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17)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17화(285/343)
PD놈 머릿속은 뻔하다.
거창하게 미션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든 벌점을 매기려고 노력하여, 나의 승리만을 최대한 막으려 들겠지.
내가 건 소원이 이뤄지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을 테니까.
나는 마지막 컵을 들었다.
설탕 탄 물을 한 모금 입에 머물면서 씹어 둔 자국을 혀끝으로 살짝 훑는다. 눈을 감고 코를 막으면 촉각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나X드입니다.”
여기까지는 예상 범위 내다. 어제 석준이 되기 위해 모든 걸 내려놓는 동시에,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예측해 보았다.
저 인간은 날 어떻게 막으려 들까.
정경우 PD님이 합류하면서 무작정 개짓거리만 일삼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리의 PD님은 공정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스스로 깨우친 분. 편파적인 진행을 막기 위해 노력해 주시겠지. 아마 지금쯤 감점 버튼에 그 망할 PD놈이 손도 대지 못하게 할 것이다.
다음은 뭘까.
다른 멤버들도 하나씩 미션을 수행하고 나면, 어떻게 이 판에 개입하려 들까.
‘…목화.’
가능성은 몇 없다. 숙소에 갑작스레 연기자를 등장시키기는 어렵고, 전화를 통해 누군가를 개입시키는 게 가장 현실적이다.
내가 석준으로 있지 못할 상황을 감독 놈은 만들어 내야만 하므로, 동생 앞에서만큼은 나로 있고 싶은 욕망을 자극할 것이다.
그래서, 일단 핸드폰은 꺼 뒀다. 어제 새벽에 위즈니를 복습하다가 실수로 영상을 끄는 걸 까먹었다는 컨셉이다.
실제로 방전시켜 뒀으니 지극히 석준스럽다.
* * *
동화 씨라면 목화 씨를 기용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전화가 목화 씨로부터 오는 게 아닌 이상, 직접 걸라고 하는 건 무리다. 그랬다간 모두에게 시켜야 하는데 그림이 안 나와.
동화 씨는 그걸 예상해서 핸드폰을 껐을 확률이 높다.
PD놈은 아주 당연하게 지동화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개짓거리할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말라는 듯이 울리는 부재중 알림.
PD놈은 수첩에서 직, 줄을 그었다.
“하하, 어쩌지, 정말. 난 진짜 동화 씨랑 일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동화 씨만 허락해 주면 평생 내 방송에 감금시키고 싶다. 멘탈 수업 처음 했을 때가 진짜 좋았는데.”
“감옥이든 병원이든 둘 중 하나는 들어갈 것 같은 소리를…….”
카메라 밖에서 이뤄져야만 한다. PD가 방송에 들어갈 수 있는 영역은 목소리뿐이다. 사실 연기자는 숙소라는 공간적 특성상 불가능.
“…아, 진짜, 이런 건 하기 싫었는데.”
PD놈은 옆에서 죽은 눈으로 감점 버튼을 누르고 있는 선배에게 전화 한 통만 하고 온다고 통보했다.
“뭐 하게.”
“하하, 해와 구름 중에 뭐가 더 성능이 좋은지 실험할 건데, 어디에 거실 거예요?”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동아리 활동할 때 늘 봤던 정겨운 표정.
PD놈은 답도 듣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빈자리에, 홀로 남은 정경우는 속으로 ‘나그네가 옷을 벗지 않겠지.’라고 중얼거렸다.
* * *
채하민이 ‘지동화임을 증명’하기 위해 짝 맞추기(신경쇠약, Concentration)를 하며 나를 멍하니 쳐다보는 중이다.
뭐, 지동화는 40장 카드 짝 맞추기 정도는 쉽게 해, 하민.
“이걸, 이걸 어떻게 세 번 기회 안에 다 해?”
어차피 ‘저건 진짜 아닌데’를 선고받은 채하민에겐 가망이 없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어떻게 다 하냐는 소리를 하면서 나를 제외한 모두에게 감점을 받았으니까.
남은 가능성은, 연예인을 손님으로 들이는 것.
애초에 우리 숙소를 알고 있으며, 갑작스러운 집들이 정도는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분위기가 있다.
우리의 인맥 관계도는 류이든에 몰빵되어 있고 두루두루 친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중에서도 나를 겨냥할 수 있는 인물. 내가 석준이기에 곤란한 인물은 누가 있을까.
…윤성호.
석준이 애교를 부리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딱 두 명이 있다.
나와 윤성호.
채하민 앞에서 염병 떠는 거야 익숙하고 친숙한 일이지만, 그 앞에서는. 그 앞에서는 차마.
