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1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13화(281/343)
타란텔라. 원래는 이탈리아 나폴리 지방의 춤곡.
그러나 쇼팽이나 리스트 같은 큼직한 작곡가들이 자기 방식대로 클래식 곡으로 만든 바 있다.
어제 하루 내내 콩쿠르 관련 정보를 찾아봤다.
어느 정도의 교양도 없이 가서야, 봉주가 보여 주고 싶은 걸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콩쿠르에 자주 나오는 곡을 들으며, 어떤 걸 살려서 연주해야 하는지를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던 중에 소위 ‘곡빨’을 받는 곡들 목록에 대해 알게 되었다.
둘 다 실수하지 않고, 비슷한 표현력을 가질 때 누구를 우승시켜야 하는가.
그럴 때 심사위원들은 곡을 본다고 한다.
어떤 곡이 더 연습 과정에서 고통스러운지, 표현하기 어려운지를 전체적으로 고려해 우승을 결정하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참가자에게 우승을 안겨 주는 곡이 있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타란텔라. 초등부에선 보기 힘들다는 말이 있었다.
지금 보는 콩쿠르는 예선을 거치고 나서 진행되는 본선. 곡은 자유 선택.
그리고 봉주는 자신이 왜 이 곡을 치고 있는지 보여 주기라도 하듯 엷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활기차게 움직였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신기해했던 아이가, 이제는 그 사실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건반을 누르고 있다.
손을 움직이면 자신이 원하는 소리가 울릴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엿보였다.
손가락이 부드럽게 건반을 쓸어내렸다.
타란텔라는 강렬하고 경쾌한 초반부, 감미로운 중반부, 그리고 그 둘을 섞은 듯한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
파티에 갔다가,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그 사람과 함께 춤을 추는 듯한 구성이라고, 클래식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내게는 그렇게 들리더라.
그러나 봉주의 타란텔라는 피아노가 무엇인지 탐구하는 실험장처럼 보였다.
초반부는 청각적 강렬함에 초점을 맞춰 심장에 벅차게 다가왔다.
이어지는 중반부는 너무나 부드러웠다.
피아노가 낼 수 있는 음률엔 어떤 것이 있는지 하나하나 확인해 보는 사람처럼, 건반에서 손을 떼는 속도, 누르는 속도를 세심하게 조정하며 그저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기 위해 움직였다.
마침내 후반부, 앞서 확인했던 소리를 이리저리 조립해 보며 즐겁다. 유려하게 흘러가는 음률은 변화무쌍하다.
자신만의 색다른 해석 같은 건 없지만, 저 또래의 아이가 내는 소리라기엔 정말 아름다운 소리.
연습을 하다가 한 음마다 어떻게 누를지 끊임없이 고심했던 흔적이 엿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애가, 나한테 선생님이라니.
호칭이 잘못됐다. 그냥 소싯적에 피아노 좀 쳐 봤다는 삼촌 정도가 맞지 않을까.
연주가 끝에 다다랐다. 봉주는 마지막 음까지 깔끔하게 연주하고, 숨을 골랐다.
잠시 자기 손끝을 쳐다보다가, 이내 시무룩해졌다.
더 치고 싶다, 그 짧은 문장이 얼굴에 투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아직 피아노에서 손을 떼지 않아 박수는 나오지 않았다.
사실 다들 박수를 치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리는데, 연주자가 악기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 전까지는 기다리는 게 예의라 봉주의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
봉주는 마침내 손을 뗐다. 쏟아지는 박수에 부끄러운지 고개를 약간 숙이고, 무대를 비스듬히 내려다보며 구십 도로 인사했다.
어수룩한 옷차림과 머리. 소심한 자세.
피아노를 향해 걸어 나갈 때는 그렇게 당당하더니, 뒤돌아설 때는 유약한 걸음걸이였다.
“…피아노, 엄청 좋아하나 봐.”
옆에 앉으신 분이 손을 격렬하게 움직이며 흐뭇하게 웃었다.
백 번이고 동의할 수 있다.
* * *
사실 피아노가 아니었어도 큰 문제는 없었다.
바순이든 클라리넷이든 호른이든 아니면 해금이나 가야금이든, 봉주는 악기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음색을 사랑하는 인간이었으니까.
지동화와 처음 만났을 땐 2학년이라 교육 과정에 음악이 없었지만, 1년만 지났어도 질 나쁜 리코더의 소리를 어떻게 하면 더 유려하게 낼 수 있을지 본능적으로 숨을 조절해 볼 아이였으니까.
