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1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14화(282/343)
“얼마나 연습한 거야, 콩쿠르 곡은?”
“일 년 가까이요. 이것만 쳤어요.”
“안 지루했어?”
“연주가 마음에 안 들어서 짜증은 났어요.”
봉주는 피아노 건반을 열었다.
덤덤하다. 자신이 볼 때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무한히 연습을 반복하는 성정. 정말 재능이란 재능은 다 달고 태어났구나, 봉주야.
이곳은 작은 피아노 연습실.
봉주가 다니는 학원의 선생님은 아이의 재능을 알아보고 아버님께 투자해 보심이 어떻냐고 은근히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투자한다며 선뜻 빌려준 곳이 이 작은 연습실이라고 한다.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나는 봉주에게 전해 들으며 속으로 웃었다.
어른들 사이의 이야기를 기가 막히게 알고 있는 걸 보면 정말 아이의 눈치는 아니다.
“제가, 선생님 노래를 들었어요.”
“그래.”
나는 건반 앞에 앉는 봉주를 보며 뒤에 있는 허름한 의자에 앉았다.
부끄럽진 않다. 부끄러울 만한 곡이었으면 타이틀곡이라고 내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전 이게 제일 좋았어요.”
숨을 한 번 들이켜더니. 건반 위에 손을 얹고 어깨를 한 번 털어냈다.
그러고는 봉주는 아무런 말도 없이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에 반주를 넣어 연주했다.
이 어린 애가, 화성학이라도 배웠나. 악보도 없이, 반주를 넣으려면, 세상에…….
사이사이 어색한 코드가 있긴 하지만, 그래서 더 감동스럽다. 저거, 직접 고민한 거잖아.
올지도 모르는 나를 위해서, 정말 만에 하나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나로, 건반을 눌러 보면서, 이 소리가 더 아름답다고 체크하면서.
1절까지만 치기로 정했는지 코드를 바꿔서 마무리를 깔끔하게 맺었다.
그러고는 아무 소리도 울리지 않는 피아노와 그 위에 얹힌 자신의 손을 관찰하듯 바라봤다. 전의 무대에서도 그러더니 습관인가 보다.
나는 손을 완전히 뗄 때까지 닥치고 있었다.
그렇게 고맙다는 말과 훌륭하다는 말 중 무엇을 먼저 할지 고심할 때, 봉주는 손을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연주를 들을 때의 예절을 교묘히 이용하다니, 훌륭하다.
“제가 고민해 봤어요.”
나는 침묵을 지켰다.
“전, 아마 피아노 시켜 달라고 말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선생님 아니었으면.”
아직도 손을 피아노 위에 얹은 채 간간이 몇몇 코드를 누르고 있다. 말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법도 참 피아노 영재답다.
“전 포도가 실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게 버릇이었나 봐요.”
음, 초등학생의 사고 능력은 정말 뛰어나군. 기억력도 발군이고. 봉주와 함께 읽었던 첫 번째 동화가 여우와 신 포도였지.
외어 온 걸 그대로 말하는 중, 그러면서도 치는 코드는 듣기 좋은 선율을 그리고 있었다.
멜로디는 동요인데,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동요집도 듣고 오는 건데.
“그래서, 고마워요. 포도가 맛있는 줄 처음 알려 주시고, 포도 먹고 싶은 것도 처음 눈치채 주셔서.”
뚝, 그치는 선율.
여기까지가 준비된 연주였다는 듯이 손을 멈추고 떼었다. 그러고는 부끄러운지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저, 화장실.”
“…응.”
하, 세상에. 저 문장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을까.
나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내게 고맙다는 말을 표시하기 위해 나름대로 선물도 준비하고,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미사여구까지 준비하다니. 어떡하지, 너무 귀여운데.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려 봉주와 처음 눌렀던 건반을 다시 눌러봤다.
내가 어렸을 때의 모습이 떠오르던 아이가, 이렇게 자라고 있구나. 그 순간을 이토록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망할, 살길 잘했지.
봉주는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뺨에 젖은 물기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등장했다. 뻔뻔해지기로 마음먹었는지 당당했다.
“제가, 더 연주해 드려도 돼요?”
“도리어 부탁하고 싶어.”
그렇게 봉주의 연주를 여러 번 듣고, 멜로디에 어떤 반주가 더 어울리는지 얘기도 했다.
예전엔 악보에 따라 어떤 건반을 눌러야 하는지, 어떤 화음이 있는지 같은 걸로 대화를 나눴지.
“정말, 엄청 늘었네, 봉주.”
“그 말 듣고 싶어서 연습했거든요.”
샐쭉 웃는 입꼬리.
여유롭고, 조숙하다. 그러면서도 아이답다. 예전에 봤던 봉주보다 더 풀어져 있었다.
나라는 작은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로 남을 수 있다는, 경험적 사례.
지동화 카르텔같이 우스운 이름을 달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도 내가 그랬을까.
* * *
숙소로 출발했을 땐 밤 10시.
그 시간까지 봉주와 나눈 대화는 별것 없었다.
다음 콩쿠르는 내후년에 또 나갈 것 같다거나, 다음 콩쿠르 곡은 뭐로 할 것 같다거나, 혹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거나.
