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0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02화(270/343)
석준이 이현재와 투닥거리며(정확히는 이현재가 툴툴대고 석준은 헤실거리며) 노는 동안, 나는 류이든에게 곡을 들려줬다.
“이건 컨셉이 뭐야?”
“삼국지.”
“…대체 왜?”
류이든은 무슨 노인도 아니고 그런 데 관심을 갖냐는 눈빛이었다.
관심이 없어도 옛날 소설 작가들이 쓴 작품에는 그런 류의 비유가 넘쳐 나서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다. 소설에 ‘조조가 망하기를 기다리듯’이라는 문장이 적혀 있는데 이해하고 넘어가고 싶잖아.
“세 명이라.”
“우리 동화가, 이거 쓸 때 뇌가 제 기능을 안 했구나.”
습작이잖아, 이든. 습작은 원래 마구잡이로 쓰면서 실력을 높이는 데 의미가 있는 법이다.
“근데, 말이 삼국지라.”
학교에서 잘나가는 것들끼리 신경전을 하는 거든 뭐든, 세 명이 대립하는 형국이면 상관이 없다.
“그땐, 우리끼리 의견 다툼이 많을 줄 알았거든.”
“그럼 맞았잖아?”
“응.”
더럽게 안 맞아, 이 망할 것들. 작업하러 갈 때마다 몰래 탈출해야 한다니, 내가 만약에 무슨 잘못으로 감옥에 들어간다면 탈옥도 할 수 있을걸.
기지생에 따르면, 이것들이랑은 원래도 친해질 가능성이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어떻게, 어디서, 무슨 계기로 친해지는지도 예상조차 안 된다. 부모님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내가 의사가 되어 채하민과 만나는 것처럼 작위적인 스토리는 아닐 테니까.
[…그러게요. 아닐 겁니다!]“음, 좀 애매하네.”
류이든은 곧장 문제를 짚었다. 조화롭지 않아서 듣기 껄끄러운 파트들이 조금씩 있다면서.
실로 정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응. 손 좀 봐야지.”
세 개의 대표적인 멜로디를 골라잡고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반복과 중첩을 통해 파트마다 다른 분위기를 내려고 썼던 곡.
그러나 주요 멜로디를 세 개나 쓰면 번잡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그땐, 너희들 대표 멜로디 만드는 데만 집중했거든.”
나는 의아한 둘의 표정을 뒤로하고 곧바로 멜로디를 하나 틀었다.
전차 행렬을 떠오르게 만드는 멜로디. 다만 묘하게 활기차서 진군가처럼 들렸다.
“이게 처음 생각했던 네 모습.”
류이든이 자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나, 이렇게 보여?”
나는 답을 하지 않고 다음 멜로디를 틀었다.
빠르고, 경쾌하고, 조금은 정신없는 멜로디. 당근 더미를 보고 흥분한 토끼 같다.
최대한 아름답고 공손한 단어로 조합했지만, 미친놈 같다는 소리다.
“와, 미친 사람 주제가네. 너구나, 동화야!”
“어?”
무슨 같잖은 소리를. 우리 중에 ‘미쳐 있음’에 제일 근접한 토끼 주제에.
나는 새벽이라 얼굴 근육이 풀어져 절로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대학 시절 졸업 논문 수업 중, 헛소리를 하는 동급생의 발표를 들었을 때 속으로 이런 표정을 지었던 것 같아.
“동화가 또 나랑 있으면 이런 느낌이거든, 알지, 이든 형.”
웬만해선 내 편을 들 리 없는 류이든도 ‘그건 아니지.’를 온 얼굴에 적어놨다.
“…이거, 나야?”
“그럼.”
세상에, 아닐 거라고 생각한 게 더 놀랍네.
“이게, 나.”
조용하고 잔잔해서 다른 두 소리에 쉽게 묻히다가도 가끔 제 모습을 드러내는 멜로디.
수치스럽지만, 숲에 숨어 사는 인간 같은 모습을 담으려.
“아니야.”
“응, 이거 너 아니야.”
채하민과 류이든이 한마음 한뜻으로 소리를 높였다.
“은근히 거칠고, 다 찢어발길 것 같은 그런.”
“동화는 겉으로 벽 쌓아도 속은 엄청 말랑한.”
류이든과 채하민이 나에게 어울리는 멜로디를 얘기하다 서로 다른 얘기를 입에 올리자 툭 시선이 마주쳤다.
“하민아, 아니야, 우리 동화는 사람 한 명 담글 것 같은 음산함이 있어야지.”
“동화가 사람을 왜 담가, 형. 동화처럼 착한 애가 또 어디 있다고. 주변 사람 이렇게 챙겨 주고.”
