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0화(30/343)
30.
자체 제작 미션곡이랑, 커버곡 무대를 모두 끝마치고,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고작, 4일 밤새운 건데 왜 이렇게 지치지.’
잠시 지쳐서 곧 분장을 고친 뒤 무대로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잠시 백스테이지에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망할, 그러고 보니 그땐 책만 읽고 밤새운 거군. …육체노동으로 4일 밤새우기는 무리, 기억해 둬야지.’
그나저나… 나는 조용히 속으로 기지생을 불렀다.
‘퀘스트 확인.’
[메인 퀘스트 ‘찬란한 시작’!당신은 여러 어려움을 이기고 드디어 데뷔의 문턱 앞에 섰습니다. 한 발짝 더 내딛어, 데뷔를 완수하세요!
완료 조건 : 데뷔
보상 : ???]
…보상으로 뭘 줄지 예상도 안 되는군. 가능성의 조각이려나.
개인적으로 남의 불행사를 더 보고 싶진 않은데.
내가 숨을 고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내 앞으로 걸어가고 있던 이현재가 쓰러지려 했다.
…어?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녀석을 받들었다.
“다쳤어?”
“…긴장해서, 다리에, 힘이, 풀려서.”
녀석은 힘겹게 중심을 잡더니 가까스로 바로 선다.
“…형, 수평선은 도달할 수 없는 곳이죠?”
…지금 그런 걸 물어보면.
“형이랑 가사 쓰면서, 6명이서 데뷔하는, 모습을 계속 상상했는데, 누군가는 떨어지겠…죠?”
“…그렇지.”
계단에 오르기 싫어도, 우리가 최선을 다해 항의한 끝에 무대 위에서 계단이 사라졌어도, 누군가는 탈락하겠지.
그러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이현재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형, 저 어쩌죠. 제가 떨어지긴 싫은데, 다 같이 고생한 형들이나 현진이가 떨어지는 것도 너무 싫어요.”
…음, 서바이벌의 취지가 아무리 잔인해도, 인간의 본성은 바꿀 수 없다. 멤버들 하나하나 왜 이리 선하단 말인가.
“…내적 모순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도리어 인간을 성장케 할 수도 있어.”
그러자 이현재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한다.
“또 이상한 소리.”
…얘는, 대체, 신경 써서 말해줘도.
“그러니까 지금 제 마음은 자연스러운 거니까, 받아들이라는 거죠?”
“…음.”
약간 모자란데.
“그리고 이걸 발판 삼아 성장할 수 있도록 하라는 거고요?”
“…정확해.”
“…고마워요. 떨어져도 고민 상담 보내도 돼요?”
조언엔 자신 없어도 듣는 것은 자신 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고 이현재와 함께 메이크업을 수정하러 갔다.
이제… 정말 누군가는 떨어지겠군.
생각해 보니, 이 망할 방송국 놈들, 마지막에 딱 한 명만 탈락하게 만들다니. 왜 끝까지 잔인한 짓거리인가.
* * *
최종적으로 무대에 오른 6명은 두 번째 무대 복장이었던 흰 셔츠와 가죽 바지를 입은 채 각자 자리에 섰다.
이동석이 순위를 발표하면 오른편의 단상에서 왼편의 단상으로 이동하는 체계로, 왼편 단상엔 딱 다섯 개의 핀 조명이 켜져 있었다.
저 속에 들어가면 데뷔가 확정, 그리고 이 단상에 남으면 탈락.
모두 서로를 바라보며 애써 웃곤 있지만 그 웃음 너머 긴장이 엿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목화는 왔으려나.’
나는 빠르게 관계자 객석을 눈으로 살폈다. 무대 할 땐 볼 겨를이 없었으니, 지금이라도 사지 멀쩡한지부터 확인해 봐야겠다.
한 분 한 분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는 다른 가족들 틈으로, 목화가 있었다.
손에는 ‘고생 속 피어난 한 떨기 꽃’이라는 문구가 적힌 천 쪼가리를 들고, 투 블럭을 한 머리로, 활짝 웃으면서.
이 세계 기준으로 4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예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큰일 났군. 눈물이 날 것 같은데.
