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3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32화(32/343)
32.
나는 바닥에 펴둔 이불에서 몸을 일으키며, 잠꼬대로 뒤척였는지 흐트러진 목화의 이불을 여며줬다.
‘새삼스레, 낯설군, 목화의 이불을 여며주는 일은.’
그래, 이전 세상에서, 나는 홀로 계속 도망치기만 하는 삶을 살았지.
등신 같은 죄책감으로, 이렇게나 착한 동생 앞에 못난 형으로 서있는 게 두려웠을 뿐인 겁쟁이로, 살았겠지.
류이든을 욕할 게 아니라 나부터 머리를 벽에 부딪쳐서 정신 차려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세계에선 달라졌다. 나는 현재 혼자가 아니며, 동생과 화해했다.
그렇다면… 아까 본 목화는, 지금도 그러고 있는 걸까.
나는 동생이 깨지 않도록 작게 소리 냈다.
“…기지생, 질문권 사용.”
[질문하십시오.]‘…여긴, 이전과는 단절된, 다른 세계인 건가?’
[질문권을 사용하셨습니다!답변 : 평행 세계는 모든 가능성의 잠재태로서 현실에 내재해 있는 세계의 가능성을 지칭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선택을 통해 이 가능성들 중 하나를 실현합니다. 즉, 세상의 실상은 하나의 다면체에 비유할 수 있고, 인간이 살아가는 순간은 그 다면체의 한 표면에 해당합니다.]
“음, 가능성의 조각이라는 이름에서 약간은 예상했지만…….”
즉, 모든 가능성은 이미 중첩된 상태로 존재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순간에 하나의 가능성으로 고정된다는 거군.
…양자역학을 인문학적으로 잘못 이해한 사례 같잖아.
띠링―!
[당신은 드디어 천성적인 불신을 뛰어넘어 시공간 이동의 진상을 알게 되었습니다!]하, 그래. 이해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인생에, 몇 개월이나 월세를 밀릴 가능성이 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지만, 고맙긴 하다.
어쨌든, 내 생에서 목화와 화해할 가능성을 실현할 기회를 준 셈이니까.
하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사기를 치면 안 되지.
‘진상이라기엔, 왜 하필 내게, 새로운 가능성을 살아갈 기회가 주어졌는지는 아직 설명이 안 됐는데. 네가 누군지도 아직 모르고.’
[주의! 일급 기밀 사항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이렇게 말하니 기지생의 정체가 더욱더 궁금해지는데.
나는 기지생에게 지니고 있던 감사한 마음이 지적 호기심으로 대체되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 누웠다.
…나중에 질문권이 생기면 단서라도 얻어봐야겠군.
띠링―!
[‘데뷔’ 퀘스트의 달성으로 ‘찬란한 1년’ 퀘스트가 발생합니다.당신은 드디어 데뷔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이돌은 거기서 멈춰선 안 됩니다. 신인상을 타서 다음의 보상을 획득하세요.
보상 : 기지생의 단편적 정보, 가능성의 조각]
…음, 이 망할 기지생, 새로운 미끼를 잡은 것 같군.
* * *
기지생은 지동화가 잠드는 걸 보고 공중에 떠있는 모니터에서 송출되는 영상을 모두 종료했다.
‘…마지막으로 화해도 했으니, 원래 목표는 달성했군.’
그럼 이제 관심을 끊고 하던 일이나 잘하면 된다.
그러나 합리적으론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이 일탈을 멈추기 싫은 이유는 무엇일까.
기지생은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결국 새로운 홀로그램 화면을 띄운다.
“…한번 볼까, 어떻게 되는지.”
기지생은 지금의 상황과 주변의 여러 환경적 요인, 그리고 각 개인의 성격을 변수로 둔 채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기 시작한다.
[시뮬레이션 결과 도출 : ‘지동화 포함 5인의 연예계 활동’에 관한 단기적인 모든 가능성의 목록.]그리고 그 목록을 천천히 읽어 내린 기지생은 탄식을 터뜨린다.
‘…저런, 1집 활동은 꽤 높은 확률로 망하는군.’
하, 그래, 이제 와서 지동화를 포함한 5명에게 추가로 조력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다.
이미 지동화의 월세 정보를 아주 약간 조작해서 서바이벌 참여를 유도한 것보다야, 퀘스트로 자잘하게 응원하는 것 정도는 애교지.
