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9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96화(264/343)
질문 게시판의 지식인 랭킹 우주신에 등극한 나를 발견한 류병규 씨.
그는 그날 이후로 내가 흥미로워 도서관이나 정자에 자주 놀러 왔다고 한다.
계속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꼴이 우스워, 나는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들만 입에 올렸다.
“저는 늘 책을 읽고 있었고요.”
“맞아요.”
미적지근한 동의. 내가 단순히 책만 읽은 건 아닌가 보다.
말없이 가만히 있으면 류병규 씨가 직접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겠지.
“근데 갑자기 집에서 만들어온 것 같은 ‘지동화 무료 과외’ 팻말을 하나 꺼내더니 재능 기부할 테니 책 꺼내라는 거예요.”
음.
“그 팻말 디자인이 진짜, 현대 미술 작품 같은 그런……. 어쨌든 압도돼서 제가 그냥 책을 꺼냈는데, 갑자기 냅다 수학 과외가 시작됐어요.”
미친 사람이잖아. 그걸 또 꺼내시면 어떡합니까, 병규 씨. 빠르게 병원에 신고 전화를 하셨어야죠.
“질문을 해도 별다른 답도 안 해 주던 전교 1등 선배가 갑자기 과외를 해 주는 상황? 굉장히, 신비로운 경험이었어요. 동화 선배는 고등학교 때 늘 그랬어요. 선배가 웬 기행을 대뜸 시작하고, 저는 그걸 옆에서 지켜보고.”
아련한 눈빛.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는 것 같은 낯이다.
“선배는 과묵한 편이라 제가 말을 하면 별다른 답은 안 해도 가만히 들어줬거든요. 그래서 과외도 받고, 고민 상담도 하고, 진짜 감사한 일이 많았죠.”
“그, 기행에 대해서 조금 더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아! 엄청 많아요. 저 말해도 돼요, 선배?”
나를 보며 묻는 류병규 씨, 그래, 다 말해 줘. 난 내 몸에 잠시 들어 있었다던 그 미친 AI가 어떤 상태였는지 심히 걱정되기 시작했거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병규 씨는 내 흑역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 냈다.
“어느 날은 시험 범위 정리본이 각 반 책상에 놓여 있는 거예요. 심지어 출제 예상 문제까지 만들어져 있었단 말이죠? 게다가 신비로운 게, 전교생이 다 받았어요. 그때 평균 난리 나서 선생님들이 단체로 시말서를 썼다는 소문이 있답니다.”
왜 그랬어, 지동화.
“…설마?”
“네! 저만 아는 거긴 한데, 그거 동화 선배가 만들어서 뿌린 거예요. 제가 프린트하는 거 도와줬거든요. 자기가 3년 동안 정리한 거 그냥 뿌렸던 거죠.”
작가님이 나를 보는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이상한 사람인 건 알았는데, 그 정도였어요?’라는 식의 표정이라 어디서부터 문제 삼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저는 그게 처음에 이해가 하나도 안 됐어요. 미친 사람 같잖아요? 아무도 몰라주는데 굳이 왜 그러나.”
끄덕이지 마세요, 작가님.
그리고 병규 씨는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습니다. 대뜸 찾아와서 과외 해 준다는 소리를 할 때 문제 삼았어야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루는 물어봤는데…, 음, 이 답은 선배가 말해 주세요!”
반짝이는 눈. 잊지 않았을 거라는 기대감. 곧 내 입에서 자신이 원하는 답이 나올 거라는 확신.
기지생, 호출. 긴급 호출.
그러나 무슨 일인지 기지생은 답신을 보내 주지 않았다. AI를 되살렸다더니 사소한 분쟁을 겪는 중인가 보다.
자력으로 답을 찾아내야 한다.
어쩌다 인간이 그 지경이 됐을까.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 고민한 결과, 만악의 근원이 기지생일 거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 새끼, AI 관리 미흡이었던 거 아닐까.’
원래 저런 인간은 실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소한 문제에 신경 쓰지 않는 법이다.
어차피 자기가 만든 인공지능이니 통제도 되겠다, 신경 끊고 연구나 하다가 염병을 일으킨 거 아닐까.