나와 눈이 마주친 목화는 작게 손을 흔들곤, 파이팅! 하며 주먹을 쥐어 올린다.
나는 표정을 애써 유지한 채 고개를 앞으로 돌린다.
…서운해하진 않겠지.
그런 와중에 이동석의 진행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문자 투표 70%, 이전 개인 직캠 조회 수 30%를 총합하여, 6명 중 5명만이 ‘더 넥스트 니체’의 일원으로 남게 됩니다. 이 5명은 데뷔 준비 과정을 보여주는 리얼리티에 참여하여, 니체 엔터테인먼트의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던 이동석은 드디어 목소릴 높인다.
“자, 문자 투표 집계가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1위부터 발표하겠습니다!
음, 채하민이려나.
* * *
생방송 중, 문자 투표 시간이 종료되고 SNS는 현재 ‘더넥니’에 진심인 이들의 멘션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동화 데뷔하자 동화 데뷔한다 동화는 아이돌의 꽃이다 케이팝 미래 다신 없을 지동화 시× 데뷔하자
―현진아… 나 내일모레 중간 고사야… 너 탈락하면 슬퍼서 시험 조질 거고… 너 붙으면 기뻐서 시험 조질 예정이야… 조질 게 정해져 있다면 기뻐서 조지고 싶어…
―거대토끼. 데뷔. 당근이지.
―채하민 없이 댄서 라인 성립 되냐고 눈치 있으면 기획사에서 알아서 붙이라고
―현직 체대 친구가 인정한 몸 좋은 골격 류이든 데뷔해서 슈트 한 번만 입자!!!!
―배우신 분…
―준아… 석준아… 앓다 죽을 이름아… 정신병 걸릴 것 같은 이름아… 배우할 것 같은 얼굴로 랩할 때마다 심장 때리는 놈아… 그 덩치로 위즈니가 최애인 녀석아… 무조건 데뷔해.
―현재… 청량한 목소리 엄는 그룹… 이 할미는 실어… 현재 엄씨… 뭐가, 되겐누…?
―할머님 현재도 좋지만 건강도 생각하셔야죠~!
모두 자신이 미는 연습생이 붙어야만 하는 이유를 단호하게 선언하며, 각 멤버 없이는 그룹 꼬라지가 제대로 되겠냐고 한탄했다.
그렇게 SNS에서 혼돈의 장이 펼쳐지던 순간, 계속해서 순위 발표를 질질 끌던 이동석 MC는 마침내 1위를 호명했다.
“1위는 지동화 연습생입니다!”
막판에 터진 가정사 논란과, 거기서 밝혀진 진실 덕분에, 안 그래도 인기가 많던 지동화가 대중의 관심을 받은 결과였다.
―시발 동화여야야야야ㅓ어어로어아너ㅠㅠㅠㅠㅠㅠㅠ퓨ㅠㅠㅠㅠㅠㅠㅊ퓨ㅠㅍㅍㅍㅍㅍ픃ㅎ퓨ㅠㅠㅜㅠㅠㅠㅠㅜㅠㅠ
―꿈인지 확신할 수 없어 리모컨으로 제 머가리를 부술 듯 때려봤읍니다… 현실이었읍니다… 오늘밤… 눈물이 흐름니다…
화면 속 지동화는 무표정인 채 조명 안으로 들어간다. 지나가는 연습생마다 지동화를 먼저 안아주거나 축하해 주곤 한다.
소감을 묻자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우선, 음, 예상치 못한 1등이라는 등수를 안겨주신 팬분들께 깊이 감사 인사 올립니다.”
지동화는 그러곤 몸을 90도로 꺾어 인사한다.
“동생…이 이 무대 밑에 와있는데, 그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음, 죄송합니다.”
그리고 지동화는 얇은 눈물을 한 방울씩 흘린다. 잠시 심호흡을 한 지동화는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쳐낸 뒤 한마디 한다.
“제 앞으로의 생애를 완전히 바꿔주신 분들을 위해, 좋은 무대로 이 은혜를 갚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팬들은 소감이고 뭐고 일단 무표정한 상태에서 눈물을 주룩 흘렸던 지동화의 모습에 치여 심장을 부여잡고 있었다.
