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18)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18화(286/343)
예측이 가능했다고 해서, 그게 수치스럽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PD놈이라면, 이 정도 상황은 충분히 예측했을 테니까.
취향이 까다로운 인간은 무언가에 빠져드는 게 어렵지, 한 번 빠져들고 나면 미칠 듯이 매몰되고 만다.
처음엔 내 개인 정보를 탐독하는 게 취미였던 인간이지만, 우리 자컨을 담당한 이후로는 모든 멤버들을 파악하려 노력했던 건 놀라울 지경이다.
“하, 인생.”
나는 소파에 몸을 기댔다.
이현재가 나의 추태를 보고 참지 못하며 칠색 팔색을 하는 덕분에 잠시 중단된 게임.
음, 삶은 무엇일까. 새하얀 천장이 종이처럼 보이고, 천천히 침잠한다.
이렇게 쌓아 가는 하루를 웃으며 회상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살아가기엔 이건 조금 가혹하지 않나.
“와, 이게 다 뭐야.”
윤성호가 내 옆에 앉으며 웃었다.
음, 곧바로 내가 쓰레기가 될 것만 같은 미소. 본성이 꼬여 있는 나 같은 인간은 정화되어 사라질지도.
“그럼 너는 지금은 애교 안 부려도 돼?”
“…어.”
“내가 갑자기 초대돼서 왜 그런가 했는데, 너 곤란하게 하려고 그러셨구나, PD님이.”
감점 현황은 이제 확인할 수 없다.
예정보다 일찍 가려진 걸 보면 윤성호가 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조정했나 보군, 망할 새끼. 다른 놈들 감점 현황을 보며 눈치껏 적당히 하는 꼴은 못 봐주겠다, 이거네.
마지막 감점 현황은 기억하고 있지만, 류이든과 나 사이 점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아 여차했다가는 질지도 모른다.
윤성호는 내게서 새어 나오는 진득한 악의를 눈치챘는지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힘내, 동화야. 나는 게임 다시 시작하기 전에 얼른 가야겠다.”
맑은 웃음. 내가 있어서 네가 힘들다면, 몇 번이고 떠나주겠다는 눈빛. 카메라를 의식한 듯 목소리를 극히 낮췄다.
자컨이라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여라도 나중에 쫓아냈냐는 둥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배려해 줬다.
이래서 이런 타입은 대하기가 어렵다.
채하민과는 그 재질이 다르다. 친구가 구렁텅이에 빠질 때 채하민은 제 발로 뛰어들어 곁에서 웃어 줄 인간이면, 얘는 어떻게든 밧줄이나 사다리로 꺼내려고 난장을 칠 인간이다.
“더 있어.”
놀러 온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그건 망신살에 불과하잖아. 귀여운 척은, 할 만, 하다.
윤성호는 의외였는지 ‘오.’ 짧은 감탄사를 뱉었다. 그러고는.
“나한테 애교 부리는 게 의외로 괜찮았구나.”
적당한 농담.
“그래도 무리시키기는 싫어서.”
다시 배려.
그러나 윤성호처럼 선한 인간이 있다면, 악으로 똘똘 뭉친 인간도 있기 마련이다.
“안 되지, 성호.”
“형, 뭐가?”
“우리 서바이벌 추억팔이도 해야 하는데, 어딜 가.”
한 손에 자기는 잘 먹지도 않는 케이크(윤성호가 집들이 선물로 사 왔다)를 내밀며 류이든이 처웃었다.
그래, 너도 1위를 하고 싶었구나.
나는 어느새 품에 있는 게 익숙해진 인형을 살포시 쥐었다. 힘을 주기에는 석준이 슬퍼하겠지, 망할.
“우리 준이가 서바이벌 때 성호 공식 껌딱지였는데, 추억이다.”
“부끄럽습니다―.”
진짜 석준의 말을 들으며, 나는 손에 힘을 조금 더 주었다.
“음, 방송 각이구나.”
윤성호는 오른손을 입에 대며 골똘히 고심했다. 그러고는 결론을 지었는지 얌전히 접시를 받아 들었다.
“아, 양심 아파.”
한 입 먹으면서 자기 가슴을 톡톡 주먹으로 두드렸다.
양심 아플 일은 아니다. 시간 내서 왔으면 최대 효용을 뽑고 가는 게 합리적이다.
“괜찮아.”
“너는 참 착해서 탈이야, 동화야. 나처럼 좀 이기적인 면도 있어야 하는데.”
늘 자신의 부족함을 찾으려 하는구나, 성호. 네가 그러면 이 세상 어디에 이타적 인간이 있을까.
* * *
―와, 그때 나 깜짝 놀랐잖아. 준이가 엉엉 울고 있는데, 이유를 모르겠는 거야. 그래서 옆에 앉아서 한 삼십 분? 가만히 기다렸거든.
PD놈은 지금 쫄렸다.