뭐 하는데, 너희.
“우리 작곡 수업도 들었잖아, 하나씩 써 봐?”
“그래. 내가 보여 줄게, 형. 딱 들어도 이게 동화다! 싶은 거!”
나는 사람을 담글 것 같은 음산함과도, 천진무구한 선함과도 거리가 있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런 내 의견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듯, 류이든과 채하민이 거의 동시에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악보, 달라는 거겠지.
나는 목화가 사 준 악보 종이는 숨기고, 내가 사 둔 걸 앞에 내밀었다.
그래, 너희들 마음대로 해 보렴. 원래 모였던 주제와는 거리가 멀어진 것 같지만, 일을 놀듯이 하면 또 결과물이 좋을 수도.
* * *
즐겁다.
이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내게 뜻을 묻는다면, (사전을 읽어 보라고 한 뒤 그래도 모르겠다면) 나는 이 순간을 보여 주고 싶다.
정말 즐겁다.
“…세 시네.”
류이든이 핸드폰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채하민이 예상도 못 했다는 듯이 입을 틀어막았다.
“벌써?”
분명 난 더 일찍 끝내고 다 함께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목화의 이름에 대고 맹세코.
근데, 정작 작업하니까 신나는 건 이것들이었고, 가자고 하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붙잡아 둔 것도 이것들이었다. 사실 나만큼이나 이것들도 일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그럼, 더 작업해도 되는 건가.
거친 사고의 흐름에 몸을 맡겨, 천천히 입을 열려던 그때.
“어으! 동화 선생님! 이만 가심이 어떨까요?”
류이든이 기민하게 내 의중을 눈치챘는지 의뭉스럽게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형, 저두 그 말 들으니까 갑자기 졸린데요?”
“그러게.”
그러자 이현재와 채하민이 갑자기 온갖 피곤함을 직격으로 맞은 듯 노곤하게 흘러내렸다.
이현재는 류이든에게 맞춰 주는 뉘앙스지만, 채하민은 더 일하면 안 되겠다 싶을 정도로 눈에 졸음이 묻어났다.
텄군.
나는 들여다보고 있던 유닛 곡을 저장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래두 다 같이 작업하니까 재밌네요. 개인 무대 준비할 때 썰렁하구 그랬는데.”
이현재의 말에 나는 작업실을 둘러봤다.
사람 버릇은 쉽게 변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무색무취의 공간이었다.
공간의 목적이 생존에 맞춰져 있어서, 잘 곳, 덮을 것, 일할 곳, 주의 환기를 위한 책 몇 권 넣을 책장, 딱 이 네 가지만 존재했다.
벽지 색이든 뭐든, 처음 만들어졌던 그대로.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이것들은 그걸 참 싫어했던 것 같다. 자꾸 작업실에 비치해 둘 물건이라며 하나둘 사서 놓아둔 걸 보면 확실하다.
…음, 사 줄 거면 서로 상의 후 조합을 좀 맞춰 줄 것이지.
구해 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도둑놈 심보긴 하지만, 주머니 괴물 인형과 고풍스러운 거울, 아령, 그리고 버섯 모양 장식품(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 포함)이 함께 있는 꼴은.
너무, 기괴해. 아방가르드 예술 작품도 아니고, 이게 무슨.
심지어 아령은 나름대로 인테리어로 쓰라는 건지 디자인이 아름다워서 멱살을 잡고 싶게 만든다.
왜 내 주변에는 나를 놀려먹지 못해 죽는 인간들만 생기는지.
“그러고 보니까 여기도 뭔가 꽉꽉 들어찼다.”
짐을 챙기던 류이든도 나처럼 작업실을 훑어봤나 보다. 새삼스럽게 말하지만, 너희들이 범인인데.
“제 거울 옆에 왜 저런 괴물이.”
내가 직접 쓴 개인곡 자화상을 들은 이현재가 사 온 거울.
둘 곳이 마땅치 않아서 전기 쥐새끼(성능은 별로다) 옆에 놓아두었다.
“괴물 아니야―.”
석준이 노트북을 덮으며 쏘았다. 자기가 아끼는 것들에 한해서는 날을 세울 줄도 아는 인간이다.
이현재는 느긋하게 하품을 하면서 소파에 다시 늘어졌다.
“공식 명칭이 괴물이잖아요?”
“…그래도 아니야, 현재.”
전기를 뿜는 쥐는 괴물이 맞다.
“그러고 보니까, 동화야, 저거 프랑스에서 직접 주문한 거다?”
버섯 모양 장식품을, 네가 주문 제작했다고.
