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1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11화(279/343)
콘서트에서 돌아오자마자 잠에 빠져들려고 했으나, 내가 없는 곳에서 내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은혜 갚는 모임을 만들었다는 헛소리를 듣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서 잠이 다 달아났다.
별생각 없이 무슨 사태인지 자세한 설명을 들으려 류이든에게 말을 걸었던 그때.
“우선, 제가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류이든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무릎부터 꿇었다. 나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조금 억울한걸. 모양새만 보면 내가 권력에 미친 인간 같잖아.
“처음엔 예언이 형이 친목 도모라기에 나갔고, 저는 그런 모임인지 몰랐습니다.”
“응, 믿어.”
애초에 네 멱살을 잡고 싶었던 것도 순간에 불과했어, 이든. 일어날래.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 그룹을 좋게 보는 사람들 모임이었고, 저희들 홍보도 열심히 해 주고 스트리밍도 하고 있더라고요?”
나름대로 인기 있는 연예인들끼리 모여서 한다는 게 우리 그룹 스트리밍이라니.
내가 이 바닥에 지식이 미천해도, 이제는 안다. 확실히 제정신은 아닌 모임이군.
“너무 감사하잖아요? 그래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음.”
얘도 영악하기 그지없군. ‘나’를 ‘우리’로 교묘하게 치환해서 나를 설득하려 들다니.
“동화 님은, 이렇게 남이 도와주는 걸 알아내면, 부담스러워하실 거잖아요? 그걸 또 어떻게 봐요. 이득은 챙기고 싶고, 동화 님도 부담 없이 살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중립 외교 같은 거였어요.”
나는 머리를 슬며시 쥐었다.
옆을 지나가던 채하민이 거실 한복판에서 쇼를 하고 있는 우릴 보다가 옆의 이현재에게 물었다.
“…왜 저래, 현재야?”
“몰라요. 이든이 형이 또 배신이라두 한 거 아닐까요?”
배신은 아니다. 그저 심란할 뿐. 내가 없는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진짜 그런 거면, 어쩌지. 나 아버지한테 독약 알아봐 달라고 부탁할 자신이 아직은 모자란데.”
아직은, 이면 조금 있으면 하겠네.
채하민은 느긋하게 채소주스를 마시며 개운하게 기지개를 켰다. 저런 얼굴로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다니.
류이든이 내 입이 열리기를 조심스레 기다리듯 나를 흘깃 쳐다봤다.
모든 건 예언이 미친 거고, 내가 뿌린 씨앗이지. 류이든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일어나라니까, 이든.”
“심지어 한호 선배님이랑 경우 선배님도 한 번 오셔서 초콜릿 맛있다고 하고 가셨단 말이죠? 동화 님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소통하는 게, 솔직히 저는 너무 기뻐서…….”
류이든은 내 말에 확신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얘 눈에는 내가 복수귀 정도로 보이는 걸까.
그런 설명보다, 내가 원하는 건 단 한 가지뿐이다.
“부디, 무언가를 베풀었다는 인식이 없다고 전해 줄래.”
베푼다는 문장 자체가 불쾌하다. 심리적 부채를 안겨 주는 건 협상의 기본이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들과의 관계가 협상은 아니다.
“그리고 혹여 베푼 게 맞다고 하더라도 갚으라고 할 생각도 없다고.”
더럽게 부담스러워.
류이든이 눈치를 보더니 슬며시 말을 낮췄다.
“근데, 동화야. 진짜 거긴 죽 이어져야 해. 우리 예능 나갈 때 경우 선배님이 얼마나 도움되겠어. 게다가 우리랑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건전하게 초콜릿만 먹고 간다는데, 귀엽잖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서바이벌 데뷔 무대가 끝났을 땐, 다들 내게 멤버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건넸는데, 어째서 이번 콘서트가 끝날 때는 우리가 널 잘 보필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받고 있는지.
이걸 고마움이라고 해야 할까 수치라고 해야 할까, 나는 내 감정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메신저 알림음이 들렸다.
이 소리는 목화만을 위해 따로 설정해 둔 거라 반사적으로 손이 움직였다.
―(목화가 준성, 예언과 함께 디저트 카페에서 브이 사인을 날리고 있는 모습.)
―형 덕에 친구 많이 생길 듯
음, 망할. 불이 꺼진 방 안에 검은 고양이가 있음을 알아차렸다면, 어떻게든 잡아내고 싶지만, 그게 내 동생에게 도움이 될 경우에는.
“요즘 디저트 카페는 새벽에도 하는구나.”
하긴, 현대니까.
“응? 아니, 거기 예언이 형이 사장이라. 이건 예언이 형이 너한테 비밀로 하라고 했던 건데, 나도 배신당한 김에.”
