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98)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98화(266/343)
각자의 역할이 있다.
류이든은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채하민은 난무하는 점프 스케어 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한다. 그리고 관찰자의 위치에 있는 나는.
‘소녀가 강에 여행 가면?’
즐겁겠지.
채하민에게 전화하기 전, 핸드폰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발견한 ‘힌트’라는 이름의 어플. 차라리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를 물었으면 더 빨랐을 텐데.
나는 답안란에 ‘즐겁다’를 알고 있는 나라의 언어로 하나씩 입력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망할, 넌센스잖아. 혹시 ‘행복하다’나 ‘여유롭다’인가 싶어서 다시 쓰려다가 때려치웠다.
자리에 앉아 머리를 책상에 박았다.
일반적인 사고의 흐름을 요구하지 않는다. 수수께끼는 민속 문화 속에서 ‘놀림’의 미학을 담당하고 있으니까, 지금 나는 놀림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답이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은 질문, 이성적인 사고만 하며 답을 알지 못하는 상대방을 지켜보는 데서 오는 웃음이라니.
나는 헛생각을 멈추고 곰곰이 답을 고민했다.
요즘 넌센스 퀴즈는 발음을 활용한 언어유희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한국은 영어에 친숙한 국가라 영어까지도 고려하면.
…걸리버 여행기.
그렇게 얻어 낸 게임 매뉴얼과 힌트권 한 장.
힌트권을 쓰려면 또 이 망할 넌센스를 풀어야 한다고 하니 매뉴얼을 토대로 힌트 없이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
―동화야, 동화야, 저 사람 움직여.
“응. 움직여.”
살아 있는 사람이잖아, 안 움직이는 게 비일상적인 거야, 하민.
―사람 아닌가 봐, 어떡하지. 사실 이거 촬영 아니면 어쩌지? 나, 열쇠 꺼낸다?
안 죽어, 하민.
채하민이 호들갑을 떠는 동안 나는 무심하게 매뉴얼을 읽기 시작했다.
탈출 조건, 퇴마.
음, 물리적 타격이 가능한 유령이니까 의자로 내리치면 되지 않나 싶지만,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퇴마를 해야 하는 걸 보면 유령에게도 도덕적 잣대를 적용한 것 같다. 음, 바람직해.
띠링―!
[돌려까지 마세요!]―동화야, 열, 열쇠, 잡았어!
화면 안에 채하민이 카메라 쪽으로 후다닥 달려와서 열쇠를 흔들었다.
“열고 3학년 4반으로.”
―…아, 무서워, 나 3학년 때 썼던 교실이야.
“그 유령이 3학년 4반 출신이래. 삼십 년 전에.”
―일부러! 일부러 지금! 굳이! 진짜처럼!
채하민은 마치 진짜 유령인 것처럼 말하는 내가 원망스러운지 카메라를 보며 날뛰었다.
그러면서 흘깃 뒤를 보더니 차갑게 굳었다. 세 걸음 정도 가까이 왔으니까.
“응, 굳이.”
나는 깔끔하게 인정했다. 꽤 즐겁네. 기지생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은 높아졌다.
미친 듯이 뛰고 있는 류이든에게도 전화를 해서 핸드폰을 찾게끔 해야 하니 슬슬 끊고…….
“하민, 3학년 4반에서 기다려. 다시 전화할게.”
―…어? 왜?
억울한 얼굴이다. 마치 몇 날 며칠을 방황하다가 찾아낸 안식처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인 디스토피아 세계관 주인공 같다.
―끊지 마, 나 죽어.
안 죽어, 미친 토끼 놈아. 차라리 류이든 쪽이 저대로 내버려 두면 에너지 부족으로 죽을지도 모르겠는데, 너는 몹시 안전하잖아.
느릿한 귀신 한 명과 방을 공유하는 건 할 만하다.
“류이든도 도와야 해서.”
―어떻게, 어떻게 날 버릴 수가 있어, 동화야!
무슨 소리를.
―이든이 형은 배신자야!
언제는 네가 먼저 용서해 주길 바라며 판 깔았잖아.
“음, 미안.”
―…빨리 와야 해?
“응.”
근데 내가 지금 좀 빨리 가야 해.
나는 전화기를 끊으려 귀에서 뗐는데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귀신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있다고 해도 최소한 그건 귀신이 아니잖아, 하민, 이라고 말해 줘도 바뀌진 않을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막, 화면으로 계속 나 좀 보고 있어 줘.
“응.”
―눈 떼지 말고!
“…응.”