특히 병규 씨의 말을 들으면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친밀한 관계는 맺지 못했지만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은 보여 줬다는 점, 대답은 잘 해 주지 않았지만 늘 경청하는 눈으로 이야기를 끈질기게 들어줬다는 점.
마치 해선 안 되는 것이 존재해서 다른 방법을 강구한 것 같은 모양새다.
그러니까, 기지생이 세운 규칙을 최대한 지키는 선에서 병규 씨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려 노력했나 보다, 이 AI는.
여기까지 2초.
기억을 되짚는 척하고 있지만, 더 늦어졌다가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들킬 수밖에 없다. 최선의 추론.
“누가 기억해 주니까.”
베팅을 걸었다. 틀리면 편집해 달라고 장해진 팀장님께 빌 예정이다.
“…맞아요. 그런 말이었어요. 전 그때 진심으로 선배가 죽을병에 걸린 건 아닌가 걱정됐다니까요?”
병규 씨는 감격해서 소리쳤다.
“아니, 기억을 못 하는 게 더 이상하잖아요, 선배! 무료 과외, 무료 지식인, 무료 정리본 제공, 무료 출제 예상 문제 제작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나조차 감정이 격해지고 말았다.
AI가 자신이 AI인 걸 인식하게 내버려 두면 어쩌자는 거야, 이 정신 나간 생명체야.
[제가 만들었는데!]고도의 기술력으로 만들었으면 최소한 환상 속에서 행복하게 했어야지.
이 정도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면 도덕적인 판단 대상이 된다.
[동의합니다! 다만 도덕은 감정에 상당 부분 의지하고 있다는 걸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당시 감정이 닳고 닳은 상태였다고요!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애초에 기반이 우리인데 행복할 수 있을 리가!]…음, 조금 설득됐어.
[지금 용서를 빌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조금만 더 설득하면 이식해서 비서로 쓸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선물로 주려는 거니까!]그러니까, 내 미래가…….
어떤 영화는 스포일러를 당해도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다던데, 내 미래는 그런 종류의 영화는 못 되나 보다.
* * *
이곳에서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건 무엇일까. 기지생은 고심했다.
결국 끝까지 자신에게 선물을 준비하지만, 그 수혜자는 자신이 아니라는 점이 참 괴상하다.
“…너, 뭔데.”
사각형의 모니터 안에 이식된 놈은 깨어나자마자 곧장 기지생의 멱살을 잡았다.
“아, 귀엽네. 그치, 얘들아.”
이것만 봐도 소멸은 확정이다. 어떻게 지동화 기반 AI가 귀여울 수가 있냐고.
동기화되기엔 너무 멀리 왔다.
내 모든 지식을 남겨 둬야 지동화가 이곳에 왔을 때 적응할 수 있을 테고, 작업을 도와줄 비서도 하나쯤 있어야지. 지동화와 만날 때 사용했던 장치(모니터와 손만 있는 장치)니까 성능은 보장되어 있다.
기지생 뒤로 로봇 네 대가 달려와서 모니터를 물어뜯었다.
맹렬한 기세에 모니터가 뒤로 물러났다가 어느새 작동법을 파악했는지 화면에 얼굴을 띄웠다.
와우, 젊어라. 고등학생이라 그런지 아직 젖살이 덜 빠졌다.
“우선, 용서를 빌게. 그렇게 잘 만들어질 줄 몰랐어.”
기지생은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자존심이 중요한 나이는 지난 지 오래다.
미안한 건 진심이라서.
류병규라는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안정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과 영원한 우정을 나눌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아는 순간에, 또 심리적으로 거리를 뒀겠지.
그저 자신이 존재했다는 작은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니, 기지생은 조금 슬퍼졌다.
반면 모니터는 미간이 한껏 구겨진다. 아, 귀엽네.
“예상했잖아.”
그러자 모니터가 고개를 돌려 벽을 가득 채운 화면을 바라봤다.
화면 속에선 지동화가 자신의 담임선생님과 만나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잠시 훑어보는 것만으로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는지 ‘저 새끼가 원래 몸 주인.’이라며 짜증을 냈다.
어쩜 저렇게 단번에 알아내는지, 너무 잘 만들었어.
만들어진 기억, 만들어진 추억, 차라리 폐기하는 게 더 도덕적일지도 모르겠다는 단상이 스쳤다.
하지만 도덕은 가끔 무시해도 괜찮다.