그래도, 그 망할 놈들이 자기한테 애원하며 같이 일하자고 한 것이니, 이 정도 권력 남용 정도야 이해해 주는 게 맞다.
‘최소한 붙잡을 수 있는 기회 정도는 하나쯤 있을 텐데…….’
기지생은 가능성의 목록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따지면서 어떤 퀘스트가 지동화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도움의 손길을 제공할 수 있을지 고심하기 시작한다.
* * *
“자, 제1회 룸메이트 선정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네 명의 연습생은 거실 바닥에 앉아있고, 류이든만 서서 마치 MC라도 된 양 소리쳤다.
우리는 예의상 박수를 치며 호응해 줬다.
우리가 이런 되도 않는 짓거리를, 숙소에서, 그것도 카메라를 앞에 두고 하는 이유를 알려면 어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틀 동안 목화와 둘이서 오랜만에 함께 생활한 다음 날,
우리는 장해진 팀장의 소집 명령에 따라 모였다.
“여러분들! 데뷔 확정을 우선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장해진은 한 명 한 명에게 종이를 나눠주며 설명을 시작한다.
“앞으로 두 달 반 이후, 그러니까 6월 초 데뷔로 계획을 잡아뒀습니다.”
새삼스럽지만, 정말로 아이돌로 살아가야 하는 거군. 역시 코앞에 와 닿으니 감회가 새롭다.
그때 류이든이 조심스럽게 손을 든다.
“저, 팀장님, 데뷔는 원래 한 달 뒤 아니었나요?”
“맞아요. 서바이벌이 끝나고 하루 빨리 데뷔하는 게 무조건 좋죠.”
그리고 장해진은 직장인의 애환이 묻어나는 한숨을 길게 뱉는다.
“사실은 원래 준비하던 계획이 있었는데…….”
장해진은 무언가 망설이듯 말을 쉬었다가 다시 입을 연다.
“저희가 예상했던 그룹 이미지랑 지금 그룹 이미지가 조금 달라져서 말이죠.”
그렇게 말하던 장해진은 지동화를 바라본다.
“지동화 연습생, 아니, 지동화 씨가 곡을 한번 써보는 게 맞을 것 같아서, 계획을 조금 변경했습니다. 물론 쓰신다고 앨범에 무조건 넣겠다는 건 아니지만요. 그리고 달리 말하면… 타이틀이 될 수도 있고요.”
장해진은 몹시 중요한 선언을 했다는 듯 결연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런데…….
…타이틀이 뭡니까.
나는 갑자기 등장한 익숙한 단어의 낯선 활용에 잠시 멍해진다. 내 머릿속 작곡 용어 사전엔 없는데, 그런 말.
‘Title이면… 명사로는 뜻이 6개로 제목, 서적, 작위, 선수권, 직위, 소유권 정도.’
재빨리 외워 둔 사전의 이미지를 떠올렸지만 맞아떨어지는 게 없다. 내 곡이 작위를 얻는다는 건 말도 안 되잖은가.
“…죄송하지만, 타이틀이 뭡니까?”
그러자 순간 싸해지는 방 안의 공기. 어떻게 그런 걸 모를 수 있냐는 무언의 압박감이 나를 짓누른다.
살면서 몇 번 못 해본 경험인데, 새롭군.
…망할 기지생, 지식 동기화를 할 거면 아이돌 업계 용어도 동기화할 것이지.
“…여러분들이 무대를 펼칠 주력 곡을 타이틀곡이라 부릅니다.”
오케이, 중요하단 뜻이군.
“하여튼… 그런 관계로 지동화 씨는 이틀 후 있을 프로듀싱 회의 때 세부 일정 들으시면 됩니다. 모두 프로듀싱 회의에 참여하긴 하는데, 동화 씨는 특히 귀 기울여 들어주세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해진은 나머지를 둘러보며 말한다.
“그런데 그러면 여러분들의 팬들이 지치신단 말이죠? 두 달 반 동안 아무 소식이 없으면요.”
그러곤 종이를 한 장 더 넘긴다.
“그래서, 리얼리티를 촬영해야 합니다! 2주 후에 바로 방영될 거예요.”
…그나저나 리얼리티는 또 정확히 뭐지. 나는 일단 장해진을 따라서 종이를 한 장 넘긴다.
