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1화(31/343)
31.
“…형, 나 형 한 대만 때려봐도 돼?”
“…그래.”
그러자 목화는 주먹을 꽉 쥐더니 내 배를 한 대 후려치려 했다. 잠깐, 내 동생 진짜 힘 줬… 녀석의 주먹이 배에 닿는 순간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며 뒤로 툭 넘어갔다.
“와! 속이 다 후련해, 형.”
나는 의자에 앉아 배를 움켜쥐고 잠시 앓고 있었다. 다른 연습생들도 그 모습을 보곤 입을 틀어막았다.
“…목화, 옆에 앉아봐.”
내가 고통을 억지로 참으며 목화를 소파에 앉으라 하자, 녀석은 정신이 들었는지 같이 진지해진다.
“…응.”
“…폭력은 늘 옳지 않아. 나를 때리고 싶은 네 심정은 이해되지만, 모든 인간이 자신의 욕구를 해소한다면 사회적으로 도덕적 해이가 팽배해질 수 있어.”
녀석은 진지하게 듣고 있더니 갑자기 풋하곤 웃는다.
그러곤 녀석의 웃음에 당황한 나를 가만히 웃으면서 바라본다.
오랜만에 보는 녀석의 웃음이 반갑기도 했지만, 그 전에 정신 이상이 의심되니 묻긴 해야겠다.
“…왜?”
“형, 나 형한테 말로 혼나는 거, 이것도 그리웠었어.”
“…그건 병이야.”
“병이라니. 유일한 가족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는데, 당연히 그립지. 형은 나 안 보고 싶었어?”
녀석은 한껏 서운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안 보고 싶었냐고?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10년 넘게 거의… 아니다. 이젠 다 사라진 이전 세계의 일일 뿐이다.
“형, 여튼 오늘 밤은 휴가야?”
“…응. 내일까지.”
“그럼, 오늘 같이 옛날 집 가자.”
“…원래 그럴 예정이잖아. 네가 문자로 몇 번을 강조했는데.”
“형이 도망칠 수도 있으니까?”
“…안 가.”
그러던 우리에게 채하민이 다가온다. 얼굴에 기대감이 한가득했다.
“동화야, 동생 분 소개해 주라!”
“…목화, 하민.”
나는 한 명씩 가리키며 이름을 말해줬다. 그러자 목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무대 보고 많이 존경했습니다!”
…예의 바르게 잘 컸군. 내가 어렸을 적에 잘 키운 덕이지.
급발진하는 목화 때문에 채하민은 토끼인 양 입을 오므리고 움찔대고 있었다. …드디어 인간이길 포기했군.
“저도 아이돌 지망생인데, 무대에서 춤추실 때 정말 멋있으십니다.”
그제야 채하민은 당황에서 벗어나 입을 열 수 있었다.
“와, 정말이예요? 고마워요, 목화 씨!”
“하민이 형 말 놓으세요! 근데 나중에 저한테 춤 가르쳐주실 수 있으십니까? 형처럼 무대 하는 게 꿈입니다!”
음, 목화는 채하민이 롤모델인가 보… 잠깐.
“…목화.”
“왜, 형?”
…나는. 이 망할 동생아. 나흘 밤새운 나는.
아이돌 연습생인 동생한테 잘 보이려고, 나흘 밤새운 나는.
“…아니야.”
나는 옆에서 미친 듯이 활기차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녀석을 바라보다,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이현재가 안경을 쓴 남성분과 함께 멋쩍게 찾아왔다.
“형, 이분은…….”
이현재가 망설이며 말을 조심스럽게 열었다가 말을 멈췄다. 부담스러운가 보군.
이현재가 말하던 교수 신분 아버지 같으니, 나는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십니까, 지동화라고 합니다.”
“현재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지난번에 써준 학술 논문 재밌게 봤습니다. 혹시 어떤 학문에 뜻을 두고 계신지?”
…교수님, 전 아이돌입니다만.
“…철학과 천체물리학, 그리고 심리학 쪽을 위주로 공부했습니다. 대학교는 철학과로 넣었긴 합니다.”
“이야, 그럴 줄 알았습니다. 지난번 글에 참고 문헌 보니 심리학 공부가 된 사람 같더군요.”
그리고 그렇게 전공이 심리학으로 의심되는 아버님은 내 지식을 확인하려는 듯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혹시 김재권 씨가 쓴 글은 읽어보셨나요?”
“기능론적 정의를 통한 심리적 요소의 물리주의적 환원에 관해 설명한 글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엄격한 물리주의에 대한 이의 제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라는 식으로 수십 번 오간 문답 끝에 이현재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우리 아이의 지성 함양을 부탁드립니다, 동화 군.”
…부담스러워.
“…잘 가르치겠습니다.”
그렇게 이현재의 아버님과의 긴 만남 끝에 나는 주변에서 꽂히는 신기한 걸 보는 듯한 시선을 받으며 여러 멤버들의 가족과 인사를 나눴다.
