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1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19화(287/343)
“와, 동화야, 나는 네가 그렇게 승부욕 보이는 거 처음이었어.”
“걸린 게 크니까.”
“얘는 뭐 걸리면 장난 없어, 그치, 하민아.”
“이건 승부욕이 아니라, 뭐지…….”
엿 먹이고 싶은 욕구.
나는 내 손에 쥐어진 ‘1회 PD놈들 자유이용권(컨텐츠 기획권)’이라고 적힌 판넬을 꼭 붙잡았다. 더럽게 소중하다.
승리의 달콤함을 결정하는 건 그 과실이 얼마나 탐스러운 것인지에 달려 있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개 같았는지도 중요하다.
“하.”
성호한테 미안한걸.
이것들 앞에서 추태 부리는 거, 아직 낯간지럽긴 해도 익숙해지긴 했다. 그러나 윤성호처럼 애매한 거리감이 있는 사이에 그런 모습을 보이다니.
“이런 거 보면, 형은 주변에 하나같이 나사 풀린 사람들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현재가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곁에 살포시 앉아 있었다.
“그중에서 형이 제일이구요.”
뭐가, 망할 여우 놈.
“그럴 리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비록 내가 가방에 벽돌을 넣어 다니긴 해도, 그건 몹시 사소하다.
누구나 이상한 구석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만, 그걸 보고 나사가 풀렸다고 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PD놈은 대부분의 나사가 풀려 있는 인간이고, 예언은 나사를 박을 기판이 없는 인간이다.
둘 다 악한 인간은 아니라도 선하게 미친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 인간들에 비해 벽돌을 품고 다니는 건 너무나 사소하다.
“…그런가?”
“응, 현재.”
“근데 형, 그거 알아요?”
음?
“예언이 형이 변한 건 형 만나구 나서부터인 거.”
음.
“PD님도 전에 만든 프로그램들은 엄청 얌전하더라구요. 멘탈 수업이 완전 막 나가는 거였구.”
음.
“저두 형이랑 만나구 나서 성격이 바뀌었구, 이든이 형은 더 자신감이 생기구 능글맞아졌죠? 준이 형은 그대로긴 한데, 하민이 형도 오묘하게…….”
이현재는 말끝을 흐렸다. 한편에서 자기의 다이어리를 꺼내 멤버들과의 기념일을 확인 중인 채하민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자신의 기억력이 좋지 않다면서, 별 시답잖은 것도 날짜에 남겨 둬 추억하는 건 채하민의 흔한 일상이다.
그냥 말해, 현재. 쟤도 반쯤 미쳤다고.
“어쨌든 귀납적으로 증명되잖아요?”
일련의 사건이 발생할 때 똑같은 요소가 반복적으로 관측되면, 그게 원인일 거라고 의심하는 건 상당히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건 확률론일 뿐. 충분히 내가 원인이 아닐 가능성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형.”
이현재가 툭 말을 끊었다.
나는 네 순수함이 무서워질지도 모르겠다. 억지로 내 얼굴을 틀어잡고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려 하다니.
그건 우리 그룹 세계관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잖아.
* * *
기지생은 오늘도 어김없이 유치원 선생님처럼 앞치마를 입었다.
“자, 얘들아, 모여 보세요.”
동물 다섯 마리와 끊임없이 정서적 교류를 나눈 끝에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해졌다.
망할 것들, 예전에는 명령어만 입력하면 그만이었는데.
“오늘의 시청각 자료는 자기가 모든 사태의 원인인 걸 알고 있으면서 애써 외면하는 놈을 놀리는 법 특강입니다.”
“그걸 왜 배워요?”
토끼가 퍼뜩 손을 들어 올렸다.
“좋은 질문. 나중에 저놈이 여기 왔을 때 너희들이 즐겁기 위해서랍니다, 채.”
교육학에 따르면, 사적인 장소에선 친근하게 말하더라도 교육 현장에선 예의를 갖춰야 한다더라.
“어쨌든, 저기 보면, 자신의 지인이 모든 진실을 말해 주는데도 받아들이면 ‘나도 미친놈이구나.’라는 작은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인간이 보이죠?”
“네!”
“그럴 때는 내적 모순을 곧이곧대로 드러내는 것도 좋지만,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씩 웃어 주는 게 효과적이에요. 저라서 잘 안답니다.”
이 유치원의 유일한 모범생 여우가 자기 머릿속에 새겨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디스크 용량도 고양이 다음이라 성능이 최고다.