[리얼리티 ‘We’re the Next Nietzche!’ 계획표]음, 니체 스펠링 틀렸군.
분위기상 지금 말할 순 없을 것 같으니, 나중에 종이에 적어드려야겠다.
* * *
이런 과정을 거쳐 현재 우리는 카메라로 둘러싸인 숙소에서 되도 않는 ‘룸메 선정 대회’ 같은 걸 하는 것이다.
여전히 리얼리티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데뷔까지의 모든 과정을 낱낱이 보여주겠다는 목표를 생각해 보면, 다큐멘터리 비슷한 것 같다.
“저희― 룸메 선정 방식―은 무엇인가요―?”
“좋은 질문! 바로 경매입니다.”
…내가 알기론 저 룸메이트 선정 게임은 류이든이 자체적으로 기획해 온 걸 텐데. 기괴하군.
다들 나랑 같은 생각인지 눈을 끔뻑이고 있다.
“게임 방식은 단순합니다! 여기 보시면 집안일 목록이 모여있어요.”
류이든이 만들어 온 패널에는 ‘화장실 청소―5포인트’ 같이 집안일마다 점수가 매겨져 있었다.
“원하는 방에 자고 싶은 분은 훨씬 더 많은 집안일을 하면 됩니다.”
이후 이어진 류이든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1. 2명이 자는 A방, 똑같이 2명이 쓰는 B방, 1명이 쓰는 C방으로 구성되는 각 방에 우선 어느 방을 원하는지 정한다.
2. 만약에 겹치거나 인원수가 초과하면 집안일을 구매해서 포인트를 벌고, 점수가 더 낮은 사람을 쫓아내면 된다.
…신비하군.
“그러면, 저랑 동화 형 모두 C방을 쓰고 싶을 때, 제가 화장실 청소를 하겠다 하면 동화 형을 다른 방으로 쫓아내는 거고요?”
“맞아요, 현재! 물론 동화가 화장실 청소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하겠다고 하면 당신이 쫓겨납니다.”
가만히 듣던 나는 손을 들었다.
“…그럼 여기서 배분되지 않은 집안일은 누가 합니까?”
“그건 균등하게 나눠 가지게 됩니다.”
…오케이, 일단 해보자.
모두들 각자 원하는 방을 적어낸 뒤, 동시에 공개했다.
나는 아주 당연히 혼자 쓰는 C방을 적었고, 이현재와 류이든이 C방, 채하민과 석준이 각각 A방과 B방을 적었다.
…채하민 저놈은 A방이 층간소음 심한 걸 모르는 건가?
“이야, 치열하네. 그럼 나부터. 나는 화장실 청소 일주일에 한 번으로 C방 입찰할게.”
…망할, 포인트가 세다. 나는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일주일에 이틀 설거지, 아침 식사 준비 일주일에 4일로 입찰합니다.”
자잘한 집안일을 끌어모아서 1점 차로 내가 앞서간다.
“에이, 동화 형, 혼자 쓰는 방을 너무 날로 드시네. 화장실 청소 한 달에 2주 내가 할게.”
…저 망할 강아지가.
“…저 한 달에 3회 할게요, 다들 제 스위트 홈에서 나가세요.”
…저 여우 놈이.
“…입찰. 화장실 청소 3회, 일주일에 3회 설거지, 일주일에 4회 아침 준비.”
내가 그렇게 선언하자 도리어 채하민이 화들짝 놀라더니 입을 틀어막는다.
“도, 동화야, 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리고 곧바로 손을 든 이현재.
“입찰. 화장실 청소 4회, 일주일에 설거지 4회.”
…졌군. 더 했다간 이 집의 가정부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다.
“…C방 포기하겠습니다.”
“동화 형이 포기하고 저도 포기해서, C방은 현재로 낙찰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B방 들어가겠습니다.”
…저 망할! A방은 층간소음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는데.
“…B방, 아침 식사 준비 3회로 입찰합니다.”
가만히 있다가 쫓겨나게 생긴 석준은 놀라더니 손을 든다.
“저는― 설거지―를 일주일, 음, 2회, 그리고 거실 청소를 주에― 4회 하겠습―니다.”
…이제 부디 A방으로 꺼져, 류이든!