―방송 볼 거야, 한순간이라도 떼면! 한순간이라도 떼면, 으어, 난, 난, 어쩌지. 살려 줘, 동화야.
어쩌긴, 잘 살겠지.
자기가 말하다가 공포에 빠졌는지 채하민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몸을 움츠렸다. 학교는 원래 사람이 없으면 스산한 감이 있으니까.
“안 뗄게.”
심정지라도 오면 안 되니, 안심할 수 있게끔 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 * *
…라는 이야기를 들은 류이든은 미칠 듯이 웃었다.
“그래서, 지금도 보고 있어?”
―응.
“와, 나는 안 봐 줘?”
―약속은 먼저 한 것부터 지켜야 해서. 그리고 넌 즐거워 보이던데.
“응, 좀 재밌어. 숨바꼭질하는 느낌이라.”
아, 이러면 방송에선 편집될 텐데. 안심이 되니 순간 실언이.
“아니, 무서워 죽겠어. 나도 지켜봐 줘.”
이게 그림이 예쁘다.
―방송 생각하는 건……. 어쨌든, 네 탈출 조건은 내성이 있는 인간이 되기.
“좀비 세상에서 혼자 무증상자 되는 게 목표!”
류이든은 그 말을 하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위층에도 있으니 아래층으로.
“좋아!”
―너희 학교의 과학 선생님이 실험하다가 좀비가 만들어졌대.
“그거 드라마 있지 않나?”
―그것보다 중요한 건 과학 선생님이 열쇠 조각을 다섯 개로 분해해서 학교에 흩뿌려 놨다는 거지.
과학 선생님이면 자기 담임 선생님인데, 설정이 뭐 그래. 자기 제자가 은사라고 찾아왔는데 좀비 푼 거잖아.
류이든은 은은하게 깔린 괴상한 설정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 근데, 하민이 화면 계속 보려면 매뉴얼 다시 못 보잖아.”
―외웠어.
“…난 진짜, 네가 공부에 전념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까지 말하다가 류이든은 입을 다물었다. 이미 아는구나.
―나는 네가 더 궁금한데.
“뭐가, 형?”
―운동선수 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어떻게 되긴, 너희들 못 만나서 슬퍼했겠지.”
지동화는 수화기 너머로 침묵을 지켰다. 그러고는 표정으로 질색을 하고 있겠지.
“어쨌든, 어디로 가?”
―우선 과학실로.
“알겠어!”
―도착하면 전화할게.
“응! 형들이 동생한테 협동심 같은 거에서 지면 부끄럽지.”
―…음, 거기도 잘하고 있겠네.
“글쎄. 둘이 엄청 싸우고 있을 것 같은데.”
아, 저기 좀비가! 류이든은 한 번 더 인사를 하며 과학실로 가는 길을 최대한 빙 둘러 달렸다.
조금 느긋하게 농담도 하면서 대화하려면, 전부 따돌리면 되겠지.
* * *
“형, 그게 아니구.”
―현재―, 한 번만 더.
“…음, 잠깐만요.”
이현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니 즐거웠는데, 이런 고생이 남았을 줄은 몰랐으니까.
‘선생님의 보충 수업’이라는 제목의 상황극.
고등학교 문제를 풀어서 시험을 통과해야만 도망칠 수 있는 보충 수업.
석준은 교무실에서 시험 문제를 훔치고(동화 형이나 이든이 형이 있었으면 어이없어서 웃었을 것이다), 문제를 외워 풀어서 통과해야만 한다.
실험 결과, 교무실 선생님은 말소리가 들리면 쫓아내기만 하지 시험지를 훔친다는 발칙한 생각을 하는 줄은 상상도 못 한다.
그래서 생기는 문제.
“제가 지시하면 왼쪽으로 돌아서 3초 세고 고개 숙인 채로 직진, 한 네 걸음 가면 정지하구…….”
이걸, 어떻게 말로 설명하고 어떻게 외우지. 이현재는 속에서 올라오는 깊은 한숨을 참았다.
―외울 자신이 없어, 현재.
“…사실 저두 알고는 있어요.”
종이가 얼마나 소중한 건지, 문자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이현재는 실시간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카메라가 설치되지 않은 부분이 있는 교무실 덕분에, 석준의 말을 힘겹게 해석하며 경로를 찾아낸 이현재.
그것만으로도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망할 PD놈이라던 동화 형의 말이 정확했다.
―내가 종이랑 펜 빌릴까?
“설마 그렇게 쉽게 주실까요? 시험 기간이라 들어가서 말만 해두 쫓아내는데.”