기이한 지적 생명체의 기묘한 유치원. 정식 명칭은 꽃동산 유치원.
모든 수업은 지동화가 훗날 이곳에 왔을 때 적응할 수 있도록 실무의 구체 사항을 알려 주고, 인간적 감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AI를 고도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참 수업을 진행하면 펼쳐지는 풍경은 비슷비슷하다.
반항적인 고양이는 옆에서 조는 공룡의 머리를 톡 치고, 정작 자기는 집중하지 않고 허공을 쳐다봤다.
실제로 이미 대부분 알아서 공부했을 테니 집중할 필요가 없긴 하다.
개는 고양이 꼬리를 가지고 장난치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다. 정작 옆에 토끼 놈이 설칠 때는 저러지 않았으면서, 본판을 정말 쏙 빼닮았다.
음, 망할 것들. 싹 다 초기화를, 시키고 싶지만.
이쪽을 올곧게 바라보는 여우와 눈을 마주하면 선뜻 그럴 수가 없었다.
저 아이의 원본이, 이현재구나.
대학의 젊은 교수였던 그 이현재. 기지생은 문득 추억에 잠겼다.
그때, 그 인간과 친하게 지냈더라면, 자신은 이곳에 있었을까. 그런 가능성이 자신에게는 있었을까.
정답은 이미 알고 있다. 전자는 예, 그리고 후자는 아니요.
“…선생님?”
여우가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릴 때 저 아이는 저렇게 살았구나. 자신의 보호자를 사랑스레 쳐다보며 순종적으로.
그런 아이가 자신과 만났을 때는 그토록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다니.
적어도 자신이 떠나기 전에는 그런 경험이 없게끔, 친구와 친밀하고 부모에게 사랑받도록 해 주고 싶다.
“수업 끝. 다들 놀아도 좋습니다.”
나머지 짐승들은 다들 놀이터에 폭탄이나 터뜨리러 갔지만, 여우 한 마리는 자기 머릿속 필기 내용을 허공에 띄우며 기지생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기지생은 평소와는 달리 여우를 꼭 안아 들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라도, 아예 없었던 일로 만들어 주면 속이 좀 시원해질까.
“질문 있니.”
여우는 기분이 좋은지 나른하게 무릎에서 뒹굴었다.
“선물이 있어요.”
퍼뜩 자리에서 일어난 여우는 자기 가방에 넣어온 꽃 한 송이를 기지생에게 건넸다.
시운관 곳곳에 널려 있는 고철더미들(아이들이 활기차게 놀다 보니 건물이 여기저기 많이 무너져서 그렇다, 알 바는 아니다)을 주워 만든 꽃.
“감사의 뜻을 담아서.”
음, 효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위.
기지생은 꽃을 가만히 받아들었다.
“스노드롭이네.”
“네. 꽃말은 희망.”
“…그래.”
기지생은 별생각 없이 꽃을 받들었다.
“전에 저기 있는 사람이 꽃 준비하는 거 같이 보면서, 저두 꼭 주구 싶었어요.”
뭐라 말해야 할까. 이런 짓은 해도 별 의미가 없다는 걸 가르쳐 줘야 할까.
고양이를 제외하면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진 아이. 다른 로봇을 다 만들고 나서 만들까 말까 고민을 했다.
본성은 변하지 않나 보다. 어떻게든 현실을 바라보게 만드는 걸 보면.
이름이 이현재인 것도 기막힌 우연이 아닐까.
“…음.”
교육학 이론상 이럴 때는 장단을 맞춰 주는 게 중요하다.
용기를 내서 준 선물에 ‘이런 짓은 과학적으로 의미가 없단다. 미신이야.’라고 하는 건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뜻이다.
기지생은 대답하는 대신 곧바로 손안에 꽃 한 송이를 만들어 냈다.
말바비스커스, 붉은색이 아름다운 꽃. 꽃말은 미련.
머지않아 이곳을 떠날 때 남게 될, 그 먼 옛날 이곳에 왔을 때 남게 된.
여우는 얌전히 꽃을 받아들고 눈으로 스캔하더니, 잠깐의 연산 시간이 지나자 고개를 푹 숙였다.
“…저는, 저 사람이 싫어요.”
음, 기분 좋은 소리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이 모든 과정은 오로지 ‘지동화’를 위한 거니까.
기지생은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자신이 겪었던 모든 일을 ‘자신’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 시원섭섭하다는 감정이 느껴졌다.