류이든은 부모님 대신 동생분이 오셨다.
“저희 모자란 오빠, 도와주시느라 고생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모자란 인간은 아니지 않나.
“…만나서 반갑습니다.”
석준은 부모님과 할머니, 그리고 동생 4명이 함께 오셨다.
특히 동생 4명 중 2명은 아직 초등학생 정도로 보였는데, 둘이서 나한테 미칠 듯한 질문을 던져 댔다.
“어휴, 죄송해요, 정신이 없죠?”
…제 동생이 정말 얌전한 동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채하민의 부모님은 부유한 태가 나는 옷을 입은 채로 나를 반겨주셨다.
그런데 채하민의 아버지는 아직도 자기 아들이 아이돌이 된 게 불만이라는 듯 입술이 댓 발 튀어나와 있으셨다.
…오리가 토끼를 낳은 기적적인 현장이군.
“동화라고 했는가?”
“네.”
“우리 하민이가, 가수인 건 맘에 안 들긴 한데, 그래도, 자네 이야기 들어보니 거 뭐 괜찮겠더만. 하민이 잘 부탁하네.”
…부담스러워.
“…하민이가 저를 챙겨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게 부모님과의 순회 만남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원래 자리로 돌아와 목화의 옆에 앉았다.
목화는 약간 불퉁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형.”
“…왜?”
“저분들 모두 좋은 분들이지만, 나를 가장 먼저 챙겨줘야 해.”
…멍청한 놈.
나는 눈치를 보고 있는 목화를 한번 흘기고 등받이에 몸을 파묻으며 답했다.
“…당연한 소릴.”
* * *
오랜만에 목화와 함께 길을 걸었다.
예전엔 나보다 키가 더 작았는데, 지금은 거의 비슷해졌군.
우리는 오랜만에 둘이 남자 4년이라는 세월이 만든, 나에게는 13년이라는 세월이 만든 터울을 느끼며 조용히 걸었다.
그러다 목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형, 많이 힘들었어?”
“…음, 뭐가?”
“나 키우는 거.”
안 힘들었다면… 거짓말이겠지.
“…힘들었지.”
오해하지 않도록 나는 말을 바로 이어 붙였다.
“그런데 너 커가는 거 보면 힘든 것도 괜찮았어.”
그러자 목화는 잠시 목을 긁더니 입을 연다. 나와 시선을 마주하는 게 힘든지 앞만 바라보며 말한다.
“왜 그런 건지 물어봐도 돼?”
“…글 읽어보면, 꽤 잘 알고 있던데.”
“그래도.”
나는 목에 힘을 줘서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목화가 먼저 용기 내서 만든 기회다. 나도 이 트라우마를 극복해야만 한다.
“…첫째, 나는 아직 어린 네가 가난으로 고생하는 게 싫었어.”
나는 다시 한번 목을 가다듬었다.
“…다음 둘째, 부끄럽지만, 너한테 내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중간에 목소리가 떨릴 뻔했으므로 나는 목을 다시 가다듬는다.
“…마지막 셋째, 나보단 성인이 더 잘 길러줄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러자 목화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낸다.
“형이 그렇게 논리적으로 말할 줄 알고, 내가 반박할 말을 적어 왔지.”
그러곤 천천히 읽기 시작한다.
“첫째, 나는 내가 그렇게 자라야 한다면, 형도 그렇게 자라는 게 맞다고 생각해! 아닐 거면 같이 고생하는 게 더 바람직할 거야. 그리고 둘째, 나는 형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든 강하다고 생각할 거야.”
그리고 종이에서 시선을 떼 날 바라보며 말한다.
“마지막으로 셋째, 형은 내가 아는 다른 가족의 부모 그 누구보다도 가족을 잘 보살핀 사람이야.”
“…근거는?”
“현재 내 모습.”
단호하게 말하는 목화를 보고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가 잘 길렀으니 자기가 지금 이렇게 잘 성장한 거 아니냐는 말이니까.
이걸 반대했다간 동생을 흉보는 짓이니, 내가 반박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다음부턴 그런 생각하지 말고, 평생 내 형 해주는 거야.”
“…약속할게.”
나는 목화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줬다.
“근데 형.”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어쩌다가 아이돌을 할 생각을 했어.”
…그래, 이젠 답해줄 수 있지.
“처음에는 왜 그랬는지 잘 몰랐는데, 이제 알겠어.”
목화는 내 대답을 기다리며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아마, 내가 시공간 이동을 통해 이 서바이벌에 참가한 것은…….
“…너랑 화해하려고.”
그러자 목화는 주먹을 쥐더니 내 어깨를 살짝 툭 친다.
“형, 이빨 까지 마.”
…얘가.
“너… 어디서 그런 언어 생활을.”
“와, 잔소리 들을 생각 하니까 벌써 설렌다, 형.”
목화…….