―사람은 착해―, 현재야.
“아니에요, 본성은 악한 게 더 맞지 않을까요?”
이현재는 머리를 굴렸다.
그냥 들키고 퇴학당하는 게 빠를 것 같다는 난폭한 생각은 접어뒀다.
싫다는 건 아니지만, 한 살 차이인 형이 늘 이렇게 세상 순진하니 이현재는 가끔 답답해 죽을 것 같을 때가 있다.
―해 볼게.
그리고 전화기 너머로 ‘저―.’라고 말하자마자, ‘나가!’라는 말을 듣고, ‘종이랑 펜을 좀―.’이라고 하자마자 ‘나가라니까!’라는 말을 듣고 있는 우리의 준이 형.
―…나빴어, 현재.
“사람은 악하다니까요.”
―그래도 난 아직 믿어―. 저분들도 방송이라 이러시는 걸 거야―.
“방송 아니어두 시험 기간에 교무실 들어가면.”
그만. 이현재는 자기 뺨을 쳤다.
평소처럼 말다툼을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중재해 줄 이든이 형도 없고, 지켜보면서 웃고 있는 동화 형도 없다.
“형, 느낌이, 이건 대결이에요.”
―대결?
“네. 벌칙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단 말이죠?”
―와, 너랑 같이 벌칙받으면 재밌을 것 같아―.
이 미친.
세상 허허실실로 사는 것도 알고 있었고, 승부욕이 0에 수렴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서바이벌 나온 것도 처음에는 서바이벌처럼 너무 경쟁적인 게 별로라고 거절하려 했으나, 랩 잘하고 잘생긴 인간이 이 형밖에 없어서 회사에서 설득해서 그랬던 것까지 알고 있었지만!(그러다 류이든이 설득해서 나가겠다고 결심했던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저는, 이기구 싶어요.”
이현재는 그런 석준을 존경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지는 것도 사랑할 줄 아는 형이 미워 죽겠다.
이런 거 아니면 공식적으로 형들 이기는 순간이 어딨어.
저기는 동화 형 한 명이 두 명의 상황을 해결하니까 페널티도 적당히 주어졌다.
―그럼, 이길게.
이 형은 늘 이렇다. 물에 물 탄 듯이 살다가도 남을 도울 수 있으면 망설이지 않는 인간.
이현재식으로 표현해서 혼자 살면 사기당할 인간. 그러고도 웃으면서 자기 간은 안 필요하냐며 가져가라고 할 인간이다.
“…형은, 저희랑 같이 데뷔해서 다행이에요.”
나쁜 인간한테 잘못 걸리면 어쩔 뻔했어, 진짜. 하민이 형은 최소한 자기가 사기를 당한다는 인식은 있는데, 이 인간은 사기당하고도 모른 채 살 것 같아.
―나도 그래서 좋아―.
맥없이 풀어지는 석준의 표정을 보며 이현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숨은 뜻을 고민할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그래요, 대화에 꼭 맥락이 중요한 건 아니죠.”
실험을 해 보자. 어느 정도 소리에 반응을 하는 걸까.
“형, 지금 들어가서 한 번 조금 크게 걸어 볼래요?”
―응!
아무리 이현재가 작은 소리로 말을 해도 말을 하기만 하면 쫓아내는 걸 봤을 때, 어떤 수단으로 붙잡으라는 사인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즉, 이현재가 방향을 ‘말’로 알려 준다면 안 된다는 뜻.
어쩐지 교무실에 무슨 ‘침묵의 교무실’이라는 괴상한 팻말을 붙여 놨더라니, 힌트였나 보다.
‘설마 외우라는 건 아닐 테니까.’
그랬으면 저기에 자신이나 동화 형을 집어넣었겠지.
그럼 말이 아닌 소리에는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느 정도 크기에 반응하는지 모두 알아봐야만 한다.
그러고 나면 정지하라거나, 어느 쪽으로 가라는 사인 정도는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이현재는 승부욕을 불태웠다. 보상이 무엇인지 벌칙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설득할 자신이 있다.
“이든이 형을 한 번 정도는 동화 형처럼 놀려 보구 싶다…….”
지금도 충분히 잘 놀리고 있지만, 이현재는 성에 차지 않았다. 원래 어느 집단에서든 막내라면 마음속에 한 번쯤은 혁명의 꿈을 꾸는 법이다.
“…야자 타임두.”
하민이 형이나 동화 형한테 ‘야’라고 하는 상상, 이현재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조금은 뒤틀린 형들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