“그래?”
“어. 자기가 쇼콜라티에 자격증 따서 디저트 카페 내는 게 버킷리스트 중에 있대.”
“…그래.”
그새 쇼콜라티에 자격증까지 땄다니.
예언 선배가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다거나, 팬들에게 관심 없다는 소식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으니, 틈틈이 시간을 내서 땄나 보다.
“나도 이유는 모르겠는데, 나중에 자기 실력 자랑할 만하면 널 초대하고 싶었다더라고?”
나는 소파에 몸을 누였다.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의 꿈을, 내 덕분에 아름답게 이뤘다고, 이곳에서 내게 은혜를 갚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자랑스레 보여 주고 싶어서.
그 와중에 류이든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까지 모두 이해할 만한 선택뿐이다.
고장난 시계도 시간이 맞는 순간은 있는 것처럼 하염없이 미쳤던 것 같았던 그 사람도.
‘…뿌듯해야 하는 건지, 뭔지.’
오묘하다.
“요즘 예언이 형 미쳤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범죄자 지망생 아닌 게 다행일 정도라니까? 뭘 자꾸 배워.”
기쁘지는 않고 그저 낯설다.
“…네가 뭘 해 줬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네 덕분인 건 알겠더라.”
“맞아.”
그래서 우유부단해지는 감이 없잖아 있다.
나를 위한 모임이라니, 때려 부수고 싶은데 그 기반이 나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라니. 찢어발기고 싶은데 보존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도 있었다.
아주 역설적인 심사, 나는 류이든에게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 *
“저게 내 원본이야, 선생?”
“말투가 불손하네, 학생.”
이족 보행을 하는 고양이 몸에 탑재된 지동화(기지생 수정 버전)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원본 같은 소릴. 우리 화는 저거랑은 달라진 지 꽤 됐지.”
기지생은 명실상부 미친놈답게 이족 보행하는 동물 로봇을 만들고 지능을 향상시킨 뒤, 화, 채, 류, 준, 현이라는 가공할 만한 네이밍 센스를 뽐냈다.
기이한 생명체들의 아버지, 기지생, 지동화가 보았다면 얼마나 경기를 일으켰을까. 이름이 아동 학대라며 곧바로 옥편을 꺼내 들겠지.
“자기 흔적을 세상에 남긴 건데 기뻐할 줄 모르고.”
“그래 보여도 너보다 오래 살아서 저러는 거란다. 책임감으로 도운 일에 은혜를 갚는다는 사람을 보면 윤리적 문제가 끼어드니까.”
그때 화가 날카롭게 발톱을 세워 기지생을 향해 휘둘렀다.
툭 쳐 내고 자리에 앉혀 두는 기지생, 아이를 때리지 않는다는 육아 신념을 가진 점이 유치원 선생님답다.
“폭력은 나쁘단다. 사실 어느 정도는 필요하긴 한데, 이렇게 가르치래.”
여기 와서 설득이 안 될 게 분명할 때 가장 쉬운 선택지가 테러라서 수시로 일으켰던 기지생으로서는 아쉬울 따름이다.
“닥쳐, 제발.”
이딴 몸에 넣어 놓고 잘도 지껄인다고 분노하는 화.
그 소란에 깊게 자고 있던 채가 깨어나 화를 뒤에서 부여잡았다.
“나빠.”
“닥쳐, 너도. 원본은 너보다 똑똑해 보였는데.”
“말투가 나빠.”
“…하.”
한숨은 ‘알겠다’ 혹은 ‘졌다’라는 신호.
아직 솔직함이 부족한 우리 학생이지만 채하민 베이스의 채는 그 한숨 속 의미를 간파하는 데 능수능란하다.
그제야 놓아주고 손을 잡아 놀이터(라고 명명한 곳)에 데려가는 채.
오늘은 폭탄을 만들며 같이 놀 예정인가 봐. 아주 흐뭇한 광경에 기지생이 활짝 웃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음.
“나도 미쳤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원.”
과학자가 되었어도 철학과 경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서,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실천 중인 기지생.
가끔 싹 다 폐기해 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녀석들끼리 서서히 친해져 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런 마음도 금세 사그라들었다.
의외로 적성에 맞나 봐, 망할.
“이거, 왜 보는 거예요?”
현이 와서는 조용히 물었다.
자기 품에 가장 오래 있었던 로봇이라 아직도 여기 근처에 머무르는 게 일상이다.
“궁금해?”
“네.”
“확률상으로는 재밌는 게 시작될 예정인데, 같이 볼까.”
쟤가 드디어 깨닫는 순간이 올 거거든! 자기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무엇이 기지생과 지동화를 다르게 만들었는지!
“저기, 나랑 닮은 쟤 보여?”