그러나 봉주는 누군가에게 단 한 번도 티를 낸 적 없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 밑에서 홀로 자라며 원하는 걸 말하기 힘들어졌다. 용기는 환경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럼, 저렇게 콩쿠르에 갈 일이 원래는 없었어요?”
여우 한 마리가 기지생의 품에 앉아 앞에 있는 건반을 통통 두드렸다.
모니터를 보다가 저거 신기하다며 호기심을 갖던 현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응.”
저 아이는 커서 원래 적당한 직장에 다니며 취미로 악기를 배우게 될 예정이었다.
“그것두 나쁜 삶은 아니네요.”
조숙하네. 이현재 베이스라 그런가.
“인간 삶에 좋고 나쁨이 있을까.”
어쨌든 봉주에게는 어떤 순간이 필요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먼저 눈치채고, 원해도 된다고 말해 주는 사람과의 만남이 필요했다. 그 사람이 악기나 음악에 대해 잘 알면 금상첨화였다.
그런 순간 없이는 피아노 앞에 앉을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그저 곁눈질로, ‘저거 신기하다. 소리가 예쁘다.’라는 생각만 했겠지.
피아노 앞에 앉도록 권한 것, 옥타브를 설명해 준 것, 무엇보다 처음으로 아름다운 소리를 제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준 것.
그 순간 덕에 봉주의 세계는 확장됐다.
더 정확히는 피아노를 통해 세계와 연결됐다.
아직도 초등학생인 이 아이가 이십 년은 더 흘러서야 깨닫는, 악기를 연주하고 싶다는 사실을 일찍 깨닫게 됐다.
신기하기도 하지. 고작 사람 하나 만나서 삶이 바뀌다니.
“굉장히 특별하네요.”
여우 한 마리가 쓸쓸하게 웃었다.
특별한 관계. 이곳에서 자신에게 특별한 존재는 하나의 생명체뿐이다.
기지생의 손에서 태어나 연산 능력 하나는 기가 막힌 현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전 선생님이 쭉 같이 있었으면 해요.”
그래서 기지생은 답하지 않았다.
육아 원칙, 이룰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는다.
그것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거짓으로 약속하는 건 너무 멍청한 일이다.
기지생은 자신의 방밖에서 터지는 폭탄 소리를 들으며 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꽃은 왜 들구 있어요?”
지동화가 다마스커스 장미로 이뤄진 꽃다발을 들고 밖으로 나서는 모습이 화면에 잡히자, 문득 물었다.
“감사, 수고, 애정, 애도. 넷 중 하나야, 보통. 저건 수고 표시.”
다마스커스 장미의 꽃말은, ‘아름답게 빛나는 모습’이나 ‘추억’.
흠, 더럽게 감상적이네.
지동화의 발칙한 상상력에 기지생이 웃고 있을 때, 현은 조용히 눈을 빛냈다.
감사와 애도. 그 두 단어를 사전에 검색해 버리고 말았으니까.
* * *
콩쿠르가 끝나고 나는 연주자들이 자신의 지인들과 만나기 위해 나와 있는 장소로 향했다.
때마침 봉주가 소심하게 나와 자기 또래 아이 한 명의 과한 축하를 받으며 멋쩍어하고 있는 게 보였다.
“와, 너! 왜 이렇게 잘 쳐! 나랑 같이 시작했는데!”
“그건 봉주가 매일 혼자 나와서 연습할 때, 너는 연습했다고 나한테 거짓말해서 그런 거야.”
“쌤! 저도 진짜 열심히 했는데!”
봉주는 낯설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쉽게 놀라니까, 조금 떨어진 곳에서 타이밍을 기다렸다.
…잠깐, 조금 위험한 인간 같지 않나.
초등학생을 은밀하게 관찰하는, 스냅백을 눌러쓴 인간이라니. 너무 전형적인 납치법이잖아.
게다가 옷까지 품이 큰 검정 가디건. 고등부 콩쿠르면 음침하다는 얘기 듣고 끝날 일인데, 초등부라 문제다.
나는 그제야 얼굴이 잘 보이게 스냅백을 올려 썼다. 수상한 인간이 아니라, 아는 초등학생이 장성한 걸 응원해 주러 왔을 뿐입니다.
그때, 봉주와 눈이 마주쳤다.
봉주는 ‘응?’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친구가 사 온 꽃 한 송이를 한 손에 고쳐 쥐더니 눈을 살짝 비볐다.
