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9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99화(267/343)
관찰 카메라. 장해진이 이동원 PD에게 요구했던 건 너무 단순했다.
‘유닛 활동할 건데, 그 전에 얘네들이 어떻게 서로를 대하는지 그 관계를 자세히 보여 주고 싶다’라는 요청.
그래서 PD놈은 곧바로 이런 기획을 짜냈다.
인간이 가장 방심하는, 추억에 휩싸인 순간에 극단적 사건이 터지고, 거기서 서로 협동해야 하는 상황만큼 관계를 잘 보여 주는 게 또 어딨을까!
PD놈은 류이든이 땀 흘리는 모습을 보며 꺄르르 웃었다.
아, 재밌다. 즐거워. 직업 만족도가 높아져서 퇴직 생각은 하지도 못하게 만들어.
처음에는 좀 무서워하는가 싶더니, 그새 적응해선 좀비분들 이름 묻고 다니는 걸 보면, 저 인간도 제정신 아니야.
현장에 나간 후배들 말로는 지동화는 유닛 협동심 테스트, 이현재는 형―동생 사이 경쟁 컨텐츠라고 주장했다는데, 따지고 보면 지동화 쪽이 더 부합하는 해설이긴 하다.
하하, 심술 나네.
“이거, 벌칙 넣자.”
“…네?”
“소원권으로.”
“동화 씨 싫어하세요?”
“너무 사랑하지.”
그래서 틀리는 모습 보는 것도 좋아해.
* * *
즐거운 학교생활이네.
나는 채하민의 화면을 보면서, 정말 다양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진정해.”
―진짜 보고 있구나! 난, 돌아가면, 어쩌지! 선물을 막 사 줄 거 같아!
귀신이 한 명인 줄 알았는데 총 두 분이라 번갈아 가며 튀어나오셔서, 채하민을 케어하는 게 제일 큰일이다.
채하민이 공포에 잠식되어 걸음이 느려지면 곧장 전화를 걸어 진정시킨 후 다음 동선과 수수께끼를 풀고, 그 와중에 류이든의 화면 곳곳을 돌려보며 지형과 좀비 동선을 외우느라 조금 혼란스럽긴 하다.
채하민이 유일하게 허락한 예외 시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진짜, 진짜 미안, 동화야. 정신 차리고 보니까 내가 너무 쪽팔린다.
“괜찮아. 예상했거든.”
그러고는 또 전화 끊으면 카메라 있는 쪽 바라보면서 손 흔들 거잖아, 하민.
퇴마를 위해 필요한 건 다 모았으니, 발견한 힌트를 통해 알아낸 절차대로 굿판 한 번만 벌이면 된다.
근데, 이게 맞나. 법적으로 굿은 전통문화로 인정되지만 퇴마는 아니라던데. 그럼 둘 사이의 차이가 존재해야…….
―동화야, 딴생각했지.
“얼굴도 안 보이는데 알아채면 조금 두려워, 하민.”
―에이, 내가 경력이 있는데. 자격증 나오면 바로 취득해서 강사로 활동할 거야.
실제로 했잖아, 망할.
나는 류이든의 화면을 보며 정보를 정리하고, 틈틈이 채하민이 할 굿의 절차를 따졌다.
음, 스토리가 개판이다. 정황 증거로 엮어 낸 거라 세부적인 스토리는 다를 수도 있지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서로 사랑하던 남녀가 끝내 고백하지 못하고 불행한 사고로 죽어 서로 만나지 못해 원혼이 되어서 학교에 남아 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 한 가지가 있다.
왜 채하민을 공격해. 귀신 보는 인간을 만났으면 무릎 꿇고 부디 마음을 전해 달라고 빌 생각부터 해야 하지 않나.
평생의 숙원 사업을 이뤄 줄 인간이 나타났는데 화장실까지 따라다니며 놀라게 하는 건, 이것들의 진심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것들, 사실 귀신으로 사는 데 나름대로 만족감을 느끼고 있던 건 아닐까.
“하민, 옷 다 입었어?”
―응. 이제 굿만 하면 끝이야, 난?
“두 분 구마(驅魔)하는 데 실패하면 조금 더 조사해 봐야지.”
힌트를 하나도 쓰지 않겠다고 했으니 시행착오는 각오하고 있다. 그런데 채하민이 쾌활하게 걷다가 건전지가 다 된 인형처럼 멈춰 섰다.
“왜?”
―…두 분?
“응.”
같이 읽었잖아, 둘이 교환일기까지 쓰면서 안 사귀고 있었던 기괴한 이야기.
고백만 했으면 이 사달도 안 났을 텐데, 경제학적으로 손해가 막심하다.
―동화야, 또 놀린다! 세 분이잖아. 내가 본 게 세 분인데? 남자분 두 명이랑 여자분 한 명! 삼각관계 아니었어?
대체 뭘 잘못 본 거야, 하민.
나는 잠시 류이든의 화면에서 눈을 떼 채하민 쪽 화면의 채널을 죽 돌려봤다.
아무리 봐도 두 명이다. 숫자 세기는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식이라 틀릴 리도 없다.