딱 하나 특별할 게 있다면, 내가 메일 주소와 번호를 전달했다는 것.
이러면 편지가 아니라 메일을 선택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거든. 봉주 성격에 번호로 연락할 것 같지는 않다.
‘나중에 커서, 선생님 무대에 반주하러 가고 싶어요.’라는 포부까지 들었다.
커서 후회하더라도 나는 너와 무대에 설 것이니 어렸을 적의 약속을 잊지 말기를.
아버님의 손을 꼭 잡고 내게 남은 손을 흔들던 봉주의 모습을 나는 잊지 않을 테니까.
“음.”
달이 밝다.
한 아이가 내게 건넨 순수한 감사가 채 소화되지 않고, 가슴 한편에 응어리져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작업실로 가서 작업을 할 수밖에.
인적이 드문 골목길, 달빛을 온몸으로 쬐며 나는 다음 동선을 확정했다.
개인 업무가 끝나면 매니지먼트팀에 전화 한 통만 해 달라고 하셨으니,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일정이 끝나, 작업실로 들어가겠습니다.”
담백한 인사치레를 하고 핸드폰을 집어넣은 순간.
저벅.
서늘한 걸음 소리가 골목에 울렸다.
백색 소음으로 여기고 택시를 어디서 잡아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걸음의 방향이 내게 다가오는 걸 깨달았다.
인적이 드문 길, 큼직한 골목길. 그리고 내 쪽을 향하는 걸음이라니.
음, 류이든의 호신술 특강 같은 건 없었으니, 부디 팬분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 않으면 내일 인터넷 기사를 뜨겁게 달굴 예정이다.
거기선 검은 마스크, 검은 모자, 검은 옷, 검은 선글라스를 몸에 걸치고 있는 웬 놈이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게 다가오더니 양쪽 어깨를 부여잡았다.
…저런.
“하민, 뭐, 해.”
나는 채하민에게 온몸이 흔들리며 힘겹게 입을 움직였다.
“어떻게! 어떻게 작업실을!”
“오늘 약속은, 분명 파토가, 났던.”
“그래도! 어떻게!”
닥쳐 줘, 하민. 여기 길거리야.
한참을 시달리다가 채하민이 나를 놓아주고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었다.
“정말! 저엉말 서운하다, 동화야!”
채하민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자기가 콘서트 끝나고 놀러 갈 일만 기다렸다는 둥, 큰 기대에 큰 실망이 따라온다는 둥, 약속이 파토 난 건 어쩔 수 없어도 들어와서 놀아 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둥, 줄줄이 한탄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작업할 것 같았어! 어떻게 그럴 수가!”
인간도 아니라는 눈빛.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그보다,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하민. 네 서운함은 나중 문제로 미뤄 두더라도 먼저 알고 싶은데.
그러자 채하민이 ‘아!’, 손뼉을 치며 내게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일단, 너는 목격담이 이만큼 쌓였어. 현재가 알려 줬거든.”
[지동화 피아노 콩쿨 목격썰]이라는 담백한 제목의 글, [지동화 분식집 목격썰]이라는 더욱 심심한 제목의 글 등.여담이지만 분식집은 봉주 간식 먹이러 잠시 다녀왔다.
“음, 모자 눌러 썼는데.”
심지어 오늘 팬분이 오셔서 사인을 요청한 횟수도 없어서 알아봤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걸로 감춰질 리가 있니!”
다들, 배려해 주신 거구나(나중에 들었지만, 사실 내가 웃고 있는 게 너무 즐거워 보여서 깨기 싫으셨다고 한다).
나는 잠시 감동하다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의문에 사로잡혔다.
그렇다고,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지.
채하민은 합당한 내 의문에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아버지 비서님한테 부탁해서 같이 따라다녔어!”
음, 그럼 스토킹이잖아, 이 미친놈아.
“…그래.”
나는 가방에 들어 있는 벽돌을 만지작거리다 말았다.
채하민은 류이든과 달리 벽돌로 내리치고 싶은 인간은 아니다. 정확히는, 류이든만 그렇다.
“…사유는?”
“작업실로 가는 걸 검거! 잡았다! 넌 내 거야!”
상큼하고 개운해 보이는 낯짝으로 주머니괴물의 명대사를 날리는 채하민.
이 순간을 위해 준비했다는 듯이 주머니괴물 속 주인공처럼 모자를 뒤로 돌려썼다.
아, 어쩌지, 류이든 말고도 한 사람 늘어날 것 같아.
나는 참았을 때 생길 해악, 즉 기회비용을 계산한 끝에 결국 벽돌을 꺼내 들었다.
오래 사용하다 보니 여기저기 헤진 데가 많아 조금 더 튼튼하게 바느질해 새로 만든 버전 2다.
물론 그럼에도 본질은 쿠션이라 아프진 않다.
“아무리 봐도, 네가 제일 미친놈이야.”
나는 몇 번 채하민의 어깨를 내리쳤다.
당연히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이 거뜬한 채하민, 주먹으로 치는 건 너무 비인도적이라 어쩔 수가 없다.
