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1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12화(280/343)
콘서트 떡밥은 돌판에서 나오기 전에 상상으로 먹고, 콘서트 현장에서 식기 전에 집어먹고, 아직은 따스할 때 다시 먹고, 한 반년이 지나서 또 한 번 먹는 효율 좋은 보존식이다.
게다가 콘서트 백스테이지 영상이 조금씩 공개되며 식을 것 같을 때쯤 한 번씩 장작이 들어가 더욱 활활 타올랐다.
어느새 룸넛들의 머릿속에는 네 시간의 강행군은 사라지고, 따스하면서 격렬한 추억의 한 장면으로 산화했다.
[한 아이돌 팬의 광기 어린 팬아트]때는 블로센스 콘서트가 끝나고, 다리는 죽었는데 심장이 너무 격하게 뛰어서 침대 위에서 가장 고요한 발광을 하고 있던 시간.
후들거리는 손가락으로 파랑새와 아랫버스(위X스의 써방)를 보고 있던 나는, 보았다.
(지동화가 울고 있는 모습을 수채화로 그린 그림. 지동화는 투명하고, 맑은 색채, 배경은 어둡고 진득한 색채다. 무감정한 표정 위에, 투명한 물줄기가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마치 다가올 운명에 순응하는 순교자처럼 성스러웠다. 의상도 검은 물감이 묻은 흰색 옷이라 그런 느낌이 더 부각됐다.)
퀄리티는 둘째치고, 이 그림이 올라온 시각은 콘서트 끝나고 두 시간 후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지동화가 우는 건 콘서트 전까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그저 저 하늘 멀리 떠 있는 별처럼 바라고 있던 일이라, 미리 그렸다고 볼 수도 없다.
난 저걸 보자마자 두 시간 내리 울다가, 깨달았다.
이 사람, 콘서트 끝나고 후들거리는 몸으로 두 시간 내에 집에 가서 곧바로 팬아트 그린 후 디지털 보정까지 끝냈는데, 살아 있을까?
부디, 이 재능을 꽃피우며 만수무강하시길,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추신) 글쓰기 출처 남기면 괜찮다고 허락을 받았다. 생존을 확인해서 나는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댓글
―ㅋㅌㅋㅋㅋㅋ 말투 무엇
―룸넛들 중에 대단한 사람들 많은 것 같음 지동화를 응원하다가 스스로의 재능에 배덕감을 느끼고 싶어진 룸넛들.
└하지만… 난…?
―와 근데 나 타팬인데 팬아트 ㅈㄴ 고퀄이다. 포트폴리오에 있는 작품 같음 ㅠㅠㅠ
―무슨 종교화 같아. 개쩐다. 수채환데 부분부분 마커 같은 걸로 포인트 들어가서 확 삶 ㅅㅂ
└아, 지동화가 교회 목사나 성당 신부님으로 일하면 독실한 신자 돼서 매일 새벽 기도, 점심 기도, 저녁 기도 나갈 텐데. 예배할 때 집중력 풀 상태로 말 한마디 한마디 다 받아적을 자신 있음.
평소에도 자잘하게 언급이 되던 한 네임드 금손러.
잡담은 일절 올리지 않으며, 그 흔한 주접글도 올리지 않는다.
질문 사이트를 운영하지도 않는 고요한 페이지. 그저 일주일에 단 한 번 팬아트를 업로드한다. 규칙적으로, 주기적으로 멤버들을 돌아가며.
그리고 그 금손은 현재 젓가락을 쥐고, 학교 앞에서 제육볶음을 입에 가져다 넣길 반복 중이었다.
“이걸로 괜찮아?”
“괜찮대도. 그래서, 좋았어?”
“돈이 안 아깝더라. 무대 퀄이 일단…….”
그가 별세계에 빠진 듯 입을 열자, 친구는 참 신비로울 따름이었다.
모든 덕질엔 교통사고가 동반된다.
쟤는 대체 무슨 사고를 당했길래 3D 인간에게 관심을 갖게 됐을까. 지독한 애니 덕후인 그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덕질은 덕질이라 통하는 구석은 있는 법이다.
“넌, 그 형들한테 엄청 고마워해야겠다. 그림 그릴 생각 계속 들게 해 주잖아.”
친구는 웃으며 야무지게 제육 쌈을 한입 집어삼켰다.
쟤한테는 팬아트를 그리는 게 그림을 사랑하는 방식이라는 건, 뼈저리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게. 그림 그리기 더럽게 재미없을 땐 거의 영감 창고긴 해.”
어떤 교수님의 피드백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 유독 오늘따라 자유를 갈망하게 될 때, 그룹 멤버들을 그리며 에너지를 보충한다.