게다가 갓에이가 섭외가 됐을 리가. 이건 아이돌 자컨. 상식적으로 경쟁사 아이돌이 나오는 게 말이 될 리가 없다.
그러나 나는 채하민이 눈앞에서 마지막 기회를 놓치는 걸 보며 마음을 굳혔다.
그런 생각에 안주하기엔, PD놈은 미친놈이다. 만일, 초인종이 울리고, 윤성호가 들어온다면.
* * *
“어떻게 안 될까, 사랑하는 선배님! 제가 무릎 꿇고 빌어요!”
“아니, 너 진짜 미친놈이니? 갑자기 회사에 방문했길래 촬영 중에 이슈 있나 했더니.”
흡연실에서 무릎 꿇은 PD놈.
장 팀장이 무서운 인간이긴 해도 자신과 친하고 인맥은 진짜인 인간이다.
“그리고 어느 아이돌이 자기 자컨에 다른 그룹 멤버를 출연시켜, 미친놈아!”
물론 윤성호는 과거 서바이벌에서 한솥밥 먹은 전적이 있으니 조금 논외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W앱이나 틱택톡 같은 데서나 가능한 것이다.
“그럴 줄 알고 제가 꼼수를 생각했어요.”
PD놈은 챙겨 온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다. 날림으로 만든 야매 PPT지만, 그 솜씨가 어디 가지는 않는지 보기 편안했다.
“요약하면 자컨은 자컨대로 만들고, 비하인드 컷으로 공개.”
이름하여 ‘촬영 중 집들이 손님이 왔는데, 쫓아낼 순 없고, 손님맞이하는 아이돌 모습도 궁금하죠?’ 작전.
“어차피 회사 안에 아이돌들끼리 모아서 하는 컨텐츠도 만들 거라면서요? 우리 그거 실험 한번 해 볼 겸!”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동화 씨의 새로운 모습. 제가 보여 드릴게요. 촬영분 보면 만족하실걸요?”
장해진 팀장은 이동원 PD의 눈을 쳐다봤다.
얘는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동화한테 꽂힌 거고, 동화는 어쩌다가 이런 놈한테…….
그런데 이 새끼는 다른 회사랑 스케쥴 조율하는 게 쉬운 줄 아나. 아무리 짧게 잡아도 적어도 한두 달 전에는 이야기가 오가야 하는 건데.
“아니, 차라리 예언이나 준성이를 불러.”
우리 회사 아이돌이면 촬영분이 무기한 보류돼도 큰 문제가 없다.
실제로 얘네들 연습실에 사는 중이니까 잡아다가 넣기도 나쁘지 않고, 블로센스 사랑은 TOT 중 최고인 놈들이다.
“안 돼요. 저는 해가 더 효과가 좋다는 데 걸었거든요. 나그네는 그런 걸로 옷을 벗지 않아요!”
그러나 PD놈은 통한의 외침을 화포처럼 쏘았다.
방송에 내보낼 방법은 나중에 찾으면 된다. 자컨이 아니라 블로센스 호스트의 예능 형식으로 꾸려도 상관없다.
“뭐라는 거야, X발, 진짜! 그럴 거면 진즉에 캐스팅했어야지!”
“동화 씨가 이 정도로 진심일 줄 몰랐단 말이에요! 그냥 평소처럼 다투는 건 줄 알았는데! 내가 설득할게요. 제 사비 털어서 출연료 낼게요!”
미친놈.
“…너는, 나한테 고마운 줄 알렴.”
아주 마침, 아주 마침 미리 오가던 얘기가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말을 꺼내는 것조차 불가능한 캐스팅이니까.
서로 합의하에 촬영분을 불문에 부치고 묻을 수도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저 PD놈은 자신에게 얼마나 큰 빚을 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 *
때는 윤성호가 개인 라디오를 마치고 기지개를 켤 무렵.
이제 돌아가서 애들 하루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듣고 하다가 잠들 예정이었다.
이건 종교단체에 있는 고해성사를 윤성호의 방식대로 커스터마이징한 거지만, 정작 윤성호는 따스한 소통 시간 정도로 생각 중이다.
“네?”
그런데 운전석의 매니저님이 전화에 열중하시더니 뜬금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알, 겠습니다.”
“왜 그러세요, 형?”
“아니, 회사에서 갑자기 놀다 올 생각 있냐는데?”
“괜찮아요. 형도 퇴근하셔야죠!”
아, 따스한 미소.
매니저는 윤성호의 웃음에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이 삭막한 회사에서 매니저 짓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의 8할은 쟤가 참 착해서겠지. 대견해서 응원하게 된다.
