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화(3/343)
3.
[1월 20일, 쌀쌀한 날씨, 그러나 맑음.오늘을 끝으로 우리는 회사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삼촌이 도와주셔서 수월하게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지현이 동화한테 더 손 못대게 감시도 해주신다고 하셨다.
회사에서 다른 친구 없이 홀로 지내며 묵묵하게 괴롭힘을 견뎌낼 때만 해도 강인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여린 면이 있었다. 그래서 쓰러진 거겠지?
연습생 생활 때도 계속 친해지고 싶었는데, 특유의 냉랭한 분위기 때문에 망설였지만, 막상 대화를 해보니 차갑기만 한 아이는 아닌 것 같다.
오늘 두 번째로 밥도 같이 먹었다! 동화와 입맛이 맞는 것 같아 기쁘다. 하긴 세상에 돈가스와 버섯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긴 하다. 많이 먹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 그나저나 예전에 말했던 비너슈니첼은 대체 뭘까? 나중에 알아봐야겠다.
(중략)
이렇게 지내다 보면 서서히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기왕이면 서바이벌에서 둘 다 살아남아 함께 데뷔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갓 엔터는, 삼촌 권유로 들어가긴 했지만, 솔직히 데뷔하기 좋은 회사는 아니었으니까. 나야 삼촌을 생각해서 남아있었다지만, 동화 같은 아이는 더 큰 곳에서 데뷔하는 게 나을 거다.
그런데 동화는 왜 우리 회사에 있었던 걸까?]
거기까지 일기를 쓴 채하민은 잠시 연습실에서 봤던 지동화를 떠올렸다.
우선 춤. 자신보다 키는 작지만 전체적인 신체 밸런스가 좋고 몸 선이 유려해서, 우아하다는 감상이 잘 어울린다.
그다음 노래. 타고난 음색이 깨끗한 편이고, 울림이 좋아서 눈을 감고 감상하게 된다. 솔로 가수로 대성하기에는 모자랄지 몰라도 리드 보컬로서는 충분한 실력이다. 음역대가 조금 좁은 편이긴 하지만, 듣고 싶어지는 목소리라는 강점이 강하니까.
마지막으로 외모. 팬분들이 도도한 고양이라고 좋아할 인상이다. 무표정일 땐 조금 날카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좋아하는 팬분들이 생길 거다. 사실 기본적으로 잘생겼으니 그냥 취향 문제기도 하고.
거기에 기억만 제대로 돌아온다면 작곡과 편곡도 할 수 있다. 연습실에서 작곡을 배우는 애들이 욕하는 걸 들어보면 실력 역시 좋은 축에 드는 것 같다.
이렇게 보면 거의 완성형 연습생인데, 대체 왜 우리 회사에서 데뷔를 하려고 버틴 걸까? 그 모진 괴롭힘까지 견뎌 내면서.
어쩌면… 데뷔하고 싶은 열망이 커서 그랬던 건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그는 그런 동화를 그만두게 만들었던 전 회사 연습생들을 생각하며 화를 삭일 수밖에 없었다.
* * *
“아이돌은 무슨, 하, 진짜.”
나는 옷을 입으며 화를 삭일 수밖에 없었다.
15일 동안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일을 반복한 지금, 나는 이게 꿈이 아님을 확실히 인정했다. 길고 길었던 의심의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그래, 이건 현실이다. 스물아홉 살까지 살면서 이룬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린 현실. 대학 시절부터 써왔던 내 소설도, 한 권 한 권 사 모아 방의 벽 두 개를 가득 채운 책도, 모두 사라진 거다.
‘…후, 침착하자.’
솔직히 고백하자면, 전 회사와 계약을 해지한 직후에 핸드폰 끄고 잠수할까 고민했다.
하기 싫은 것도 싫은 건데, 서바이벌에 참여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하는 고민도 있었으니까.
내가 서바이벌에 나간다는 건, 누군가에겐 생애 한 번밖에 없을 수도 있는 기회를 앗아 가는 것과 다름없잖은가.
그렇게 오늘로부터 5일 전, 진지하게 도피를 고민하던 중, 이 망할 놈의 지적 생명체가 나를 막아섰다.
‘퀘스트 확인.’
[긴급 퀘스트 ‘더는 도망쳐선 안 돼!’당신은 현재 6개월 치 월세가 밀린 상태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잔고로는 4분의 1도 낼 수 없습니다.
현재 집 주인은 당신을 쫓아내고 고소를 할 예정입니다.
이 퀘스트를 수행하고 보상을 받으세요.
완료 조건 : 채하민을 따라 서바이벌에 참가할 것.
보상 : 6개월 치의 밀린 월세와 추가적인 두 달분의 월세, 총 5백만 원
주의! 만일 보상만 획득하고 중도 포기하거나 의도적으로 무대를 망쳐 탈락할 시 보상이 회수됩니다!]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오는 퀘스트 창이군. 그 퀘스트가 발생하는 순간부터 내 핸드폰에 집주인의 분노가 담긴 메시지 세례가 떨어지기 시작한 거다.
