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0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01화(269/343)
때는 분식집에서 즐겁게 떡볶이나 먹고 있을 적, 석준이 돌아와서 모든 사실을 전해 듣고 있었다.
“아, 대결이었구나―.”
석준이 승자가 말한 대로 컨텐츠 하나 뚝딱할 수 있는 소원권을 건 대결이라는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작가님이 자꾸 분식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정말 배가 고팠는지 떡볶이를 흡입했다. 우리 중 자극적인 걸 가장 사랑하는 인간답다.
반면 류이든은 우리 중 자극적인 음식을 가장 혐오하는 사람이라 방송용으로 몇 입 먹고는 아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아, 눈에 색안경을 끼고 봐서 그런지 개가 편식하는 것처럼 보여.
“제가 그랬잖아요. 딱 그런 느낌이었죠?”
이현재가 내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저런, 어쩌지. 나는 그렇게 생각 못 했거든.
“동화는 그냥 콘서트 유닛으로 나눠서 컨텐츠 하나 찍는 줄 알았대. 사전 협동심 강조 느낌으로.”
“아, 진짜요? 저희 유닛 무대는 기획 중이라고 들어서 생각 못 했는데.”
“나는 너희랑 싸우는 건 상상도 못 했어.”
보통 그런 걸 경쟁할 거면 시작부터 못을 박았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경쟁하는 줄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경쟁은 공정한 게임이라고 보긴 어렵다.
PD놈이 정말 예측이 안 되는 인간이라고밖에는…….
“동화야!”
제발, 과속하는 토끼 규제법 언제 시행되는데. 몇 년 전부터 주야장천 주장하고 있는데 아직 입법 단계에 들어가지도 않았다니, 믿을 수가 없다.
다만 다행히 남의 가게에서 쓰러지는 추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전부 류이든이 내 옆에 앉아 있던 덕분이다.
“왜.”
“세 명, 세 명인데!”
뭐가, 미친놈아. 버섯을 그렇게 먹더니 드디어 맛이 갔나 보다. 그렇게 물컹거리는 걸 먹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귀신, 세 명 아니었어? 맞다고 해 줘!”
심지어 아직 무복을 벗지 않았다. 무당이 귀신 무서워하면 어쩌자는 거니, 하민.
“맞아. 세 명.”
“나,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누가 천기를 누설했나 보네. 당연히 PD놈일 테고.
“응, 전부 셌거든.”
“흐어…….”
안도의 한숨. 채하민이 제자리에 쓰러지듯 앉아 자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불퉁하게 입을 내밀었다.
“아니, PD님이 막 놀리셔!”
PD놈이 처음으로 옳은 소리를. 뒤따라오시던 PD놈이 내게 윙크를 찡긋하고는 소리쳤다.
“맞아요, 세 명이었는데 저희가 잘못 센 것 같아요!”
“저, 저 진짜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문과라.”
또 성질머리 긁는 소리를.
이번에도 또 내 쪽으로 윙크를 하는 걸 보니 엿 먹으라는 심보가 보여서 더 짜증 난다.
…저 인간, 혹시 이현재 쪽이 이기게끔 판을 짠 건 아닐까. 방송을 구성할 때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하는 능력 하나는 대단하니 의심의 싹이 텄다.
“아, 아쉬워요. 형님들 팀이 게임 끝낸 건 더 빨랐는데, 준 씨가 분식이 먹고 싶으셔서 이겼네요.”
저걸 보니, 맞나 봐, 저 새…….
아니. 나는 받아들였다.
앞으로 저 인간과 일을 할 일이 많을 텐데 이런 식으로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짜증이 났다간 남은 수명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다.
“하민 씨도 드시고, 배부르실 때 우승 상품인, 1회 PD놈 이용권 수여해 드리고 엔딩 찍을게요!”
소원권이 아니라, 이용권이라고. 워딩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어쩌면 저 인간에게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아닐까.
PD놈이 하루 동안 우리 노예로 생활하는 꿈을, 짧게나마 꾸던 나는 앞에 앉은 이현재를 불렀다.
“…현재.”
“네?”
“PD놈 이용권, 얼마에 팔 거야?”
내 통장을 줄 수 있어.
돈은 벌면 되고, PD놈에게 마음껏 엿 먹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이현재는 ‘?’라는 표정으로 보다가 이해했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전에 봤던 미친놈 같은 웃음이 거짓말이라는 것처럼 순진해 보였다.