“그게 아니라, 블로센스랑 잠시 노는 거 어떠냐시네? 원래 아이돌의 수다 기획 중이었거든.”
공식적 리더 류이든과 비공식적 리더 윤성호가 모여서 차 한 잔을 마시며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컨텐츠가 한창 기획 중이었는데, 그 프롤로그 격으로 잠시 놀러 와서 파티를 즐겨 보라는 얘기.
윤성호는 가만히 듣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렇게 급하지. 자신은 잘 모르는 뒷사정이 있나 보다.
“…괜찮을까요?”
“괜찮으니까 네 귀에까지 들어간 걸 거야. 연차도 찼고, 팬덤도 사이가 나쁘진 않거든. 아무래도 네 뿌리랑 맞닿아 있기도 하고, 거기 둘이 우리 회사 출신이기도 하고.”
“그럼, 잠시만 놀다 갈까요?”
아이돌의 일상, 그중에서도 타 그룹의 친한 멤버와의 일상을 보여 주는 프로그램은, 최근 들어 흔해지긴 했어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윤성호는 그저 회사분들을 믿는다. 믿음이 그룹에 가져온 변화를 알기에.
그렇게 조심스레 도착한 블로센스의 숙소. 윤성호는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약간 설렘을 느꼈다.
엄청 오랜만에 만나네. 가끔 문자나 전화로 연락은 주고받았지만, 블로센스는 최근 들어 너무 바빴고, 자신들도 점차 바빠지고 있으니까.
마침내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윤성호는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형님!’이라는 말에 설핏 웃음을 짓는다.
…근데, 왜 목소리가 다르지. 준이면 조금 더 중후한 맛이 있어야 하는.
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갈 때, 문이 벌컥 열리며 지동화가 뛰쳐나와 자신을 꼭 끌어안았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뵙고 싶었어요!”
한껏 굳어 버리고 만 윤성호. 사리 분별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대충, 뭔지 알겠다. 얘네들 서로 바꿨구나.
윤성호는 재빨리 결론짓고 폴짝 뛰며 지동화를 흔들어댔다.
평소면은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여기저기 쉽게 흔들려서 순간 웃을 뻔했다.
“준아, 잘 지냈어?”
지동화를 떨어뜨려 얼굴을 보니 귀가 한껏 붉어져 있었다.
무언가를 억눌러 참는 듯 자기 바지를 꼭 부여잡더니, 결심한 듯 귀엽게 고개를 끄덕여 댔다.
아, 세상에, 인지부조화가.
윤성호는 자기조차 낯설었지만, 최대한 장단에 맞추기 위해 안으로 들어섰다.
“오랜만이네.”
냉한 표정의 채하민이 가볍게 손을 들었다.
저건, 동화구나! 세상에, 어쩜 저렇게 똑같은지. 매일 옆에서 관찰하는 연기 유망주다 보니 저 정도는 껌 먹기구나.
“형님.”
지동화가 윤성호의 손을 잡고 폴짝 뛰었다.
“제가 게임 사 뒀는데, 같이 해요―.”
“그래, 준아. 무슨 게임 할까.”
습관적으로 나오는 명절날 사촌과 놀아줄 때 말투.
지동화는 그게 너무 수치스러운지 딱 1초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자 뭔진 모르겠지만, 이현재가 피식 웃으며 버튼을 눌렀다.
…저건, 페널티.
윤성호가 종교 지도자로서 재능이 있다는 지동화의 분석은, 단순히 선하다는 뜻이 아니다.
눈치가 빠르고, 다른 사람의 속내를 잘 읽어 낸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 준이, 오랜만에 보니까 형이 낯설어?”
하하, 귀엽네, 우리 동화. 장난치고 싶게.
지동화는 눈빛 한구석에 ‘아, 어쩌지, 다 내리치고 싶은데.’라는 뜻을 품고는 해맑게 웃었다.
“아뇨! 늘 좋습니다, 형님 보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카메라 너머 화면으로 지켜보던 PD놈은 환호했다.
“세상에, 봤죠? 봤어요? 나그네가 옷을, 옷을 벗었잖아요! 제가 장 팀장님한테 무릎 꿇어서 나온 모습이라고요! 나중에 비하인드로 특별 편집까지 할 거야.”
“양말 정도긴 해도.”
툭, 지동화의 벌점을 처음으로 누르는 정경우도 약간 신나는 기분이었다.
“시니컬하긴!”
어떻게든 막는다. 지동화의 벌점을, 윤성호라는 해님으로 어떻게든 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