―근데 세상에, 얘가 울음을 그쳐서 왜 그러냐고 물어봤는데, 자기가 곡 준비를 하는데, 너무 슬프대.
―부끄럽습니다―.
저렇게 얼굴을 약간 가리듯 부끄러워하는 지동화? 그건 자신이 아는 지동화가 아니다.
영혼을 바꿔 탄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저래. 연기에 어느 정도 재주가 있는 거는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몹시 초조하고 불길할 때, 그러니까 인생에 몇 번 할 일이 없는 버릇.
“아니, 그 정도야?”
그걸 알고 있는 선배는 자신에게 뭐라 말을 하려 하지만, 들리지도 않는다.
“선배는 제 마음 몰라요.”
“…사춘기냐?”
무슨 부모님한테 소리치고 문 닫는 애도 아니고, 선배는 중얼거리며 습관적으로 감점 버튼을 누른다. 지동화 쪽 버튼은 거의 누르지 않는 게 손톱만 뜯고 있는 자신에게도 보였다.
“더 철저하게.”
“응?”
“더 철저하게 준비했어야 하는데. 게임 두세 개로 어떻게 할 수 있지도 않았고.”
고작 석준임을 증명하기 몇 번으로 때울 수가 없다. 석준의 캐릭터 특성상, 실수가 어느 정도 나올 줄 알았는데 거의 없잖아.
머리를 한껏 헝클였다. 토할 것만 같은 기분.
절대로 다가와선 안 될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나는 정말 네가 어렵다, 동원아. 때려 패고 싶어.”
자신이 기획한 그림을 너무 찰떡같이 소화하는 연예인. PD 인생에 몇 번 만날까 싶은 인재다.
멘탈 수업은 기획 단계부터 ‘이거 괜찮을까요?’라는 소리를 몇 번이고 들었지만, 지동화가 다 받아먹으면서 나름대로 히트도 쳤다.
자기 방송에 평생 출연시키고 싶고, 다른 방송을 하다가도 돌아와서 방송 같이했으면 좋겠는 연예인.
PD놈은 시계를 봤다. 게임 종료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다.
“…선배.”
“어?”
“지금, 1등, 누구예요.”
“동화 씨.”
무너져 내렸다, 세상이.
“동원아.”
“…네.”
“동화 씨 소원은, 딱 한 회차, 네가 휴가를 가는 거잖아.”
“…네.”
“그게, 그렇게까지 할 일이냐고.”
선배는 모른다. 지동화라는 인간이 그 짧은 시간 안에 궁리한 소원이, 얼마나 자신에게 슬픈 일인지.
자기가 선배들 틈바구니로 다시 돌아온 이유가 뭔데.
장 씨 누님 눈치를 더럽게 보고, 정 씨 형님의 잔소리를 매일같이 듣는 생활에도 버틸 수 있던 이유는.
“저는, 그렇게 할 일이에요.”
그저 멤버들, 그중에서도 지동화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작은 이유 하나뿐이었거늘.
* * *
노동에 중독된 인간은 두 부류가 있다.
미래에 지독한 불안을 느껴서 쉬는 게 편안하지 않은 인간과 노동의 결실 자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빠져드는 인간.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지만, PD놈은 명백하다.
명확한 후자.
스탭님들께 듣기로, PD놈은 주말 출근이 삶의 낙이라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수백 개 짜놓고 팀원이 돌아오면 같잖은 거 지우라는 식으로 회의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미친놈이지.
“형님―, 제 꿈 꾸세요.”
“응, 우리 준이! 형 갈게!”
마지막까지 염병을 떨며, 나는 해맑게 웃었다.
이 고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PD놈에게 엿을 먹이기 위해.
때는 이 자체 컨텐츠의 기획 회의.
지금 당장 PD놈 1회 이용권을 얻으면 무엇을 할 것인지 대답하기 위해 들어간 방에서 나는 고심했다.
PD놈 1회 이용권을 얻었을 때 가장 확실한 복수 방법은 무엇인가. 최대한 멘탈에 흠집을 낼 만한 일은 무엇인가.
1. PD놈을 화면 안에 불러서 개같이 부리는 것. → 실현 불가능. 자체 컨텐츠 특성상 PD가 출연한다는 발상 자체가 괴상하다.
2. 우리가 호의호식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게 하는 것. → 나쁘지 않지만, 언어의 특성상 아무리 제약을 달아도 빠져나갈 구실이 생기기 마련이다.
3. 그러므로 결론.
노동을 사랑하는 인간에게 휴식을.
내가 당해 봐서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도 잘 알고, 제약 조건을 꼼꼼히 단다는 가정하에 빠져나갈 구실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
윤성호가 나가는 걸 확인하고, 시계에 눈이 꽂힌다.
“끝났네.”
배웅을 위해 한껏 올라갔던 입꼬리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인형을 소파에 내려놓고 정자세로 앉았다. 오늘 하루 한량처럼 몸을 이리저리 마구잡이로 내려놓은 자세로 앉아 있었더니 몸이 꼬일 지경이었다.