그러나, 채하민에게 ‘두 명이라니까, 하민.’이라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을 때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는 너무 자명하다.
‘뭐, 동화야. 놀리지, 말, 말라니까?’
‘놀리는 게 아니라, 하민. 뭘 잘못 본,’
‘아?’
잠시 침묵.
내 목소리에서 진심을 느낀 채하민이 다시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으어?’
또 침묵.
그러나 이번의 침묵은 지난번 같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는 과정’이 아니라, 서서히 몸이 굳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마침내 온몸이 굳으면 여전히 전화기와 카메라 너머 내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도, 동화야. 옆에 와 주라. 무릎, 무릎 꿇을게! 내가, 내가 뭐든 할게! 통장도 줄 수 있어!’
그러면서 울겠지, 아마. 음, 익숙한 미친놈.
물론 내 머릿속 채하민의 이미지가 투영된 거라 실제로는 다를 수도 있지만.
“놀려서 미안.”
―그래! 나도 이제 그런 거 안 속는다니까. 너랑 통화하고 있는데 그런 게 무섭겠어? 나도 활동하면서 엄청 성장했지.
자랑스럽나 보네, 자기 자신이. 실상은 학생이 놓고 간 교복을 사람으로 착각해서 화들짝 놀란 거겠지만, 채하민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러게. 어쨌든 제의복 입었으면.”
아, 다 외웠다. 좀비분들 동선.
류이든이 보이면 곧장 쫓아오지만, 그렇지 않을 땐 일정한 동선을 유지한 채 움직여 주셔서 외우기 어렵지 않았다.
“방울이랑 부채 들고 다목적실로 가면 돼. 암호는 기억해?”
교환일기 첫 글자만 떼서 나온 숫자들.
―당연하지! 247356!
류이든 정도 신체면 내가 말하는 순간 곧바로 방향을 전환하며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선수촌에서 연습하다가 연예인의 꿈이 생겨서 튀어나왔다고 해도 무방하잖아. 종목은 도그 어질리티.
“정확하네.”
본인 스스로 개라고 칭했으니 목줄 잡고 잘 이끌기만 해도 알아서 골인 지점까지 1등으로 도착할 것이다.
* * *
지동화가 채하민의 멘탈을 케어하며 류이든 쪽 좀비 움직임을 외우는 동안 이현재는 피를 토하고 있었다.
“형, 한 번 더 해 볼게요. 4번 문제의 답은?”
―음. …4번?
이현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에, 너무, 너무 어려워. 스무 개 중에 열여섯 개만 맞히면 되는 시험이 이렇게, 이렇게 어렵다니.
석준이 번호를 외울 수 있도록 수많은 방법을 쓰던 이현재는 그냥 자기가 직접 들어가서 풀고 싶다는 강력한 열망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형, 제가 많이 아껴요.”
―나도―.
“…저는 반어법이었어요. 미안해요.”
―그래도 나는 아껴―.
아, 자신이 쓰레기가 되는 기분. 저러는 게 아무런 악의도 없으니까 더 빡쳐, 씨. 게다가 진심인 거 아니까 세 배로 빡친다.
그런 형이 존경스러워서 더 짜증 나. 왜 우리 그룹엔 자신보다 못난 인간이 한 명도 없어서 늘 존경만 하게 되는지, 이현재는 그게 가끔 불만이었다.
“다시 한번만 점검하고 시험 들어갈 거예요. 재시하면 시간 소요가 더 된다구 하니까 힘내구요.”
―응!
해맑네요, 형. 저는 속이 타들어 가요.
이현재는 습관적으로 이미 다 외운 숫자쌍을 부르며 의자에 드러누웠다.
정신적 피로가 심각하다. 시험지를 빼내는 것부터, 외우는 것까지. 이 노력으로 공부를 했으면 성적이 오를 텐데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납득이 안 되니 몰입도 힘들었다.
“…동화 형네는 잘하구 있을까요?”
―나보다는 잘할 것 같아.
웃으면서 말하지 말아요. 어떻게 저리도 아무런 타격이 없어 보이는지.
자괴감 따위는 당연히 없고, 자존심도 당연히 없는데, 그러면서 자존감은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걸 가장 사랑하면서, 다른 사람이 그걸 망가뜨리면 슬프지만 그 사람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저희가 무조건 이겨요.”
―그래?
“네, 확실해요.”
우리 둘이 이 정도로 호흡이 맞았던 적이 없잖아요.
동화 형이 심바라는 호랑이와 즐겁게 놀고 있을 때, 이현재와 석준은 거북이의 밥 하나 챙겨 줄 때도 수시로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땐 웬 거북이를 캐릭터명으로 부르면서 세상 행복해했던 형이, 이현재는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지.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저 존경스러워서 더 빡친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분노스러운 일이 많은지, 이현재는 석준의 평정심이 부러워질 지경이다.
―아쉽다.
“진짜 제 입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요, 형.”
―그것도 아쉽다―.
듣고 싶다는 소리네.
“…겁나 미친놈 같아요, 형.”
이현재는 자연스레 카메라에 손가락으로 가위질을 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PD님. 결국 못 참았어요.
