 때 의식이 끊어지는지.
그리고 찾아낸 첫 번째 원칙, ‘아이돌이 되는 데 방해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정해진 규칙 밖으로 나가려 하면 의식이 끊어진다.
‘…뭘까, 망할.’
불쾌함이 치밀었다. 무엇인가 자기 삶에 개입하려 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이성 체계 아래에서 인지 불가능한 어떤 절대적 존재가 있든, 뭐든. 확실한 건 의도가 있다는 점.
다른 말로 하면 지성이 있다는 뜻. 기이한 존재, 어쩌면 생명체가.
지동화는 정자에 앉아 생각하다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 계십니까.”
미친 척하고 지동화는 혼잣말을 뱉었다.
지동화는 이 모든 게 ‘지동화가, 지동화를 위해 지동화를 조작한 상황’이란 걸 알 수는 없었으니까.
지동화는, 어떻게든 엿을 먹이고 싶었다.
자신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들을 시도하며, 자신에게 부여된 몇 가지 원칙을 더 찾아내면서 그런 열망은 더욱 강해졌다.
두 번째, 번호 교환 불가. 세 번째, 친밀한 관계 형성 불가.
마치 자신이 맺은 관계가 방해된다는 듯한 규칙들을 보며, 지동화는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우며 고민했다.
연습을 핑계로 작곡방에 커피와 데자와를 한껏 사 들고 들어간 어느 날, 문득 떠올린 생각.
‘남을 위한 인생이라, 너무 X같은데.’
지동화는 규칙 탓에 입 밖으로 뱉지 못하는 쌍욕을 삭였다.
‘아주 사소한 복수라도…….’
그날부터, 지동화가 지동화를 위해 조작한 지동화는, 지동화에게 복수하기 위해 지동화는 모르는 관계를 남기려 시도했다.
* * *
“학교에 어느 날 게시판이 생긴 거예요. 무엇이든 답해 드립니다, 라고 적혀 있는. 선생님들은 거기에 학습 관련 질문 적으면 다른 사람이 와서 답을 적어 준다고 하시더라고요?”
“네.”
“처음엔 뭐야, 어플로 하지, 라는 생각이었는데, 애매한 질문이 있어요. 이걸 물어봐도 되나 싶은? 그런 걸 애들이 장난삼아 적기 시작했거든요. 그런 거 있잖아요, 음수 곱하기 음수는 왜 양수인가요.”
작가님은 이야기의 끝이 궁금해 보였다.
“근데 이상한 게, 대답이 다 한 사람 필체예요. 포스트잇으로 부족하면 A4 용지 몇 장에 적어서 대답해 주고, 심지어 어떤 질문에는 논문까지 첨부해서 답을 해 주는데, 궁금하잖아요. 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설마, 그게 나라고.
“소문이 무성했거든요? 답 적는 걸 누가 본 적이 없으니까요. 유령이다 뭐다 이런 말도 있었죠.”
“…와, 그럼 그게.”
“네! 동화 선배였습니다! 아무도 몰랐어요. 새벽 다섯 시에 경비원님한테 부탁해서 들어와서는 답을 다 적어 주시더라고요.”
당신은 어떻게 본 건데. 새벽 다섯 시에 학교에 오는 사람이 어딨어.
“어, 그럼 어떻게 아신 거예요?”
“제가 부모님이랑 싸우고, 학교에서 노숙을 했거든요.”
불효.
“아침에 추워서 일어났는데, 세상에, 동화 선배님이 미리 준비해 온 답을 압정으로 붙이는 걸 봐 버린 거죠!”
류병규 씨는 아직도 생생한 듯 회상했다.
‘어!’라고 소리치자, ‘드디어.’라는 표정을 지었다는 나.
“그래서 아직 좀 궁금해요, 저도. 왜 그런 ‘아, 드디어 예상했던 일이.’라는 표정이었는지!”
눈이 내게로 휙 돌아온다.
뭐냐고, 젠장. 기지생, 살려 줄래. 전혀 알 수 없거든. 나는 그런 일을 할 인간이 아니라고.
[아뇨, 알아보니까 당신 그 자체였습니다. 보관하고 있기를 잘했네요. 조금 고치면 쓸 만할 것 같아요. 제 사무실 관리를 맡길까 고민 중입니다!]뭐라는지 모르겠지만, 시간을 더 주체할 수 없어서 나는 뇌를 굴렸다.
“…선행은 남이 모르게 하라고는 해도, 누가 알아줬으면 했거든.”
치졸한 변명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드디어’라는 표정을 어떻게든 설명하기 위한 최선이다.
[아, 지금 눈 뜨자마자 제 멱살부터 잡는데, 살려 주세요.]알 수 없는 소리 좀 그만 지껄여.
[어……? 죄송해요, 더 있나 본데요?]“근데 이게 전부가 아니죠. 진짜 신기한 짓 엄청 많이 하셨어요, 동화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