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1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16화(284/343)
게임의 룰은 단순하다.
곳곳에 설치된 관찰 카메라가 멤버들을 촬영 중이고, 각 멤버들과 제작진 측은 ‘저건 아니지 버튼’을 하나씩 소지 중이다.
만일 ‘다분히 본인스러운 짓’을 했을 땐 스태프 1표, 본인 제외 멤버들이 1표씩을 행사하여 감점을 진행할 수 있다.
스탭만의 독단으로 승자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심이 된다.
적어도 우리 멤버들이 승리에 눈이 멀어 다른 놈들 버튼을 막 누를 인간들은 아니다.
나는 아인(석준의 최근 애착 인형으로 선정된, 불꽃으로 형성된 눈사람 캐릭터. 대단히 따스하다.)을 한 손에 안아 들고 거실로 나왔다.
석준의 문 열기는 왼손잡이라는 특성에 맞게 왼손으로 잡고 당겨야만 한다.
다행히 내가 양손잡이니, 나는 오늘 하루 왼손잡이로 생활할 예정이다.
“잘 잤어요, 형님―?”
이현재가 소파에 앉아 내게 쾌활하게 손을 흔들었다.
이현재는 류이든으로 살아야 하므로, 쾌활한 척하고 있지만 눈에 다크서클이 짙었다.
새벽 운동 나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착실하게 다녀왔구나.
“우리 준이. 이리 와서 앉아, 앉아.”
이현재가 툭툭 자기 옆자리를 쳤다.
석준은 이럴 때 군말이 없다. 나는 졸린 척 눈을 비비며, 아인을 꼭 품고 이현재에게 머리를 기댔다.
크흡, 이현재가 웃음을 꾹 눌러 참았고, 나는 잠시 현실 인지의 시간을 가졌다.
아, 이게 뭐 하는 짓일까.
이현재가 자기 뺨을 두어 번 탁탁 치고는 다시 집중했다.
“…준아, 또 자게?”
“졸립니다.”
늘어지는 하품, 억지로 하려니 뺨이 아프다. 얘는 평소에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때, 내가 걸어 나왔, 아니지, 채하민이 걸어 나왔다.책(내 서재에 꽂혀 있던 거 아무거나 들고 온 듯싶다)을 한 손에 들고.
나와 이현재가 나란히 앉은 걸 확인한 채하민은 소파 끄트머리에 가서 정자세로 앉았다. 등받이에 등을 대지 않는 게 참.
“깼네.”
아침 인사치고는, 냉랭하네. 내가 그랬구나.
“네, 형님―.”
채하민이 입술을 악물었다.
기뻐하기는, 망할 토끼 놈. 내가 네 동생이라 기분이 좋나 보지.
후우, 짧은 심호흡, 그러고는 별말 없이 책을 펴서 몇 줄 읽다가 덮었다.
그 순간, 거실에 설치된 실시간 감점 현황을 보여 주는 화면에 채하민의 이름 아래로 다섯 개의 카운트가 쌓였다.
게임의 특수 규칙, 일정한 시간 내에 카운트가 5회 쌓일 경우, ‘저건 진짜 아닌데.’가 발령되어 게임 자체가 잠시 중단된다.
거실과 각 방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휴전!’이라는 알림이 들리자, 채하민이 황급히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왜! 나 지금 편히 앉고 싶은 거 꾹 참고! 책도 읽고!”
자신의 이름에 적힌 ‘저건 진짜 아닌데.’라는 문구를 보자마자 채하민이 소파에 누워 온몸을 뒤틀었다. 허리가 아픈지 몇 번 통통 두드린다.
“형, 동화 형은 책 한 번 펴면 그렇게 일찍 닫질 않아요.”
“적어도 한 줄만 읽고 덮진 않지.”
누가 부르는 게 아닌 이상.
부엌에 있던 둘도 이리 다가와 고개를 끄덕였다.
채하민을 연기 중인 석준이 이현재를 연기 중인 류이든의 식사를 챙겨 주는 중이었나 보다.
“아, 동화야, 도옹화야아, 나는, 네가 어렵다.”
채하민은 책을 조심스레 식탁에 놓고 다시 온몸을 뒤튼다.
그러자 이현재가 소파를 탕탕 치며 소리쳤다.
“…형, 저는 새벽에 운동을 다녀왔구요.”
침울해지는 이현재와 류이든.
류이든은 운동을 다녀오지 못한 게 서러움의 원인이겠지. 미친놈.
“나보다 덩치가 서너 배는 큰 저 인간을 아침에 업어 주기까지 했어요.”
가끔 이현재는 아침에 식탁에 앉아 있다가 잠에 빠져들곤 한다. 그럴 때면 류이든이 직접 이현재를 업어 방에 데려다 놓는다.
그걸 했구나, 저 미친개가. 근육 차이가 그렇게 나면서.
쓰레기 보듯 바라보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류이든이 멋쩍게 웃었다.