뮤즈 같은 오글거리는 말을 쓰고 싶진 않아서 ‘영감 창고’라는 드라이한 표현을 택했을 뿐,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가끔 신비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홀로 서울에 올라와, 고시원에서 자취하면서, 좁은 방이 관 속인 건 아닐까 착각하며 살던 날이 있다는 게 이젠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싶다.’라는 문장은 예중을 다니며 사라졌다. 예고를 다닐 때는 붓을 드는 게 의무적인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라디오를 들으며 절벽 위를 끊임없이 올라가던 한 인간의 이야기에 위로받았던 게 꿈만 같았다.
그날, 그리고 싶다는 본원적인 욕구를 회복하지 못했다면, 지쳐서 붓을 손에서 놓았을지도.
그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조차 모를 텐데, 자신은 이렇게나 큰 영향을 받았다니.
“형들은 알려나 몰라.”
여기, 아주 작은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당신들 덕분에 옷에 밴 물감 향기를 아직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뭐가 중요해. 네가 행복하면 그만이지.”
밥을 다 먹었는지 만족스레 배를 두드리는 친구.
당연한 사실을 알려 주듯 말하니 피식 웃음이 샜다.
“그렇긴 해.”
그래도 대학에 들어와서 남돌을 덕질하는 놈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함께 티켓팅해 주는 친구 하나 남았으니까, 잘 살았나 보다.
이것도 그 형들 덕이네.
세상에나 만상에나, 사람 하나 살렸다. 형들은 아마 모르겠지만.
* * *
‘과제하기 많이 싫으셨구나.’
유화 특유의 기름 향이 밴 편지를 읽으며 나는 머릿속을 뒤졌다.
인호 씨, 였지. 카페에서 짧게 마주쳤던 분, 이현재가 자주 보여 주던 팬아트를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분.
기억은 노력해서 갱신하지 않으면 흐릿해지고 추상화된다.
누군가에게 생생한 추억이, 내 머릿속에선 덩어리진 무언가로 남는다니, 그건 거부감이 든다. 아이돌로 살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다.
편지지를 모아 둔 곳 옆에 있는, 팬아트를 모아 둔 파일을 열었다.
팬아트를 보며 기억의 연결고리를 되짚어, 처음 팬사인회에서 봤던 한 청년의 얼굴을 떠올렸다.
‘형들 곡 들으면서 대입 준비 중이에요.’라며, 어색하게 사인을 받아 갔던 모습까지.
이번 편지를 보면, 대학교에 가서 과제를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는 하시지만, 사실 과제는 정말 하기 싫으신가 보다.
나는 편지를 펴서 파일에 넣어 정리했다.
보통은 하루 날을 잡고 편지를 모두 읽은 뒤, 작업실에서 곡을 구상하며 분류 작업을 한다.
하지만 오늘은 공식적으로 쉬는 날, 앞선 파일도 훑어보며 느긋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다음 편지.
낡은 봉투에 든 편지 한 통.
꺼내 보니 스테이플러로 다른 편지 봉투 하나가 더 붙어 있었다. 낡은 봉투와는 달리 질 좋은 종이로 보이는 편지 봉투가.
스테이플러 침을 제거하려다 종이가 찢어질 수 있으니, 조심스레 꺼내야겠다.
“동화야, 나 파일 사 둔 게 다 떨어져서 그런데 하나만 빌려줄 수 있어?”
옆에서 마찬가지로 편지를 읽던 채하민이 말을 걸었다.
말없이 파일을 하나 건네줬다.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두 손으로 파일을 받아 들었다.
“아, 어떡해. 예쁜 말만 가득하다.”
“그러게.”
꾹꾹 눌러쓴 게 역력한 필적을 볼 때마다 그 궤적에 담긴 애정을 알 수 있다.
“한 이십 년 지나서 다시 보면, 잘 살았다 싶겠다!”
채하민이 침대 위에서 폴짝거리는 소리를 배경음으로 삼아 나는 조심스레 스테이플러 침을 제거했다.
어째서 낡은 봉투와 질 좋은 봉투가 묶여 있었는지, 호기심이 들었다. 우선 낡은 봉투부터.
나는 편지지를 꺼내 첫 문장을 읽자마자 당황하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이라니, 뭐지. 내가 교육 업계에 종사한 적이 있었나. 굳이 따진다면, 어떤 복지관에서 며칠 일했던 전적이 있지만.
다음 내용을 읽기 전, 눈에 띄는 건 필체.
어디선가 본 적 있다. 악보 위에 삐뚤빼뚤하게 적혀 있던 그 글자는 이 편지보다 악필이었지만 군데군데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나는 시선을 내렸다. 다음 줄에는 별 문장도 없이 두 단어만 적혀 있었다.
‘피아노 선생님!’
세상에. 나는 편히 앉아 있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대체, 뭐지. 나는 분명 이메일 주소를 알려 줬는데, 왜 이런 아날로그를.
‘요즘은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데, 선생님이랑 쳤던 것만큼은 아니어도 재밌어요.’