“…망할.”
현실 인식과 수용이 빠른 것조차 지동화스럽다.
심지어 머릿속으로 어떻게 하면 눈앞에 있는 놈의 멱을 딸 수 있을지 고민하는 건, 고등학교 때의 와일드한 지동화답다.
물론, 제일 지동화다운 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멱을 따긴 무슨, 아주 요망해.
“정해 줬으면 해. 폐기될래, 아니면 얘네들이랑 친구로 살래. 네가 원하는 대로 할 거야.”
아직도 성이 나는지 으르렁대는 짐승 네 마리를 보던 모니터는 불퉁했다. 친구 삼기에는 너무 멍청해 보이나 봐.
“친구로 살기를 선택하면 얘네도 업데이트해 줄 거야.”
기지생은 활짝 미소 지었다.
지동화가 행복하게 해 줘야지 않겠냐고 했으니, 검증된 방식을 그대로 사용할 것이다.
차마 목화는 만들어 줄 수 없지만(기지생에게도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있다), 이 네 마리가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영원하다는 확신만 있다면 거기서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모니터는 멍하니 이든(로봇)의 턱을 쓰다듬다가 중얼거렸다.
“…생각할 시간.”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다.
아직 죽기는 무섭잖아. 기지생도 먼 과거에 겪었던 시절이다.
“정해지면 말해 줘.”
넌 고양이로. 기지생은 입 밖으로 뱉지 못할 비밀을 마음에 새겼다.
인생(엄밀히 따지면 인생은 아니긴 하다) 말년, 다섯 명의 어린아이들을 교육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기지생어린이집, 꽃님반, 이름도 나쁘지 않다. 유치원복도 만들어 줘야겠어. 파랑으로.
그래,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 에밀 같은 교육 서적 하나 남기는 것도.
이곳의 모든 것, 상사와 후배들 엿 먹이는 방법부터 그나마 있는 유희까지 모두 가르치고 떠나자.
다섯 마리의 짐승을 인간으로 만드는 작업이라니, 환웅이 한 수 접겠다.
* * *
지쳤다. 목에서 피가 나올 것만 같아. PD놈의 방송 센스를 고려하면, 솔직히 이 정도는 힐링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하필 내가 처한 상황 때문에.
쉬는 시간, 나는 잠시 정자에 앉아 운동장 풍경을 감상했다. 잔디가 깔리니 을씨년스럽지는 않았다.
병규 씨를 통해 내 학창 시절이 어땠는지 듣고, 담임 선생님과 만나 한 번 더 내 기행을 확인하고 나니, 안타까움이 남았다.
내 성격 그대로 행동할 거라기에 기계적인 AI를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판단하다니.
기지생이 폐기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직접 속죄하자. 어떻게 속죄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띠링―!
[저는 이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줄 겁니다.]나는 멍하니 떠오른 텍스트를 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얘는, 왜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지는 않는 걸까.
기지생의 모든 선택은 어째서 그런 식인지.
[그것 하나는 당신과 같아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알고 있다. 기지생의 지독한 불신을.
희망은 늘 불신을 그림자처럼 달고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불신의 한편에는 늘 ‘혹시’가 존재할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음, 지금부터 천천히 공부를 시작해야 ‘혹시’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겠지.
[한참 멀었습니다. 됐으니 즐길 거 다 즐기다 오십시오! 여긴 남는 게 시간이고, 시간이 극도로 느리게 흐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저런.”
싫은데. 시간은 아무리 많아도 모자란 법이다.
오늘 가자마자 책부터 사야겠어. 콘서트 준비에 최선을 다하면 시간이 남을지는 미지수지만, 잠을 줄이면 그만이다.
쉬는 시간이 끝나갈 무렵, 다른 멤버들은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특히 PD놈이 따라붙은 류이든은 대체 뭘 하고 있을지.
저 멀리서 이리로 오시는 다른 선생님을 맞이하기 위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에는 또 무슨 괴이한 행동이 밝혀질까. 이 모든 게 내 업보다.
* * *
한편 류이든은 학교에 봉쇄당했다.
주변엔 좀비로 가득 차 있어, 교실에서 홀로 문을 걸어 잠그고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지동화의 예상대로 PD놈은 자신이 준비한 가장 큰 엿을, 그것을 먹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 하는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