“에이, 네가 있는데?”
세상 사람들에게 물어보렴. 내가 미친 정도와 네가 미친 정도 중에 무엇이 더 월등한지.
이럴 줄 미리 예상하고 도주 경로를 찾아뒀어야 했는데, 내 준비성이 부족했다.
후, 숨을 골랐다.
“…일단 갈까.”
밖에서 이러다 누가 보면 수치스러움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으니, 괜찮겠지.
그리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
[근데 동화는 왜 벽돌 들고 다니냐]아니 오늘 지나가는 길에 본진 목격해서 존나 설렜거든. 근데 나란 인간 소심하기 짝이 없어서 그저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지동화가 에코백에서 벽돌 꺼냄.
댓글
―와 ㅋㅌㅋㅋㅋㅋㅌㅋㅋㅋㅋ 현장 팬들 사이에서만 유서 깊게 내려오는 벽돌 쿠션이 여기서 등장하네 ㅋㅌㅋㅋㅋㅋㅋㅌㅋㅋㅋㅋ
―그거 왜인지는 모르는데 동화 애착 쿠션임.
└대체 왜….?
―방구석 덕후한테도 알 권리 보장해 줘라, 지동화!!!!!!!! 애착 쿠션 설명해 줘!!!!!
음, 역시 한 번 흐름을 타면 화제가 되는 게 인터넷 세상이구나.
나는 이현재가 보여 준 목격담에 마른세수를 했다.
인기와 수치스러움은 비례하는 법이다. 아주 가끔 소소하게 ‘저건 대체 뭐냐.’라는 눈빛을 받은 적은 있어도 이렇게 대대적으로 얘기가 회자되는 건 처음이다.
“아니, 이게, 화제가, 되네. 흐허.”
류이든은 바닥에 누워 갓 잡은 물고기처럼 펄떡거리며 웃고 있었다.
나는 벽돌 쿠션을 손가락으로 찔러 말랑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순간을 사진으로 찍었다.
나중에 위X스에 누가 물어보셨을 때, 잠잘 때 쓰는 베개이며, 직접 만들었다고 하면…….
그러면…, 미친놈이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 쿠션을, 내가 직접 한 땀 한 땀 모양을 잡으며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미친놈인 것 아닌가. 류이든 전용 구타 도구라는 진실을 숨겨도 충분히 괴상하다.
“동화 형, 그걸 이제 깨달으신 거예요?”
이현재가 조심스레 내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그러게.”
처음엔 류이든을 때리면서도 때리지 않는 역설적 방법을 갈구하다 만든 쿠션이었다.
봉주한테, 나라는 존재가 피아노를 향해 나아가게 된 원인이라면, 나한테, 류이든이라는 존재는…….
류이든은 내게서 뿜어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을 재빠르게 눈치챘는지 웃음을 멈추고 공손하게 앉았다.
“동화 형, 혹시 제가 뭘 또 잘못했을까요?”
이런 짓을 해도 멤버들은 받아들여 줄 것이라는 믿음이 은연중에 깔려 있었구나.
나는 류이든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결론지었다.
콘서트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내 뇌가 어떻게 된 것이 틀림없다.
나는 과장된 몸짓으로 웃어서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류이든을 보다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전부 다, 아이돌이 되어서 가능한 것들이구나. 심바 씨를 보며 행복함을 느끼고, 봉주를 보며 내 존재를 느끼는 이 모든 일이, 그래서.
콘서트 때 느꼈던 감각이 진리가 되어 돌아온다. 주마등에 이렇게 행복한 기억이 많아서야 괜찮을까.
* * *
한편, 지동화가 자신의 정신 상태를 차근차근 점검하고 있을 무렵.
회사에서는 이동원 PD놈이 누군가와 반갑게 인사하고 있었다.
“오랜만, 오랜만, 사랑하는 내 선배.”
“넌, 여전히…, 등신 같네, 동원아.”
해외로 떴던 정경우가 니체 엔터 내부 PD로 스카웃되어 들어왔으니까.
“해진아, 나 진짜 얘랑 일해야 해?”
“하긴, 둘이 좀 상극이긴 하지?”
괴팍한 성격이 숨긴다고 숨겨질까. 눈치 좋고 일을 잘하지 않았다면 진즉에 잘렸겠지.
“사랑하는 형님? 제가 짜 온 기획인데 칼질 좀 해 주세요.”
“하면 지랄할 거잖아, 너.”
“당연하죠, 그러려고 부탁하는 건데?”
이동원은 웃으면서 종이를 펄럭거렸다.
이현재의 소원권으로 탄생한 컨텐츠. ‘다른 멤버로 살아 보기’.
이현재가 요구한 건 자신이 맏형이 되는 것이니까, 이동원 PD는 그 요구를 들어줄 것이다.
다만, 이동원 PD는 감명 깊게 읽은 하나의 단편 소설이 있다. 원숭이 손.
이현재는 류이든처럼 생활하며, 운동과 건강을 신경 써야만 하겠지. 아, 누구를 누구로 만들어야 더 재밌을까!
이미 모든 멤버들에게 불신의 아이콘이 된 이동원 PD는 이제 무서울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