“하하, 동화 씨, 저를 괴롭히는 컨텐츠는 절대 못 찍어요. 저는 카메라 앞에 나가는 게 너무 싫거든요.”
“…언젠가, 반드시.”
“그럼 그때가 제 퇴사날이 되겠네요. 아쉬워서 어쩌죠?”
…아, 로키가 왜 북유럽 신화에서 모두에게 배척받았는지 알 것 같아.
* * *
이현재가 석준과 함께 휘황찬란하게 꾸며진 ‘1회용 컨텐츠 내 마음대로, PD놈 내 마음대로’라는 판넬을 받고 퇴근하는 길.
이현재가 자기 옆에 곱게 놓인 판넬을 훈훈하게 쓰다듬다가(애완동물 쓰다듬는 느낌이었다) 앞자리에 있던 내 어깨를 쿡쿡 찔렀다.
“근데, 형은 저희 유닛 이렇게 나눌 것 같아요?”
대화할 때는 눈을 봐야 하는데, 벨트는 뒤돌기 불편하므로 나는 벨트를 맨 채 눈을 보기 위해 의자를 뒤로 내렸다. 다행히 차가 큼직해 여유 공간이 있었다.
“응.”
그게 작곡하기 편하던데.
유닛 무대를 제외하고 단체 무대와 개인 무대는 모두 구성이 끝난 뒤 퀄리티를 높이는 작업 중이라 자연스레 유닛 주제가 퇴근길 화두에 오를 수밖에 없나 보다.
“형은, 남들한테 특이하다고 하면 안 돼요.”
거꾸로 보이는 이현재가 ‘이것만은 저도 이해할 수 없어요.’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쩌겠어, 현재. 얼굴이 안 보이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고, 벨트를 매지 않는 건 목숨줄을 내놓는 행위인데.
“와, 근데 저희 유닛 무대 뭐 할까요?”
“동화 형이 곡 쓰기에는 시간 너무 촉박하니까, 아마 커버하지 않을까?”
류이든이 나를 따라 의자를 뒤로 눕혔다. 채하민이 가만히 보고 있다가, 왜 자기만 빼놓냐는 듯이 자기도 뒤로 눕혔다.
…좀, 괴상하긴 하다.
“음, 곡은, 이미 써놓고 제출하긴 했는데.”
벌떡, 채하민이 일어나려다 벨트에 막혀서 컥, 소리와 함께 쓰러져 내렸다.
자기 몸으로 그 정도 속도를 내다니, 진짜 토끼인가 봐.
“크허, 아니, 동화, 야, 무슨, 그게, 언제!”
내가 일하는 걸 단속하는 데 자부심을 가지며 요즘은 잠귀까지 밝아져서 몰래 작업하기 힘들게 만들더니, 막지 못한 게 분한가 보다.
근데 이번엔 분할 일이 전혀 아니야, 하민.
“…우리 데뷔했을 때.”
“어?”
“왜?”
“와, 저는 형이 정말 존경스럽긴 하네요.”
그러면서 표정은 왜 질린 표정이지, 현재.
“너희들 조합으로 곡 쓰는 거 연습하다가, 제일 괜찮은 것들 위주로 제출하긴 했거든.”
일종의 숙제 검사 같은 거였지. 나중에 쓸 일 있으면 일을 줄이려는 의도이기도 했고.
“그때 써 보니까, 이렇게 쪼개는 게 제일 편하던데, 난.”
대체 무슨 컨셉을 쓸지, 목소리 조합은 어떤지 같은 걸 고민하다 보니 머리가 아픈 경우가 있다.
이렇게 쪼개 놓으니 편하더라. 물론 제일 편할 때는 다섯 명 모두 고려할 때긴 하지만. 더럽게 역설적이다.
“어? 그럼 오늘 연습 스케줄 없는데 같이 동화 작업실이나 놀러 갈까?”
류이든이 먼저 회사가 ‘오늘 고생했으니 푹 쉬길.’이라고 정해 놓은 날에 일을 하자고 하다니.
“장하네, 형. 일은 늘 옳아.”
장하다. 어차피 갈 작업실, 다른 사람이 찾아오면 불편하겠지만 이놈들 데리고 가는 건 나쁘지 않다.
우리 그룹에서 발언권과 결정권은 모두 동등하지만, 은근히 따를 수밖에 없는 인간이 딱 두 명 있다.
바로 나랑 류이든이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일단 따르고 보는 인간들.
둘이 같이 ‘야근 어때, 전부.’라고 물어보자, 이현재와 석준이 어색하게 웃었다.