“응, 형이랑 말하다가, 네 작업실 너무 휑하다고, 우리가 뭐라도 좀 채우자고 얘기했거든?”
왜 너희는 나 몰래 뭔가 하는 일이 잦지. 심지어 저게 상의하고 골라온 조합이라는 소리를 나보고 믿으라고.
“그러다가 내가 아끼는 거 하나 딱 넣어놨지. 너 몰래 넣어 두다가 말해 주는 걸 까먹었네. 엄청 예쁘지.”
“음, 그래.”
네 취향 이상한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대리석으로 깎은 버섯이, 예뻐 보일 수 있지. 원래 모든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게 고대 미론의 정석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랑해 줄 거야, 하민.
류이든이 먼지가 쌓이진 않았지만, 한 번도 사용된 적 없는 게 분명한 아령을 들었다 놓으며 가만히 중얼거렸다.
“난, 여기가 좀 더 네 물건도 있었으면 좋겠더라.”
그 말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는 석준조차 깨달았는지 잠시 고요해지는 작업실.
류이든이 아차, 하는 표정과 함께 분위기를 전환하려 머리를 굴릴 때.
나는 웃었다.
“벽돌이 있지.”
네 머리통을 이게 아니었다면 어떻게 두드려 팼을까.
“밧줄이랑.”
이게 아니었으면 오늘 밤처럼 오랜 시간 작업에 대해 논하면서 즐거울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희들 물건도 있고.”
나는 내 공간에 남의 물건을 두는 성격이 아니다.
“…음.”
말하고 보니, 수치스럽군.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갈 집, 먼저 떠나도 큰 문제는 아니다.
* * *
[형제 싸움 수준 실화냐 진짜](화보 촬영과 함께 공개된 목동의 놀이 영상 링크)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고, 대체 왜 그런 걸 가풍으로 남기려고 하는 건데 ㅋㅋㅋㅋㅋㅋㅋㅋ
나중에 애 낳으면 저렇게 가정 내 분쟁 해결할 거 생각하면 너무 야생이잖아 ㅋㅋㅌㅋㅋㅋㅋ
댓글
―지동화는 진짜, 미친놈이 맞다.
└이건 동생도 약간 맛이 조금. 여름날 밖에 내어둔 밥 같은 그런…
―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이 남자… 노후에는 어떨까?
└작곡 연금으로 행복했답니다.
―이든이가 이걸 배신을 했구나… 진짜 실망스럽다! 배신자!
└화형. 화형.
└나는 이든이 믿었는데
└진짜 예상도 못 했다, 우리 리더. 이렇게 동화도 배신하고…
[그래서 이번 콘서트 이름이 뭔데]맞히면 비공개 포카라잖아 빨리 아이디어 좀 내놔봐 룸넛들아
B.P가 블로센스 파티일 가능성 몇이라고 봐????????
댓글
―되겠냐고 ㅋㅌㅋㅋㅋㅋㅋㅌㅋㅋㅋㅋㅋ 한국대 두 명 보유 그룹이 그렇게 지을까 설마
└블로센스… 그룹명부터 작명 센스는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긴 해…
└가끔 애들 예명 없는 게 다행이다 싶어
―블로센스 파티 현재 공카 댓글창에 터져 나가는 중이라 내도 추첨이 안 될 듯 개성을 노려
―진짜 배신자는 파멸한다면 좋겠다
└공카에 적고 왔습니다 동화야 난 너 믿어!
꽤 이른 콘서트 공지 덕분에 공백기를 자컨과 라디오로 근근이 먹고살고 있는 룸넛들.
다행히 ‘근근이’라기엔 꽤나 풍족한 식사지만, 이게 에피타이저이고 곧 있을 콘서트가 메인디시라는 걸 알고 있는 이상 만족은 없었다.
원대한 꿈이 있는 사람에게, 작은 성취는 불만족스럽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공개된, 컨셉 포스터.
[1차 포스터 뜸.](이현재가 의자에 앉아 있고, 나머지 네 명의 멤버들이 가족사진처럼 찍은 사진. 개화기 특유의 고풍스러운 소품들이 인상적이다. 가운데에 ‘Blooming Paradise’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어두운 배경에 똑같은 구도로 앉아 있으나, 배경부터 의상까지 현대적으로 바뀌어 있다. 웃고 있던 이전 포스터와는 달리 무표정하다. 가운데에 ‘Betrayal Paranoia’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리고 이걸 본 룸넛들은 ‘Betrayal Paranoia가 뭔데’라는 표정으로 모니터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그저 멤버들의 얼굴이 예뻐서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