―기억났다… 내가 헤어지자니까 그렇게 냉했는데 눈물만 한 방울 흘리던 전 남친 지동화… 잘 지냈니?
―조용히 하십쇼 지금부터 모두의 전남친입니다
―성공적인 사업잔데 내 앞에서 흘리는 눈물 한 방울… 오늘도 훌륭히 기억 개조 당했답니다
―동화 동생이랑 다시 만났나 보다 ㅠㅠㅠㅠㅠ 동생 글 읽을 때 진짜 짠했는데 다행이다 ㅠㅠㅠㅠㅠ
―근데 동생이라고 말하는 순간 눈물 반사적으로 흘리는 거 보면 엄청 아꼈나 보다… 나랑 부모 같은 생물학적 성별 남성은… 대체 왜 나를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 취급인지…?
그리고 제대로 된 시간 끌기 끝에, 2등이 발표된다.
“2등은 류이든 연습생입니다!”
마지막 무대에서 보여준 흰 와이셔츠 핏 덕분에 호기심에 보고 있던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3등과 사소한 차이로 2등을 한 류이든은, 이름이 불리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았다가 힘겹게 일어선다.
그리고 조명 속에 들어선 후에도 감정이 복받치는지 한동안 울던 류이든은 마이크를 들어 올린다.
“마지막, 마지막 도전이 될 거라 생각했고, 중간중간 포기하고 싶고, 그랬는데, 어… 동화 형님 감사해요! 내가 이 은혜 평생 갚겠습니다!”
류이든은 소감을 말하다가 머리에 과부하가 왔는지,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대로 말해버렸다.
갑자기 이름이 불린 지동화가 화면에 클로즈업되며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부각된다.
입 모양으로 ‘이 정신 나’까지 말하다가 순간 정신 차렸는지 입을 닫는다.
“이렇게 데뷔하게 해주신, 그리고 저 믿고 응원해 주신 팬분들께 너무 감사하고, 저를 좋게 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류이든이 자신이 힘겨울 때 도와준 이로 지동화를 언급한 듯한 소감은 류이든 팬들의 반응을 얻었다.
―지동화가 우리 이든이 정신적으로 많이 도와줬나 보다… 나는 시발 그것도 모르고…
―그러게 나 지동화 얼굴 냉해서 싫어했는데… 예상보단 착한가 봐
그리고 이후 호명된 채하민과 석준이 각각 3등과 4등으로 데뷔를 확정 지었다.
채하민은 이름이 불릴 때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긴 했으나 예상외로 울진 않았다.
“제가 데뷔할 수 있도록 응원해 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절 토끼라고 불러주시던데, 데뷔 후엔 귀여움 말고 멋진 모습도 많이 보여드리겠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저 데뷔했어요!”
석준도 울지 않고 위즈니 왕자처럼 우아하게 걸어 나와선 소감을 밝혔다.
“부족한 제가―긴 연습생 생활 끝에― 데뷔를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응원해 주신 분들과 제 가족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몸이 편치 않아 못 올라오신 할아버지! 손자가 꼭― 호강시켜― 드리겠습니다.”
“네, 잘 들었습니다. 석준 연습생이 4위로 데뷔한 가운데, 이제 남은 자리는 단 하나, 그리고 남은 연습생은 단 둘입니다. 둘 중 단 한 분만 데뷔하실 수 있습니다.”
이동석 MC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옆쪽에서 지동화의 표정이 아주 잠시 일그러지는 모습이 잡혔다.
―동화 표정 본 분? 애들 탈락하는 거 때매 그런 듯 ㅇㅇ 이번 자작곡 가사도 그렇고, VCR도 그렇고 생각 깊은 거 티 나
―그러고 보면 동화 이전 경연에서도 계속 누구 탈락할 때마다 안타깝다는 표정 지은 거 본 듯
―ㅇㅇㅇㅇㅇ ㅈㄴ 미세한 변화긴 한데 예전부터 표정 조금씩 안 좋아지긴 했어 근데 오늘이 제일 크게 변함 ㅅㅂ 이런 부분에서도 발리게 만드는 지동화 당신은… 대체 불가능…
팬들은 오늘따라 기계처럼 표정 변화 없던 지동화의 새로운 모습을 여럿 발견하는 것 같았다.