‘…5백만 원이나 밀렸다니, 내가 이렇게 대책 없이 생활했을 리가 없는데.’
대체 ‘나’는 중학생 때부터 알바 하며 모아둔 돈을 다 어디서 어떻게 해 처먹었길래 6개월이나 월세가 밀렸으며, 집주인은 대체 왜 그걸 봐줬는지도 궁금하군.
심지어 분수에 맞지도 않게, 내가 소설가로 자리 잡고 나서 구한 집에서 고등학생 때부터 산다고?
나는 재빠르게 통장을 찾아 잔고를 확인해 봤다. …50만 원이라, 이것보다 훨씬 더 많았을 텐데, 분명.
정말 나라면 절대 이렇게 살 리가 없는데.
…혹시 저 기이한 지적 생명체가 조작한 건가.
나는 끓어오르는 의심을 참고 날 보고 있을 녀석에게 물었다.
‘…질문, 만약에 그냥 실력이 부족해서 중간에 탈락해도 보상이 회수되나?’
[그렇지는 않습니다.]…하, 그래, 참가한다.
500만 원이 지금 어디서 나올 구석도 없는 데다가, 빚지는 것보다야 서바이벌 참가해서 월세 받고 탈락하는 게 낫지. 지금 할 수 있는 선택 중 가장 합리적이다.
어차피 아이돌이 될 재능이 없는 내가 탈락하지 않을 리가 없으니, 아마 괜찮을 거다.
오늘은 채하민과 니체 엔터로 가는 날로 지난 4일 동안 오디션을 위해 연습한 내가 성적표를 받는 날이다.
대충 준비했다간 트집 잡혀서 월세를 받지 못할 수도 있으니 나름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꽤 열심히 했는데 떨어지면 조금쯤은 슬플 것 같긴 하군.
옷은 회색 계통의 니트에 검정색 재킷, 검정색 슬랙스를 껴입었다.
잘 입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깔끔한 인상으로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저렇게까지 내가 서바이벌에 참여하라고 강요하는 걸 보면… 메인 퀘스트는 서바이벌에서 해결되는 건가.’
나는 미심쩍어하며 집을 나섰다.
* * *
채하민과 만나기로 약속한, 오디션 25분 전.
니체 엔터테인먼트 앞에 가자 채하민이 손을 흔들어 보인다. 쟤는 뭐가 기쁘다고 계속 실실 웃고 있는 건지.
“동화야! 트레이닝복 말고 사복 입은 거 처음 보는데 깔끔하게 잘 입었다.”
연습생이어도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았군.
채하민은 후드티에, 레이어드 셔츠에, 가죽 진에, 하여간 스트릿 패션으로 조금 화려한 감이 들게 입었다. 그러니까… 양아치 같은 차림새다.
그런데 정작 얼굴은 양아치는 무슨, 그냥 순한 토끼라서 미묘한 언밸런스함이 형성됐다. 마치 어린애가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짓고 사탕을 달라고 협박하는 것 같은 느낌.
사회생활… 해야겠지, 저쪽이 먼저 칭찬을 했으니.
“…너도 잘 입었네.”
채하민은 활짝 웃더니 빨리 들어가자며 날 잡아끌었다. 이거 습관 맞는 거 같은데.
나는 한쪽 팔을 채하민한테 붙잡힌 채 졸졸 니체 엔터 사옥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안녕하세요, 오디션 때문에 왔습니다.”
채하민이 넉살 좋게 인사하자 안내 데스크 직원이 잠시 기다리라며 어디로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남자가 우리에게 인사를 걸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매니지먼트 팀 소속 강승원입니다.”
예의 바른 샐러리맨처럼 보이는 인상. 30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
“두 분께서 들으셨다시피 이번 오디션은 데뷔 서바이벌 결원 자리에 들어갈 연습생을 뽑기 위해 진행됩니다. 지난주에 걸쳐서 총 10명이 오디션을 보았고, 여러분들 두 명이 마지막 참여 희망자십니다. 12명 중 2명만 서바이벌 참여가 가능합니다.”
나와 채하민은 기계적인 매뉴얼 설명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디션 시간까지 20분 넘게 남았으니, 오디션 볼 곳 옆에 있는 연습실에서 몸을 풀며 대기해 주시면 됩니다.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나와 채하민은 강승원 씨의 안내에 따라 연습실로 들어가 몸을 풀기 시작한다.
채하민은 내가 목을 풀면서 이어폰을 꺼내는 걸 보더니 물었다.
“동화야, 너 오늘 보컬 곡 뭐 들고 왔어?”
“…자작곡.”
“오, 왜?”
“좋길래.”
진짜다.
서바이벌에 최선을 다해 참여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그 노력의 일환으로 현재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화성학이나 악기에 관한 지식이 당연하다는 듯 머릴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연습생이 작곡이나 편곡이 가능하다는 건 상당한 메리트일 테니, 그걸 어필하기 위해 서바이벌 참가 오디션에 자작곡을 들고 나가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전의 ‘내’가 만들어둔 곡 중 하나를 골라잡아, 그대로 쓰기에는 아무리 ‘내’ 작품이라지만 양심에 찔려서 적당히 편곡해 봤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 꽤 좋은 것이다.