“아니, 그게, 우리 현재는 원래 자주 그러니까.”
“다신, 안 그럴 거예요. 형 심정을 이해했어요.”
“나는 좋은데? 매일 그래두 돼.”
류이든의 말투에 이현재의 서울 사투리가 뒤섞였다. 끔찍한 혼란.
이현재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뒷걸음질 쳤다. 나도 소름이 끼쳐서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그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전, 야채가 싫습니다.”
석준이 조용히 선언했다.
“당근도, 버섯도, 냉장고에 있는 제 음료가 전부―, 야채인 게.”
우울하고 기력이 쇠한 모습.
“너무, 싫습니다.”
울컥했는지 눈에 눈물이 고인다. 다행히 흘리진 않았지만, 그 슬픔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직 멀었다. 저 때 울 거라고는 예상도 못 했는데.
“주, 준아.”
“어, 언제 눈물을.”
히죽 웃으며 고인 눈물을 훔쳐 내는 석준. 눈물점이 반짝거렸다.
채소 위주의 식습관을 갖게 된 육식 공룡은, 자신이 운 줄도 모르고 눈물을 흘린다.
“형님은 채식주의자인가요?”
“아니, 그게, 더 맛있지 않나……?”
“저는, 저는 하민이 형님처럼 될 수 없어요…….”
좌절감과 무력감,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꺾인 아이처럼, 석준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와, 근데 나 동화가 이 시간까지 안 깬 거 처음 봐.”
심드렁. 나는 아인을 던지려다가, 석준의 눈에 이것이 생명체임을 떠올리고 얌전히 내려놨다.
아직까지 내 품속에 있었다는 게 충격스러울 따름이다.
“깨기는 진즉에 깼어.”
“…어?”
충격받은 채하민과 그럴 줄 알았다는 류이든.
“언제 깼는데?”
“원래 깨던 시간.”
“…어?”
이현재가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형, 제가 운동 갈 때 그럼.”
“응.”
“그 뒤로 쭉?”
“응.”
“…미친 사람.”
방송이야, 현재. 아무리 우리가 평소처럼 촬영 중이라 하더라도.
이현재는 황급히 자기 입을 쳤다.
“근데 이건 네 잘못이 커, 동화야…….”
그러나 채하민은 이현재를 토닥이며 나를 책망했다.
너희들이 이 방송에 진심이 아니라고는 못 하겠지만,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뭐라 답하려던 때 알림음으로 게임 재개가 선언되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형님…….”
시무룩해진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정신 차려 보니 한 손에 아인이 들려 있었다. 이 망할 인형.
채하민과 이현재가 둘이서 소름 끼친다는 듯이 시선을 나눴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 숙원 사업.
지동화의 멘탈 수업 1교시, 2교시, 자체 컨텐츠까지 쭉 이어져 내려온 역사적 원한의 정산, 그 모든 건 내 눈앞에.
그를 위해 나는 닌X도를 들고 채하민의 무릎에 누워 버튼을 눌러 댔다. 연습 일정이 없다면 석준은 진득하니 게임을 플레이한다.
“상성이 안 맞아, 준.”
그리고 게임할 때 보고 있으면 속이 터지는 게 또 매력적이다.
“하지만 귀엽습니다―.”
데이터 쪼가리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나와 달리, 석준에게는 애정픽이라는 게 있다.
엔딩까지 달리며 성능이 조금이라도 구리다는 판단이 서면 깔끔하게 버리는 나와는 달리, 석준은 꽂히면 어떻게든 품에 안고 간다.
“기술머신이라도 다른 걸로.”
“그건 낭만이 아닙니다, 형님―.”
대체 나는 평소에 석준과 무슨 대화를 나눴던 건지.
그러나 아무리 리얼리티적 구성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방송인 이상 비일상적인 순간을 하나는 담을 수밖에 없나 보다.
[MISSION! 동화 씨는 지금 당장 자신이 석준임을 증명하세요!]채하민은 최대한 냉정하게 중얼거렸다.
“…무슨 해괴한 짓을.”
내가 그렇게 지껄인다고.
채하민 벌점이 올라가지 않는 걸 보면, 다들 인정했다는 거잖아. 세상에.
“형님, 전 뭘 하면 됩니까.”
이현재가 자기 팔뚝을 꼬집으며 ‘짜잔!’ 소리를 자기 입으로 내며 등장했다.
“평소 탄산음료를 좋아하기로 소문난 우리 넷째를 위해 형아가 준비한 미션!”
제발 그러지 말아 줘. 그러지 않아도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현재.
“우리 준이는 탄산음료 러버로 룸넛분들 사이에서도 이름나 있지!”
“그래서, 형아들이 준비한 시험!”
석준이 채하민처럼 최대한 폴짝 뛰며 등장했다. 그 덩치로 뛰니 파괴력이 대단하구나, 준.