그리 유쾌한 감정은 아니구나, 기지생은 옅게 웃었다.
“선물 고마워, 현.”
“…저 좀 업데이트해 주세요. 제가 알아볼게요. 선생님이 모르는 방법이 있을지도.”
애절한 여우 옆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살포시 걸어왔다.
“안 돼, 보내 드려. 나도 몇 날을 찾아봤으니까.”
냉정한 목소리.
자세는 사뭇 위엄 있지만, 크기는 고양이라 놀리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찼다.
뺨에 털이 좀 꼬인 걸 보면, 누구 한 명의 사무실을 아주 엉망으로 만들고 왔나 봐.
“그리고, 자기가 선택한 거잖아.”
일견 냉정해 보일지 몰라도, 맞는 말이며 각오한 일이다.
여우는 원망스럽게 고양이를 쳐다보다가 기지생의 무릎 위에서 똬리를 틀었다.
“너희들 감각이나 더 업데이트해 줄까.”
기지생은 흥겹게 웃으며 기운 없는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면서도 한 손으로는 여기서 받은 최초의 선물을 꼭 쥐었다.
* * *
누군가 선택을 한다면, 옆에 있는 사람이 되돌려 줄 수도 있다고, 요즘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채하민이 이상한 선택을 하려 할 때, 내가 그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설득하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큰 영향을 남겼다면, 설득할 권리 정도는 주어지는 것 아닐까.
“…왜 아무도 안 말렸을까.”
나는 집사복을 입은 예언이 깍듯하게 내 잔에 커피를 따르는 걸 보며 중얼거렸다.
“무엇을요, 주인님?”
“닥쳐 주시겠습니까. 대체 무슨 컨셉을.”
신분제가 폐지된 게 언젠데 그딴 앙시엥 레짐을 들먹이다니. 단두대가 두렵지 않습니까.
“인생을 선물받았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죠.”
여기, 네 카페라며. 사장님이 그런 꼴을 하고 있는데 아르바이트생분들이 어떻게 얼굴을 들고 일할 수 있겠어.
여기 처음 들어왔을 때는, 생각보다 아름다운 인테리어에 감탄했다.
체스판을 연상케 하는 흑과 백의 조합. 장기를 더 좋아하지만, 체스도 훌륭한 게임이지.
그러나 나를 맞이해 주는 놈이 집사복을 차려입고 머리까지 넘긴 예언인 걸 확인했을 때, 내 표정이 어땠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내일이면 해외 일정이 시작되니, 그 전에 자신의 사업장에 한번 들러 줬으면 좋겠다는 예언의 문자를 봤을 때.
‘그래도 한번 가 봐. 예상보다 훨씬 더 너 챙겨 주려고 노력하시거든.’
이라는 류이든의 조언을 듣는 게 아니었다.
그 누구도 나를 말리지 않은 건, 어째서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극진한 대접은 현대 사회에서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나처럼 그런 대접이 익숙지 않은 인간일수록 더.
왜 여기서 멘탈 수업을 촬영해야 하지. 나는 네가 만든 다크 초콜릿 몇 개 사서 담소나 나눌 예정이었어.
평소 예언에게는 속으로도 경칭을 썼지만, 절로 욕이 튀어나온다.
미팅룸에 들어오기 전까지 이곳으로 몰리던 시선과 카메라 셔터음 세례는 트라우마로 남을 지경이다.
“커피는 입에 맞으시나요?”
싱긋. 맞춰 주기 전까지는,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예, 집사.”
“네.”
“…혼자 있고 싶어.”
“그럴 수는 없습니다. 독살이라도 당하면 어떡해요.”
네 사업장이야, 미친놈아. 독살당하면 십중팔구 네가 범인이잖아.
“주인님이 제 인생을 구해 주기 전을 생각하면…….”
예언은 훌쩍이며 눈시울을 훔쳤다.
PD놈과 비교할 때 예언이 더 무서운 건, 저놈은 놀리려는 마음보다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기 위해’ 저러고 있다는 점이다. 상식이 어딘가 뒤틀렸어.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거짓말 마요. 이 카페가 그걸 증명하는데. 아니었으면 없었을 카페예요.”
어쩌지, 말이 통하지 않아 설득할 수 없는 인간이다.
벌컥.
“미안, 조금 늦…….”
뒤늦게 도착한 준성이 미팅룸의 문을 열었다가 황급히 닫았다.
어디 가, 동생이 위기에 처하면 돕는 게 형의 도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