저건 창작물 안에서나 볼 법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순진무구한 인상만 느껴졌다.
다시, 눈이 마주쳤다.
화들짝, 뒷걸음질 한 번.
나는 걸음을 옮겼다.
봉주는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뒤로 복지센터 직원분들은 의아해하며 봉주가 걸어가는 방향을 살피더니, 재빨리 봉주의 친구를 안아 올렸다.
“우리 카페 갈까! 쌤이 사 줄게.”
음, 배려.
나는 봉주 앞에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다마스커스 장미 꽃다발을 조심스레 내밀었다.
“오랜만이네.”
봉주는 말없이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진짜예요?”
“응.”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나다. 다른 멤버가 오진 않아서 절반 정도지만.
“…꿈이면 어쩌죠.”
“깨어나도 내가 꽃다발 들고 있을걸.”
이게 현실이니까. 잠시 잠들었다가 깨어난들 뭐가 바뀔까.
“편지, 보신, 거예요?”
정말, 팬레터를 하루만 늦게 모아 주셨어도 큰일 날 뻔했다.
“응. 어제. 늦게 봐서 미안.”
나는 쭈그려 앉아 모자를 벗었다. 꼴에 연예인이라고 머리를 한 번 털어 가지런히 정리했다.
다시 봉주의 얼굴을 보니 울먹거리고 있었다.
음, 울 거라면, 이렇게 멋진 연주를 했으니 수상자 발표일에 울어야 하지 않을까.
내 편향되고 객관적이지 못한 귀에는 봉주의 연주가 최고였다.
심사위원도 아니니까, 뭐 어때. 중립 따위는 버린 지 오래다.
“약속 지켜 줘서 고마워.”
복지센터에서 헤어질 때 했던 약속.
봉주는 내게 언젠가 멋진 연주를 하게 된다면 꼭 들려주기로 약속했다.
“…전, 저는요.”
꽃다발을 꽉 껴안았다. 그러다가 이내 망가트리기 싫었는지 손에 힘을 풀었다.
“아, 모르겠어요. 막 머리에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양손이 꽃다발에 묶여 있으니 직접 닦아 줬다.
“옥타브, 알려 준 것도 고맙고. 소리가 얼마나 예쁜지도 알려 줘서 고맙고. 피아노 만지게 해 준 것도 고마운데.”
봉주는 히끅거리면서도 내가 닦기 편하게 얼굴은 고정하려고 애썼다.
“화음, 알려 주고, 악보 읽는 법 처음 배우고, 저는, 막, 피아노에 앉아 있을 때 너무 즐겁고.”
논리가 이리저리 흩어졌다. 문맥은 사라지고 오로지 감상만 나열되었다.
술(논 알코올)에 취한 채하민 같네.
“아빠랑도 더 자주 대화하고. 친구도 생기고. 이상해요. 전부.”
뭐가 이상할까. 네가 잘나서 그런 건데.
“선생님 만나고, 뭔가, 막 다 이상해요. 너무 좋은 일만 일어나서 무서워요.”
우리는 늘 현재를 살며 본원적 선택을 되짚곤 한다.
자신이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그 최초의 선택은 무엇이었는지, 본원적 선택을 늘 궁금해한다(사실 더 복잡한 개념이다).
어느 소설가가 도둑질을 했던 경험이 그의 문학적 색채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쳤다는 예시가 대표적이다.
봉주는 나와의 만남을 그렇게 이해했나 보다.
나와 만난 후로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서 생긴 우연의 오해일 수도, 어쩌면 정말 삶을 뒤바꾼 선택일 수도 있다.
무엇이라고 확신하기에는 내가 너무 멍청하다.
그런 건 기지생이나 알 수 있는 거지, 아직 어린 이 아이의 삶에 나와의 만남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찌 알 수 있을까.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그럼 다음에도 불러 줄래. 혹시 나쁜 일이 있었으면 얘기도 해 주고.”
내 인생의 의미를 하나의 통일된 방향으로 해석할 때, 난 너와의 만남을 고려할 것이다.
봉주는 내 말에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손을 부여잡았다.
“혹시, 혹시 시간 되시면, 피아노, 치러 가요, 선생님.”
다급한 목소리.
콩쿠르에서 고난도의 곡을 실수도 없이, 그것도 또래에 비해 훌륭한 실력으로 연주한 아이라기엔 소심한 목소리였다.
“아버님한테 허락 맡고.”
그리고 선생님이 아니라, 그냥 뒷방 노인네 정도가 좋을 것 같아, 봉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