“…너무 무섭구, 동화 형.”
류이든이 짧은 시간 안에 연기를 다 때려치운 내게 진절머리를 쳤다.
네 말투 왜 안 돌아오지, 이든.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벽돌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겠다는 선언인가.
어젯밤부터 시작해 오늘 밤까지, 날짜로 이틀 동안 진행된 멤버 교체.
모든 순간,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모든 걸 따져서 신경이 상당히 날카롭다.
누가 먼저 건들면, 오늘은 이현재처럼 물 예정이다.
나는 핸드폰에 충전기를 연결해 갤러리 속 심바 씨의 자태를 감상했다.
심바 씨, 내게 힘을 줘. 특히 송곳니에.
* * *
“아…….”
탄식이 울리는 PD실.
“아아, 아, 아!”
PD놈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얼굴을 움켜쥐었다.
자만했다. 평소에 동화 씨를 놀리는 데 도가 텄다고 생각해서, 이 정도면 충분할 거라고 여겼다.
게임 두 판을 조작하고, 다른 멤버들 게임은 난이도 완화, 지동화에게는 석준, 그리고 류이든에게 이현재를 배정해서 류이든의 우승을 도모하기까지.
선배가 그냥 넘어갈 만하게 의도했던 모든 조작 행위가, 이렇게 다 무너져 내렸다.
“…더럽게 독해.”
“네가 제일 독해, 미친놈아. 조작 같은 소리 내 앞에서 꺼내지 말라고!”
쨍알쨍알, 옆에서 소란스러운 선배님.
얼굴을 파묻고 가만히 있던 PD놈은 허탈하게 몇 번 웃었다.
쉬라고. 이렇게 재밌는 걸 관두고 한 주 쉬라고.
“우리 인터뷰 따야 하는데, 내가 해?”
“…제가, 할게요.”
아니, 안 될 것 같은데.
정 PD는 속으로 생각했다.
후배의 눈은 광인처럼 번뜩였다. 지금 건들면 물 것 같아.
“안 되죠! 이런 일에 선배가 힘을 쓰면 되나요. 후배가 해야죠. 그리고 저는.”
정 PD는 다시금 깨달았다.
이 새끼, 정말로 건들면 안 되는 상황이구나.
“우리 동화 씨랑 대화가 하고 싶어요.”
웃지 마. 무서워, 젠장. 왜 X발 오랜만에 일터에 돌아와서 또 공포 영화 찍어야 하는데.
정 PD는 속으로 구시렁거릴 수밖에 없었다.
* * *
# 블로센스 자체 컨텐츠 ‘블루트’ 미편집본
카메라 앞에 지동화가 걸어 들어온다. 승리 결과를 듣기 전에 진행된 인터뷰지만, 의기양양하다. 마치 카메라 뒤에 있는 누군가에게 답하듯 더욱 활짝 웃었다.
석준일 때와는 다른 질감의 웃음. 순진함보다는 위험함에 조금 더 가까웠다.
―반가워요, 동화 씨.
―저도요, PD님. 다음에 뵐 땐, 더 반가울 것만 같습니다.
교묘한 말.
뜻 자체는 다음 만남이 더 기대된다는 인사말이지만, 지금은 ‘잘 가세요.’라는 조소에 가까웠다.
―저는 동화 씨가 너무 좋은데, 동화 씨는 저를 너무 싫어하세요.
카메라 앞으로 가위 표시가 올라왔다. PD놈이 알아서 편집점을 잡은 셈이다.
―저를 아껴 주시는 만큼, 저도 아끼기에 휴식을 소원으로 빌었습니다.
―아, 어쩌면 좋지, 정말. 이러다가 저 병실에 누워서 오늘 촬영분만 매일 돌려 보는 사람이 될지도 몰라요?
―병문안은 당연히 가고, 올리브도 사서 가겠습니다.
몸에 좋은 식품이지만, 전통적으로 평화를 상징하는 열매. 당신 없는 자신의 삶이 평화롭다는 함축이다.
PD놈은 카메라 너머에서 한참을 말이 없었다.
―다음에는 기대하셔야겠네요.
―그러면 저는 또 우승해서 휴가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제가 그만큼 PD님을 아끼니까.
―…하, 어쩌면 좋지, 진짜! 지금이라도 사과할게요. 그것만 안 하면 안 돼요? 저는 여러분들 괴롭히는 게 삶의 낙이라고요!
―저는 PD님이 쉬는 모습을 보는 게 낙인가 봅니다.
그렇게 한참을 옥신각신하는 PD놈과 지동화.
서로 독기로 가득 차서 속으로는 어떻게 엿 먹일지만을 궁리하는 도중에도, 온화하고 따스한 분위기가 카메라에 맴돌았다.
물론,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장면. PD놈이 편집실로 들어가자마자 잘라낸 미방영분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