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0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00화(268/343)
채하민은 느긋하게 인터뷰실로 들어왔다.
이미 그 머릿속엔 게임이 끝났을 때 받았던 ‘탈출 성공! 이제 분식을 먹으러 가자!’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는 사라진 지 오래인가 보다.
그저 해맑음. 저곳에서 빠져나왔다는 안도감만 맴돌았다.
“와, 상담실, 저 진로 상담할 때 이후로 처음이에요.”
“여기 앉으시면 돼요!”
“네!”
아직 무복을 입은 상태로 어수룩하게 웃고 있으니 선무당 느낌이 물씬 풍겼다.
“옷 잘 어울리시네요.”
“예쁘죠?”
“인터뷰, 끝내고 싶으시면 언제든 끝내도 돼요.”
작가님이 자연스럽게 힌트를 던졌고.
“에이, 준비된 건 다 하고 가야죠!”
“분식 늦게 드셔도 괜찮겠어요?”
“늦게 먹는 건 아쉬워도, 일은 해야 하니까요.”
헤실거리며 채하민은 자연스럽게 놓쳤다. 놓치는 것도 이 수준이면 예술적이다.
“네, 오늘 동화 씨와 합을 맞춰서 탈출을 진행하셨는데, 어땠는지?”
작가는 속으로 ‘다른 분들이 안 괜찮으실 텐데…….’라고 생각하며 가짜 인터뷰의 첫 번째 질문을 입에 올렸다.
채하민은 경청하다가 탄식 한 번을 뱉더니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무서웠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그런가 보다.
“…전 진짜, 동화 없었으면 제대로 활동 못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채하민에게 인터뷰는 속내를 밝히는 시간. 멤버들이 나중에 볼 수도 있지만, 당장 듣는 사람이 없어서 모든 걸 드러낼 수 있다.
“하루 동안 계속, 이상한 상황이 펼쳐졌잖아요. 문을 여니까 갑자기 남성분이 울고 계시고, 지나가면 여자분들이 갑자기 뛰쳐나오시고…….”
작가는 ‘여자분들?’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말실수야 워낙 흔하니 자연스레 넘어갔다.
“근데 그럴 때마다 동화가 전화를 해 주면 진정이 되는 거예요!”
“왤까요?”
“동화라면 귀신도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 * *
조용한 분식집, 나와 류이든은 채하민의 인터뷰 현장을 보기 위해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꼈다.
채하민은 한 치의 의심도 없는 모습이었고, 석준 쪽 인터뷰는 안 보고 있지만.
“형, 정신 차려요! 작가님이 지금 나가라구 눈치를 그렇게 주는데! 왜! 저희 이겨서 동화 형한테 같이 ‘야, 책 좀 그만 읽어.’라구 하기로 했잖아요!”
저 반응만 봐도 어떤지 알 것 같다.
…그보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현재. 너도 많이 읽으면서 나한테 그럴 수는 없잖아.
―동화라면 귀신도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렇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형.”
“없는 걸 어떻게 제거하는지부터 설명해.”
제거의 전제 조건이 충족 안 됐잖아. 나는 떡볶이 하나를 씹었다.
―제가 여러 번 말했는데 동갑 중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동화거든요?
“그렇대.”
“조용히 해, 이든.”
욕하기 전에.
―막 뭐가 힘들다, 고민이 있다, 그러면 일단 동화한테 찾아가요. 사실 그럴 필요도 없이 방을 같이 쓰니까 자기 전에 얘기를 하면, 아무리 피곤해도 일단 일어나서 경청해 주거든요.
“스윗하네, 형.”
닥쳐.
―근데 신기한 게, 말하기만 했는데 해결이 될 것 같은 거 있죠! 저한텐 동화가 행운의 부적인 거예요. 뒤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내가 뭘 하고 있든 지켜봐 줄 것 같은!
내가 육아한다는 식으로 말하지 마, 하민. 너는 알아서 해결할 능력도 있으면서, 말은 무슨.
“틀린 말은 아니네. 키다리 아저씨잖아, 너.”
가만히 듣던 류이든이 또 굳이 첨언했다.
“무슨.”
“전에 하민이가 버섯 채워 넣는 거 까먹었을 때, 네가 채워 주지 않았어?”
“…그건 선물 같은 거지. 네 닭가슴살도 한 번 채운 적 있어.”
“그래서 나는 네 서재 한 번 채웠어.”
너였구나. ‘타인과 친하게 지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놓은 책을 책장에 넣어 놓은 게.
―동화 씨가 평소에 의지가 되나 보네요.