채하민은 자신만만한 내 대답에 눈 크기를 약간 키우고 내가 끼고 있는 이어폰을 가리키며, 들어볼 수 있겠냐고 물었다. 안 될 건 또 뭐고.
“MR인데 괜찮아?”
“음, 그러면 그냥 오디션 할 때 들어야겠다.”
채하민은 약간 아쉽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차라리 불러달라고 했으면 모를까, 이런 대화 흐름이면 지금 불러준다고 하기도 조금 그렇다.
나는 얕게 고개를 끄덕이며 MR을 재생해 속으로만 가사를 읊조렸다.
* * *
‘이번 오디션은 제발, 제발! 서류로 보기에는 나쁘지 않아 보였어. 그러니 제발… 신이시여!’
니체 엔터테인먼트 기획2팀의 장해진 팀장은 신에게 진솔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2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쁘지 않았다.
방송사와의 협상도 나름 선방했고, 가장 실력 있는 10명을 뽑아뒀으니 서바이벌이 시작만 제대로 하면 순풍에 돛 단 듯 순항할 줄 알았다.
그런데 배에 있는 10개의 노 중에 두 자루가 썩어있을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이 배는 10명이 노를 저어야만 앞으로 나아가는 배인데!
연습 과정 촬영까지는 이제 한 주 정도 남은 시점. 윗선에선 실력 미달이라도 그냥 아무나 넣으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거 기획하느라 했던 야근이 며칠인데, 절대 안 되지.’
그러나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야근이고 뭐고, 아무나 넣긴 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기에 이번 오디션 참가자들은 실력자여야만 한다.
‘신은 죽지 않았다, 신은 죽지 않았습니다, 절대로 신은 죽지 않았습니다, 니체가 틀렸습니다. 그러니, 부디…….’
두 손을 꼭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를 보컬트레이너가 질린다는 듯 바라보았다.
“시간 됐으니 오디션 시작하겠습니다.”
신인 발굴 팀장의 말에 장해진은 고개를 들었다. 곧 문을 열며 들어오는 두 사람을 꼼꼼히 훑어봤다.
‘일단 실물 합격.’
토끼상과 고양이상, 둘 다 아이돌 팬덤이 좋아할 얼굴이다. 두 사람은 오디션장 중간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멈춰서 인사했다.
그는 빠르게 카메라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카메라도 합격……!’
일단 얼굴은 됐다. 이 바닥은 얼굴도 실력이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두 분 다 같은 회사 출신이죠?”
“네! 갓 엔터테인먼트라고, 아실지 모르겠네요.”
두 사람 중 순해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이름은 채하민이랬지? 옆에는 지동화였고.
“사실 출신이 어디든 실력만 제대로면 합격하는 데 상관없습니다. 채하민 씨 먼저 볼게요. 우선 노래부터.”
채하민이 한 발짝 앞으로 나오자, 지동화는 옆으로 나와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준비되셨죠?”
채하민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장해진은 곡을 틀어달라는 사인을 주었다.
꽤나 익숙한 피아노 전주가 들렸다.
‘고음이 약한가 보군.’
이 회사에서 썩은 게 몇 년인데, 선곡만 봐도 의도는 쉽게 파악된다.
약점인 고음은 피하고 기본기 위주로 어필할 수 있는 곡을 고른 걸 보면 최소한 자기 실력은 파악하고 있다는 것.
그녀는 1절만 듣고 노래를 멈췄다. 무난하지만, 딱 그 정도.
“다음 춤 볼게요. 몸 풀 시간 필요하신가요?”
“아뇨, 바로 할게요!”
그리고 이어지는 곡은 우리 회사 소속 TOT의 데뷔곡.
춤이 빡 센 걸로 유명한 힙합곡으로, 날 티 나는 학교 선배 컨셉으로 인기 좀 끌었다. 보니까 옷도 맞춰 입은 것 같다.
채하민은 박자에 맞춰 몸을 풀듯 움직이기 시작한다. 메인 댄서 라인을 기본으로 사이사이 센터 파트의 춤을 땄는데,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매우 능숙한 아이솔레이션, 손을 뻗을 땐 손끝까지 신경 써서 시선을 잡아끈다.
그러면서도 여유로운 표정과 안정적인 시선 처리는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곡이 터지는 지점에서 몸을 숙였다가 손과 함께 뒤쪽으로 젖히며 웨이브를 타는 동작에서 그녀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실력도 실력인데, 표정이…….’
웨이브를 탈 때 채하민은 익살스럽게 웃으며 시선과 고개를 오른쪽으로 약간 까닥였는데, 곡의 컨셉을 정확하게 표현해 냈다.
이후 이어지는 동작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되돌아가는 부분은 완벽했다. 탄탄한 기본기, 눈이 가는 춤 선, 넘치는 끼까지.
이런 애가 메인 댄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채하민은 곡이 끝날 때쯤, 세밀하게 쪼갠 박자에 맞춰 동작을 이어나가다 등을 보이며 능청스럽게 기지개를 켜고 천천히 고개만 이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장해진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신은… 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