“네.”
“쟤는 팬들한테 편지를 받으면, 한 번 읽어 보고 앨범에 전부 넣어 두거든.”
“실험 기록 같은 거네요?”
“그렇지. 그만큼 꼼꼼하게 저장해.”
정말 장하다. 화를 잇는 과학 영재 현!
“그리고 오늘 받는 편지 속에 새로운 물건이 하나 들어 있을 예정이야.”
* * *
마지막 콘서트날, 사실 처음과 마지막뿐이라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큰 의미가 있나 싶긴 하다.
다만, 다른 멤버들에겐 아니었나 보다. 다들 울고 있는 와중 홀로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는 나.
나에게 두 번째 콘서트는, 아름다운 순간의 후속작 같다면, 얘네들에겐 마무리처럼 느껴졌나 보다.
“동화야, 너도 좀 울어!”
한 팬분의 외침.
되도록 요구하시는 건 다 들어드리는 편이지만, 나오지 않는 눈물을 흘리는 건 너무 어렵다.
나는 얼굴을 숙이고 우는 시늉을 하다가, ‘정말 원하시는 게 이것이 맞을까요.’라는 의문이 들어 살짝 고개를 들어 팬분들을 바라봤다.
웃고 계신 걸 보면, 나쁘진 않나 싶다.
나도 마주 웃어 드리고 멤버들을 위로하러 걸음을 옮겼다.
“그만 울어, 이든.”
“으어, 동화야! 나, 너무 고맙다, 너한테!”
“뭐가.”
“어제도 나 그냥 용서해 주고. 우리들 맨날 챙겨 주고!”
그만해. 주사 부리는 것 같잖아. 왜 건전한 우리 콘서트에 알코올의 잔향을 남기는 거지.
나는 마이크를 내려놨다.
“어젠 네가 잘못한 게 없는데.”
애초에 아무도 잘못한 게 없다.
굳이 잘못이 있다면 씨앗을 마구잡이로 뿌렸던, 부지런한 농부에게 죄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려니 하려고.”
어제 새벽에 베란다에 나가 잠시 좀 앉아 생각을 정리해 봤는데, 내가 거부하는 시늉을 보이면 더 해괴한 짓을 일으킬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예언, 그 인간, 누가 막으면 사도나 외도를 걸어서라도 자기가 원한 바를 이뤄 낼 위인인 것 같으니까. 지금이 최선의 상태이지 않을까.
“마이크 잡아.”
류이든은 잡으라는 마이크는 안 잡고 내게 들러붙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석이라도 된 듯 다른 멤버들도 하나둘 내게 다가왔다. 석준과 채하민이 달려들고 이현재 홀로 떨어져 있길래 잡아당겼다.
혼자 있으려 하는 게 나랑 닮은 것 같아 괘씸하니 가만히 둘 수가 없다.
이현재는 막내답게 어제 울지 않았던 건 정말 필사적으로 참은 결과라는 듯이, 하염없이 울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마이크로 중얼거렸다.
…음, 이건 확실히 기쁜 것 같아.
어제의 그 싱숭생숭함과는 느낌이 다른, 너무 선명하게 긍정적인 기분.
“저도 울어야 분위기가 살 텐데, 죄송합니다, 여러분.”
―어제 울었잖아!
어떻게 그 함성 사이로 정확히 소리가 들리는지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오늘은 꾹 참았거든요.”
빗발치는 야유.
나는 이현재를 토닥였다.
“어제의 누구처럼.”
이현재가 순간 이성을 잃었는지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팔로 나를 한 대 툭 쳤다.
이게 무는 거구나. 한 서른 번쯤 물려도 아프진 않을…….
설마, 류이든이 내가 내리칠 때 이런 기분일까.
번개처럼 내리꽂히는 깨달음.
벽돌을, 진짜 벽돌로 바꿔야 하는 건 아닐까, 나는 조심스레 생각하며 모든 멤버들을 하나하나 위로해 주었다.
한 명 씩 이어지는 소감, 다들 울고 있는 틈바구니에서, 지동화는 홀로 ‘앵콜 무대를 조금 더 길게 할 수 있도록 체력을 기를 예정.’이라는 계획까지 발표하며 실시간으로 SNS에 충격을 선사하고 있을 무렵.
내일은 쉬는 날이니 느긋하게 읽으라고 회사에 도착한 편지와 선물을 모으고 있는 매니저님이 있다.
“음, 콩쿠르 초대장? 이건 뭐지.”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소중한 편지와 함께 붙어 있으니 우선은 지동화 쪽 박스로 분류하는 매니저님.
그건 한 소년이 용기를 내서 보낸 편지, 기지생의 말대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깨닫게 되는 작은 계기가 되는 초라한 편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