* * *
집에 들어선 나와 목화는 과거로 돌아간 듯, 내가 해준 밥을 나눠 먹었다. 힘든 몸을 이끌고 장을 봐 오길 잘했군.
“근데, 집이 엄청 깔끔하네? 4년 동안 비었으면 엄청 폐가처럼 변했을 줄 알았는데.”
간장계란밥을 김에 싸 먹으며 맛있다는 듯 오물거리는 녀석을 보고 나는 김치를 자르며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내가 와서 청소했으니까.”
아마도 이전 세계에선 그 짓을 5년 정도 하다가, 돈 벌기 시작하곤 청소 업체를 썼지.
“형, 그렇게 미련 가질 거면 왜 연락 안 받은 거야?”
“…인간의 심리는 예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층적이어서 이해가 불가한 경우가 발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거야.”
“그러니까 내가 잘 크고 있나 확인하고 싶어 미치겠는데, 또 확인하자니 나한테 했던 말이나 행동이 걸려서 못 하겠고, 그래서 집이라도 청소했다는 거지? 완전 미련해, 진짜.”
…역시 내 동생, 예리하고 똑똑해.
나는 김치를 목화의 그릇에 얹어주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형, 귀 빨개지는 건 아직 못 고쳤네?”
“…밥 먹어.”
* * *
나는 목화가 어렸을 때처럼 한 침대에서 자야 오늘 하루가 완벽하게 완성된다는 개소리를 부숴버리고, 목화를 침대에 눕힌 뒤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형, 한 침대에서 자야 유년기 체험의 완성이라니까?”
“…너랑 내 어깨 크기를 봐. 사이즈가 안 나오잖아, 목화.”
나는 아쉬워하는 목화를 무시하고 물었다.
“…너는 어디서 연습생 생활하고 있어?”
“형도 연습생이니까 아는 곳일 거야! 디오니 엔터!”
…디오니소스는 아는데. 형이 아이돌 곡만 공부했지 회사는 공부하질 않아서 말이다.
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지만, 그게 동생 앞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나는 빠르게 화제를 바꿨다.
“데뷔는?”
“음, 내부 오디션 보긴 해야겠지만, 1년 뒤에 새 그룹 만든다고 실장님이 말씀해주셨어.”
…시간 남을 때 채하민한테 과외를 부탁해야겠군.
나는 결연히 다짐하며, 몇 시간 동안 무시하고 있던 채하민의 문자 창을 열어 동생 좀 가르쳐달라는 말만 남기고 핸드폰을 닫았다.
* * *
‘기지생, 퀘스트 완료.’
[퀘스트 완료!당신은 기나긴 역경을 헤치고 드디어 데뷔에 성공했습니다. 앞으로 아이돌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세요!
보상 : 가능성의 조각]
그리고 갑자기 하나의 알림이 더 뜬다.
[주의! 가능성의 조각을 꼭 확인해 주십시오.]…하,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능성의 조각을 꼭 확인하라고 난리를 치고 있군.
‘그래, 목화랑 화해하도록 은근히 이끈 건데, 그거 하나 못 해주겠냐, 기지생아.’
나는 가능성의 조각을 사용했다.
* * *
나는 몸이 하늘에 뜬 기이한 감각을 느끼며 앞을 바라본다.
‘저건… 나군.’
얼굴을 보니 한 50대 정도 된 것 같다. 늙었긴 해도 알아볼 수는 있겠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책을 읽고 있다. 책 제목은 잘 보이지 않지만, 표지 디자인은 천체물리학 관련 분야인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책만 읽고 있는 내 주변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책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이 집안 곳곳에 쌓여있고, 사이사이에 내 필체로 뭐라고 적혀있는 종이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지만, 그 누구도 없이 홀로였다.
나는 종이로 시선을 옮겨 뭐라고 적혀있는지 확인한다. 너무 멀어 잘 안 보이지만, 수식이 많이 적혀있다.
‘내가 목화를 못 만난 세계는… 그냥 혼자인 거군. 이 나이가 될 때까지.’
그리고 순간 눈앞이 흐릿해지며 다른 장면으로 변화한다.
‘여긴…….’
옛날에… 살던 집 앞이군.
나는 멍하니 집을 바라보다, 주변을 둘러본다.
그리고 집 앞에 목화가, 상당히 늙은 목화가 문 앞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우리 집 앞에 앉아있는, 40대 정도로 보이는 목화는 계속 한숨을 쉬다가 자리에서 전화를 한다.
“…네, 네. 그러니까 형이 어딨는지 아직 못 찾으신 거군요. 네, 감사합니다.”
떠나가려다 뒤를 한번 돌아보더니 중얼거린다.
“…대체 어딨는 걸까.”
그 목소리엔 많은 회한과 억울함이 서려있어 듣던 나까지 그 감정을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목화가, 저 나이가 될 때까지 계속…….’
그리고 그 순간 눈앞이 점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