“자, ‘더 넥스트 니체’! 마지막으로 데뷔 멤버에 합류한 연습생은!”
이동석이 마지막 발표를 앞두고 미친 듯이 질질 끌더니 드디어 발표를 시작했다.
“바로!”
이동석은 잠시 카드를 고쳐 들더니 소리쳤다.
“이현재 연습생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호명된 순간 무너져 내린 이현재는 숨을 힘겹게 쉬더니 기어코 미친 듯이 울기 시작했다.
류이든이 울었던 것보다 세 배는 크고 서럽게 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긴장감에 완전히 무대를 망쳤을 때, 부모가 은근하게 압박을 해 올 때, 그러다 유학을 가라고 강권했을 때,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이현재는 억지로 버텨, 9년이라는 긴 연습생 생활의 끝을 맞이했다.
긴 울음 속에서도 방송 시간이 아직 촉박하진 않은 덕에, 모두 지켜만 보고 있을 때, 옆에 있던 김현진이 조심스레 이현재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날라리 같았던 김현진의 따스한 모습은, 탈락이 확정된 순간 울기 직전까지 내몰렸던 김현진 팬들의 마음을 더 슬프게 만들었다.
이현재는 그 손길에 진정이 됐는지, 찬찬히 걸어 나가 뒤에 김현진을 두고 왼편의 조명 속으로 들어섰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비틀거리는 이현재를 채하민이 잡아주어 가까스로 균형을 잡는다.
“연습생, 생활이, 총 9년이었던 것 같아요. 저보다 길게 하는 사람들, 도 많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이렇게 데뷔할 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저 힘든 일이나 고민, 생길 때마다 팬분들이 올려주신 글 읽고, 동화 형 고민 상담 해줘서 너무 고맙고, 정말, 감사합니다!”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고, 심지어 사이사이 훌쩍이느라 제대로 들리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심정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기에, 현장의 모두 박수를 쳤다.
그리고 유일하게 우측에 남은 김현진에게 돌아간 마이크, 김현진은 해맑게 웃으며 소리쳤다.
“응원해 주신 분들 덕분에 마지막 무대까지 올 수 있었어요. 어, 이든 형이 말해준 건데, 이번 탈락은 딱 한 발자국만 뒤로 물러나는 거라고 했습니다.”
김현진은 웃고 있었다. 그런데도 눈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흐르기 시작한다.
“저는, 저는 계속 달려갈 거예요. 그러니 그때까지만, 조금만 저를 기다려주세요. 응원해 주신 분들 모두,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김현진의 소감을 마지막으로, 길고 길었던 서바이벌의 막이 내렸다.
* * *
가족과 함께 먼저 떠나려 하는 김현진을 배웅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아마도 데뷔하는 우리가 마음껏 기뻐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거겠지. 늘 여섯이서 연습을 하다가 다섯으로 돌아온 길은, 허전했다.
그렇게 6명이 데뷔한다는 잠시 간의 꿈은 헛된 것으로 돌아가 버렸다.
…꿈은 헛되기에 가치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
혹시라도 김현진이 류이든이나 채하민처럼, 나로 인해 삶이 바뀌었어야 할 이였다면… 많이 안타까울 것 같군.
[주의! 놀랍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도리어 ‘김현진’은 더 좋은 가능성 쪽으로 들어섰습니다.]…그런데 그걸 알 수 있는 기지생, 당신은 대체 누구냐고.
나는 아무런 답을 해주지 않고 퀘스트 완료 신호만 보내는 기지생의 알림을 무시한 채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혀어어엉!”
문이 열리며 목화가 미친 듯이 달려서는 나를 꽉 끌어안았다.
“…오랜만이네, 목화.”
일부러 어색해하지 않으려고, 나는 지난 4년이 흐르지 않은 것처럼 입을 열었다.
“…형, 나 형 한 대만 때려봐도 돼?”
…음, 나는 널 그렇게 폭력적으로 키운 적이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