―그렇죠. 사실 이든이 형도 그래요. 동화가 뒤에서 걸으면서 제가 흘린 거 주워 주는 느낌이면, 이든이 형은 앞서 걸으면서 길 닦아 주는 느낌이거든요? 둘 중 한 명 없으면 저는 제대로 활동 못 했을 것 같다, 그런 걸 오늘 확신했어요.
“저건 나도 그래. 뒤에서 다 지켜봐 주는 느낌이야, 넌.”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동화 씨나 이든 씨한테 부끄러워서 못 했던 말 있으면 지금 이 기회에 한번 해 보실래요?
―하, 우선 동화야, 내가 오늘 농담 삼아 통장도 줄 수 있다고 했잖아? 그거 거짓말이 아닐 정도로 평소에 너무 고맙고.
오글거려. 카메라를 보며 말하는 채하민의 눈빛을 피하기 위해 나는 고개를 약간 돌렸다.
류이든은 꺄르르 웃으며 내 어깨를 찔러대고 있었다.
어머니가 들으면 네 인생을 걱정할 거야, 하민.
―그래도 작업은 좀 줄였으면 좋겠어. 요즘도 방에 잘 안 들어오는데, 이러다가 나도 모르게 한 대 때릴지도 몰라.
“와, 그럼 하민이 인생 최초 폭력이네. 장난삼아 때리는 시늉도 못 하잖아, 하민이는.”
“저렇게 말해도 절대 못 때릴걸.”
“그건 그래.”
―그리고 이든이 형은, 동화만큼은 아니지만 내가 많이 아껴!
류이든이 마시던 어묵 국물을 조금 흘렸다.
내가 건네는 휴지로 입을 닦으며 류이든이 패드를 잡고 흔들었다.
“너무해! 공평하게 아껴, 하민아!”
―장난이고, 늘 먼저 고생하는 거나, 우리들 챙겨 주는 거 보고 있으면 저러다 쓰러지진 않을까 걱정되거든. 그러니까 형도 좀 쉬어. 둘이 같이 놀러 가면 내가 챙기고 있을 테니까!
“절대 못 믿어.”
“나도.”
“다녀오고 나면 숙소에 밀가루 터져 있을지도 몰라.”
“준이는 눈사람 만들겠네.”
―내가 의지하는 만큼, 나도 의지할 수 있는 멤버가 되기 위해 노력할게. 사랑해.
어우.
나는 이어폰을 뺐다. 얼굴에 곤충이 기어 다니는 기분. 모낭충은 거미류라 곤충은 아니므로 기분이 맞을 것이다.
“이건 아무리 봐도 우리가 벌칙 아닐까.”
나중에 방송으로 보는 거면 10초 넘기면 그만인데. 애정 표현은 내 입으로 말하는 거나 내 귀로 듣는 거나 하나같이 온몸을 꼬이게 만든다.
“왜. 난 좋은데.”
류이든은 훈훈한 표정으로 채하민이 부끄러움에 얼굴을 가리는 걸 바라봤다. 자식 재롱 잔치 보는 팔불출 아저씨 같아, 이든.
[저도 훈훈하네요.]넌 아저씨를 넘어선 나이고.
몸부림치던 채하민이 의자에서 떨어져 내렸다. 무복이 나풀거려서 떨어지는 것도 하나의 춤사위처럼 보였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집중했다. 혹여 다친 곳은 없는지 세세히 살펴봤는데, 찰과상도 없는 걸 보면 괜찮은 것 같다.
“너는 말로 안 해도 그럴 때 다 보여, 동화야.”
“뭐가.”
멤버가 넘어졌는데 그걸 볼 생각은 안 하고 내 낯짝이나 분석하고 있었다니, 리더 탄핵이다. 다음 리더는 이현재가 하는 걸로.
―와, 저 허술한 것 좀 봐요. 동화한테 제 통장을 진짜 줄까 봐요. 저보다 관리도 잘할 것 같은데.
넘어져서 미친 소리 하지 말고.
―아, 혹시 분식 드시고 싶으신가요, 지금은?
―네? 아니요! 인터뷰 더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 세상에.
―분식집 가고 싶지 않으세요?
―에이, 진짜 괜찮아요.
예의상 거절하는 채하민.
분식집 얘기를 스몰 토크로 이해하고, 인터뷰 끝이라는 소리도 듣지 않았는데 구태여 먹고 싶다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던 채하민.
작가님은 약간 애절해 보였다. 이쯤에서 눈치채는 게 원래 시나리오였을지도 모르겠다.
인터뷰 끝입니다, 라는 말은 금기어라서 못 하고, 어떻게든 알려 주고 싶다는 애절함이 보였다.
…잠깐만. 예의상이라고 하더라도 거짓말은 할 수 없는 인간이 상대편에 있지 않나.