그러나 그런 의문에 답해 줄 생각은 없다는 듯이 봉주는 귀엽게 조잘댔다.
‘학원 선생님이랑 같이 콩쿠르에 나갈 준비하고 있어요.’
고민을 많이 한 사람이 쓴 편지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생략된 것들이 보인다.
‘바쁘셔서 보러 오실 수는 없겠지만, 제가 이렇게 아직도 피아노를 치는 중이라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문장 사이사이에 엿보이는 건 불안함이었다.
이렇게 고민해서 쓰고 있는 편지가 자신만이 기억하고 있는 추억이면 어쩌나. 그때 자신이 실망한다면 어쩌나.
아, 봉주는, 이메일이 갖는 특성이 싫었던 거구나.
반드시 도착하고, 빠르게 도착하고, 읽었는지 아닌지까지 확인할 수 있는, 이메일이.
‘아직도 재방송을 가끔 봐요. 피아노가 제일 좋았던 순간이라서. 사랑하는 걸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 방송도 챙겨 봐요. 최근엔 콩쿠르 준비 때문에 못 봤지만.’
봉주는, 여전하다.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게 힘든 아이.
‘추신) 그리고 증거로 콩쿠르 초대장을 같이 보냈어요.’
음, 갈 수 있을까.
날짜를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콘서트를 마치고 잠시 휴가지만, 끝나면 곧바로 해외로 갈 예정이니까.
갈 수 있어도 가는 게 맞을까. 민폐를 끼치면 어쩌지.
콩쿠르는 아이들이 빛나야 할 곳인데, 혹여나 나를 알아보는 분이 계신다거나 하면… 자의식 과잉일 수도 있지만, 모든 경우의 수를 따질 수밖에…….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그러나 머릿속과는 달리 손은 침착하게 콩쿠르 초대장을 열고 있었다.
스윽, 종이를 꺼냈다. 앞면은 그저 미사여구로 장식된 말들 뿐이라 뒷면을 재빨리 펼쳤다.
‘…내일.’
아, 세상에. 편지는 한 번에 모아서 가져다준다는 걸, 우리 봉주는 몰랐던 건 아닐까. 혹여 하루라도 늦게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면 고민조차 못 했겠군.
머리를, 굴리자.
“왜 그래, 동화야?”
“…하민.”
“응?”
“내일, 같이 못 놀겠어.”
“…어?”
청천벽력 같은 소식. 채하민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 * *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조금 낡은 어린이용 양복은 레슨비만으로도 빠듯해 새로 맞출 돈이 없었음을 증명하고, 어색하게 꾸민 머리는 소년의 아버지가 서툰 솜씨로 최선을 다해 왁스칠을 해 줬음을 증명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손바닥이 두툼하고 손가락이 긴 편.
전자는 연습을 하며 단련된 근육이고, 후자는 마치 피아노를 치라는 듯한 유전자였다.
소년은 눈을 감았다. 실망할 이유가 없다. 너무 많은 변수들이 편지에 뒤섞여 있었으니까. 애초에 그렇게 바쁜 사람이 자신을 기억해 줄 이유가 없다.
“봉주야, 긴장돼?”
일에 지친 얼굴이지만 온화한 낯빛의 아버지. 대회에 나온 자식이 자랑스러워 보였다.
“아뇨. 괜찮아요.”
곧 자신의 차례라는 학원 선생님의 말에도 그렇게 말했듯이, 아버지에게도 봉주는 그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처음 쳤던 건반의 소리를 잊지 않았으니까.
별로 좋지 않은 피아노였음에도, 단단하게 울리는 옥타브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봉주야, 나가자. 연습했던 대로만 하면 돼.”
이번엔 학원 선생님.
“네.”
소심한 아이라기엔 걸음이 당당했다. 피아노를 향해 걷는 걸음이 의기소침할 수가 없다.
봉주의 머릿속엔 대회에서 이기고 싶다는 생각도 별로 없었다. 피아노를 더 오래 칠 수 있고, 더 잘 칠 수 있으면 그만이다.
마침내 피아노 앞에 도착한 봉주. 어둠 아래 핀 조명이 꽂혀 있었다.
인사를 올리고, 피아노 앞에 앉아 한 번 호흡을 가다듬는다.
건반 위에 여린 손이 얹히고,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뒤.
빠르게 움직이는 손과 터져 나오듯 번져 가는 강렬한 음률. 왼손이 바삐 움직이며 화음 도약을 훌륭히 해내며.
장내에 울려 퍼지는 리스트의 ‘타란텔라.’
봉주가 듣자마자 치고 싶다고 결정했고, 선생님은 ‘네 재능이면 칠 수 있을지도…….’라는 안일한 믿음이 확정해 준 곡이었다.
그리고 어머니 덕분에 클래식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지동화는, 스냅백을 푹 눌러쓴 채로 조용히 입을 막았다.
‘…내가 언제 저런 걸 가르쳤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