석준은 그러거나 말거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답안지 외우기에 빠져들었다.
―공부는, 진짜 재미없다, 현재야. 그치―.
“…저한테 그렇게 물으면 또 싸우는데요?”
―그건 재밌으니까―.
“죄송해요, 작가님, 저 마이크 잠시만 음소거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 * *
‘게임 끝! 행복한 하교 시간! 친구들과 모여 분식을 즐기러 가 주세요!’라는 엔딩 문구.
끝까지 어떻게든 학교랑 연결하는 것 좀 봐. 뜨개질 실력이 나보다 좋으신걸.
벌써, 해가 다 졌구나.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한 번 켰다.
채하민이 기괴한 몸놀림으로 굿을 하고, 류이든이 머리가 맑아지는 총명탕을 치료제라며 원샷하면서, 모두 탈출에 성공했다.
아, 채하민이 한풀이 춤추는 건 사진으로 남겼어야 했는데. 무속인분들도 춤선 보고 감탄하실 정도였지.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정리하며 문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문을 열려다가 이를 꽉 깨물었다.
“…동화는 요기 문이 열렸으면 좋겠어요.”
채하민과 류이든이 탈출하고 나서 화면에 떠오른 문장. 탈출을 위해 외쳐야 할 암호라더라. 망할 PD놈, 류이든 쪽으로 갔으니 망정이지.
드르륵, 열리는 문. 나는 밖으로 나가려다가 한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표정이 썩었다.
“조금 더 귀엽게 부탁드릴게요. 지금처럼 냉정하게 읽으면 종교 경전에 적힌 문구래도 믿겠어요!”
왜 여깄는데, PD놈.
“이거 들으려고 달려왔죠. 저는 제가 준비한 건 눈으로 봐야 직성이 풀려서.”
저런. 환멸이 나네.
“아, 그보다, 오늘 촬영 후기 인터뷰 딸 건데, 따라와 주실 건가요?”
“음.”
기묘하네. 촬영 순서가, 기괴해.
심지어 ‘따라와 주실 건가요?’라니, 선택지를 굳이 주는 문장이다. 아주 거슬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분식, 먹으러 가겠습니다.”
그러자 PD놈이 곧장 실망스러운 눈으로 어깨를 늘어뜨렸다.
“아, 이걸, 안 걸려 주시면, 너무 재미가 없어요, 동화 씨.”
대결이었구나, 망할. 그런 줄 알았으면 류이든을 더 갈궜어야 했는데.
“빨리 가세요! 승리 기원하겠습니다!”
거짓말 치기는. 얼굴만 봐도 내가 꼭 패배해서 치욕을 맛보길 바란다는 게 티가 나는데.
학교 앞에 준비된 차량에 타자 곧바로 차가 출발했다. 진 것 같지만, 져도 뭐. 동생한테 질 순 없지만 멤버들한테 지는 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동화 씨, 여기서 내리시면 돼요.”
“이 앞 분식집으로 가면 될까요.”
“네.”
차에서 내리니 정겨운 분위기의 분식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긴 건가. 아니, 이 망할 것들, 먼저 도착했어도 숨어 있겠지. 그리고 PD놈도 괴상한 장치를 숨겨놨을 수도 있다.
무슨 리얼리티 하나 찍는데 이렇게까지 의심이 도질 일인가 싶긴 하지만, 저 화분에서 채하민이 튀어나오거나, 폭죽이 터져도 나는 그러려니 할 지경이라 어쩔 수가 없다.
한참을 주변을 서성이며 무언가 숨겨진 건 분명한 분식집 문고리를 잡았을 때, 뒤에 차가 한 대 섰다.
자연스레 돌아보니 이현재가 아쉬움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졌네.”
내가 주변 서성거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차가 막혀서 시간이 달라졌다고는 볼 수 없겠다.
“…하, 마지막에 페이크 간파한 거 카메라에 자랑하구 있었는데. 부끄럽네요.”
그리고 내가 문을 열고 한 발 들어섰을 때, 다른 차가 한 대 멈춰 섰다.
“아, 뭐야. 나 3등이야?”
“인터뷰했어요?”
“하다가 허락 맡고 뛰쳐나왔어.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쟤는, 내내 그렇게 달렸는데 어떻게 지친 기색이 없다. 나랑 같은 거 먹고 살지 않나.
나, 이현재, 류이든 순으로 분식점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을 때, 우리는 승리 조건을 듣자마자 탄식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 와야 이기는 거구나…….”
“둘은 인터뷰 무조건 하겠죠?”
“그럼, 우리가 일찍 알아챈 거 아무 의미 없는 거 아니야?”
결국, 이 게임의 승패가 머릿속이 꽃밭인 둘 중 누가 더 말을 적게 하냐에 달려 있다니. 종일 고생했던 과정이 모두 무의미해지잖아, 망할.
“인터뷰를 회피하는 데 성공하신 여러분들에게도 특혜가 있어요.”
작가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며 태블릿을 한 대씩, 팀별로 나눠 주셨다.
“두 분의 인터뷰를 직접 감상할 수 있답니다.”
특혜, 라기엔, 우리만 수치스러울 것 같은, 그런, 예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