내가 곧장 고개를 돌렸을 때, 이현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와! 형! 준이 형!”
두 손을 모아 잡는다. 감격이 벅차오르는지 눈을 꼭 감고 머리 앞에서 흔들었다.
“그래요! 그거예요! 형! 빨리 와요! 우리의 야자 타임이! 야자 타임이 기다리구 있어요! 떡볶이두! 어묵두! 전부! 형이 먹고 싶은 건 전부!”
류이든이 입을 틀어막았다. 뒤늦게 깨달았나 보다.
석준은 ‘먹고 싶으신가요?’라는 질문에, 배가 고플 시간이니 ‘네―.’라고 말할 수밖에 없음을.
상대가 질문하면 진솔하게 답해 주는 것, 석준에겐 그게 예의니까.
우리는 시선을 돌려 이현재의 태블릿 속 ‘아?’라고 적혀 있는 표정으로 어정쩡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석준을 보았다.
‘진짜 갑니까?’라고 묻더니, 무슨 대답을 들었는지, ‘아, 다른 멤버도―.’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이걸, 지네.”
“…그러게.”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이현재가 예전에 기지생이 웃듯이 광소를 터뜨렸다. 이현재가 뿜어내는 광기에 압도되어 모두들 말을 잃었다.
“아, 먹고 싶은 건 먹구 살아야죠, 형들.”
왜 그래, 현재. 왜 눈에 어떻게 요리할지 고심하는 요리사 같은 빛이 서려 있지.
“아, 어쩌죠. 설레 죽겠네요. 하루 동안 제가 맏형인 세계라니. 모두들 존댓말 연습 열심히 해 두세요.”
“…우리가, 뭘, 잘못했던가, 막냉아?”
류이든이 힘겹게 입을 열어 우물쭈물 말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저 정도로 나이의 위계질서를 뒤엎고 싶다면, 그걸로 손해를 자주 봤어야 하는데 이현재는 그런 적이 없으니까(만약에 그랬으면 내가 직접 그 멤버를 조졌을 것이다).
“아니요, 형들은 저한테 너무 잘해 주잖아요.”
이현재의 순수한 웃음.
“그럼 왜, 현재야!”
류이든은 애절하게 울부짖었다.
과해, 얘는 정말. 카메라만 돌고 있으면 과장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한다. 누가 보면 처절한 배신이라도 당한 줄 알겠다.
그러나 나도 궁금해져서 이현재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마침내 이현재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형들 탓이죠.”
“…어?”
“저한테 잘해 주니까 장난치구 싶잖아요. 형들 탓이에요.”
음, 그럴 수 있지. 잘해 주는 사람에게 괜히 더 장난치고 싶은 심리는 인류 전반에 걸쳐서 관측된다.
물론 그렇다고 남 탓으로 돌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지만.
“그냥 반말해도 난 괜찮은데.”
아마도 다들 그럴 것 같다.
“저는 언제까지나 귀여움받구 싶거든요. 명분이 필요했어요.”
한참 전에 그른 거 아닐까.
“그리구 전, 형들이 절, 형이라 부르는 게 보구 싶은 거거든요.”
* * *
“사실, 오늘 무섭긴 했는데, 막 그렇게 무섭진 않았어요! 동화 분량 챙겨 주려고 굳이 또 엄청 놀란 척을 한 거죠. 동화는 저한테 감사해야 하는…….”
한창 인터뷰 중인 상담실.
“하민 씨, 패배하셨답니다!”
PD님이 문을 활짝 열자, 채하민은 화들짝 놀랐다.
인터뷰 도중에 다른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서.
“분식집에서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 저랑 같이 가시죠!”
“…패배요?”
채하민은 아주 조심스레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맹한 표정과 흐트러진 무복, 선무당 그 자체였다.
“네! 아, 하민 씨한텐 너무 미안했어요. 귀신이 두 분밖에 없어서. 근데 더 넣기 좀 그랬거든요, 이해해 주시길!”
PD님은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배우님들은 총 세 명이라고, 동화도 그렇게 말했는데?
“귀신분들 총 세 분 아니었어요?”
“네?”
고개를 돌려 작가님과 눈을 맞추는 PD님. 따라서 시선을 옮기니 작가님도 고개를 갸웃하셨다.
“…어?”
뭐지. 뭐야.
채하민은 파들파들 손을 떨었다. 어떤 학생이 옷걸이에 걸어두고 갔던 교복은, 이렇게 한 사람이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도, 동화, 동화 어디 있어요?”
“어? 그, 분식집에 계신데, 지금 갈 거예요.”
채하민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빨리, 빨리 떠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