“너무 좋구, 저두 하구 싶었어요.”
“와…….”
그리고 일은 늘 적당히 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옳게 된 부르주아 채하민은.
“듣고 싶긴 한데, 동화가 또 일을 해야 하는, 너무하다, 고민돼.”
내적 갈등에 빠져들고 말았다.
“어? 아니, 진짜 놀러 가자는 그런 말이었는데.”
류이든이 당황했는지 손을 휘저었다.
요즘은 연습실에만 있느라 작업실에 놀러 갈 시간도 없었으니 같이 가서 놀자는 소리였는데, 우리가 오해했나 봐.
“아니, 좋은데. 일할까.”
어차피 유닛 곡으로 뭐 쓸지는 눈에 빤히 보인다. 그리고 만에 하나 다른 선택을 하면, 우리 전부의 편곡 실력을 높인 것이니 남는 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으면 휴식을 취할 뿐, 변하는 건 없다.
오늘 일이 많았다지만, 다들 적당히 체력이 남아도는 게 보였다.
인간을 굴릴 때 가장 필요한 재능은 ‘어디까지 굴려야 다음 날에도 일을 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능력’이고, 나는 작곡가로 일하며 충분히 그 능력을 쌓았다.
조금, 조금은 더 굴려도 돼. 물론 내 기준 조금이지만.
나는 가방에 항상 구비해 놓는, 벽돌 쿠션 옆에 있는 포승줄(등산용 밧줄)을 꺼냈다.
이런 일이 있을까 봐 만반의 준비를 해 두었던 게 이렇게 덕이 된다.
“자발, 혹은 강제, 선택해 줘.”
“…자발로, 할게.”
* * *
오랜만에 작업실이 훈훈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역시, 나만 있는 공간은 금방 차갑게 식나 보다.
“조금 별로일 수는 있어.”
“형 실력두 엄청 늘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않아요? 원래 작가들도 옛날 작품 찢어발기구 싶다잖아요.”
국문학과가 말하니까 설득력이 높은걸.
“처음에는 너랑 준이 곡.”
뭐가 컨셉이었는지 나는 기억을 되짚어 봤다.
“소나무랑 국화.”
지금 봐도 곡을 쓰고 싶은 글자들이다. 절묘하고 상상력을 부추기는 면이 있다.
“저희 탄생화네요.”
“내 탄생화가 국화야―?”
“제가요.”
“아, 소나무구나―.”
곡을 틀었다. 북소리랑 징 같은 전통 악기 소리. 소리가 리얼하지 않아 성에 차지 않았다.
“흥, 같아요.”
“이게 원조였어.”
석준이나 이현재는, 가만히 보고 있으면 허송세월하는 것처럼 보여도 속은 지혜로운 한량과 격의를 갖췄으며 철이 든 세자가 친구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은 조금 다른가 싶긴 해도, 본질은 바뀌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곡에 담고 싶었던 분위기는 두 사람이 술 마시면서 말싸움하는 느낌.
서로 친구로서 아끼긴 하지만 기본적인 생각이 너무 달라 수시로 싸우는 장면이었다.
벌스는 흥겹고 사이사이 비트가 빠지는 부분도 있어서 한량처럼, 후렴은 격식 있게 궁중 음악에서 자주 사용했던 악기 소리도 넣어 세자처럼.
“여기가 브릿지.”
장판에서 쓸 법한 악기랑 궁중 악기가 섞여 있는 유일한 곳이다. 만약에 가사를 쓴다면, 여긴 한마디씩 주고받게끔 쓰려고 했었다.
석준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고치고 싶은 파트 다 써 두라고 했는데, 벌써 손이 움직이는 걸 보니 대견하다.
“어때?”
“좋다, 좋아.”
“그런데 랩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음, 확실히. 비트가 괴상해. 마디 구조가 귀에 사로잡히는 편은 아니다.
“혹시 제가― 편곡해도 될까요?”
세상에.
어느새 이렇게 성장했다. 언제는 내 옆에서 작곡이 너무 괴롭다며 투덜댔던 적도 있는데, 나서서 작업을 하겠다고 하다니.
“…준이 작업실 맞춰 줄까.”
그 정도 벌어, 나.
“아니요―.”
그러자 석준이 퍼뜩 반박했다.
“작업실이 따로 있으면 어떻게 될지, 이미 보고 온 기분이라―.”
저런, 아쉽다. 석준이 좋아하는 게임에 비유하면, 본진이 두 개가 되어 생산 속도가 더 빨라지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