석준의 손에는 탄산음료가 따라진 종이컵, 안대, 그리고 싱크로나이즈 선수들이 쓸 법한 코마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블라인드로 탄산음료 종류 맞히기. 실제로 준이가 사전 인터뷰 때 성공했다며. 하나라도 틀리면 감점이 와르르.”
히죽, 이현재의 웃음이 능글맞았다.
그런데 어쩐지 이현재가 하니 귀여울 뿐 때려 패고 싶지 않은 걸 보니, 류이든이 문제라는 걸 또 이렇게 알게 되었다.
* * *
관찰 카메라 화면을 보며 PD놈은 활짝 웃었다.
동화 씨가 1등만 아니면 되는 게임. 승자를 조작하는 건 힘들지만, 1등이 아니게 만드는 건 쉽다.
화면 안에서 지동화는 코마개를 착용하고 순진무구하게 헤헤거리며 탁자 앞에 앉았다.
살다 살다 저 인간이 바보처럼 헤실대는 걸 보게 될 줄이야.
“와, 저러고도 굴욕이 없네. 신이 불공평하다는 증거다, 그죠, 선배?”
“그러니까 아이돌 하시는 거겠지.”
정 선배는 피로한지 기계적으로 감점 버튼을 눌렀다.
자신에게 맡겨 놓으면 자기 멋대로 할 게 분명하다고, 감점 페이지는 선배님이 전부 뺏어 갔다.
“근데, 미션 쉬운 거 아니야?”
“선배가 안 해 봐서 그러는데, 저거 향이 안 나면 콜라 사이다 구분이 안 돼요.”
―맛 좀 봐도 될까요―?
“미리 맛본다고 되는 게 아니더랍니다? 혀에 당도 측정기 있는 게 아닌 이상.”
“준 씨는 코 안 막았었잖아.”
“그러니까 통과한 거지. 아니었으면 못 하셨을걸요? 그러니 동화 씨가 통과해도 수를 써서 통과한 거겠죠!”
키득거리는 것 좀 봐.
“그러다 호되게 당해, 동원아.”
“선배는 경험담처럼 말씀하시네요.”
“…비밀이야.”
“나중에 술에 적셔서 알아낼게요.”
그렇게 사소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화면 속 지동화는 어느새 맛보기를 끝냈는지 안대까지 착용했다.
“흐흥.”
동화 씨가 틀리는 모습을 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렜다.
곧바로 잔을 하나 들고 한 모금 마시는 지동화, 그러자마자 내려놓고는.
―코X콜라입니다.
“…응?”
―펩X입니다.
동화 씨는 탄산음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커피나 에너지 드링크가 취향인 인간인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노골적인 단맛보다는 은은하게 단 걸 더 즐기는 성미인 것도 PD놈은 알고 있다.
즉, 수를 썼구나, 우리 사랑스러운 동화 씨가.
발견하기만 하면 초당 벌점으로 보복할 수 있다. 그런 머리 쓰기는 절대 석준 씨가 할 법한 행동이 아니니까.
애초에 동화 씨한테 석준 배역을 맡긴 이유가 이것 때문이지!
“…안대 제대로 차고 있고, 코도 제대로 막았고.”
PD놈은 곧바로 화면에 얼굴을 들이박아 남은 음료수 양을 체크했다.
“다 똑같은데.”
그러다가 조금 클로즈업된 화면을 보고 PD놈은 활짝 웃었다.
“찾았다. 선배, 벌점 더럽게 눌러요.”
“왜?”
“저기, 보이죠. 종이컵 약간 씹은 거. 저걸로 구분하잖아요, 지금.”
종이컵의 중심을 기준으로 왼쪽을 씹으면 사이다류, 오른쪽을 씹으면 콜라류, 양쪽을 씹으면 그 외, 그러고 나서는 종이컵의 중심부와 씹은 위치 사이의 거리로 세부적인 구분.
맛볼 때 미리 씹어 두고 외우는 건 우리 동화 씨한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
하지만 그런 치졸한 짓을 준 씨가 할 리가 없다. 예측대로 수를 짜냈으니, 벌점을 먹이면 그만이다.
그러나 정경우는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그거, 준 씨 버릇이야.”
탄산을 마실 땐, 목이 따가워서 천천히 마시다 보니, 종이컵을 씹는 것.
멤버들이 증언한, 아주 사소한 석준의 버릇이다.
“…아아, 치졸해라.”
그제야 PD놈도 아차 싶었는지, 머리를 한 번 쳤다.
그 짧은 새에 규칙을 만들고, 그게 석준 씨 평소 버릇이랑 일맥상통해서 수를 짜냈다고 확정할 수 없으리라는 것까지 생각했구나.
“오랜만에 승부욕이 생기네요, 선배.”
“…그러니.”
“우리 대학 다닐 때, 제가 이런 거 지는 거 본 적 없죠?”
“동아리 최고 병X이었으니까.”
“신은 신이니까, 만족할게요.”
PD놈은 자기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극단적 상황 조작은 자신의 특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