그런 내 심리를 읽기라도 했는지 류이든이 씩 웃더니 말한다. 마치 악마가 사람의 영혼을 마지막에 가져가기 직전에 보이는 미소 같다.
“난 아침 식사 준비 7회랑 설거지 1회, 거실 청소 주에 3회 할게, 동화 형.”
…이런 미친 인간을 봤나. 남아있는 집안일을 끌어모아도 석준을 이기지 못하게 만들어놨다. 은근 머리가 돌아간다, 이거군.
“…B방 포기하겠습니다.”
그 순간 채하민이 박수를 연신 치더니 해맑게 웃으며 나를 내 어깨에 두 손을 얹었다.
“동화야! 집안일 거의 안 하고 룸메 됐어! 엄청 좋다!”
…저리 가, 토끼 놈.
“…그러게.”
“너도 나랑 룸메 되니까 좋지, 동화야?”
지금은 해맑게 웃고 있지만, 너도 오늘 밤쯤엔 문제를 깨닫겠지.
“…좋네.”
* * *
그렇게 고통만 남은 룸메 선정이 끝나고, 우리는 각자 방에서 짐을 풀고 다시 거실에 모였다.
사실 나는 누워서 책이나 읽으려고 했는데 채하민한테 붙잡혀서 나왔다.
…다들 말은 안 하고 있지만, 뭐라도 방송에 나올 만한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불타고 있는 것 같군.
그렇게 가만히 앉아있길 10분. 이럴 거면 대체 왜 모인 건지 모르겠다 싶을 즈음…….
“…저희 리더는 누가 할까요?”
이현재가 화두를 던졌다.
그러자 채하민이 오, 소리를 내더니 말한다.
“나는, 음, 동화 아니면 이든 형이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하민이, 왜 그렇게 생각해?”
“음, 우선 이든 형은 통솔력이 좋잖아. 내가 회사 들어오기 전에도 계속 연습생들 이끌었던 것 같고. 팀을 앞에서 이끌어 가는 리더가 될 것 같아.”
“음, 내가 직접 들으니 쑥스럽네.”
류이든은 멋쩍다는 듯 웃는다.
“반면에 동화는, 따스하고.”
…어? 하민, 너 정신적으로 문제 있었나?
“동화는 애들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면서 뒤에서 받쳐줄 것 같아. 다르지만, 좋은 리더잖아.”
따스하기는 또 뭔 소리고, 꼼꼼히 보살펴 주는 건 또 무슨…….
더 놀라운 것은 나머지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집단 광기군.
“음, 확실히 동화 형이 그렇긴 하지.”
“그런데 저 궁금한 거 있어요, 이든 형. 왜 동화 형한테 형이라고 불러요?”
이현재가 묻자 갑자기 모두들 ‘어, 그렇네?’라는 표정으로 나와 류이든을 번갈아 보고 있다.
내가 이 사달 날 줄 알았지, 강아지 같은 놈.
나는 체념했으니 알아서 설명하라는 눈으로 류이든을 바라봤다.
그러자 류이든은 멋쩍게 머리를 한번 긁더니 씩 웃으며 말한다.
“동화 형이 먼저 내 형 해주기로 했거든.”
“…사기 치지 마십시오.”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류이든은 계속 입을 놀린다.
“내가… 서바이벌 때 마음고생 심했던 날이 있거든. 서바이벌 관둘까 생각도 하고. 그때 동화가 내 고민 들어주면서 자기가 내 형 해줄 테니까 고민 말하라고 하던데?”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을 카메라가 찍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떠올렸다.
나에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귀에 열기가 몰린다.
“…이든 형.”
“왜, 동화 형?”
서로 형이라고 부르는 기이한 대화 속에서 나머지 멤버들은 웃음을 꾹 참고 바라보고 있다. 전부 내 쪽을 바라보는 걸 보니, 부끄러워하는 게 우습나 보군.
“…형을 죽이려 하는데,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장난스럽게 튼튼한 몸을 쓰다듬은 류이든은 소름 끼친다며 몸서리친다.
나는 한숨을 한번 내쉬고 화제를 바꾼다.
“…그래서 리더는 누가 하는 겁니까. 개인적으로 저는 류이든이나 채하민 추천합니다.”
일단, 리더는 나만 아니면 되니까. 감투는 줘도 사양이다.